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아니야! 이건 뭔가 문제가 있어! 신이시여, 천칭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성의결이 간절하게 외쳤으나 심판은 단호했다.
양팔과 양다리에 족쇄를 매단 사람처럼, 페널티를 받은 성의결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오오오!
그에 비해 금강역사는 분풀이를 하듯 더욱 날뛰며 성의결을 몰아 붙였다.
금강역사의 주먹을 온몸으로 받아낸 성의결이 피를 토해냈다.
“커헉!”
보고 있자니 속이 후련했다.
그 와중, 성의결이 피를 질질 흘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이 비겁자……! 도와주지도 않다니!”
멍청한 건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도 더 멍청하다.
나를 공격한 주제에 내가 살려줄 거라 생각했나.
여유롭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이, 이어 커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림 씨, 저랑 겨울이랑 근처에 왔어요.]”
“알겠습니다. 장태헌, 윤봄. 다시 장치를 가동해줘.”
“[네!]”
장치가 재가동되자 금강역사를 둘러싸고 있던 푸르스름한 기운이 사라졌다.
여전히 금강역사는 성의결을 피떡으로 만들던 중이었다.
그러다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공격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더 위협적인 적이 나타나, 공격 우선순위가 변경됩니다!]
“강림 씨, 우리가 너무 늦었나요?”
더욱 위협적인 적, 신수아와 윤겨울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회복약을 씹어 삼키며 일어섰다.
“아뇨. 딱 좋게 왔습니다. 마무리만 하면 될 것 같군요.”
“잠깐 쉬고 계세요. 처리할 테니.”
금강역사가 피를 뚝뚝 흘리며 신수아와 윤겨울을 향해 걸어왔다.
그것을 보고도 신수아의 표정은 냉랭했다.
그때, 그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며 이능이 발동됐다.
[이능 ‘목엽지법’이 발동됩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방에서 나무줄기가 뻗어 나와 금강역사의 사지를 옭아맸다.
발버둥을 쳐봤지만 줄기는 끊어지지 않았다.
신수아가 강한 것도 있고, 내가 한차례 박살을 내놓은 상태라 남은 마력도 없는 것 같았다.
“봄이랑 태헌 씨가 오면 끝내도록 하죠.”
우리는 나머지 일행이 합세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금강역사의 숨통을 끊었다.
그러자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첫 번째 대마경을 공략하였습니다!]
[서강림, 신수아, 윤겨울, 윤봄, 장태헌의 이름이 널리 퍼집니다!]
[해당 만신의 수호신의 인지도가 상승합니다!]
[가장 큰 공헌자인 서강림에게 추가 보상이 발생합니다!]
“후우…….”
나는 보상 알림을 확인한 뒤 길게 숨을 내뱉었다.
여차저차 클리어를 하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고생이었다.
와중에 사람들이 내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사부님, 괜찮으세요? 너무 많이 다치셨는데……!”
“형님. 보스한테 당한 거야? 그나저나 쟤는 누구야? 저기 쓰러져서 죽어가고 있는데…….”
장태헌이 가리킨 곳에는 성의결이 있었다.
그는 쿨럭거리며 힘겹게 숨을 내뱉고 있었다.
나는 대강 설명을 해주었다.
“수라문에서 나 죽이라고 보낸 암살자 비슷한 거야.”
“암살자요……?”
“암살자 같은 게 아닙니다! 나는 죄인을 교화시키고자 왔을 뿐입니다!”
성의결은 아직도 기력이 남았는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신수아가 싸늘한 눈으로 성의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라문에서 보낸 건 맞나 보군요. 강림 씨를 죽이라고 하던가요?”
“그를 갱생시켜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뿐입니다. 서강림이 자기 죄를 인정하고, 수라문으로 들어오면 용서해주겠다고……. 으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무줄기 하나가 성의결을 붙잡아 질질 끌고 갔다.
칭칭 묶인 성의결이 발버둥을 쳐도 신수아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보고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미안해요, 강림 씨. 저 때문에 괜히 고생하셨네요.”
“아뇨. 괜찮습니다.”
신아라가 손을 쓸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었다.
전생에서도 여러모로 방해를 해오곤 했으니까.
나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보상은 다 받았습니까?”
“네, 사부님! 와 저 좋은 아이템 얻었어요……!”
“나도, 사부! 대마경은 역시 급이 다르구나!”
다들 얼굴이 환한 걸 보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내가 받은 보상들을 확인해 보았다.
[대마경 공략 보상으로 50,000영옥, 생사의 경계선, 저주 추적자를 획득하였습니다!]
내가 획득한 것은 검은색의 코트와 붉은 보석이 박힌 반지였다.
둘 중 하나라도 받으면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둘 다 얻을 줄이야.
나는 우선 코트를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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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생사의 경계선
[등급] 신삼품(神三品)
[설명] 신의 힘이 깃든 장비. 평상시에도 뛰어난 효과를 자랑하지만 위기 상황에 더욱 빛을 발한다.
착용한 대상이 빈사 상태일 경우, 받은 공격을 99%의 확률로 반사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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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경에서 최초로 등장한 신급 아이템, 생사의 경계선.
가벼운 데다가 방어력도 높고 웬만한 불이나 전기 계열의 공격에도 면역력이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능력은 공격 반사.
내가 가진 이능 ‘궁서의 포효’는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빈사 시에만 발동이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목숨을 걸고 돌진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이능.
