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사주 헌터-81화 (81/256)

<81화>

최상원의 말에 사람들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언뜻 보면 합리적인 방법 같았지만 서강림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그림자는 자신의 것이 분명했으며, 이곳에 잡혀 있을 시간도 없었기에.

“그건 곤란합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일견 배신당한 표정이 되었다.

원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 당신이 그 그림자였어?”

“우리를 속이고 있었던 거야?”

사람들이 하나둘씩 무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강림은 묵묵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싸워봐야 시간 낭비일 뿐인데, 곤란하게 되었군.’

말로 설득을 하기에도, 쓰러트리고 가기에도 지금은 한시가 급했다.

서강림이 상황을 살피던 그때, 최상원이 외쳤다.

“다들 잡아!”

그 외침이 방아쇠라도 된 듯 사람들이 일제히 서강림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서강림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뭐, 뭐야? 어디 갔어?”

“대체 무슨 이능을 쓴 거지?”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던 와중, 왼쪽의 문이 벌컥 열렸다가 닫혔다.

한 사람이 그곳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기! 저기다! 서강림이 저기로 도망갔다!”

그들은 열린 문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갔다.

서강림은 방 한구석에 선 채, ‘은둔자’를 사용한 상태로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그는 왔던 문을 통해 반대로 빠르게 되돌아갔다.

숨을 내쉬자 ‘은둔자’는 해제되었다.

‘이래서 늦게 들어오려 했는데, 어쩔 수 없군.’

자신의 이능이 발각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딱히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지만 안심할 상황도 아니었다.

빠르게 약재방으로 되돌아오자 윤봄과 장태헌이 그를 맞아주었다.

“형님! 생각보다 늦게 왔네?”

“사부님이 오지 않으셔서 무슨 일인가 싶었어요.”

그들의 얼굴에는 반가움과 걱정이 어려 있었다.

따뜻한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서강림은 불안감을 느꼈다.

‘내 이능을 알게 되면 두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전생에 장태헌은 자신의 이능이 뭔지 알고도 어울려주었지만, 또 모른다.

이능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혹 최상원이나 다른 사람이랑 마주쳐서 내 이능에 대해 알게 되면 곤란해.’

이능에 대해 밝혀지더라도, 신수아를 내보낸 뒤 밝혀져야 했다.

서강림이 다급히 말했다.

“사람들을 만나서 신수아 씨의 호패 위치를 알아내느라 늦었어. 이 근처야.”

“뭐? 정말! 그럼 얼른 가자!”

장태헌과 윤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냈다.

서강림은 두 사람을 데리고 빠르게 화원 쪽으로 발을 옮겼다.

여러 종류의 초조함에 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최상원의 지도에 표기되었던 대로 향해 문을 열자, 방 안에서 좋은 향기가 풍겨왔다.

【오, 뭐지? 밖으로 나온 건가?】

【아니야. 바깥은 아니고 실내 화원 같은데?】

【우와, 엄청 넓다. 밖이라 해도 믿을 듯.】

실내 화원은 일순 밖으로 나왔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넓었다.

천장은 유리로 막혀 있었고 그 너머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그것은 허상의 햇빛일 터였다.

다른 마경의 방과 비교해도 서너 배는 넓은 데다가, 화원 곳곳에는 커다란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화단에 자라 있는 꽃들은 오랫동안 관리를 받아온 것처럼 색깔이 좋고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일단 최대한 빨리 찾아보자. 시간이 없어.”

“알겠어요, 사부님!”

세 사람은 각각 흩어져 정신 없이 호패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는 서강림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나저나 여기 진짜 넓다.】

【그러게. 찾으려면 시간 좀 걸리겠는걸?】

【이러다가 2구역 애들이랑 마주치면 재밌겠다!】

【윤봄이랑 장태헌도 서강림에 대해 알게 되면 뭐라 하려나?】

그들이 자신에 대해 알게 된다면…….

불안한 상상이 이어지려는 것을 서강림은 억지로 참았다.

지금 당장 급한 일이 있었다.

‘호패를 빨리 찾아야 해. 입구까지 돌아가는데도 시간이 걸리니까.’

마경의 상당히 깊은 곳으로 들어왔기에 돌아가는 것도 일이었다.

중간에 마수나 타 구역을 만나면 더욱 시간을 늦춰질 터였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빨리 호패를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마경을 훑던 중, 윤봄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차, 찾았어요! 수아 언니 호패! 나무 위에 숨겨져 있었어요!”

윤봄이 흙투성이가 된 상태로 소리치고 있었다.

신수아의 호패는 거대한 나무 위에 올려져 있는 상태였다.

그 소리를 듣고 서강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생했어. 이제 돌아가서 신수아 씨를 데려오면…….”

-두웅…… 두웅…….

서강림이 안도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북소리가 찾아왔다.

갑자기 빛이 들던 화원에 밤이 찾아온 것처럼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크, 타이밍 봐라.】

【쉽게 내주지는 않을 것이다!】

【어째 북소리 간격이 더 짧아지는 것 같다?】

【이번에는 대체 몇이나 나오려나.】

【한 마리만 나오면 좋겠는데.】

신들이 떠드는 사이 화원 곳곳에서 그림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수는 대략 네다섯 정도.

그 모습에 장태헌은 내심 안도하는 눈치였다.

