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그 소리에 서강림은 멈춰 섰다.
문이 열리는 소리는 뒤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돌아보니 그곳에는 모르는 얼굴들이 서 있었다.
【뭐야, 운 나쁘게 다른 애들이 들어온 건가?】
【야야, 빨리 나가!】
신들의 말대로 그들은 운 나쁘게 이 장소에 들어온 사람들처럼 보였다.
불이 난 방 안을 둘러보고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그러나 그들은 당황했을지언정, 다시 밖으로 빠져나가지는 않았다.
도리어 서강림을 발견하자 다급히 무기를 겨누었다.
“서강림 찾았다!”
“젠장, 놓치는 줄 알았는데.”
“탈락만 시키면 되는 거지? 여섯이니까 5000만원 씩 나누면 되는 건가?”
이들은 1구역의 교육생들이었다.
서강림이 홍대훈을 처리하며 많은 이들이 탈락했지만, 아직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서강림에게 걸린 액수도 이제는 3억으로 올라와 있었다.
“서강림! 죽일 생각은 없다. 퇴소 선언만 하도록 해!”
그렇게 소리를 쳤으나 서강림은 묵묵히 그들을 응시할 뿐이었다.
1구역 인원들은 그런 서강림을 보고 저들끼리 속삭이고 있었다.
“젠장, 여긴 왜 불이 난 거야? 일단 나가야 하지 않겠어?”
“저기 그림자 마수도 있고. 위험해 보이는데?”
“서강림이 곧 도망갈 테니, 따라가면 되지. 조금만 참아!”
사방은 불길에, 게다가 신수아의 그림자가 살아 있었다.
불길에 가둬진 상태라 아직은 공격을 하고 있지 않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때문에 당연히 서강림이 달아날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서강림은 제 뒤편의 문을 힐끗 보았다.
‘이쪽으로 나갈 수는 없어. 밖에 신수아가 혼자 있다.’
남은 출구는 1구역의 인원이 들어온 문과 신수아가 있는 방으로 연결되는 문, 2개뿐.
신수아가 있는 방으로 도주할 경우 저들이 뒤를 따라올 것이었다.
치료를 받긴 했어도 신수아는 평소의 몸 상태가 아니었다.
‘상대방의 평균 능력치는 20, 운명 등급은 귀급 정도인가.’
서강림을 잡으러 온 1구역 인원 중 다수가 상당한 강자였다.
만약 저들이 약해진 신수아를 공격한다면 일이 곤란해질 것이었다.
차라리 이곳에서 싸우는 편이 유리하다고 결론을 내린 서강림은 검을 꺼내 들었다.
‘여기서 저놈들을 다 쓰러트리거나, 놈들의 뒤편에 있는 문으로 빠져나간다.’
서강림이 검을 들어 올리자 1구역 일원들은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다 한 사람이 서강림을 비웃으며 말했다.
“상황 파악을 못하는군. 여기서 싸우겠다고?”
“그래.”
“어차피 어디서 싸우든, 네 놈이 이길 가능성은 없어!”
이들을 상대로 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시간.
신수아가 장착한 거해의 띠는 이 순간에도 날을 조여오고 있을 터였다.
얼마나 빨리 처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인 상황.
그때, 1구역 인원들의 뒤에 있던 문이 열렸다.
‘증원이라도 있는 건가?’
이 이상 인원이 늘어나면 좋을 것이 없었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오더니,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저쪽은 신수아 씨 그림자인가? 이렇게 잡고 있었구나! 서강림, 어려운 길을 택했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독고준이었다.
그는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 방 안을 둘러보더니,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서강림, 넌 정말 주인공 감이야. 신수아를 빈사 상태로 만들었다면 이 방을 수월하게 깰 수 있었을 텐데.”
독고준의 말대로 서강림은 어려운 방법을 택했다.
다시 한번 신수아가 자해를 하여 빈사 상태가 된다면, 그림자 역시 무력화 된다.
