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신수아의 두 눈이 초록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그녀가 키워낸 나무줄기가 강철이의 뒷다리와 꼬리 부근을 휘감아 밧줄처럼 포박해버렸다.
-그르륵?!
강철이가 발버둥을 쳐서 끊어내면 곧바로 또 다른 나무들이 자라났다.
화염을 쏘아낸다면 전부 다 타버리겠지만 더 이상 남아있는 기름이 없었다.
몸이 포박되어 발버둥 치던 그때, 누군가가 강철이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하하,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게 되었네!”
독고준이 검을 휘두르며 강철이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강철이가 앞발을 이용해 독고준을 밟아 죽이려 했지만, 그의 몸놀림이 워낙 날쌨다.
뒤에서는 신수아가, 앞에서는 독고준이 발목을 붙잡고 있는 상황.
‘체력을 뺀 뒤 확인 사살을 할 생각인가 보군.’
강철이를 제압하는 사람들이 모두 2구역이라는 사실에 공주는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서강림을 처벌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가 토벌 현장을 지켜보던 그때, 안나비가 다급히 공주에게 달려왔다.
“팀장님, 팀장님.”
“그래. 확인했나?”
“그게……. 전어도가 있었습니다.”
“뭐?”
공주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안나비를 바라보았다.
안나비가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강림 씨가 반출한 무기는 저격총과 대궁, 딱 두 가지뿐입니다.”
예상과는 다른 보고에 공주는 짐짓 당황하고 있었다.
‘전어도를 가져가지 않았다고? 그게 용을 잡는 검인 줄 모르는 건가?’
공주는 당연하게 그가 전어도를 가져갔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어도라는 검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면 그냥 넘어가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내가 서강림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군.’
그라면 전어도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최소한 그를 도와주는 신이 알려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전어도의 진가를 모른다 하더라도, 왜 자신의 무기를 챙기지 않았지?’
저격총과 대궁은 강력한 무기지만 결국 자신이 사용하지는 않았다.
왜 타인에게 귀한 무기를 넘겨주었는가?
공주의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크오오오!
강철이의 울음소리에 이제 분노 대신 고통이 섞이기 시작하였다.
독고준은 날듯이 뛰어다니며 강철이의 앞발 부분을 베어내 움직임을 봉쇄하고 있었다.
공주는 그들의 행동에 위화감을 느꼈다.
‘아까부터 그렇고 왜 강철이를 죽이지 않지?’
윤봄, 윤겨울부터 시작해서 모두 위협을 하거나 방어만 하고 있을 뿐.
독고준조차도 일부러 급소를 피해가며 얕게 상처를 내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서도 강철이를 죽일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저, 저기! 위에 누가 있습니다!”
한 차사의 외침에 공주가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강철이의 한참 위쪽.
그곳에 신수아와 서강림이 있었다.
독고준이 강철이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움직임을 막는 동안, 두 사람은 강철이의 위로 이동한 것이었다.
정면이나 아래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접촉할 계획이었다.
빙 둘러 접근한 덕에 강철이 역시 아직 그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신수아는 서강림을 붙든 채, 강철이의 머리 위에 자리를 잡았다.
10m 아래에 강철이의 머리가 보였다.
그녀가 서강림을 향해 말했다.
“서강림 씨. 준비됐어요?”
“예.”
독기 섞인 바람에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펄럭거렸다.
신수아는 뭔가 망설이는 눈치였으나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에서 봐요.”
신수아가 서서히 손을 놓자, 서강림은 그대로 추락했다.
낙하하던 서강림의 몸이 곧 강철이의 위로 안착했다.
-쿠웅!
그가 목덜미 부근에 떨어지자 강철이가 놀라 몸을 뒤틀었다.
서강림은 떨어지지 않게 비늘을 꽉 붙들었으나 저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윽……!”
강철이의 비늘을 쥐자, 손이 타들어 가며 통증이 느껴졌다.
