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사주 헌터-95화 (94/256)

<95화>

그 말에 강도현은 더욱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명백히 마수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사주창을 보지 않았다면 나 역시 마수라고 생각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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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양세라

[등급] 귀일품(鬼一品)

[오행] 토(土)

[상태] 저주 ‘형태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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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인간이야. 저주에 걸려 있어.”

서강림의 말에 강도현은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영수의 영향으로 저주를 파악할 수 있어.”

서강림이 리니의 핑계를 대는 사이, 조각상은 다시 공격을 가해왔다.

-콰앙!

강도현이 다급히 서강림의 뒷덜미를 붙잡고 아래로 끌어냈다.

굳어버린 조각상의 얼굴에서는 적의도,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대상을 향한 기계적인 움직임만이 포착될 뿐.

“위에 뭔가가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말이지.”

두 사람이 계단에서 1층 홀로 내려오자, 조각상은 움직임을 멈췄다.

특정 구역으로 인간이 들어오면 공격을 가하는 구조 같았다.

서강림이 조용히 조각상을 바라보다 칠지도를 집어넣고 계단을 올라갔다.

강도현이 당황해서 말했다.

“서강림, 뭐하는 거야?”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서강림은 곧바로 조각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각상이 침입자를 감지하고 행동을 개시했으나, 서강림에게는 너무 느렸다.

서강림이 조각상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 갈겼다.

-퍼억!

조각상이 비틀거리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서강림이 잠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죽었나?’

죽이지 않고 기절만 시킬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어갔다.

미약하게 몸이 떨리는 것을 보면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조각상이 약한 것인지, 자신이 강해진 것인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사주창에 나오는 양세라의 등급이 귀일품인 것을 보면 후자인 모양이었다.

‘역시 30단까지 올린 게 영향이 큰 것 같네.’

제압에 성공하자 강도현도 계단을 올라왔다.

그가 쓰러진 조각상을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강해졌네.”

그 중얼거림을 서강림은 흘려들었다.

강도현 역시 없던 말로 할 생각인지 곧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이렇게 기절한 채 내버려 두려고?”

“저주 해제해야지. 리니, 이리와.”

구석에 숨어 바들바들 떨고 있던 리니가 조심스레 다가와, 조각상을 머리로 톡 건드렸다.

[이능 ‘정화’가 발동됩니다!]

[대상에게 걸려있던 저주가 해제됩니다!]

흰빛이 새어 나오자, 조각상의 몸에서 탁한 기운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각상의 표면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마치 벌레가 우화하듯 껍데기가 벗겨졌다.

강도현이 주위를 힐끗 보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여길 먼저 발견했다면 큰일이었겠어.”

계단 곳곳에 박살난 조각상들이 몇 개 보였다.

먼저 들어왔던 사람들이 죽인 것으로 보였다.

서강림이 그것들을 향해 ‘사주 훔치기’를 사용했다가 곧 발동을 취소했다.

‘등급이 너무 낮고 죽은 지 시간이 오래 지났어.’

그 사이, 저주에서 풀려난 인간이 거친 기침을 토해내며 눈을 떴다.

그녀가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앞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강도현이 여자의 얼굴을 살펴보며 말했다.

여자는 멍한 시선으로 강도현을, 아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름은?”

“아, 아아…….”

입에서는 이름 대신 기묘한 울음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몸은 인간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정신은 회복되지 않은 듯 싶었다.

서강림은 잠시 여자를 바라보다 식당 쪽으로 발을 옮겼다.

‘안나비에게도 알려야겠어.’

생존자에 대한 것보다 조각상에 대해 먼저 알려야했다.

혹여나 조각상과 마주쳐, 그걸 박살낼지도 모르니.

서강림은 식당으로 향해 안을 둘러보았다.

‘다들 어디 갔지?’

식당에는 안나비도, 사람들도 없었다.

다들 어디로 간 걸까?

와중에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서강림이 식당 내부의 변화를 감지한 순간.

-쿠웅!

뒤에서 서너 개의 조각상이 그를 덮쳤다.

보통 사람이라면 압사 당해 죽었을 상황이었다.

서강림이 다급히 피하며 사주창을 살펴보자, 그들 역시 인간이었다.

-콰직!

서강림은 단숨에 조각상들을 제압하였다.

다소 과격하게 제압하는 탓에 조각상들의 뼈에 금이 가고 부러지긴 했지만, 죽지는 않았다.

