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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사주 헌터-103화 (102/256)

<103화>

캐리어 안에 든 것이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 아닌가 싶어질 정도로 해맑은 목소리였다.

캐리어 속의 사람은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입이 막혀 있지 않았다면 당장 소리를 질렀을 몰골이었다.

그러니까 막아놨겠지만.

“어때? 내가 포장도 신경 써서 했어.”

보통이라면 밧줄로 손목과 발목을 묶었을 테지만, 그 사람은 빨간색 리본으로 묶여 있었다.

입을 틀어막은 테이프도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디자인이 된 채였다.

지독한 농담 같은 모양새였다.

“그러니까 지금 이 사람을 죽이고, 이능을 훔치라는 말입니까?”

“응. 원래는 죽여서 데려올까도 고민했는데, 네 이능 발동 조건이 뭔지 몰라서.”

신아라는 태연하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신아라를 보며 두려움보다는 경멸을 느끼고 있었다.

잔인한 성정이라고 알고는 있었는데 실제로 조우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 혹시 뒤처리하는 게 걱정이면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여기 우리 조직 가게거든.”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는 서류 가방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지폐 무더기 사이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그건 날카로운 단도였다.

“보고 싶어. 네가 이능 훔치는 거.”

그 단도를 보자 포박된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몸을 버둥거리며 반항하려 했지만 몸놀림이 둔했다.

나는 말 없이 그 단도를 받아 들었다.

신아라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벌레를 해부하는 걸 지켜보는 듯한, 어린아이 같은 표정.

나는 단도를 그 사람에게 가져다 댔다.

-서걱

단도에 리본이 툭툭 잘려져 나갔다.

상대방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입에 붙은 테이프까지 떼어낸 뒤 말했다.

“이 뒤로는 알아서 도망치든가 하세요.”

그 모습에 신아라는 다소 실망한 모양새였다.

그녀가 느릿하게 눈동자를 굴려 나를 응시했다.

“내 선물이 마음에 안 들었어?”

“들 것 같습니까?”

백주대낮에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취미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그런 마음이 있다 한들 밖에 신수아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내가 죽일 거라 생각한 건가?

뭐, 5억 정도로 넘어올 거라 생각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내 반응에 신아라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역시 죽여서 데려올 걸 그랬나?”

정말 여러 또라이를 만났지만 이만한 또라이도 드물었다.

그녀의 사주창을 봤을 때, 쌓인 업보가 상당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괜한 시간 낭비를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고리를 잡아 밀었다.

“아, 그냥 가는 거야?”

신아라는 나를 아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저런 얼굴을 해놓고서, 나중에는 윤봄을 보내 여럿 죽였지.

역시 이들과는 얽히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편할 것 같았다.

-찰칵

나는 답 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신수아는 벽에 기대서서 나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내가 나온 걸 보자 신수아가 몸을 일으켰다.

“괜히 고생하게 해서 미안해요, 강림 씨. 언니가 또 이상한 소리를 했네요.”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꽤나 태도가 담담한 걸 보면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경험한 모양이었다.

신수아가 방 쪽으로 다가갔다.

“아까 그 사람 데리고 돌아가요. 여기 있으면 분명 언니가…….”

그렇게 말을 하던 순간, 신수아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녀가 침묵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등 뒤에서 인기척과 함께 불길한 기운이 풍겨오고 있었다.

조용히 뒤를 돌아보자 노래방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아쉽다. 폭력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지.”

뒤에서 신아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래방 안쪽에서 문을 잠근 모양인지 찰칵거리며 잠금장치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나와 신수아를 보며 빙긋 웃었다.

“이렇게 와줬는데 그냥 보내줄 수는 없지. 지금이라도 나한테 올래? 강림이는 아까 선물도 줄게.”

어느새 통로를 가득 채운 사람들은 언뜻 봐도 일반인이 아니었다.

그들의 눈에는 헌터들에게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살기와 잔인함이 배어 있었다.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모두 수라파의 일원인 것 같았다.

“어때? 이제는 내 선물 받아줄 생각 들어?”

“이미 반품 끝냈고, 수라문에는 안 들어갈 겁니다.”

“힘든 길을 고르네.”

신아라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마이크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얘들아, 둘 다 붙잡아! 서강림은 음…….”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죽여도 되긴 하는데, 가급적 살려두고? 마음에 들거든.”

“예, 문주님!”

“언니, 그게 대체 무슨……!”

“아니면 수아, 너 나한테 올래? 그러면 강림이는 무사히 돌려보내 줄게.”

그 말에 신수아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신수아는 언니의 행동에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비호문의 사람들을 제거하는 건, 전생부터 신아라가 했던 짓이 있으니까.

수라문과 비호문은 지독한 악연이었는데, 그건 오로지 신아라 때문이었다.

그녀는 비호문을 무너트리면 신수아가 자신에게 올 것이라 생각했다.

일종의 협박인 셈이었다.

마치 내게 신내림을 하려던 신처럼,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을 해친 것이다.