“다행이네. 몇 안 되잖아?”

세 사람이라면 무난히 이길 수 있는 수였다.

개중에는 부상을 입은 그림자도 있었다.

그 그림자는 생성되자마자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거의 기어 다니는 모양새였다.

마수임에도 동정심이 들 지경이었다.

서강림은 그 그림자를 보고 중얼거렸다.

“……설마, 신수아 씨?”

죽기 일보 직전으로 보이는 그림자는 왼쪽 팔에 붉은 띠가 둘러져 있었다.

신수아와 같은 위치였다.

이목구비는 없지만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 감옥에서 본 신수아와 비슷하기도 했다.

【진짜 신수아 그림자 아니냐?】

【왤케 불쌍해 보이냐.】

【그래도 약화 돼서 다행이지 아니면 큰일 났을 듯.】

‘빨리 죽이고 돌아가야 한다.’

들릴 리가 없는 초침 소리가 숨 가쁘게 들려오는 듯했다.

한시라도 빨리 이것들을 해치우고 신수아에게 돌아가야 했다.

‘이 정도라면 시간은 충분해. 신수아를 데려와 호패를 챙겨 바로 나간다면……!’

모두를 무사히 내보낼 수 있다는 희망에 그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그가 급소를 노리고 그림자를 향해 검을 휘두른 순간.

-까앙!

신수아의 그림자를 내리친 검이 튕겨져 나왔다.

돌을 내리친 듯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느새 그림자의 주위에 투명한 막이 생성되어 있었다.

[이능 ‘보호막’이 발동됩니다!]

그것은 어디선가 보았던, 무척이나 눈에 익은 보호막이었다.

옆에 있던 그림자가 신수아의 그림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성스러운 흰빛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이능 ‘치유의 손’이 발동됩니다!]

그것을 본 장태헌과 윤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두가 같은 것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저 이능 설마……?】

【저거 요한 신부 그림자 아니야?】

【맞네, 맞네. 새끼손가락에 띠도 있고.】

‘제일 만나서는 안 되는 둘이 만났군.’

서강림은 속으로 욕을 하며 다시 한번 공격을 가했다.

회복의 빛이 더욱 밝아지고 있었다.

‘신수아의 그림자를 회복시키기 전에 처리해야 해!’

그가 다급히 달려들어 보호막을 깨부수려는 찰나, 그림자가 두 개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총구와 활시위가 동시에 서강림을 겨누었다.

쌍둥이처럼 비슷한 체구의 그림자였다.

【아 미친 윤봄이랑 윤겨울이잖아?】

【왜 여기 다 모여 있어?】

-타앙! 타앙!

날카로운 총성이 서강림의 뒤편에서 들려오고, 활을 든 그림자의 미간에 총알구멍이 나 있었다.

어느새 윤봄이 뒤에 서 있었다.

그녀가 든 소총의 총부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채였다.

“윤봄, 장태헌! 내가 방어막을 부술 동안 보조해줘!”

“네, 사부님!”

윤봄의 그림자는 어깨를 맞고 비틀거렸지만 곧바로 총을 겨누었다.

총격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유난히 덩치가 큰 그림자가 앞으로 나왔다.

서강림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것이 장태헌의 그림자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림자는 뼈를 부술 기세로 서강림에게 달려들었다.

본체보다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강해진 몸놀림.

그리고 그 사이로 장태헌이 뛰어 들었다.

-콰광!

장태헌과 그림자의 주먹이 동시에 맞부딪쳤다.

무언가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장태헌은 개의치 않았다.

“형님을 방해하지 마……!”

장태헌이 자신의 그림자를 상대하는 사이, 서강림은 빠르게 옆으로 달려갔다.

아직 요한 신부와 신수아의 그림자는 보호막 안에 있었다.

-까강, 까강!

서강림이 사력을 다해 수차례 보호막을 내리쳤다.

제 팔에 오는 반동조차 무시한 채 미친 듯이 칼질을 하자 서서히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쨍!

가까스로 보호막이 깨진 순간, 서강림이 휘두른 칼에 요한의 그림자는 목이 날아가 버렸다.

그림자가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 무너졌다.

그리고 차례를 대신하듯, 신수아의 그림자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미 늦었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것 같았던 신수아의 그림자는 한결 몸이 가벼워 보였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검은 얼굴이 우물처럼 깊어 보였다.

그림자가 손을 내뻗는 순간, 서강림은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것을 온몸으로 감지했다.

[이능 ‘목엽지법’이 발동됩니다!]

[환경의 영향을 받아 이능의 효과가 커집니다!]

-촤아악!

‘목엽지법’이 발동되자, 화원 곳곳에 자라 있던 식물들이 순식간에 생장하기 시작하였다.

하필이면 조우한 장소는 화원.

신수아에게는 최적의 장소였다.

-서걱!

마치 뱀처럼 뻗어오는 가지들을 향해 서강림은 검을 휘둘렀으나 재생력이 너무 강했다.

서강림이 가지들을 정신없이 잘라내자 가까스로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도할 틈도 없이 그 공백 사이로 그림자의 얼굴이 비쳤다.

-채앵!

나뭇가지들을 정리하자 이번에는 그림자가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서강림은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아냈지만 저도 모르게 뒤로 주춤 물러서고 말았다.

‘본체인 신수아보다 훨씬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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