“리니! 이쪽으로 와!”

그가 큰 소리로 부르자, 리니가 후다닥 식당 쪽으로 달려와 정화를 발동시켰다.

곧 조각상들이 하나둘씩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으, 으윽…….”

조각상이 되었던 자들은 방금 전, 서강림과 함께 들어온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아직 혼란스러운 듯, 머리를 붙잡고 신음하고 있었다.

‘안나비는 어떻게 된 거지?’

안나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는 불안해졌다.

그녀를 찾으려고 식당을 빠져나와 1층 계단 입구로 가보니, 그곳에 안나비가 있었다.

그녀는 강도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쪽은 조각상이 안 된 건가. 다행이군.’

서강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걸어갔다.

안나비와 강도현은 양세라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중이었다.

“이름 기억나십니까?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으, 으…….”

여자는 기억을 떠올리기 싫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서강림이 한쪽 무릎을 꿇은 뒤,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이곳 음식을 먹었군요.”

그 말에 여자가 흠칫 놀라 서강림을 올려다보았다.

강도현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물었다.

“음식?”

“방금 전, 식당에서 조각상들과 마주쳤어. 저주를 풀고 보니, 아까 우리랑 같이 왔던 그 사람들이었고.”

서강림이 식당에 들어섰던 위화감은 음식 때문이었다.

정갈하게 차려져 있던 음식이 확연히 줄어 있었다.

안나비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부터 음식에 눈독을 들이더니……. 제가 나간 사이 먹었나 보군요.”

그 말에 강도현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군. 그렇다면 여기에 들어온 모두가 저걸 먹었다는 거야? 바보도 아니고?”

평범한 음식이었다면 다들 참았겠지만, 이곳에 있는 음식은 달랐다.

이능의 효과가 적용된 음식에서는 강력한 유혹의 향이 풍겨오고 있었다.

등급이 높은 차사나 서강림에게는 무해한 향이었으나, 등급이 낮은 각성자들은 저도 모르게 홀렸을 터였다.

‘그리고 한 달쯤 이곳에 갇혀 지냈다면, 썩은 음식이라도 먹었을 테고.’

여자의 뺨은 홀쭉해져 있었다.

언뜻 봐도 오랫동안 굶은 사람처럼 보였다.

이곳의 마수는 모두 진흙이 아니면 조각상으로 식량으로 삼을 수 없었다.

음식에 독이 있었다고 한들, 그것을 삼켰을 터였다.

어차피 선택지는 아사와 독사 중 하나 뿐이었을 테니까.

“상점도 열리지 않고, 무불 통신도 열리지 않는데다가 외부와는 시간의 흐름이 달랐으니…….”

안나비는 여자를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말했다.

외부의 도움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시간의 흐름까지 달라, 그들이 아무리 구조를 기다려봐야 바깥에서는 별일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다.

“우, 우리는…….”

여자의 입이 달싹거리더니 그제야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여자는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안 먹으려고 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3층 결계를 깨고, 4층까지 갔는데……. 위에, 위에…… 이상한 게…….”

무언가 두려운 것을 떠올린 듯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방금 전 조각상이었을 때가 더 혈색이 돌 정도로 얼굴이 희게 질렸다.

여자가 입을 다물고 덜덜 떨자, 강도현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발을 돌렸다.

“상황은 파악했어. 위로 가도록 하지.”

그가 발을 옮기자, 안나비와 서강림도 그 뒤를 따랐다.

안나비는 여자가 걱정되는 눈치였지만 최대한 빨리 이곳을 공략하는 것이 여자를 위한 길이었을 터였다.

2층으로 올라서니 1층보다 더욱 어둑해진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맞이해주는 조각상들도 함께.

“……이게 다 인간인가?”

강도현이 눈을 찌푸리고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복도에 쭉 늘어선 수가 언뜻 봐도 수십.

그가 그것을 보고 중얼거렸다.

“모른 척 하고 그냥 처리하면 안 되나.”

“강도현 차사님.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차사가 아닙니까.”

“농담 아니야. 저걸 하나하나 붙잡아 저주를 해제하라고?”

-기기기긱!

그 사이 조각상들이 침입자를 포착하고 공격을 개시하였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조각상이 거대한 도끼를 들어 강도현의 머리를 내리치려는 순간.

강도현이 반격을 하기 전 서강림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콰직!

