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신아라, 그녀는 수라문의 문주이자 신수아의 언니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수아는 원수라도 보듯 제 언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와중에 신아라는 여전히 반가운 얼굴이었다.
“서강림 씨도 만나고, 너도 만날 겸 왔지. 너 교육 시설에 나온 뒤, 병원에서 잠깐 이야기 나눈 게 전부잖아.”
신아라는 슬그머니 신수아에게 다가와, 그녀의 팔을 잡아보았다.
그러나 잡히는 것은 빈 옷소매일 뿐이었다.
“……결국 치료 못했구나.”
신아라의 목소리가 힘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평범하게 가족을 걱정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신수아는 그런 언니의 모습에 잠시 멈칫하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안 되겠어. 집으로 돌아와, 수아야.”
“난 돌아가지 않아.”
“다들 널 걱정하고 있어. 이렇게 팔까지 잃고, 집에도 오지 않고…….”
신아라는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만 보면 다정한 언니와 반항심 가득한 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신아라가 간절하게 매달리는데도 신수아는 요지부동이었다.
“난 집에 안 돌아가. 그리고 나 말고 서강림 씨를 찾아온 이유는 뭔데?”
“우리 문파에 영입하려고.”
“안 돼. 나랑 같은 문파에 들어가기로 했어.”
“그러면 둘 다 나한테 오면 되잖아?”
신아라가 계속 동생을 붙들고 늘어졌다.
하지만 신수아는 냉정할 정도로 그녀를 내쳤다.
“언니랑 더 할 이야기도 없어, 나가.”
“수아야, 제발. 우리 이야기 좀 하자. 아버지도 너 보고 싶어해. 요즘 몸도 많이 안 좋으셔. 돌아가실지도 몰라.”
신수아는 그 말에 잠시 동요하는 것처럼 보였다.
부모가 죽는다는 이야기에 흔들리는 모양이었다.
신아라가 조심스레 말했다.
“네가 날 미워하는 거 알아. 그렇지만……. 마음 바뀌면 꼭 연락 줘. 알겠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단호하던 신수아였지만, 이번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신아라는 동생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슬그머니 방을 나섰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듯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윤봄도 어안이 벙벙한 기색이었다.
그녀가 눈치를 보다가 신수아에게 슬쩍 말했다.
“저분이 정말로 수라문의 문주님이세요?”
“응.”
“굉장해요! 지금 엄청 강한 문파잖아요!”
“그래 봐야 조폭들인걸.”
신수아가 툭 내뱉듯이 말했다.
일견 경멸하는 듯한 어조로.
윤봄이 깜짝 놀라 말했다.
“수라문이 조폭이라는 소문은 들었는데 진짜였나 보네요. 아까 그분은 조폭처럼 안 보였는데…….”
“정확히 말하면 수라파 대장은 우리 아버지야. 언니는 아마 얼굴 노출용으로 문주 자리에 앉은 것 같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신수아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하긴, 그녀는 자신의 집안을 싫어했으니까.
전생의 나는 그런 신수아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돈도 많고, 힘도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면서 그 모든 걸 버리고 떠나왔다.
수라파의 딸로 남아 있었다면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가족과 절연했는지를 물었을 때, 신수아는 씁쓸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얻은 힘도, 돈도 전부 누군가를 죽이고 해쳐서 얻은 것인걸요.]
그녀는 수라파를 해체해달라고도 요구했지만, 부친이 그런 요구를 받아들여 줄 리 없었다.
최소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집을 떠나는 일.
그녀는 고작 신념 때문에 그런 미련한 선택을 했다.
“이제는 문파까지 만들어서 활동하다니……. 얼마나 조직이 더 커질지 가늠이 되지 않네.”
신수아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녀가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다가 말했다.
“봄아, 미안한데 자리 좀 비켜줄래? 강림 씨랑 할 이야기가 있어서.”
“아, 네! 그, 무슨 일 있으면 부르세요…….”
윤봄은 신수아가 걱정되는 듯 눈치를 보다가 자리를 떴다.
