<113화>
사주창을 각성시켜주겠다는 이야기.
흥미롭기는 했지만, 사실 그 글 자체는 그렇게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사주창 사기’는 꽤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사주창 사기는 말 그대로 사주창을 각성시켜주겠다 해놓고서 돈만 받고 잠적하는 경우였다.
종교 단체나 무속인들 사이에서 성행하는 수법이기도 했다.
[부적 하나 써봐. 이 부적을 지니고 100일간 치성을 드리면 사주창이 각성할 거야!]
[굿 한 번 받으세요. 그러면 사주창을 각성시킬 수 있습니다.]
[조상님이 노하셔서 사주창이 각성하지 않는 거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기꾼을 찾아가는 사람이 많았다.
김제능 역시 그런 소액 사기를 몇 번 당해봤다.
때문에 처음에는 성은교에서 올린 게시글을 보고도 믿지 않았다.
또 흔한 사기겠지.
그러나 정말 성은교에 들어가 사주창을 각성했다는 간증글을 종종 찾을 수 있었다.
‘혹시 몰라. 정말로 각성시켜줄지도 모르고. 그리고 위험해 보이는 곳은 아니었으니…….’
성은교에 대해 조사를 해보니,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작은 종교 단체였다.
각성의 날 전에는 봉사와 심신 수양을 위주로 하는 종교였다고 했다.
종교 단체라기보다는 명상과 기 수련을 중심으로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 각성시켜주는 거 맞죠?”
김제능이 불안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물었다.
주위 사람들이 이해가 간다는 듯한 표정으로 봤다.
“맞아. 나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여기서 각성한 사람들 꽤 있어.”
“아저씨도요?”
“아직이지만 내일 성은을 받을 예정이야!”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자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하루만 지나면 각성자가 된다니.
김제능은 운전수가 너무나도 부러워졌다.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댔다.
“등급 뭐 나올 것 같아요? 충급?”
“어허, 충급이라니. 부정 타, 이 사람아. 그런 말 하지마.”
“전 인급만 되어도 좋을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김제능도 어딘가 모르게 설레기 시작했다.
자신의 등급은 어느 정도일까?
‘충급은 아니겠지. 충급은 흙수저들이나 받는 등급이랬어. 못해도 인급, 아니면 귀급……!’
-덜컹!
그가 행복한 상상에 젖어있던 그때.
차가 크게 덜컹거리며 심하게 흔들렸다.
봉고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짧게 소리를 질렀다.
“악! 뭐야?”
“바, 바퀴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사람들이 내려서 확인을 해보니 바퀴가 구덩이에 빠져 있었다.
힘을 모아 차를 빼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운전수가 어디에 전화를 걸더니 말했다.
“곧 사람 보내준대. 기다리면 곧 올 거야.”
그 말에 사람들은 안도하는 기색이 되었다.
그나마 목적지 부근에서 문제가 생겨 다행이었다.
운전수가 짜증 섞인 눈으로 말했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 구덩이가 있지? 이상한 일이네…….”
구덩이는 확실히 미묘한 위치에 나 있었다.
누가 일부러 파 놓은 것처럼.
사람들이 구덩이를 살펴보는 사이, 김제능이 한발 물러서며 말했다.
“저기, 전 볼일 좀 보고 올게요.”
“그래요. 멀리 가진 말고.”
김제능은 고개만 한 번 끄덕인 뒤 발을 옮겼다.
수풀 깊은 쪽으로 들어서는데 김제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지금 조금이라도 빨리 성은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주위 친구들은 이미 다 헌터가 되어 마경을 돌고 있었다.
다들 김제능에게 각성은 했냐고, 어떤 등급이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해 말을 하지 못하던 상황.
빨리 사주창을 각성해 자신도 그곳에 끼고 싶었다.
‘아냐. 사고 난 정도로 초조해하지 말자. 얼마 안 남았어.’
이제 성은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자신도 헌터가 될 수 있었다.
헌터가 되어 큰돈을 벌고, 유명 문파에 들어가고 이름을 날리는 헌터, 아니 만신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그래. 이제 조금만 있으…….’
-콰악!
그때, 누군가가 김제능의 입을 틀어막았다.
반응할 사이도 없었다.
김제능이 놀라 발버둥 치려 했으나 이미 자신은 제압을 당해 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으읍!”
“조용. 큰 소리 내지마.”
뒤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강림이 김제능을 제압한 채 내려보고 있었다.
그가 김제능을 살펴보며 말했다.
“성은교에 들어가려는 신입인가? 못 보던 얼굴인데.”
“읍읍…….”
“저 사이비 종교에 들어가려 하다니. 어지간히 급했나 보군.”
사이비?
사이비라는 말에 김제능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마음 한구석에 정말 사이비인가 하는 생각도 있긴 했지만…….
“저긴 안 들어가는 게 나아.”
서강림은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풀어주었다.
여전히 다른 손으로는 제압을 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김제능이 여전히 바닥을 바라보는 채 말했다.
“다, 당신은 누구죠……?”
“그건 알 거 없고. 갇혀 있는 누군가를 구하러 왔어. 그래서 몇 가지 도움이 필요해.”
“도움……이라면.”
“네 이름이랑 여기 들어오게 된 경위. 간단한 신상 정보 같은 걸 이야기해.”
김제능은 왜 그런 것을 묻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솔직하게 대답하였다.
서강림은 묵묵히 듣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됐어. 한 가지만 더 부탁하도록 하지.”
