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사주 헌터-89화 (88/256)

<89화>

방금 전, 공주에게서 비슷한 제안을 들었을 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거부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사라진 신체 부위를 복구하는 것은 회복의 영역이 아니다.

몇 년이 지나면 그런 능력을 가진 만신도 등장하기는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없다.

아이템 역시 지금 당장 구할 수가 없었다.

“강림 씨가 입사를 하면 그 즉시 고칠 수 있답니다.”

서문용녀의 제안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운명 보호국이라면 잘린 팔 하나 쯤이야 쉽게 고칠 수 있었다.

나 역시 신수아의 팔을 회복시킬 방법을 알고는 있지만, 그러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린다.

나는 그녀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최소 계약 기간은?”

“1년? 더 오래 있어 주면 좋지만요.”

1년 정도 보호국의 개로 사는 대가로 신수아의 팔을 회복시킬 수 있다면, 나쁜 조건은 아니다.

고생은 좀 하겠지만, 중간에 빠져나올 방법도 있고.

나는 서문용녀를 향해 물었다.

“바로 입사해야 합니까?”

“원래는 그래야 하지만, 강림 씨니까 특별히 몇 달 정도는 유예 기간을 드릴게요. 단, 지금 확답을 주신다면요.”

고민할 수 있는 시간 따위는 주지 않겠다는 건가.

내 팔이 잘렸다면 거절했을 제안이었다.

내가 망설이고 있던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제안은 거절하겠어요.”

내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가 아니었다.

어느새 병실의 문이 열리고 신수아가 힘겨운 걸음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인상을 일그러트린 채 말했다.

“서강림 씨는 보호국에 입사하지 않을 거예요.”

“어머, 수아 씨. 괜찮으세요? 갑자기 움직이면 위험해요.”

서문용녀는 정말로 신수아가 걱정된다는 듯, 다가가 부축했다.

신수아는 조용히 서문용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죠? 제 팔을 대가로 입사를 하라니. 제게 제안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수아 씨가 입사하겠어요? 수아 씨가 오는 것도 대환영이에요.”

서문용녀는 진심으로 신수아에게 호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수아 역시 상당히 강한 헌터이니, 서문용녀가 탐낼 법도 했다.

하지만 신수아는 거칠게 서문용녀를 밀어냈다.

“아뇨. 저도 입사하지 않을 거예요.”

“아쉬워라. 두 사람이 우리 팀에 와준다면 정말 기쁠 텐데요.”

서문용녀의 얼굴에 아쉬움이 드리워졌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는 품에서 명함을 꺼내 나와 신수아에게 한 장씩 건네주었다.

“언제라도 마음이 바뀌면 연락해줘요. 2팀보다 무조건 월급 2배, 대우도 훨씬 좋을 테니까요.”

이걸로 받은 명함이 두 장째.

보호국에 들어갈 생각은 없지만 두 사람을 이용할 수 있다면, 알아둬서 나쁠 것은 없다.

서문용녀가 스쳐 지나가며 작게 속삭였다.

“조만간 다시 만나요, 강림 씨.”

서문용녀는 발소리도 남기지 않고 떠나갔다.

대신 그녀가 주고 간 꽃다발 냄새가 지독하게 남아있었다.

나는 그것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보호국에 입사할 생각이었어요?”

신수아는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누워있을 때보다 사라진 팔이 더욱 눈에 잘 들어왔다.

비어 있는 옷소매가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나쁜 조건은 아닌 것 같아서 입사할까 생각했습니다.”

“제 팔 때문에 입사할 생각이라면 당장 그만두세요. 이건 제 책임이지, 강림 씨의 책임이 아니에요.”

“당신 팔이 아니었어도 입사할 생각이 있었…….”

“강림 씨.”

신수아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 앉아 있었다.

그녀가 나를 똑바로 쏘아보며 말했다.

“강림 씨 거짓말 엄청 못해요. 티 나니까 그만두세요.”

신수아의 반응에 나는 조금 화가 났다.

자신은 나 때문에 팔까지 잃어 놓고서, 왜 나에게는 입사를 하지 말라고 하는 거지?

참다못해 말이 튀어나왔다.

“당신은 왜 날 위해 팔을 희생했습니까?”

나는 신수아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그야, 그때 강림 씨가 위험해 보였어서…….”

