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신내림은 안 받아. 마경이나 잘 돌고 와.”
“아, 형님!”
나는 식당을 나섰지만, 장태헌은 여전히 옆을 따라오며 신내림을 종용하고 있었다.
무시하면 제풀에 포기하겠지.
그나저나 장태헌이 신수아에게 친숙함을 느끼고 있다니, 다행이었다.
적대시만 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들 서로에게 익숙해질 것이다.
요한 신부는 원래부터 무던한 성격이고, 윤봄이나 윤겨울과는 전생의 인연이 없지만 비슷한 또래니까 괜찮겠지.
……조금 걸리는 부분은 있지만.
* * *
-콰아앙!
요란한 소리가 훈련장에 울려 퍼졌다.
평소에도 대련을 하거나 훈련을 하느라 언제나 소란스러운 곳이지만, 방금 들려 온 소리는 차원이 달렸다.
마치 산의 일부가 무너지는 듯, 커다란 바위가 충돌하는 듯한 소리.
훈련장은 방금 전의 공격으로 인해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라 있었다.
그 사이로 장태헌의 모습이 보였다.
몸 곳곳에 난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장태헌 씨.”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소총을 든 윤봄이 굳은 얼굴로 장태헌을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개인적인 감정은 없는데, 저희 수호신이 그쪽을 좀…… 마음에 안 들어해서요.”
장태헌은 피를 퉤 뱉었다.
훈련용 총기라 살상용 탄환을 들어 있지 않았지만, 대미지는 착실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가 윤봄을 노려보며 말했다.
“왜 마음에 안 드는데?”
“상도덕이 없다고 그러시네요. 우리가 먼저 서강림을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새치기를 하려는 게.”
현재 수호신들이 교육 시설에서 가장 눈여겨보는 사람은 바로 서강림이었다.
좋은 성적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신이 없는 각성자.
그 빈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신들은 열을 올리고 있었다.
서강림에게 많은 보상을 약속하는 이들도 있었고, 누군가는 인간관계를 이용하려고도 했다.
신이 설득할 수 없다면 인간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가까운 사람이 권유를 한다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게 사람 마음이니까.
때문에 윤봄과 윤겨울, 요한 등은 수호신의 명령대로 서강림에게 신내림을 권유하고 있었다.
물론 실패하고 있었지만.
언제 서강림을 다른 신에게 빼앗길지 몰라 초조해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장태헌도 영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가장 분노한 것은 윤봄과 윤겨울의 수호신 진영이었다.
서강림을 노리고 있던 ‘신과 인간의 아버지’는 그리스의 최고신, 제우스.
제우스의 휘하에 있는 아폴론과 아테네는 윤봄과 윤겨울에게 명령을 내렸다.
장태헌을 압박해서 물러서게 만들라고.
윤봄이 장태헌을 힐끗 보며 말했다.
“어차피 사부님은 신내림에 관심 없다고 하니까, 장태헌 씨도 그만하면 어떨까요?”
“니네가 설득 못 한 걸 갖고 왜 나한테 시비야? 그리고…….”
장태헌이 여전히 날 선 시선으로 윤봄을 노려보았다.
“개인 감정 없는 거 맞아? 아닌 것 같은데.”
“……좋을 건 없죠.”
서강림은 장태헌과 잘 지내라고 했지만, 장태헌은 일면식 없는 타인에 불과했다.
오히려 수상한 편이었다.
타 구역에서 넘어와, 서강림에게 신내림을 받으라 종용하다니.
뒤에서 활을 쥐고 있던 윤겨울이 그를 힐끗 보며 말했다.
“너 진짜 스파이 아냐? 사부를 타구역으로 데려가려는…….”
“아니라고 해도 안 믿을 거 아냐?”
“어쨌거나 더 이상 사부한테 신내림 받으라고 귀찮게 굴지 마. 그러면 우리도 그쪽 건들지 않을 테니까.”
그 말에 장태헌은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두 눈에는 흉흉한 반항심이 가득했다.
“싫은데? 누구 신내림 받든 그건 형님 마음이지.”
“그쪽이랑 별로 싸우고 싶지 않아요. 그렇지만 수호신께서 그쪽을 말로 설득할 수 없다면 힘으로라도…….”
“붙어볼래? 어차피 약해 보이는데. 뒤에서 빼지 말고 너도 덤벼.”
장태헌이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윤겨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도 이죽대며 말했다.