“……언니가 과격한 방법은 쓸 거라 예상하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그래도 대충 비슷하긴 하잖습니까.”

신수아가 함께 이곳에 와달라고 한 이유는 이러한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신아라의 성격상, 말로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

전투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함께 와달라고.

“그리고 약속했죠? 강림 씨는 제가 어떻게 해서든 무사히 돌려보낼 거라고.”

신수아는 그렇게 말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수라문의 조직원들이 모두 살기등등하게 공격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신수아의 눈동자가 녹빛으로 번뜩였다.

“한 번에 다 제압하고 나가야겠네요.”

[이능 ‘목엽지법’이 발동됩니다!]

순식간에 건물의 틈새를 비집고 싹이 트기 시작했다.

지하에는 흙이나 식물이 없어 위력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발동 자체는 가능했다.

신수아가 나무줄기를 조종해 조직원들을 제압하려는 순간, 나는 그녀를 붙잡았다.

“신수아 씨, 멈추세요.”

“네?”

신수아가 내 말에 공격을 멈췄다.

나는 조직원들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들은 나무줄기가 자라나 자신들을 공격하려 하는데도, 피할 기색이 없었다.

도리어 공격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 사람들, 각성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주창을 띄워 확인해보니, 전원이 아직 사주창을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이었다.

신수아가 의아하게 그들을 보다가 아차 싶은 표정으로 보았다.

“설마 일부러 공격을 받으려고……?”

“네. 각성자가 미각성자를 상대로 이능을 사용하거나, 무기를 이용하면 위법이니까요.”

각성의 날 이후, 새로 생긴 법률 중 하나였다.

각성자들끼리는 이능을 이용해 전투를 벌여도 어느 정도 참작이 된다.

그러나 각성자가 미각성자를 이능으로 공격할 경우 극심한 페널티가 주어졌다.

“어라, 서강림 눈치 빠르네?”

뒤에서 신아라가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너희가 이능으로 공격하면 신고할 생각이었는데. 합의 조건으로 가입시키려 했거든.”

“조폭이면서 법을 이용합니까?”

“쓸 수 있는 건 써야지.”

신아라가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는 문을 콩콩 두드리더니 조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첫 번째 계획은 실패했네. 두 번째 계획으로 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직원들이 본격적으로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날카롭게 벼린 칼이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났다.

“둘 다 제압해. 살려만 놔.”

“예!”

신아라의 명령에 따라 놈들이 흉기를 들고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비릿하게 웃는 꼴을 보니 이런 게 한두 번이 아닌 모양이었다.

신수아가 잔뜩 경계하며 말했다.

“이 사람들, 미각성자지만 싸움에는 일가견이 있어요. 일반인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그녀의 말대로 이 자들은 각성의 날이 오기 전부터 폭력과 피에 노출되어 있던 사람들이다.

우리가 방심하면 망설임 없이 칼을 찔러 넣을 것이 뻔했다.

“수는 대략 서른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능을 사용할 수 없고, 무기 또한 사용할 수 없네요.”

수적으로 불리하고, 페널티도 주어져 있다.

우리의 말을 들은 조직원 중 한 명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이제 알겠지? 그러면 포기하고 얌전히 잡히…….”

“포기?”

-콰앙!

나는 곧바로 남자의 머리를 붙잡아 벽에 처박았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축 늘어졌다.

나는 손을 탁탁 털며 말했다.

“맨손으로 제압하면 되지, 포기는 무슨 포기야?”

그 모습에 조폭들이 당황하여 술렁였다.

보아하니 제대로 된 각성자와 싸워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각성의 날이 오기 전, 그들은 자신들이 피라미드의 최상단에 서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폭력을 내세워 그들을 강제로 굴복시키며 즐거워했겠지.

그래서 아직도 저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각성을 했다 한들, 자기네들이 여전히 우위에 서 있다고.

그렇지만 이젠 세상이 바뀌었다.

-빠각!

“아악!”

덤벼드는 남자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고, 명치께를 발로 차 날려버렸다.

전부터 느꼈지만 죽이는 것보다 적당히 묵사발을 내는 편이 더 어렵다.

나는 나를 향해 달려드는 놈들을 하나씩 박살을 내주었다.

“제, 젠장! 우리가 몇 명인데 밀려?”

“형님, 그렇지만 저놈이 너무 강합니다!”

놈들은 이제야 격차를 느낀 모양이었다.

그들이 칼을 든 채 주춤거리다가 신수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수아 누님부터 제압해! 누님은 한쪽 팔이 없다!”

그 말과 동시에 놈들이 신수아를 향해 몸을 틀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부상을 입히더라도 신수아를 제압할 생각 같았다.

“수아 누님, 죄송합니다! 잠깐만 참아주십시오!”

덩치가 우락부락한 놈들이 그녀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

신수아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너희 누님이 아니야.”

-콰앙!

신수아의 발차기에 세 사람이 동시에 날아갔다.

그 충격에 정신을 잃었는지 거대한 덩치들이 축 늘어졌다.

남은 조직원들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신수아가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팔 하나쯤은 없어도 아무 문제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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