칠지도에 걸린 머리가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머리를 잃은 조각상이 허공에 손을 휘젓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안나비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강림 씨, 저건 분명히 인간이라고……!”

“전부 인간은 아닙니다. 마수인 조각상과 인간인 조각상이 섞여 있어요.”

‘운명간파’를 사용하자 서로 다른 조각상이 섞여 있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강도현과 안나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서강림이 달려드는 또 다른 조각상을 발로 차 쓰러트린 뒤 말했다.

“어떤 게 인간인지 알려드릴 수는 있지만 수가 너무 많아서…….”

“어떤 게 인간인지 말이나 해.”

강도현이 안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내며 말했다.

언뜻 보니 포박 계통의 부적 같았다.

“앞에서부터 네 번째, 다섯 번째, 일곱 번째.”

-촤자작!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도현이 조각상들 사이로 달려 나갔다.

서강림이 지정한 조각상들은 어느새 부적이 부착되어 굳어 있었다.

나머지 조각상을 부수는 건 순식간이었다.

“서강림 씨, 정말 굉장하세요. 서강림 씨가 아니었더라면 큰일이었을 겁니다.”

사상자 없이 빠르게 사태를 정리하자, 안나비는 감탄하는 어조로 말했다.

강도현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으나 속내는 안나비와 같았다.

‘서강림……. 교육 시설 때부터 특별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역시 좋은 신을 받아서 그런가.’

말없이 서강림을 응시하던 중, 문득 눈이 마주치자 강도현은 황급히 시선을 틀었다.

그가 괜히 큰 소리로 말했다.

“느려, 서강림. 얼른 위로 올라가자.”

위층도 똑같은 구조라, 4층까지 올라오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도현이 5층 부근을 힐끗 보며 말했다.

“그 여자가 말한 이상한 것이 이 위에 있겠군.”

양세라가 말했던 것 때문인지, 5층의 어둠이 한층 더 짙게 느껴졌다.

세 사람이 위층으로 올라가자 이곳은 오히려 조각상 하나 없이 고요했다.

그때 강도현이 허공을 응시하더니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강도현 차사님. 무슨 일이십니까?”

“냄새 안 나?”

“냄새라면……?”

“지독한 냄새가 난다.”

서강림 역시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시체 썩는 냄새와 피비린내.

그리고 알 수 없는 악취까지.

5층으로 올라오자 다른 방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끝없이 길게 뻗은 복도만이 보일 뿐.

조명 하나 없는 복도를 조용히 걸어가던 그때.

어둠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독, 오독…….

무언가를 부러트리는, 혹은 씹는 듯한 소리.

“마수? 아니, 사람……같습니다.”

안나비의 말대로 복도의 끝에는 사람이 있었다.

긴 백발과 수염을 보아하니 노인인 것 같았다.

“어…… 어…….”

무언가를 먹던 노인이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퀭하게 내려간 눈두덩이 사이의 안광은 초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생존자가 있었다니, 얼른 확보를……!”

안나비가 노인을 향해 달려가려는 순간, 서강림이 그녀의 팔을 덥석 잡았다.

갑작스러운 저지에 안나비가 그를 바라보았다.

“서강림 씨, 왜 그러십니까?”

“우리를 제외하고 이 마경에 마지막으로 파티가 들어온 것이 언제죠?”

“보고받은 것으로는 일주일 전…….”

“바깥에서의 일주일이 이곳에서는 수년입니다.”

최소가 수년이지, 몇 달 전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수십 년을 이곳에서 보낸 것이다.

저 남자가 처음 이 마경에 들어섰을 때도 저런 모습이었을까?

“이곳에 차려진 음식을 먹으면 마수가 됩니다. 그런데 저 사람은 마수가 되지 않았죠.”

“……!”

그제서야 강도현도 이상한 것을 깨달은 눈치였다.

그가 다급히 부적을 꺼내 들었다.

노인은 주춤주춤 일어나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외부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고 버텼다기에는 너무 긴 시간입니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외부에서 보급된 것을 먹고 버티긴 했겠죠. 그게 음식은 아니었지만.”

창을 통해 들어온 달빛이 노인을 비추었다.

밝은 곳에서 보니, 백발과 수염 때문에 나이가 들어 보일 뿐 실제로는 중년 정도의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남자가 먹고 있던 것도 이제는 볼 수 있었다.

그가 방금 전까지 씹고 있던 것은 인간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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