“이 대 일로 붙으면 금방 죽을 것 같아서 봐주고 있는데, 주제 파악 좀 하지? 어차피 공략 실패해서 여기로 굴러들어온 거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뭐?”
분위기가 점점 살벌해지며 공기마저 무거워지고 있었다.
한 명이 손가락이라도 까딱이면 그대로 싸움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
그때, 그 사이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너네 뭐 하냐?”
그 목소리에 세 사람이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서강림이 훈련장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못된 짓을 하다 걸린 사람처럼 윤봄과 윤겨울의 얼굴이 굳었다.
“내가 장태헌이랑 잘 지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 그게…….”
윤봄은 차마 변명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눈치를 보던 윤겨울이 중얼거렸다.
“그게, 장태헌이 자꾸 사부한테 신내림 받으라고 하니까……. 우리 쪽 수호신들이 장태헌을 포기하게 만들라고 했어.”
그 말에 서강림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윤봄과 윤겨울이 예전부터 제우스를 신내림 받으라고 은근슬쩍 권유해오던 것이 생각났다.
본인들도 수호신이 시킨 일이니 어쩔 수는 없었겠지만 서강림은 불쾌했다.
서로 마음에 들지 않아 싸운다면 차라리 낫다.
그런데 오로지 신의 명령대로, 그들의 뜻대로 이렇게 놀아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강림이 장태헌을 힐끗 보며 말했다.
“장태헌. 너네 쪽 신도 여전해?”
“……응. 형님 꼭 설득시키래.”
이대로 내버려 둬봤자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었다.
신들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을 테니, 계속 서로 마찰이 일어나겠지.
서강림이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 그러면 이렇게 하자. 싸워서 이기는 쪽 진영을 신내림 받을게.”
“뭐?”
“네?”
그 말에 모두가 놀란 눈이 되었다.
그들의 신이 좋아할 법한 소식이었다.
그러나 서강림은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어갔다.
“대신 나랑도 싸운다. 내가 만약 너희를 이기면, 깔끔하게 포기해. 그리고 너희 수호신들한테 하나씩 받아내야겠다. 최소 귀급 아이템으로. 전달해.”
그 말에 세 사람은 쭈뼛대더니 무언가와 이야기를 하는 듯 조용해졌다.
그들의 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장태헌이 망설이다 말했다.
“형님이 너무 강해서 불리하지 않냐고 하는데.”
“그러면 전원 이능 사용 금지하고 붙어. 나는 한 대라도 맞으면 탈락인 걸로 하고.”
서강림이 핸디캡을 제안하자 수호신들도 어느 정도 만족하는 기색이었다.
윤겨울이 살짝 풀어진 얼굴로 말했다.
“알겠어, 사부. 그런데 한 대 맞는 게 조건이면 너무 빨리 끝…….”
-카가강!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강림이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반사적으로 활을 들어 공격을 막아냈지만 그것이 고작.
코앞에서 서강림의 눈빛이 흉흉하게 빛났다.
“그럴 걱정할 틈이 없을 텐데.”
“……!”
윤겨울이 부들부들 떨며 공격을 버티고 있었다.
그는 그대로 굳어 있었다.
이대로 활을 빼낸다 한들, 시위를 겨누기 전 서강림의 공격이 또다시 날아올 것이 뻔했다.
그때, 옆에서 윤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겨울아!”
어느새 윤봄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다.
그러나 차마 발사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서강림이 윤겨울의 팔을 꺾어 제압한 뒤, 제 앞에 세워뒀기 때문이었다.
마치 방패처럼.
“쏠래?”
이대로 공격을 했다가는 윤겨울이 맞을 것이 뻔했다.
윤봄이 망설이는 사이, 서강림은 윤겨울을 끌고 달려가더니 그대로 내던져 버렸다.
그 끝에는 윤봄이 있었다.
-콰앙!
“꺄악!”
“으아악!”
두 사람이 그대로 부딪쳐 바닥을 굴렀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공격 태세를 갖추려 했지만, 그보다 서강림이 더욱 빨랐다.
서강림이 두 사람의 손을 짓밟으며 말했다.
-콰직!
“난 장난하는 거 아냐.”
“윽……!”
쌍둥이 남매는 강했지만 현재로서는 위기에 몰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원거리에 특화된 포지션.
시위를 겨누고, 당기는 그 동작보다 서강림이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더 빨랐다.