“위험해 보이든 말든, 당신이 왜요? 당신이 나랑 무슨 사이라고? 고작 만나지 몇 달밖에 안 된 나를 위해 왜 희생을 합니까?”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나를 위해 한쪽 팔을 희생하는지.

왜 나를 운명 보호국에 가지 못하게 막는지.

왜 미래에서 나를 위해 죽는 것인지.

“대체 왜 그럽니까?”

내 목소리가 어느새 거칠어져 있었다.

신수아는 조금 굳은 얼굴이 되어 시선을 피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신수아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다고요?”

“그냥, 당신이 신경 쓰여요.”

그녀는 스스로도 자신의 말에 자신이 없는 눈치였다.

신수아가 제 팔이 있던 자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처음에는 당신이 날 도와줘서, 자꾸 혼자 고생을 해서 신경이 쓰였어요.”

“…….”

“저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빠져서 미안한 마음도 있어요. 그렇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는 저도 설명이 잘 안 돼요.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잠시 그녀가 말을 멈췄다.

뭐라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약간의 정적 후,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왠지 서강림 씨와 오래전부터 알아 온 것 같아요.”

“…….”

“당신이 위험한 걸 보니까, 그냥 몸이 저절로 움직였어요.”

신수아는 그렇게 말한 뒤, 어색하게 웃었다.

“이상하죠? 정말 만난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이라면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실제로 나와 그녀는 오래 전부터 알아 왔으니까.

그녀도 회귀의 영향을 받고 있는 걸까?

전생의 기억이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신수아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는…… 우리가 동료였으면 좋겠어요. 교육 시설을 나왔지만 앞으로도 계속 같이 활동했으면 좋겠는데…….”

신수아의 목소리는 작고 조심스러웠다.

그녀가 말끝을 흐리다가 어렵사리 내게 물었다.

“앞으로도 계속 연락하고, 친구로 지내면 안 될까요?”

전생에도 신수아는 교육 시설을 빠져나와, 같은 제안을 했었다.

함께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그때의 나는 제안을 수락했었다.

신수아를 죽이고, 그 운명을 훔치고자.

“……저는.”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신수아를 살리고, 그 운명을 보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방법이 뭔지, 어느 쪽이 비호문을 위한 길인지 모르겠다.

나와 함께 있다가는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백영에게 살해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운명의 길잡이가 보여준 미래가 마음에 걸렸다.

내가 없는 장소에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신수아가 죽는다면…….

그것은 싫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아차리고 싶지 않다.

더 이상 후회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알겠습니다.”

내 대답에 신수아가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녀가 반색하며 말했다.

“우리 친구 하는 거 맞죠?”

“……그래요.”

내 대답을 듣고 신수아가 환하게 웃었다.

평소에는 늘 차분하던 신수아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들뜬 모습이었다.

“입원하는 동안 들었는데, 마음이 맞는 헌터들끼리 문파도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같은 문파 하지 않을래요?”

“내키면요.”

다소 불친절한 대답이었지만, 신수아는 내 대답을 듣고는 살짝 웃었다.

“그래도 칼같이 거절하지는 않네요?”

“내키면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거절할 수도 있고요.”

“거절해도 계속 권유할 거니까요.”

그 말을 듣자 왠지 모르게 긴장이 누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전생이랑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 인간이다.

내가 문파를 탈퇴하겠다고 했을 때도 몇 차례나 거절했지.

그 일로 유하랑이 여러 차례 놀려대기도 했었다.

[서강림이 자신의 능력 부족을 이유로 탈퇴하기를 요청하였으나, 신수아가 윤허하지 아니했다.]

[…….]

[서강림이 건강 문제로 탈퇴하려 하였으나, 신수아가 윤허하지 아니했다.]

[서강림이 자기 계발을 이유로 탈퇴를 요청했으나, 신수아가 윤허하지 아니했다.]

[조용히 해.]

내가 탈퇴 신청을 해놓고 숨어 있으면, 어떻게든 나를 찾아내서 끌고 가던 신수아였다.

대체 내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는지,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강림 형제님!”

그때, 복도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한 신부가 나를 보고는 허둥지둥 달려오고 있었다.

그가 울먹이는 얼굴로 내 손을 꼭 잡았다.

“서강림 형제님이 깨어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와봤는데, 정말로 깨어나셨군요……!”

“신부님, 오랜만입니다.”