그러나 생사의 경계선을 입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99%의 확률로 모든 공격을 반사해내니 거의 무적에 가까운 셈.
1%로 실패할 확률은 있지만 그래도 이만한 방어구가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아이템은 저주 추적자라는 이름이 붙은 반지.
말 그대로 누군가에게 저주를 받게 되면 그 대상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다.
전생에는 이유 없이 아프거나 불행에 시달리는 일이 많았다.
만약 그것이 누군가의 저주 때문이었다면?
그리고 그 저주를 건 사람이 백영이라면?
이 아이템이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었다.
“일단은 다 정리된 것 같으니, 나갈까요?”
신수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장태헌이 널브러져 있는 성의결을 보고 말했다.
“이 자식은 어떻게 하지?”
성의결은 조용히 우리를 보고 있었다.
일견 억울하다는 표정을 한 채.
반성의 기색이 없는 인간이었다.
내가 그에게 다가가자 성의결이 놀라 흠칫 어깨를 움츠렸다.
“나, 나를 죽일 셈입니까! 이 천하의 악당!”
“별로.”
여기서 내가 성의결을 죽여 봐야 내가 얻는 이득은 적다.
이능을 훔치면 조금은 도움이 될 테지만, 보는 눈도 많고 업보도 쌓일 테니 굳이 손에 피를 묻힐 생각은 없다.
“어차피 목격자도 많으니, 운명 보호국에서 널 살인 미수로 체포하겠지.”
“뭐, 뭐?! 정의의 집행자인 나를 체포해?! 그럴 리가 없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성의결은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다.
정의의 히어로라 불리는 성의결이니, 범죄자로 기록되는 것은 그 무엇보다 두려운 일일 터였다.
나는 그런 성의결을 물끄러미 보다 말했다.
“감옥 가는 게 차라리 나을 텐데.”
“뭐? 그게 무슨…….”
나는 어느샌가 뒤에서 강렬하게 내리꽂는 시선을 느꼈다.
독고준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의결을 보고 있었다.
웃고 있었지만 당장이라도 죽일 듯한 눈빛을 한 채.
“답답한 걸 싫어하는 놈이 있거든.”
이 상태로 성의결이 무사히 나간다면, 가장 용납 못 할 인간이 독고준이다.
그의 기준에서는 주인공을 공격한 악역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것이니까.
내버려 둔다면 성의결에게 뭔가 수를 쓸 것이다.
차라리 감옥에 간다면 독고준을 피할 수 있을 테지.
“목숨 아끼고 싶으면 알아서 감옥에 들어가라고.”
감옥에 가든, 독고준이 손을 대든 성의결은 정리될 것이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성의결을 뒤로 한 채 대마경을 나섰다.
여전히 독고준은 성의결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12. 이름 없는 신이 태어날 때
“어제 첫 번째 대마경이 한 번에 공략 됐다며?”
호텔 로비로 내려오자마자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어젯밤부터 소란스러웠던 호텔이었다.
나는 후드를 푹 눌러쓴 채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 첫 번째 시도에 성공했다더라.”
“대마경이라고 해서 난이도가 높은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네.”
“아니기는, 최소 용급 마경 수준이라고 하던데!”
자신들이 대마경을 공략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한껏 들뜬 상태였다.
한 사람이 투덜대며 말했다.
“맞아. 난 중간에 뻗어서 죽는가보다 싶었다고. 공략 완료 안됐으면 진짜 죽었을지도 몰라.”
“대마경 공략한 사람이 그 사람이지? 서강림.”
내 이름이 들려와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들은 신이 나서 말을 이어갔다.
“맞아, 서강림. 교육생 출신 말이야.”
“그러고 보니 이 호텔에 머문다고 그러던데…….”
나는 식당으로 향하려다 발을 돌려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왠지 이 상태로 식당에 가면 여러 사람의 이목을 끌 것 같았다.
그냥 룸서비스나 시켜 먹어야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위로 향하는 동안 안에 있던 사람들이 힐끗 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혹시 저 사람 서강림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그와 동시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당분간 식사는 방에서 해야겠군.
내 방으로 돌아가려는 그때,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형님!”
돌아보니 장태헌이 서 있었다.
그가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다가와 말했다.
“운 좋다. 데리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딱 마주쳤네.”
“데리러 왔다고?”
“응. 우리 모여서 아침 식사 하려던 참이었거든. 식당을 가려니까 사람들이 자꾸 말을 걸어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비교적 덜 알려졌던 다른 사람들 역시 대마경을 공략하며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고 있겠지.
어제 일과 관련해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해서 나는 장태헌을 따라갔다.
“사부님, 오셨어요!”
안으로 들어서자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아, 요한 신부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속해있는 성당 쪽에서 호출이 들어와 자리를 비웠는데,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어제 큰 전투를 치렀는데도 다들 표정이 밝았다.
장태헌이 신이 나서 말했다.
“형님, 커뮤니티 봤어? 우리 이야기 엄청 올라와 있던데!”
“봤어.”
“하루 만에 여기저기서 연락 오고 그러더라고! 인터뷰 요청도 오고 그러던데?”
장태헌은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이 제법 즐거운 모양이었다.
하긴, 들뜰 법도 하긴 하지.
신수아도 살짝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저한테도 연락이 오더라고요. 문파 가입 제안도 많이 오고.”
“그래서 문파에 가입할 겁니까?”
“아뇨. 제가 만들 생각이긴 한데…….”
그녀가 잠시 고민을 하다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강림 씨가 문파를 만들 계획은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