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제가요?”
“네. 저 강림 씨가 만든 문파라면 들어가고 싶어요.”
문파 창설이라니, 딱히 내키지 않는 제안이었다.
지금도 적이 여기저기 생기고 있는데, 내가 문주가 되어봐야 다른 사람마저 타겟이 될 뿐이지.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사부님, 저도요! 저도 사부님이 만든 문파에 들어가고 싶어요.”
“나 다른 문파에서 계약금 많이 준다고 그랬는데……. 사부가 문파를 만들면 돈 안 받고 들어가 줄게!”
다들 눈을 빛내고 있는 것이 제법 부담스러웠다.
이 사람들이 다른 문파로 뿔뿔이 흩어지게 놔둘 수는 없지만, 내가 문파를 만드는 것도 좀 그런데.
“차라리 신수아 씨가 문파를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만.”
“글쎄요. 그렇지만 강림 씨가 저보다 강하잖아요?”
“저는 이미지가 나빠서 안 됩니다.”
나는 실력자인 동시에 살인자로 불리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 커뮤니티를 보니 나에 대한 비방글도 상당히 많이 올라와 있었다.
-서강림 완전 미친놈이던데? 수라문에서 이유 없이 깽판치고 갔다던데.
-성의결도 누명 씌워서 감옥 보냈다면서?
-아냐, 풀려났대. 그런데 요즘 성의결 왤케 잠잠하지?
-은퇴하고 쉬는 중이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성의결이 서강림한테 협박 당하고 있는 건 아님?
온갖 유언비어가 뒤섞인 채, 소문은 점점 덩치가 커지고 형태를 바꾸어나가고 있었다.
내 말에 사람들이 머뭇대는 기색이 되었다.
“확실히 커뮤니티에 형님 욕이 많이 올라오긴 했지만…….”
“그거 사부가 강하니까 괜히 물고 뜯는 거야! 연예인 악플 같은 거라고!”
“어쨌거나 난 이미지가 안 좋아. 차라리 신수아 씨가 문주인 게 낫지.”
나는 무소속인 편이 여러모로 나았다.
그렇게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사람들은 문파 설립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식사가 다 끝날 무렵, 내 휴대폰이 조용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확인해 보니 강도현이었다.
드디어 뭔가 알아낸 건가.
“그럼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내 방으로 돌아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느려. 빨리빨리 좀 받아.]”
“최대한 빨리 받은 거라고. 무슨 일이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 집으로 와. 오후에 일정 없지?]”
그가 집으로까지 불러서 할 정도라면 꽤 중요한 이야기 같았다.
일정이 있더라도 빼야 했다.
나는 바로 가겠다고 답한 뒤, 곧바로 호텔을 나섰다.
호텔을 나오는 동안에도 여러 사람이 힐끗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얼굴이 팔리는 게 좋지만은 않았다.
앞으로는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다녀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주의하며 강도현의 집으로 향했다.
두 번째로 오는 강도현의 집.
그가 초대를 했음에도 나는 쉽게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이 집이 어색했다.
십 년 전에는 내 집이었던 곳이기도 한데.
그렇게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대문이 열렸다.
“멍청하게 왜 그러고 서 있어? 들어와.”
강도현이 퉁명스럽게 말하며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정장이 아닌 개량 한복을 입고 있었다.
휴가라도 낸 것일까.
“형이 나를 집으로 부를 줄은 몰랐는데.”
“그러면 어디서 만나냐?”
“그렇긴 하네.”
사실 마음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가 강도현의 집 정도밖에 없기는 했다.
메시지나 전화는 도청의 위험이 있다.
그렇다고 내가 지내는 호텔로 부르기에는 보는 눈이 많고.
차라리 내가 이곳에 오는 게 그나마 안전하긴 했다.
“앉아.”
그가 소파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자리에 앉자 강도현이 여러모로 나를 훑어보며 말했다.
“미친놈. 어떻게 하루 만에 대마경을 깨냐? 보호국이 난리도 아니다.”
“거긴 분위기가 어때?”
“다들 네 이야기밖에 안 해. 공주 팀장은 너 데려오고 싶어서 안달이더라.”
하긴, 공주 팀장은 나를 자신의 팀으로 데려오려고 계획하고 있었을 테니까.
강도현이 질책하듯 말했다.
“커뮤니티도 시끄럽던데. 성의결이랑은 어쩌다 얽힌 거야?”
“어쩌다 보니. 좀 귀찮기는 해. 호텔에서도 알아보는 사람이 여럿이고.”
“아직도 호텔에서 지내는 거야?”
“응. 다른 사람들이랑도 같이 있어야 하니까.”
호텔이 편리한 구석은 있지만, 사람들 눈에 너무 띄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새로 집을 구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일행들과 떨어지게 되는 것도 걱정이었다.
혹 그들이 위협을 받는다 하더라도 바로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어야 했다.
“호텔 밥은 잘 나오냐?”
“당연히 잘 나오지.”
“그래 봐야 집밥만 하겠어?”
강도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가 자연스럽게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밥 아직이지? 있던 반찬 대충 꺼낼 테니까 일단 먹어.”
그렇게 말하며 그는 상다리가 휘어져라 음식을 꺼내 놓았다.
차린 음식도 명절에나 볼 법한 것들이었다.
그득히 쌓인 갈비찜과 잡채, 백숙에 각종 나물과 전…….
“있던 반찬이라고?”
“그래.”
누가 봐도 거짓말이었지만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강도현의 요리 솜씨가 좋은 건 전부터 알고 있었으니 맛도 있겠지.
