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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사주 헌터-107화 (106/256)

<107화>

동료를 잃은 거대 토우가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무형파의 일원들을 무시하고 서강림을 향해 달려갔다.

거대 토우가 육중한 주먹을 휘둘렀으나, 서강림은 사뿐하게 뛰어올라 그 공격을 피했다.

-서걱!

서강림이 검을 한 번 휘두르자 거대 토우의 가슴에 큰 균열이 생겼다.

마치 돌이 아니라 부드러운 흙을 베어낸 것만 같았다.

그 감각에 서강림은 속으로 놀라워하고 있었다.

‘거대 토우가 이렇게 약했던가.’

지난 생, 첫 번째 대마경에 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신수아의 보호를 받으며 간신히 목숨만 건져 먼저 귀환했었다.

서강림이 쓰게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그때랑은 확연하게 다르군.’

교육을 받았지만 여전히 열등생이었던 과거의 자신이 꼭 타인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가 날듯이 공격을 피해가며 반격을 가하고 있자 파티원들이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교육 시설 출신들이 강하다고는 들었는데…….”

“교육생들은 원래 저렇게 다 강한가?”

비교육생인 그들은 처음으로 교육생의 전투를 보고 있었다.

자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거대 토우가 울분에 가득 차 서강림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으나,

-빠각!

그와 동시에 서강림이 휘두른 칠지도가 거대 토우의 주먹을 잘라냈다.

그리고 순식간에 수많은 선이 토우의 몸에 그어졌다.

-쿠우웅!

거대 토우가 단말마도 남기지 못한 채 쓰러졌다.

그저 돌무더기로 돌아갔을 뿐.

서강림은 쓰러진 거대 토우를 힐끗 보고는 다시 발을 옮겼다.

길을 막고 있는 돌덩이를 치운 사람처럼 태연한 얼굴이었다.

“저, 저기!”

그때 리더가 다급히 서강림을 붙들어 세웠다.

서강림이 뒤를 돌아보고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뭡니까?”

“그게…….”

리더가 망설이다가 두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저희랑 파티 해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은 자존심을 챙길 때가 아니었다.

서강림에게 얹혀가면 자신들도 이곳을 공략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서강림은 관심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는 그냥 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갑자기?”

“그, 그게…….”

별거 아닌 놈인 줄 알아서 무시했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리더가 쩔쩔매며 할 말을 찾던 와중 서강림이 짧게 한숨을 쉬고는 갈림김을 빠져나갔다.

파티원들이 그 모습을 보고 후다닥 뒤쫓아갔다.

“빠, 빨리 나가죠! 또 마수가 올지 모르고…….”

“……젠장.”

또다시 퇴로가 막힌 상황에서 마수와 마주치는 건 사양이었다.

그들은 서둘러 서강림의 뒤를 쫓아 동굴을 빠져나왔다.

* * *

-크아앙……!

길을 막고 있던 마수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나는 칠지도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숲 어귀에 수많은 마수가 쓰러져 있었다.

토우를 쓰러트리고 동굴을 빠져나오긴 했지만 쉴 틈은 없었다.

습격해온 마수들을 다 처리하기는 했지만 수가 많아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다.

내 기억상으로 이쯤 되면 중간쯤은 온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 어느 정도까지 왔을까?

나는 적당히 바위에 걸터앉은 뒤, 이어 커프를 작동시켰다.

“다들 괜찮습니까? 어디쯤까지 진행했나요?”

“[아, 강림 씨. 지금 갈림길 빠져나왔어요. 대마경이라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어렵진 않네요.]”

신수아 쪽은 무난히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전생에서도 이 마경을 첫 번 째로 공략한 사람이니 내 도움이 없어도 알아서 잘할 것이었다.

한편 윤봄과 윤겨울 쪽은 아직 전투가 한창인지 조금 소란스러웠다.