강철이의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독기와 화기 때문이었다.
근처에만 가도 폐가 저려오는데, 직접 손을 대니 순식간에 손에 화상과 물집이 잡혔다.
‘독 내성도, 화염 내성도 있는데 이 정도라니.’
마치 뜨겁게 달궈진 철판에 내동댕이쳐진 것만 같았다.
온몸이 달궈지며 타들어 가고, 화상 위로 독기가 쏟아지는 아픔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가죽을 모두 벗겨낸 채 바닷물에 던져 넣은 듯한 고통.
와중에 위험을 감지한 강철이가 크게 몸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서강림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비늘을 꽉 잡았으나, 황산이 뿌려진 것마냥 손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화염 데미지가 화염 내성을 초과하였습니다!]
[독 데미지가 독 내성을 초과하였습니다!]
‘빨리 끝내야 한다.’
서강림은 이를 악물고 머리 부근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치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살이 타들어 갔다.
어느새 양손에 붉고 검은 얼룩이 잔뜩 생겨나 있었다.
“대체 뭘 하는 거야?”
아래에서 공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위에서 공격을 해 죽이려는 건 줄 알았는데, 서강림은 맨몸으로 강철이의 머리 위로 오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서강림이 무언가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공주가 눈가를 찌푸렸다.
“저건 대체……?”
서강림이 가까스로 강철이의 머리 위까지 올라오자, 강철이가 붉은 눈을 희번뜩 뒤집고 그를 노려보았다.
기력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죽여버릴 듯한, 살의 가득한 그 눈에 서강림이 입을 열었다.
“진정해. 널 죽일 생각은 없어.”
그렇게 말하며 서강림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보여주었다.
강철이의 시선이 의혹으로 물든 그 순간.
-꽈르릉!
어디선가 벼락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강철이의 뒤쪽 다리 중 하나가 순식간에 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와 함께 강철이의 비명이 길게 울려 퍼졌다.
“후우…….”
서문용녀가 길게 숨을 뱉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손에서 번개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뒤에 서 있던 공주가 다급히 그녀를 막아 세웠다.
“서문 팀장,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인명 구조를 하려고 하는데요. 교육생이 위험해 보이지 않나요?”
서문용녀의 태연한 답에 공주는 순간 움찔하고 말았다.
그녀의 주장대로 지금 서강림은 온몸이 넝마가 된 상태였다.
어떻게든 강철이의 목을 붙들고 있었지만 그는 곧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서문용녀가 제 팀의 차사를 향해 말했다.
“보고서에 기록해.”
“알겠습니다. 뭐라고 기록할까요?”
“제1팀 팀장, 서문용녀. 교육생들이 강철이를 처치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대신 제압하였음.”
그 말과 동시에 서문용녀를 둘러싼 번개가 파직파직 소리를 내며 더욱 날카롭게 튀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서문용녀의 눈동자에도 번개가 비치고 있었다.
공주가 다급히 서문용녀의 앞을 막아섰다.
“이 구역은 나와 양이백 팀장 담당입니다! 결정권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국장님께서는 그런 조항을 달지 않으셨는걸요? 저는 서강림 교육생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네요.”
그렇게 말을 하며 서문용녀는 다시 한번 번개를 불러냈다.
그녀의 온몸이 타들어 갈 듯한 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공주가 이를 악물고 서강림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서강림! 서문용녀가 강철이를 죽이기 전, 네가 죽여야 해! 서문용녀가 강철이를 제압해버리면 네 임무는 실패해버린다!]
서문용녀의 돌발 행동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방금 전의 일격으로 강철이에게 상당한 데미지가 들어갔다.
이 틈을 노려 서강림이 강철이를 죽이기만 한다면 임무는 완료할 수 있다.
그 전음을 들은 서강림이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물대에서 꺼낸 칠지도를 쥔 채.
