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사주 헌터-71화 (71/256)

<71화>

상대의 반응에 나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애초부터 사람들이 장태헌을 반길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타 구역 인원이 떡하니 자리를 잡는데 반기는 게 더 이상하다.

어차피 곧 교육 시설을 나가면 볼 일 없는 사람이니, 적당히 상대를 달랬다.

“이야기 나눠보니 나쁜 사람 같지는 않습니다. 저희 구역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해서 데려온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서강림 씨가 그렇게 말한다면, 뭐……. 그래도 조심하세요.”

상대는 찜찜하다는 눈치였으나 곧 자리를 떠나갔다.

오래 보지 않을 상대니 상관없다.

문제는 비호문 일행들이지.

전생에는 신수아와 장태헌이 협력하며 금세 우호적인 관계가 되었는데, 이번 생은 그런 접점이 없었다.

둘 다 모난 성격은 아니니 별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우선 장태헌과 이야기를 해보려고 식당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어디선가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서강림! 여기 있었네.”

복도에 나타난 독고준은 나를 보자마자 살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독사의 방에서 그 난리를 쳐놓고도 본인은 태평한 모습이었다.

그는 내 얼굴을 힐끗 보고 말했다.

“그거 독기 때문에 남은 상처지? 멋있다. 잘 어울려.”

“마음에 들면 하나 만들어 드릴까요. 용한테 부탁하면 금방 만들 수 있습니다.”

식당을 나올 때 나를 따라 나온 용과 리니가 내 발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용은 독고준을 힐끗 올려다보더니 경계하는 기색이 되었다.

독고준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용과 리니를 바라보다 말했다.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다음에. 그나저나 얜 이름 없어?”

역시 이름, 지어줘야겠지.

이런 건 여러모로 젬병이라 딱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나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 입을 열었다.

“용가리로 하죠.”

“진심이야?”

“……그러면 용돌이.”

독고준이 불쌍한 무언가를 보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독고준이 저렇게 보다니.

“그러면 요롱이로 하죠.”

“그거 뱀 이름 아니야?”

“어디서 나왔는데요?”

“옛날 만화인데, 몰라? 십이지를 소재로 한 만화인데. 똘기, 떵이, 호치, 새초미…….”

“모릅니다. 뱀 이름이어도 용한테 붙여주면 용 이름이죠.”

용, 아니 요롱이는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알 수 없는 뚱한 표정이었다.

꼬리로 바닥을 탁탁 치고 있을 뿐.

독고준은 요롱이를 가만 보다 빙긋 웃었다.

“용 말고 다른 것도 주워왔지? 장태헌이라는 놈이었던가. 왜 데려왔어?”

이제는 장태헌 쪽에도 관심을 갖는 건가.

독고준이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적대시하는 것보다 관심을 갖는 게 더 위험한 놈인지라 나는 적당히 대꾸했다.

“쓸만해 보여서요. 능력도 나쁘지 않고, 이야기 해보니 말이 잘 통하는 것 같기도 하고.”

“흐음, 그래? 뭐 고기 방패로는 나빠 보이지 않았지. 그렇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텐데?”

독고준은 날 회귀자나 빙의자라 생각하고 있다.

그런 만큼 장태헌을 데려온 것에도 의미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있겠지.

물론 그의 장단에 맞춰 줄 생각은 없었다.

“의미가 있다 한들, 당신한테 알려 줄 생각은 없습니다. 독사의 방에서 그 난리를 만들어 놓고서 뻔뻔하군요.”

“독사의 방……. 그랬지. 너는 정말 주인공 같더라.”

독고준은 살짝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조금 후회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약간 반성했어.”

“뭘요?”

“그냥. 내가 너무 부족했던 것 같아서.”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는 걸까.

미친 짓이라면 충분하게 했는데.

그래도 대신 강철이의 주의를 끌어 주었으니 어느 정도는 참작해주기로 했다.

독고준은 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너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아. 이대로라면 나는 고작……. 아.”