리니와 요롱이의 울음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사부님, 저희 아직 전투 중이에요! 이따 연락할게요!]”

“[젠장, 다른 사람들 왜 이렇게 약해? 누나, 그냥 버리고 가자니까……!]”

윤봄과 윤겨울은 다른 사람들을 챙겨가며 전투 중이라 조금 벅찬 모양이었다.

왜 이렇게 약하냐며 투덜거리던 윤겨울의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 사람들이 약한 게 아니라 너희가 강한 거야.”

“[우리가요? 우리 그냥 평범하지 않아요? 사부나 수아 누나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데…….]”

다른 각성자들이 들으면 분개할 법한 말이었다.

어쨌거나 차이는 있지만 다들 무리 없이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윤겨울의 통신 장치를 통해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와중, 신의 목소리가 번잡스럽게 끼어들었다.

【야, 얘가 그 서강림이야?】

【아직 신내림 안 받았다더니 진짜네?】

【아니 진짜 왜 안 받았지?】

무불 통신에 온갖 신들이 들어와 떠들어대고 있었다.

교육 시설에 있을 때보다 더 소란스러웠다.

이제 웬만한 헌터들은 신내림을 받았을 테니, 아직 계약하지 않은 내가 먹잇감이 될 것은 뻔했다.

【야, 서강림. 나랑 신내림 할래? 잘해줄게!】

교육 시설에 있을 때나, 그곳을 나와서나 신들의 반응은 똑같았다.

무작정 신내림 하자고 들이대는 놈들.

그렇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맨입으로?”

【뭐?】

“저 몸값 비쌉니다. 계약금도 안 걸고 데려갈 생각입니까?”

보통의 경우에는 신내림을 못 받아 안달이라지만 나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다.

나는 신내림 따위 받을 생각이 없다.

그러니 아쉬운 것은 신들 쪽이었다.

내 반응에 신들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너 지금 우리 상대로 거래 하려는 거야?】

【인간 주제에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네.】

【조금 강하다고 해서 지금 배짱부리나 본데……!】

여러 신은 내 대처에 불만을 갖고 있는 듯싶었다.

그야 그렇겠지.

각성의 날 이전에는 폭력과 협박으로 신내림을 했는데, 인간 나부랭이가 이제는 보상을 내놓으라 요구하니까.

그들이 내게 불만을 표시하더라도 나는 상관없다.

어차피 아쉬운 건 저쪽이니까.

“신내림하고 싶으면 선물이라도 좀 보내든가 하세요.”

그렇게 말한 뒤, 나는 무불 통신의 설정을 조작했다.

30단이 돌파한 뒤로 영력이 강해진 덕분에 무불 통신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무불 통신이 일부 차단됩니다.]

아예 신들을 쫓아낸 것은 아니고 일종의 음소거 기능이었다.

지금쯤 내 태도를 보고 온갖 욕을 지껄이고 있겠지만, 내 귀에는 안 들리니 상관없다.

아이템을 사용해 신명을 밝히고 메시지를 보내온다면 모를까.

어쨌거나 주위가 조용해져서 만족스러웠다.

신들의 목소리고 들리지 않고, 마수들도 어느 정도 정리되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정리가 좀 덜 됐나.

“왜 자꾸 따라옵니까?”

나는 근처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거리를 둔 채 내 동향을 살피던 이들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무형파인지 무명파인지, 들어본 적 없던 문파의 사람들이었다.

문주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남자가 말했다.

“따라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는 길을 그쪽이 먼저 간 거라고!”

“그러면 먼저 가세요.”

“……조금 이따가 갈 거야!”

방금 갈림길에서 본의 아니게 저들을 구해준 뒤, 무형파 인간들은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딱히 방해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근처의 조무래기들을 처치하고 있어서 방치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 쫓아오는 것은 곤란했다.

적당히 따돌리는 수밖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형파 일원들도 곧바로 내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중앙에 있는 벽이 보스방인 거겠죠?”