“뭔…….”
-퍽!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강림이 김제능의 뒷덜미를 내리쳤다.
김제능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기절했다.
서강림이 무심하게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손톱 좀 가져간다.”
* * *
“제능 씨. 오래 걸렸네? 큰일이었나 봐?”
봉고차가 있던 곳으로 돌아오자, 교단의 사람 중 하나가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 감시하던 때보다 사람이 늘어나 있었다.
아마 봉고차를 빼내러 온 사람들 같았다.
“어휴, 그런데 여기에 웬 구덩이인지 몰라.”
“그래도 덕분에 빠져나왔네요. 얼른 올라가죠.”
그들은 구덩이를 판 사람이 나인 것도, 김제능이 바꿔치기 당한 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김제능의 손톱을 먹고, 그의 모습으로 변신했으니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자, 다들 성은을 받으러 가자고!”
운전수가 기세 좋게 차를 몰기 시작했다.
바깥의 풍경이 그저 숲길만 이어지더니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성은교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마치 폐쇄된 학교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도 그런 것 같았다.
페교한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쓰는 것 같았는데, 분위기로 봐서는 종교 시설로 보이지 않았다.
“자, 제능 씨. 들어가죠.”
한 사람이 나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있었다.
안에 있던 사람 중 하나가 나를 끌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반갑게 말을 걸었다.
“엇, 새로운 신도야?”
“네. 제가 데려왔어요.”
“잘했네. 이제 몇 명만 더 데려오면 성은 받을 수 있지?”
“3명이요.”
성은교는 사주창을 각성시켜주겠다고 했지만, 모두가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포교 활동에 성실한 자가 우선적으로 사주창을 각성시킬 수 있다.
즉, 피라미드 회사처럼 신도를 여럿 데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주위를 살펴보았다.
안으로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전생에 이곳에 온 건 신수아와 다른 사람들뿐이었으니까.
전생에서는 지금 시점으로부터 약 1년 뒤, 성은교에 대한 이야기가 비호문에 들어오게 된다.
성은교는 사주창 각성을 무기로 빠르게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
사실 새로운 종교가 생긴 건, 각성의 날 이후 딱히 드문 일은 아니었다.
각종 신들이 사람들에게 신내림을 하게 되면서 여러 종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종교가 만들어져야 신들의 인지도가 높아지기도 하니까.
다만 성은교는 여러모로 수상한 점이 있었다.
우선, 성은교에는 신이 없다.
신이 없는 종교가 있기는 하지만, 신에 준하는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또한 이곳에 들어온 사람 중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다.
가족들이 아무리 연락을 해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러다 피해자의 지인 중 비호문의 일원이 있어, 신수아에게 그 사실을 알리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신수아가 나서 성은교를 조사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유하랑이 구출되었다.
유하랑과 조우하는 것은 1년 뒤의 일.
지금은 비교적 안전한 상황일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씩 미래가 바뀌고 있고, 성은교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1년이 남았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때 나를 데려온 신도가 말했다.
“자자, 슬슬 말씀 시간이니 일단 들어가자고!”
조사를 해보고 싶지만 일단은 말을 듣는 게 낫겠지.
나는 안내자를 따라 예배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예배실은 커다란 강당이었다.
이미 여러 사람이 북적북적 모여 있었다.
나이도, 성별도 다양했다.
혹 유하랑이 있지는 않을까 주위를 살피고 있는데, 마이크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성은교에 와주신 여러분,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교단에는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온화한 인상에 부드러운 목소리.
전반적으로 호인이라는 느낌을 주는 남자로, 이름은 유선민이었다.
“오늘 드릴 말씀은…….”
그 이후로 차분하고 지루한 설교가 이어졌다.
선하게 살면 언젠가 그 복을 받게 되리라는 것이 골자.
그러나 중간중간에 이상한 이야기들도 섞여 있었다.
“아직 성은교의 신께서 찾아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름조차 아직 없는 분이시지만, 곧 저희를 위해 오실 겁니다.”
그 말을 하는 유선민의 눈이 희망에 가득 차 빛났다.
그가 허공을 향해 양팔을 넓게 벌린 채 말했다.
“지금 이 세상에는 많은 신이 있습니다만, 모두 강한 만신을 찾으려 하죠. 우리처럼 약한 자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습니다.”
그 말에 주위에서 작은 한탄 소리가 들려왔다.
성은교에는 미각성자도 있지만, 각성한 이들도 꽤 많았다.
다만 각성자라 해도 만신은 없었다.
약해서 신내림 받지 못해 외면당한 사람들.
유선민이 그들을 위로하듯 말했다.
“그러나 곧 찾아오실 이름 없는 그분께서는, 우리 같은 약한 자들을 위한 편이 되어주실 겁니다. 그분이 우리 모두를 만신으로 삼아주실 겁니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이라면 혹할 법한 말이었다.
사주창을 각성시켜주는 데다가, 신내림까지 시켜준다니.
사람들은 애원하는 듯한 눈으로 유선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 내 눈동자에 분노와 살기가 일렁거리고 있을 테니.
이름 없는 신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나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단상 위로 뛰쳐 올라가, 유선민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었다.
내가 감정을 억누르려 애쓰는 사이 유선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 새로운 축복을 받을 분이 계십니다.”
문득 정적이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자, 유선민이 고개를 틀어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 앉아 계신 분. 단상으로 올라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