드디어 강철이를 죽일 생각인가 싶어 공주의 얼굴이 조금 환해졌다.
그러나 서문용녀가 그것을 본 순간, 다급히 손을 뻗어 이능을 발동시켰다.
[이능 ‘낙뢰’가 발동합니다!]
마른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가 하늘과 땅을 찢고 강철이에게 내리 꽂혔다.
방금 전 다리를 날려버린 일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공주가 경악하여 서문용녀의 멱살을 잡았다.
“당신 미쳤습니까! 아직 서강림이 저기 있는데, 낙뢰를 써?”
“어머, 난폭해라. 그 정도 조절은 할 줄 안다고요. 옆에 있었으니 죽진 않았을 거예요.”
그녀는 제 멱살을 잡은 공주의 손을 탁 치고는 빙긋 웃었다.
“뭐, 좀 탔을 수는 있지만 그건 치료를 하면 되고요. 이제 강철이도 처리했으니 서강림 교육생을…….”
서문용녀가 말을 하던 중, 강철이 쪽을 바라보았다.
낙뢰로 인해 발생한 연기가 주위에 자욱한 가운데 강철이가 보였다.
데미지는 입었지만 죽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강철이의 앞에 서강림이 서 있었다.
바닥에 칠지도를 꽂아둔 채.
번개를 머금은 칠지도에서 파직파직 소리가 들려왔다.
서문용녀가 눈썹을 살짝 일그러트린 채 말했다.
“칠지도를 피뢰침으로 사용한 건가요?”
한 번 번개를 맞았던 칠지도는 번개를 끌어들이는 속성과 그에 대한 내성이 생긴 상태였다.
강철이를 향해 날아오던 낙뢰 중 일부는 칠지도의 기운에 끌려 그쪽으로 공격력이 분산된 상태였다.
서강림이 서문용녀와 공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무도 강철이를 죽일 수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아직도 손에 들고 있는 그것을 내보였다.
“이건 내 용이니까.”
서강림이 들고 있는 것은 우호의 증표였다.
그는 절룩거리며, 바닥에 쓰러져 숨을 헐떡이는 강철이에게 다가갔다.
강철이도, 서강림도 상태가 엉망이었다.
강철이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서강림을 보고 있었다.
그가 움직이지 않는 손을 억지로 움직여, 우호의 증표를 뿔에 묶어 주었다.
서강림의 손에서 흘러내린 피가 그의 이름 위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눈앞에 알림창이 떴다.
[‘우호의 증표’를 장착하였습니다!]
[대상의 적개심이 사그라듭니다!]
알림창과 함께 강철이의 두 눈에서 살기가 조금씩 사라졌다.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서강림을 바라보는 것이, 그를 알아본 것처럼 보였다.
강철이가 얌전해지자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강철이를 제압한 거야?”
“정말 그 강철이를 진정시키다니…….”
사람들이 멍하게 바라보는 와중, 공주가 앞으로 나서서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서강림! 이제 됐다! 강철이가 진정됐으니, 강철이를 죽여!”
공주의 외침에 서강림은 천천히 고개를 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차사들이 강철이 가까이에 와 있었다.
“강철이는 진정되었습니다. 죽일 필요 없어요.”
“강철이가 얌전해졌다고 착각하지마!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독기와 열기 때문에 마경이 붕괴된다!”
공주의 말대로 강철이의 공격성은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몸에서는 화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스로 몸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를 수 없기 때문에 강철이가 지나친 곳은 모두 폐허가 된다.
온순하다 하더라도 마수.
서강림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노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강철이를 처리하죠. 대신 저의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그 말에 공주는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이 바라보았다.
서강림이 윤겨울과 함께 서 있는 리니를 바라보았다.
“리니, 부탁한다.”
“우웅!”
리니는 자신에게 맡기라는 듯, 총총걸음으로 강철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강철이의 머리에 자신의 뿔을 가져다 대자 흰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능 ‘정화’가 발동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