동굴을 나오자마자 보인 것은 거대한 석벽이었다.

마치 일종의 탑처럼 주위를 둥글게 막고 있는 벽.

그들의 추측대로 저 안에는 보스가 있었다.

“서강림, 우리를 아예 뿌리치지 않는 걸 보니 말과는 다르게 호구……, 아니 성격이 좋아 보이네요.”

“잘하면 보스방까지도 얹혀 갈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묵묵히 전진하던 중, 숲 안쪽으로 들어서자 또다시 내 앞에 마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도마뱀 같은 형상이었다.

-쉬이익!

마수들이 톱날 같은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후방에 있는 무형파 일원들은 내가 막아줄 거라 생각했는지, 딱히 긴장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긴장하는 편이 좋을 텐데.

[이능 ‘은둔자’가 발동됩니다!]

숨을 멈추는 것과 동시에 ‘은둔자’가 발동되었다.

내가 사라지자 마수들과 무형파 일원들이 동시에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뭐, 뭐야. 서강림 어디 갔어?”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내 모습이 보이지 않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마수들은 곧바로 다음 목표를 찾았다.

도마뱀들이 쇳소리를 내며 무형파에게 달려들었다.

방심하고 있던 터라 그대로 팔다리를 물리고 말았다.

“으, 으아악!”

“다들 빨리 무기 들어!”

“서, 서강림 이 새끼가 우리를 미끼로……!”

그들이 아우성을 치며 마수와 싸우는 사이, 나는 먼저 길을 빠져 나왔다.

마수들이 적당히 상대해주겠지.

나는 은둔자를 해제한 뒤 주위를 살펴보았다.

전생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 근방의 지리를 확인했다.

이제 직진을 하면 보스 구역이지만…….

나는 발을 틀어 오른쪽으로 향했다.

-바스락, 바스락…….

기억에 남아 있는 흔적을 따라 나는 숲 안쪽으로 향했다.

마수조차 다니지 않는 길인 것처럼 가시덩굴이 앞을 막고 있었다.

나는 묵묵히 덩굴을 잘라내며 전진했다.

전생에 첫 번째 대마경을 공략하러 왔을 때.

여러 만신들이 보스를 향해 덤벼들었지만 모두 패퇴하여 물러났다.

신수아나 독고준마저도 대적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그렇게 사람들은 여러 차례 대마경 공략에 실패했다.

첫 번째 대마경은 한 달이 넘어가도록 공략되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공략할 수 있을지, 신수아가 작전 회의를 하던 중 나는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었다.

[그러고 보니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요.]

[신경 쓰이는 거? 대체 뭐죠?]

[왜 하필 대마경은 3구역으로 나뉘어서 진행 되는 걸까요?]

처음에는 단순히 전력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모든 구역은 보스의 방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내 의문을 흘려 보냈지만 신수아는 주의 깊게 들었고, 그 이유를 찾아냈다.

-파사삭…….

드디어 찾았다.

나는 험한 숲길을 헤매던 끝에 드디어 원하던 것을 발견했다.

수풀을 헤치고 안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기묘한 기계 장치가 놓여 있었다.

담쟁이덩굴에 얽혀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던 것 같은 모양새.

나는 천천히 장치 쪽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순간, 경고 메시지가 떴다.

[‘청적귀’가 침입자를 감지하였습니다!]

일정 구역 안으로 들어서자, 예상했던 대로 함정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근처에 널브러져 있던 방어구가 달싹거리며 움직이더니 공중에 떠올라 형상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귀일품 청적귀’가 출몰하였습니다!]

귀일품의 마수, 청적귀.

혼자서 싸우기에 다소 버거운 상대였다.

그러나 나는 그 사실에 절망하기 이전에 기뻐하고 있었다.

청적귀는 인간형 마수.

즉, 저놈의 운명도 내가 훔칠 수 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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