그 사이 서강림이 그림자를 죽이고 신수아를 회복시켜 호패를 챙기면 끝날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차마 신수아에게 다시 한번 스스로를 찌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어리석고, 우직하고, 성실하네. 아아, 정말이지. 나와는 정반대잖아? 정말 주인공 같아.”
독고준은 기쁜 얼굴로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1구역 인원들이 다급히 말했다.
“독고준, 헛소리는 그만해! 얼른 서강림을 처치하고 나가야 한다고.”
“빨리 합세해!”
마치 독고준이 그들의 편인 것 같은 태도.
그 반응에도 서강림은 동요하지 않은 채, 검을 들고 있을 뿐이었다.
딱히 놀라지 않은 서강림을 보고 독고준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서강림 별로 안 놀라네? 내가 1구역으로 바꾼 거 알고 있었어?”
“그래. 예상하고 있었다.”
초반에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서강림은 그가 다른 구역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1구역에서 결원이 상당히 발생했으니 타 구역에서 스카우트를 할 법도 했다.
희귀 아이템인 시공 파발을 갖고 있거나 거해의 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도 수상했는데, 스카우트의 대가라면 납득이 갔다.
서강림이 여전히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왜 1구역으로 넘어간 거지?”
독고준이 1구역으로 갈만한 이유가 없었다.
돈으로 회유하기에는 이미 가진 것이 많고, 낯선 1구역 인원들과 마지막 방을 클리어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다.
독고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나, 지난번에 반성 많이 했거든.”
“…….”
“나는 다른 사람 뱀 죽이면서 강철이 죽일 생각만 했지, 너처럼 하지는 못했어. 주인공다운 네 면모에 비하면 난 한참 모자랐지.”
불꽃과 음영이 미친 듯이 춤을 추는 가운데, 그가 겸손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투탑 주인공은 포기하려고.”
“그러면 내 적이라도 될 생각인가?”
그 물음에 독고준은 그저 빙긋 웃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1구역 인원들이 재촉하듯 말했다.
“독고준, 이상한 소리는 그만 하고 빨리 도와!”
“그래, 그래. 도와야겠지.”
-푸확!
그때, 불길 위로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칼이 1구역 인원의 가슴을 뚫고 삐져나온 상태였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피를 토해냈다.
“커, 커헉. 독고준, 대체 왜……!”
1구역 인원이 쓰러지는 사이, 독고준은 빠르게 서강림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강림이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배신하려고 1구역에 넘어간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말했잖아. 널 보고 반성했다고. 난 투탑 주인공은 포기하고…….”
독고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네 조연 동료가 되고 싶어! 그래서 1구역으로 간 거야. 이중 스파이가 되려고.”
“거짓말 하지마. 날 공격할 심산 아니었나?”
독고준이 이 방에 처음으로 들어왔을 때.
서강림은 그에게서 흘러넘치는 살기를 쉬이 눈치챌 수 있었다.
독고준이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했다.
“어라, 들켰나? 네가 신수아를 자해하게 만들어서 여기를 공략했다면, 너랑 싸울 생각이긴 했는데.”
역시 독고준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지금은 그를 이용해야 했다.
남은 1구역 인원들이 그들을 향해 고함을 쳤다.
“젠장, 독고준! 배신이냐……!”
“이제 상관 없어. 둘 다 공격해!”
1구역 인원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불로 만들어진 채찍이 사방을 휩쓸었다.
-촤아아악!
신수아의 그림자가 불이 붙은 나무줄기를 미친 듯이 휘두르며 그들에게 공격을 가해왔다.
그림자는 불이 붙어, 마치 숯처럼 타들어 가고 있는 상태였다.
갑작스러운 그림자의 공격에 1구역 인원들이 주춤하는 사이.
-서걱!
방심할 틈도 주지 않고 서강림이 달려들었다.
미처 공격을 피하지 못한 한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곧바로 서강림의 연격이 들어왔다.
-카가강!
이번 공격은 가까스로 막았지만, 맞닿은 검이 부들부들 떨려오고 있었다.