귀신이 들린 것처럼 중얼대던 독고준이 퍼뜩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신수아가 식당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를 보자 독고준은 묘한 미소를 짓더니, 평소처럼 쾌활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자, 그러면 난 먼저 가볼게. 마감해야 하거든.”

“마감이요? 설마 소설?”

“물론이지. 난 소설가니까. 휴재 했어서 연참해야 해.”

이 상황에도 소설을 쓰고 있다니.

성실한 건지 미친놈인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아니, 딱히 구분할 필요는 없었다.

독고준은 성실한 미친놈이니.

“그러면 먼저 가볼게. 다음에 보자!”

독고준은 그렇게 말하곤 신수아를 스쳐 지나갔다.

마감 핑계를 댔지만 실상은 신수아를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신수아도 독고준에게는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내게 말을 걸어왔다.

“강림 씨, 몸은 좀 괜찮아요?”

“예. 괜찮습니다. 신수아 씨는요?”

“전 멀쩡해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쉬고 있었어요. 독고준 씨가 또 무슨 짓 한 건 아니죠?”

어쩐지 아까 신수아와 독고준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니, 독고준을 경계하던 모양이었다.

하긴, 독사의 방에서 뱀들을 몰살한 걸 보고서도 태연하게 대할 수는 없겠지.

그 때문에 우르르 탈락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별일 없었습니다.”

“그러면 다행이고요. 독고준 씨는 무슨 생각인지……. 독고준 씨 때문에 탈락자가 늘어나서 요즘 분위기가 좀 안 좋아요. 와중에 타 구역에서 사람이 넘어와서 경계하는 사람도 많고…….”

대다수가 탈락한 가운데, 외부인인 장태헌이 들어왔다.

누가 봐도 그를 환영할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장태헌이 환영받지 못하는 데에는 독고준의 탓도 있었다.

“그래도 장태헌이 나쁜 인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력도 괜찮고요.”

“서강림 씨가 데려올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겠죠.”

그렇게 말은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삭막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지난번만큼 장태헌과 신수아 사이에 유대 관계가 없기 때문이겠지.

일단 두 사람 사이를 좀 가깝게 만들어야겠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신수아 씨.”

“네. 커피만 한 잔 받아 가려고요.”

“일단 같이 들어가시죠.”

나는 신수아와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홀로 밥을 먹던 장태헌이 나와 신수아를 힐끗 보았다.

신수아도 그와 눈이 마주치더니 어색한 시선을 교환했다.

“안녕하세요. 서강림 씨 동료인 신수아라고 해요.”

“어, 안녕하세요. 장태헌이라고 합니다. 3구역 소속이었는데 이번에 이쪽으로 구역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장태헌이 멋쩍은 얼굴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악수를 하고 손을 놓았다.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그러면 식사 맛있게 하세요. 다음에 봬요.”

신수아는 그렇게 장태헌과 인사를 나누고는 커피만 받아 식당을 나가버렸다.

내심 이야기라도 나눌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가버리다니.

나는 장태헌을 힐끗 보았다.

전생에는 장태헌이 신수아를 상당히 잘 따랐다.

호전적인 장태헌은 신수아의 강함에 매료되어 시도 때도 없이 대련을 신청하곤 했었지.

장태헌은 떠나가는 신수아를 보다가 내게 물었다.

“형님 애인?”

“아냐. 그나저나 형님?”

“응. 나보다 나이 많으면 형님이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야, 혹은 이 새끼라 부르더니 호칭이 친근해졌다.

생각보다 나랑 가까워져서 다행이긴 한데…….

장태헌이 남은 음식을 우걱우걱 먹어치우며 말했다.

“밥 빨리 먹고 마경 돌러 가야지. 처음부터 다시 깨야 하니까 얼른 해야겠다.”

“혼자서 할 생각이야?”

“어차피 여기 사람들 나 싫어하는 것 같던데. 그리고 혼자서도 가능해.”

장태헌의 능력이라면 혼자서도 무리는 없겠지.

그래도 다른 사람이랑 친해져야 하니 쌍둥이 남매나 신수아에게 동행을 부탁할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장태헌이 나를 빤히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형님, 부탁이 있는데.”