그렇지만 먹을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끝낸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더 중요한 용건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조사한 내용부터 듣고 싶어.”
중요한 아이템들은 손에 넣었지만 나는 여전히 조급했다.
그러나 강도현은 나와 달리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먹으면서 들어. 그렇게 비쩍 곯아서 싸우기나 할 수 있겠어?”
세상에 나를 보고 비쩍 곯았다고 할 사람은 강도현 정도뿐일 거다.
설득하기를 포기하고 천천히 음식을 먹었다.
전생에도 내가 밥을 적게 먹으면 내보내 주지 않았다.
포기하고 식사를 시작하는 동안, 강도현이 계속 잔소리를 했다.
“뭐야, 국 다 먹었어? 더 가져다줄게.”
“고기 많이 먹어. 얼굴에 핏기가 없다. 그래 가지고 마경 공략 하겠어?”
“이거 나물 내가 산에서 캐온 거다. 농약 쳐서 기른 거랑은 완전 달라.”
누가 보면 무슨 마을 잔치 준비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참이 걸려 가까스로 접시를 다 비우자, 강도현은 그제야 이야기를 해줄 마음이 든 것 같았다.
그가 사과와 배를 깎으며 말했다.
“우선 보호국 내에서 조사를 해봤어.”
강도현이 얇은 서류를 내게 내밀었다.
슬쩍 살펴보는 동안 그가 설명을 이어갔다.
“보호국 차사의 명단을 입수해서 살펴봤지만 백영이라는 이름이 있거나 얼굴이 유사한 경우는 없었어.”
“누락 되었을 가능성은?”
“있어. 팀장과 이사, 타 지부 기록은 확인하지 못했으니까.”
강도현은 불만족스럽게 말했다.
“내 직위가 좀 더 높았으면 가능했을 텐데.”
확실히 현재 강도현의 위치에서는 조사를 하더라도 제약이 많을 터였다.
그렇다 한들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보다는 양질의 것이었다.
“그래도 국장의 개국 당시 사진을 찾았어. 뒤 페이지를 봐봐.”
국장의 사진이라고?
뜻밖의 정보에 놀라 나는 다급히 다음 페이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사진을 확인하자 흥분은 빠르게 식었다.
“……이 사람이 국장이라고?”
사진 속의 여성은 노인이었다.
백영처럼 하얗게 센 머리와 성별 외에는 공통점이 없어 보였다.
나는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말했다.
“다른 사람이 국장인 척 하고 이 사진을 찍었을 가능성은?”
“그럴 가능성이 커. 나 같은 말단 차사도 얻을 수 있는 정보였으니까.”
너무 쉽게 얻은 정보는 도리어 신뢰도가 떨어졌다.
백영에 대해 크게 얻은 것은 없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애초부터 당장에 알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오히려 지금은 다른 부분이 더 중요했다.
“성은교는?”
“성은교는 제대로 조사해놨지.”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또다시 서류 뭉치를 턱 하니 올렸다.
국장을 조사한 서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두툼했다.
서류를 넘겨 살펴보니 내가 알던 성은교가 맞았다.
“고마워, 형.”
“됐다. 별일 아니었으니.”
성은교에 대한 정보도 확인했고, 시설 위치도 확인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가 다급히 말했다.
“잠깐만, 더 줄 거 있어.”
더 줄 게 있다고?
내가 의아하게 그를 바라보자, 강도현은 다급히 주방 안쪽으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이내 떡이 가득 쌓인 접시를 들고 왔다.
그가 엄한 눈빛으로 말했다.
“후식만 마저 먹고 가라.”
* * *
커다란 봉고차 한 대가 호젓한 산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치 소풍을 가는 것처럼 어딘가 모르게 설레는 얼굴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프론트 미러에 비친 뒷좌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뒤에 계신 분은 오늘 처음 오시는 거죠? 이름이 김제능이랬나?”
그 질문에 뒤에 앉아 있던 남자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남자는 왠지 초조한 기색이 느껴졌다.
“아, 예…….”
“성은교에 오시는 걸 보니 그쪽도 미각성자인가보네.”
“그렇죠, 뭐.”
김제능은 다소 자조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 대답을 듣고도 운전수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이 허허 웃었다.
그에게서는 알 수 없는 여유가 느껴졌다.
“여긴 어쩌다 알고 오셨고?”
“인터넷에 올라온 게시글을 보고……. 저기, 그런데요.”
김제능이 불안한 눈초리로 옆을 보았다.
“성은교에 들어가면 사주창을 각성시켜 준다는 거, 진짜인가요?”
각성의 날 이후.
사람들은 사주창의 각성 유무, 운명 등급에 따라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은 자명했다.
미각성자인 소시민들이었다.
‘젠장, 세상은 불공평해.’
김제능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세상이 바뀌었으나 자신은 여전히 바뀌지 못했다.
분명 자신에게도 특별한 이능이 생겼을 거라고, 헌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내가 가진 돈으로는 사주창을 각성할 수 없었어.’
운명 보호국의 사주 각성 행사에 지원했으나 탈락했다.
큰돈을 주고 사설업체에서 사주창을 각성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도 불가능했다.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좌절에 빠져있던 어느 날.
김제능은 우연히 어떤 게시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사주창을 각성하고 싶으신가요?]
그 제목을 보고 김제능은 저도 모르게 게시글을 클릭했다.
그 아래 이어진 내용은 그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성은교에 들어오시면, 당신의 사주창을 각성시켜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