1구역 인원은 이를 악물고 서강림의 검을 받아내고 있었다.
‘뭐, 뭐야! 이렇게 강하다고?’
체중을 실은 것 같지도 않은데 서강림의 공격은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웠다.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내긴 했으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적은 서강림뿐만이 아니었다.
“끄아악!”
독고준의 손에 붙잡힌 한 사람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의 옷자락이 해어져 형체를 잃고, 살덩어리가 썩어가고 있었다.
[이능 ‘부식’이 발동됩니다!]
이능의 이름대로 그는 산채로 부식되어가는 중이었다.
독고준의 ‘부식’을 피해 도망가면, 곧바로 서강림이 나타나 그들에게 공격을 가했다.
1구역 인원들이 숨을 헐떡거리며 주춤 물러섰다.
‘빌어먹을, 상황이 너무 안 좋아……!’
서강림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독고준과 화염, 그림자도 그들을 공격해오고 있었다.
이어 오는 독고준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했으나, 나무 줄기에 얻어맞은 한 사람이 피를 토해내며 쓰러졌다.
“컥, 커헉……!”
신수아의 그림자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공격을 가해오고 있었다.
서강림은 1구역 인원들을 상대하는 와중에도 현란하게 불꽃과 그림자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1구역 인원들은 기절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젠장, 서강림! 이 불 속에서 어떻게 저리 움직이고 있는 거지? 화(火) 속성인 나도 이 불길이 버거운데……!’
오행이 화 속성인 사람들은 그나마 이 열기를 버틸 수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데미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서강림은 화 속성만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화(火)와 수(水) 속성까지 가졌기에 이 화염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다.
서강림은 빠르게 상대방의 상태를 확인했다.
‘빨리 처리해야 해. 거해의 띠가 작동하기까지 몇 시간이 남지 않았다.’
남은 인원은 둘.
이들만 처리하면 모든 게 끝이었다.
서강림이 곧바로 남은 적들을 처리하려던 그 순간.
-두웅, 두웅…….
북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모두 움직임이 멈췄다.
“뭐, 뭐야. 설마……?”
누군가가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로 화원을 바라보았다.
불타오르는 화원 사이에 검은 덩어리가 울컥거리며 생성되고 있었다.
마치 불 속에서 태어나는 생명처럼.
“제기랄, 뭐야?! 지금 서강림만으로도 벅찬……!”
-콰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림자가 검을 들고 1구역 인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과 검이 맞부딪친 순간 사방을 찢을 듯한 풍압이 발생하였다.
그 풍압에 불꽃은 압살당하고, 1구역 인원들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독고준이 그 풍압을 버티며 눈을 번뜩였다.
“한참 재밌었는데 방해꾼이 나타났네!”
그가 광기로 눈을 불태우며, 새로 나타난 그림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부식’을 발동시키려던 그 순간.
“어라? 너는……!”
-촤악!
그가 무언가를 보고 멈칫한 사이, 그림자가 독고준을 크게 베어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빠른 일격.
독고준이 검압에 밀려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고통스럽게 피를 토하는 독고준을 보고 서강림은 당혹했다.
‘독고준이 일격에 당했다고?’
다른 사람도 아닌 독고준이었다.
강한 것으로 따지자면 2구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헌터.
도대체 누구의 그림자이길래 독고준을 일격에 쓰러트린단 말인가?
-기, 기긱…….
독고준을 쓰러트린 뒤, 그림자는 천천히 고개를 틀어 서강림을 바라보았다.
그것과 마주한 순간, 서강림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본능적인 역겨움에 내장이 조이는 듯한 기분.
붉은 띠.
그림자의 목과 양 사지에 붉은 띠가 그어져 있었다.
그것은 분명 자신의 그림자였다.
-가, 가각…….
그림자가 기묘한 소리를 흘리며 서강림을 향해 다가왔다.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불쾌한 감정이 전해져왔다.
그것은 서강림을 갈망하고 있었다.
‘본체인 날 흡수하려 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