분위기가 어색했는데 요한 신부가 와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요한 신부는 여전히 감격에 벅찬 얼굴로 말했다.

“깨어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정말 걱정 많았는데……. 아, 다른 분들도 형제님을 만나고 싶어 할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신수아도 아차 싶은 표정이 되었다.

“아, 그러게요. 다들 기다릴 텐데…….”

그렇게 말하며 신수아는 가볍게 박수를 치려했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어색하게 팔을 늘어트렸다.

……최대한 빨리 복구 시켜놔야지.

“먼저 가세요. 저도 옷만 갈아입고 바로 갈게요. 신부님, 교육실로 안내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네. 물론이죠. 그러면 이따 뵙겠습니다.”

요한 신부가 환히 웃으며, 나를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건물은 아마도 보호국 산하의 빌딩 같았다.

상층에는 치료 시설이 있고, 아래로도 헌터 전용 편의 시설이 위치해 있는 공간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 요한 신부가 재잘재잘 떠들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다들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형제님이 초주검으로 나올 때도 그랬고, 이능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랬…….”

쾌활하게 떠들던 요한 신부가 말을 뚝 끊었다.

그러고 보니 내 이능,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졌지.

요한 신부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어, 형제님. 드릴 말씀이…….”

“뭔가요?”

“다른 사람들이 형제님을 보면…… 좀, 꺼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조금 해놓는 게 좋으실지도…….”

나는 그저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대충 무슨 일인지는 알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2층에서 멈췄다.

-띠링

알림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보였다.

일주일 동안 잠들어 있었으니 모두 안내를 받고 빠져나갔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독고준은 보이지 않았다.

그 낯짝이 없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다.

익숙한 얼굴들, 그렇지 않은 얼굴들이 보이는 가운데.

몇 번인가 이야기를 나누었던 2구역 멤버가 나를 보고 사색이 되는 것이 보였다.

“서, 서강림……?”

그의 목소리에는 경악과 두려움이 배어 있었다.

그가 내 이름을 입에 올리자마자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마치 마수라도 나타난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를 보고 쉽게 접근하지도, 떠나지도 못하고 경계 상태에 빠진 가운데.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가 발을 내디뎠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네?”

그 말은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최상원은 마경에서와 달리, 깔끔하게 빼입은 모습이었다.

그가 쓰레기라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말했다.

“살인자 새끼. 또 누구를 죽이고 사주를 훔치려고?”

최상원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최상원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던 사람들.

내게 다가와 같이 파티를 맺자고 요청하던 사람들.

그때 그들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

경멸과 두려움이 어려 있는 시선.

전생에서 자주 보던 얼굴이었다.

최상원이 나와 거리를 둔 채 증오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네가 최우수 교육생이라고? 몇 명이나 죽여서 이능을 훔쳤길래 최우수 교육생이 된 거야?”

“…….”

“나를 따라다닌 것도 이제 이해가 되는군. 날 노렸던 거야! 날 죽이고 이능을 가져가려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린 말이었다.

애초에 따라다닌 적도 없다.

죽일 생각도 없었고.

최상원은 와중에 계속 왁왁대고 있었다.

“이런 범죄자를 풀어놓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 보호국에서 잡아가야지!”

그 말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게, 이렇게 위험한 사람인데……. 보호국에서는 왜 방치하는 거지?”

“뭘 할지 모르잖아.”

“보, 보호국에 건의해봐요!”

“자매님들, 형제님들! 좀 진정하세요……!”

요한 신부가 쩔쩔대며 그들을 말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자 최상원은 더욱 기가 사는 것 같았다.

그때 사람들 사이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사부님!”

안쪽에서 뛰어나온 사람은 윤봄과 윤겨울, 장태헌이었다.

윤봄이 내게 달려오려는 순간 최상원이 그녀의 팔을 덥석 잡았다.

“윤봄, 뭐 하는 거야?”

“놓아 주세요.”

“저 인간은 위험해, 너도 알잖아!”

“놓아 주세요.”

“서강림은 살인자야! 너흰 속고 있었어. 너희를 데리고 다니다가 기회를 봐서 이능을 훔…….”

-콰앙!

그때 최상원의 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얼마나 세게 메다꽂았는지 바닥에 금이 가 있었다.

“놓으라고 했죠.”

“큭, 커억…….”

“다시는 사부님을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마세요.”

그녀가 서늘한 눈으로 최상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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