서강림과 거리를 두고 싸워야 하는데, 그는 도통 틈을 내주지 않았다.
그렇게 서강림이 두 사람을 몰아붙이던 그때.
뒤편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쐐액!
서강림은 장태헌이 휘두르는 주먹을 피해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어느새 장태헌이 씩 미소 짓고 있었다.
“형님, 나랑도 싸워 줘야지?”
그는 지금 이 상황이 꽤 즐거운 것처럼 보였다.
장태헌은 한 번 웃고는 곧바로 서강림을 향해 돌진했다.
-챙, 채앵, 챙!
장태헌이 휘두르는 주먹을 서강림은 검으로 막거나 흘려보내고 있었다.
권갑과 검이 부딪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언뜻 보면 막상막하로 실력을 겨루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서강림에게 더 여유가 있었다.
대부분이 회피, 막기, 흘리기.
간혹 공격을 하긴 했지만 치명상은 없었다.
그것을 보고 장태헌이 으르렁대며 말했다.
“형님이 나 봐주네? 그러면 안 될 텐데!”
장태헌은 더욱 격렬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마치 주먹이 십 수 개라도 되는 것 같았다.
그의 맹격을 피해내던 중, 미처 막지 못한 공격이 서강림의 얼굴에 닿으려던 찰나.
-타앙!
-콰각!
총성이 울려 퍼지며 장태헌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 총알과 화살이 박혀 있었다.
장태헌이 황당하다는 듯이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야! 날 쏘는 게 어딨어?”
어느새 자리를 잡은 쌍둥이 남매가 장태헌을 노리고 있었다.
이대로 장태헌이 이기는 꼴을 볼 수는 없었다.
-빠각!
그 틈을 노려 서강림이 장태헌의 등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급소를 강타하자 그는 순간적으로 휘청거리며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서강림은 장태헌을 쓰러트린 직후, 곧바로 쌍둥이 남매를 향해 달려들었다.
-퍼억!
장태헌을 신경 쓰던 남매는 서강림의 공격을 막아 내지 못했다.
어느새 대련실 바닥에 세 사람이 쓰러져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서강림은 무감정한 눈으로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끝났어?”
생각보다 서강림이 더욱 강하다는 사실에 세 사람은 숨이 막혔다.
이대로라면 끝이었다.
윤봄은 무언가를 고민하다 윤겨울과 장태헌에게 말을 건넸다.
세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그 자리에 멈춰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그제야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훈련장 내에 있는 시계의 초침이 한 칸, 한 칸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초침이 움직인 그 순간.
-콰앙!
장태헌이 쇠뇌처럼 서강림을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민첩하기로는 서강림이 한 수 앞섰다.
그가 왼쪽으로 몸을 틀어 회피하려던 그때.
-타앙!
총알이 빠르게 서강림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윤봄이 거리를 둔 채 서강림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서강림이 저격수들을 먼저 제거하고자 달려가려는 순간.
“형님, 그건 안 되겠는데!”
장태헌이 길을 막듯 그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장태헌 정도 되는 거구가 앞을 막자, 순식간에 길이 막혀버렸다.
서강림이 그를 피해 빠져나오려 하자, 반대편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쐐액!
회피를 하려는 궤적마다 총알과 화살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원거리 공격에 멈칫하면 곧바로 장태헌이 따라붙어 공격을 가해왔다.
그들은 자신보다 강한 적을 앞에 두고 협력이라는 선택지를 골랐다.
우선 서강림을 쓰러트린 뒤 그들끼리 싸우는 것이 그나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결과로 나타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넓었던 대련실이 순식간에 좁아진 느낌이었다.
세 사람이 연계 공격을 가해오자 형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서강림도 그 사실을 눈치챈 순간,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나쁘지 않네.”
-퍼억!
그리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태헌은 강렬한 고통을 느꼈다.
어느새 서강림이 그를 가격한 것이었다.
하필이면 지난번, 마경에서 치명상을 입은 부위였다.
치료는 했지만 아직 다 낫지는 않은 상태인지라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몰려왔다.
장태헌의 몸이 굳기가 무섭게 서강림은 쌍둥이 남매에게 달려들었다.
-퍽!
그의 손날이 그대로 쌍둥이 남매의 목덜미를 가격했다.
순간 머리가 어질해지더니 둘 모두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어느새 두 발로 서 있는 사람은 서강림 뿐이었다.
“이제 끝난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