나는 우두커니 제자리에 서있는 채였다.
나와 무슨 할 이야기가 있는 거지?
“저기, 혹시……”
신수아가 제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수라문에 가고 싶나요? 언니가 서강림 씨를 스카우트하고 싶어하는 것 같던데, 제가 멋대로 거절해버려서…….”
그러고 보니 아까 신아라의 제안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라문이라.
점점 몸집을 불려 승승장구할 문파 중 하나다.
조직의 자금력도 있고, 인맥도 있으며, 결속력도 있어서 초반에 들어가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백영이 찾아와서 그쪽 문파원들을 다 죽여도 내게는 타격이 없다.
여러모로 조건이 좋기는 했지만…….
“아뇨. 가입할 생각 없습니다.”
그 말에 신수아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방금 전까지는 살벌하게 굳어 있었는데.
내가 수라문에 안 가는 게 저렇게 안도할 일인가.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그래서 할 이야기는 그게 다입니까?”
“아, 아뇨. 부탁할 게 있는데…….”
신수아가 잠시 주저하다 말했다.
“언니와 아버지를 만나러 가야 할 것 같은데, 함께 가주실 수 있을까요?”
* * *
약속 장소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안쪽에서는 괴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지하 특유의 냄새가 났다.
어둑한 지하로 들어서며 나는 신수아에게 물었다.
“여기가 약속 장소, 맞습니까?”
“네. 언니가 말한 곳이 여기가 분명하긴 한데…….”
나는 이런 곳을 약속 장소로 잡은 상대방의 머리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메시지에 지정된 방은 가장 안쪽에 있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신아라가 보였다.
“아, 두 사람 다 어서 와.”
마이크를 잡고 있는 터라 그녀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가 내게 마이크를 건넸다.
“서강림 씨도 한 곡 부를래요?”
“……아뇨. 됐습니다.”
신아라가 약속 장소로 지정한 곳은 노래방이었다.
처음에는 뭔가 위치 표시가 잘못된 줄 알았는데 정말로 노래방일 줄이야.
신수아 역시 조금 난감한 표정이었다.
나는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은 장소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렇지만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장소가 필요해서요. 여기라면 방해받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지 않겠어요?”
“호텔 같은 곳도 있는데요.”
“네? 호텔?”
신아라가 펄쩍 뛰며 말했다.
어쩐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었다.
“호텔이라니, 아,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호텔이라뇨……!”
“저랑 신수아 씨도 호텔에서 지내는데요.”
“네? 두 사람 수상하긴 했는데, 설마……? 수, 수아야. 언니는 그런 거 좀 이른 거 같아……!”
신수아는 고개를 떨군 채 눈을 가리고 있었다.
‘저걸 언니라고……’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신아라와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눠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여러모로 내 예상과는 다른 여자였다.
이렇게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여자가 수라문의 문주라니.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법한 모습이었다.
신수아는 얼굴이 빨개진 신아라를 향해 말했다.
“언니, 왜 여기로 부른 거야? 나는 병원 같은 곳에서 만날 줄 알았는데.”
“병원은 왜?”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며. 집에서 요양 중이셔?”
“아, 그거. 거짓말이야. 그래야 네가 올 것 같아서.”
신아라는 악의 없이 순수한 얼굴로 웃었다.
다만 신수아는 웃지 않았다.
신수아가 곧바로 방을 나서려 하자, 신아라가 덥썩 그녀를 잡았다.
“수아야, 미안해! 그렇지만 너랑 꼭 이야기하고 싶었단 말이야.”
“무슨 이야기?”
“수라문으로 와줘, 수아야. 수라문에는 네가 필요해.”
그 제안에 신수아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녀가 억지로 팔을 비틀어 신아라를 떨쳐냈다.
“난 적임자가 아니야.”
“맞아. 너만큼 수라문에 잘 맞는 사람이 어딨다고?”
“나는 조폭 따위는 되지 않아!”
신수아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신아라는 일견 상처받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 표정에 신수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가 다급히 고개를 틀었다.