“뭔데?”

“형님 수호신 있어?”

내가 고개를 젓자 장태헌의 얼굴이 순간 밝아진 것 같았다.

그가 신이 난 얼굴로 말했다.

“아 진짜? 난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형님 내가 좋은 신 소개 시켜줄게!”

……좋은 신이라니.

마치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를 영업하는 사람 같은 어투다.

내 표정이 굳었을 텐데도 장태헌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내 수호신인 장비가 형을 엄청 마음에 들어 했거든!”

“그래서 장비가 날 만신 삼고 싶대?”

“아니, 내 수호신은 아니고 같은 진영의 다른 수호신이 형님을 스카웃하고 싶대. 신명이 생이불유의 영웅이었나?”

생이불유(生伊不有)의 영웅이라면, 장비의 형님이자 주군인 유비다.

다른 사람이라면 무릎을 꿇고 받을 만큼 좋은 신이지만 나는 관심 없었다.

“수호신을 받을 생각은 없어.”

“아, 왜? 받으면 훨씬 강해질 텐데! 그리고 형이 생이불유의 영웅을 신내림 받으면, 특수한 이능도 쓸 수 있댔어. 도원결의라는 이능이던가?”

같은 진영의 수호신을 모시는 만신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유비, 관우, 장비를 모시는 만신 세 명이 만나면 ‘도원결의’ 효과가 발동한다.

세 명의 능력치가 급격히 상승되는 이능이었다.

언뜻 보면 매력적인 이능이지만 페널티도 극심하다.

도원결의를 맺을 때, ‘태어난 날은 달라도 죽는 날은 같을 것’이라던 맹세처럼 한 명이 사망할 경우 나머지도 즉시 사망한다.

그런 리스크를 짊어질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은 채 말을 돌렸다.

“도원결의라면 세 명이서 맹세한 그거 아냐? 내가 해봤자 한 명이 모자랄 것 같은데.”

“아, 맞아. 셋 모여야 한대. 생이불유의 영웅은 유비고, 관우를 모시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던데.”

“관우 만신으로는 누구 하려고? 독고준?”

지금 만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독고준 정도다.

그러나 장태헌은 독고준의 이름을 듣자마자 썩은 음식이라도 삼킨 듯한 표정이 됐다.

“독고준이라면 그 새끼지? 독사의 방에서 뱀 몰살시킨 새끼. 난 그런 새끼가 제일 역겨워.”

그 장면을 보고 있었던 건가.

뭐, 그게 아니더라도 독고준을 싫어할 건 뻔한 일이었다.

의리파인 장태헌 입장에서 흥미 위주로 움직이는 독고준이 마음에 들 리가 없지.

“그럼 누구로 하려고? 웬만한 사람은 다 수호신 있을 텐데.”

“……아까 그 사람도 수호신 있어? 신수아 씨라고 했던가.”

그의 입에서 신수아가 거론되어 나는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왜 하필 신수아를?

장태헌은 머쓱한 듯이 웃으며 말했다.

“왠지 그 사람, 누님으로 모셔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왠지 익숙하기도 하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잠시 생각하는 눈초리가 되었다.

마치 기억을 더듬는 거 같은 눈빛이었다.

“이상하지? 왜 익숙할까. 어디서 만나기라도 했던 것처럼…….”

신수아를 만난 것 같다고?

내가 알기로는 두 사람은 이곳에서 처음 본 사이다.

착각을 하는 걸까, 아니면…….

“신수아 씨 말고 또 익숙한 사람 있어?”

“음. 형님도 봤을 때 좀 익숙했고? 옛날에 나랑 시비 튼 새끼인가 했었지.”

장태헌이 익숙하게 느끼는 대상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가 비호문 일행에게만 친숙함을 느끼는 건 우연일까?

아니면 회귀 전의 기억이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걸까?

“그나저나 형님, 신내림 받자. 우리 의형제 하자!”

“싫어.”

“형님한테도 좋은 일이라니까? 내 수호신이 지원 빵빵하게 해줄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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