“그러면 난 먼저 가볼게. 앞으로 이런 이야기로 부르지 말아줘.”
신수아가 노래방의 문을 벌컥 열었다.
나도 뒤를 따라 나가려는데 신아라가 나를 붙잡았다.
그녀가 간절한 얼굴로 말했다.
“저기, 서강림 씨. 수아랑 친구죠?”
“……뭐, 비슷합니다.”
“그러면 말 편하게 할게요. 강림아, 잠깐 시간 내 줄 수 있을까?”
이야기?
내가 신수아를 힐끗 보자,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먼저 나갔다.
왠지 신아라가 할 이야기라 해봤자, 대충 예상은 가지만…….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할 이야기가 뭡니까?”
“부탁할 게 있어서……. 혹시 앞으로 수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한테 알려줄 수 없을까?”
어찌 보면 평범한 부탁이었다.
가족이 가족의 안부를 걱정하는 거니까.
그렇지만 이건 엄연한 감시 행위였다.
“신수아를 감시할 마음은 없습니다.”
“아니, 감시라니! 언니로서 걱정이 돼서 그런 것뿐인데…….”
그녀는 살짝 충격을 받은 표정이 되었다.
얼굴만 보면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한 부탁처럼 보였다.
신아라가 살짝 눈물이 고인 눈으로 나를 보았다.
“수아가 우리 문파로 들어와 주면 다 해결되는 일인데……. 그리고 강림이 너도 와주면 좋고.”
그녀가 슬그머니 고개를 든 뒤, 내 손을 꼭 잡았다.
“우리 문파, 정말 좋아. 우리가 팍팍 밀어줄게. 아, 내가 네 선물도 준비해놨어!”
신아라가 그렇게 말하고는 노래방 한구석에 놓아둔 서류 가방을 들고 왔다.
그 옆에는 커다란 캐리어도 함께였다.
신아라가 가방을 벌컥 연 뒤 내 앞으로 밀며 말했다.
“우리 문파에 들어오면 너에게 줄게. 약소하지만…….”
가방 안에는 지폐가 가득 차 있었다.
저 정도면 대략 5억 정도 되는 액수인가.
확실히 큰 액수이긴 했지만…….
“아뇨. 됐습니다.”
5억 정도야 전생의 지식이 있으니 쉽게 벌 수 있다.
신수아를 배신하는 금액으로는 너무 저렴하다.
내가 거절하자 신아라는 고민하는 표정이 되더니 말했다.
“으음, 역시 이건 너무 성의 없었나……. 그러면 이건 어때? 내가 하나 더 준비해놨어.”
신아라는 그렇게 말하며 이번에는 캐리어를 질질 끌고 왔다.
어디 먼 곳으로 여행이라도 가려는지 무척 커다란 가방이었다.
신아라가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네가 좋아할 만한 거로 준비했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
여기에도 현금을 채워둔 건가?
저 정도 크기라면 수십억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열어봐, 얼른.”
신아라가 옆에서 계속 나를 채근하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선물을 주는 당사자가 더욱 들뜬 모습이었다.
어떤 선물이어도 딱히 관심은 없지만 이대로 나가면 나를 붙들고 늘어질 것 같았다.
나는 캐리어의 지퍼를 잡아 내렸다.
지이익 소리를 내며 지퍼가 내려가는 동안 신아라가 재잘거렸다.
“네가 사주를 훔치는 이능이 있다고 들어서, 특별히 준비했어.”
지퍼가 모두 내려가고 내용물이 드러났다.
나는 그 안에 든 ‘선물’을 보고 잠시 굳었다.
캐리어 안에 든 것은 돈도, 아이템도 아니었다.
입이 테이프로 봉해진 사람이 겁에 질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서 신아라가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문파원 중 하나인데, 배신을 해서 처리하려던 참이었거든. 그러다가 네 이능 이야기를 듣고 따로 빼놨어.”
신아라가 옆에 쪼그리고 앉아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가 살풋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