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불행인지 다행인지, 강철이를 제압한 이들은 아직 없었다.
대다수가 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흘리고 있을 뿐.
옆에서 신수아가 기침을 콜록대더니 말했다.
“가까이서 보니 더 끔찍하네요.”
독룡 강철이의 주변은 이미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몸에서 끓어 넘치는 화기 때문에 주변의 초목이 전부 말라버린 상황.
스스로의 몸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감당하지 못해 강철이 자신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강림 씨,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 거죠?”
“일단 강철이의 얼굴까지 올라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거대한 강철이의 얼굴이 자그마하게 보일 정도로 얼굴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내게는 비행과 관련된 이능이 없는 터라 접근이 쉽지 않았다.
리니라면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내가 탈만큼 아직 성장하지 못했다.
그때 신수아가 내게 성큼 다가오며 말했다.
“제가 위로 올려보내 드릴게요. 꽉 잡으세요.”
“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수아가 한 손으로 내 옆구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나머지 한 손으로는 내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어깨에 두른 채였다.
“그럼 갈게요!”
신수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닥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능 ‘허공도약’이 발동됩니다!]
‘허공도약’이 발동됨과 동시에 신수아가 나를 끌어안고 허공을 밟으며 뛰어올랐다.
속도가 상당히 빨라, 날카로운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허공을 짓밟고 있는 힘껏 뛰어오를 때마다 강철이의 얼굴이 가까워져 왔다.
“윽……!”
강철이에게 접근하자, 신수아가 고통스러운 듯이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나 역시 독기와 화기 때문에 오감이 아려왔다.
[화염 내성이 발동 중입니다!]
[독 내성이 발동 중입니다!]
이능이 있음에도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가 타들어 가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목 속성인 신수아에게는 이곳의 공기가 더욱 버거웠을 터였다.
“무리하지 마세요, 신수아 씨. 돌아가도 괜찮습니다!”
“아뇨. 버틸만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데리고 강철이의 얼굴로 접근했다.
상공으로 올라갈수록 독기가 진해지는 가운데.
강철이의 눈이 우리 쪽을 향해 돌아왔다.
-크르륵……!
순간 나를 보고 멈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알아보는 것일까?
강철이의 동공이 느슨해지는가 싶더니 곧바로 바늘처럼 얇아졌다.
그리고, 거대한 바람이 느껴졌다.
-후우웅!
강철이가 몸을 틀어 꼬리를 휘두르자, 그곳에서 발생한 열풍이 그대로 우리에게 내리꽂혔다.
뜨거운 철퇴에 얻어맞은 듯한 통증이었다.
열풍에 휩쓸려 우리는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윽……! 꽉 잡아요!”
신수아는 추락하는 와중에도 나를 붙들고 있었다.
그때 신수아의 눈빛이 녹색으로 번뜩였다.
[이능 ‘목엽지법’이 발동됩니다!]
‘목엽지법’이 발동되자 아래에서 나무가 빠르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에게 시선을 보내자, 나는 곧바로 그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검을 뽑아 들어 나무에 박아넣었다.
-가가가각!
요란한 마찰음을 내며 검이 나무를 반으로 갈라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미끄러지다가 하단 쯤에 도착했을 때, 드디어 우리의 몸이 멈췄다.
화상으로 인해 온몸이 울긋불긋해진 신수아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역시 정면에서 접근하는 건 힘들 것 같네요. 누군가가 시선을 끌어주거나, 힘을 좀 빼놓는다면…….”
-크아아아!
그때, 강철이가 요란하게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먼 곳에서 수탄을 쏘아대고 있었다.
미약한 공격이라 데미지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지만 신경을 긁기에는 충분했다.
분노한 강철이가 인간들을 향해 입을 쩌억 벌렸다.
-그르르륵……!
화염탄의 준비 동작이었다.
아까는 화염탄이 상공을 향해 날아와 피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명백히 아래를 조준하고 있었다.
나는 신수아를 붙들고 요한 신부를 향해 달려갔다.
“신부님! 보호막이요!”
“네, 네!”
요한 신부가 양손을 꼭 쥐고 기도를 올리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와 동시에 강철이의 입안이 열기로 인해 일렁거리기 시작하였다.
눈앞에 붉은 불꽃과 푸른빛이 동시에 펼쳐졌다.
[이능 ‘보호막’이 발동됩니다!]
강철이의 화염이 쏟아지는 순간, 푸르스름한 방호벽이 우리의 주위를 감쌌다.
방호벽은 돔의 형태를 띄고 있어 사방이 다 막혀 있었다.
눈앞에서 열기가 벽에 가로막힌 것이 보였다.
그러나 곧 방호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으윽……!”
요한 신부가 온 힘을 다해 화염을 막아냈지만 쩌억쩌억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용급 화염 공격을 막기에 요한 신부의 방어막은 급이 낮았다.
나는 리니를 향해 외쳤다.
“리니! 신부님을 보조해!”
“우웅!”
[이능 ‘오행의 조화’가 발동됩니다!]
‘오행의 조화’를 발동시키자 보호막의 푸른빛이 한결 더 강해지더니, 금이 가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리니와 요한 신부가 버티는 사이.
방호벽이 완전히 깨지기 전 화염이 그쳤다.
“허억……!”
요한 신부가 숨을 헐떡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는 다급히 그를 부축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아, 아닙니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
말은 이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마력이 상당히 소실되었을 것이다.
내가 다급히 마력 회복약을 꺼내 건네는 사이, 생존자들이 경악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젠장. 방금 그거 뭐야?”
“숲이 날아갔잖아!”
보호막이 쳐진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장소는 화염으로 인해 초토화가 되어있었다.
불씨조차 남지 않고 숲이 날아가 버렸다.
“그냥 도망가자고! 어차피 우리는 오늘만 버티면 이긴다고!”
“그, 그래. 뱀들을 물속에 숨겨두고 로비로 가자……!”
2구역 인원들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추가 보상이 좋다 하더라도 목숨보다 중하지는 않을 테니.
나는 요한 신부와 신수아를 향해 말했다.
“두 분도 로비로 가세요. 괜히 저 때문에 휘말릴 필요 없습니다.”
내 예상보다도 강철이의 공격력이 강했다.
내 임무도 임무지만 다른 사람들이 죽거나 임무를 실패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신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각오하고 왔으니까요.”
“저, 저도 도울 수 있을 때까지는 돕겠습니다……! 강철이도 꽤 지친 것 같고요…….”
강철이는 화염 공격을 끝낸 뒤, 몸이 축 늘어진 상태였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도망을 치기 시작하자 나머지 인원들도 그들을 따라가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와, 내가 너무 늦게 왔네. 재밌는 부분 놓쳤다.”
그들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독고준이었다.
그는 마치 약속 시간에 늦은 사람처럼 보였다.
강철이를 구경하던 독고준이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지금 다들 어디 가는 거야?”
“도, 독고준 씨…… 비켜주세요! 도망가야 한다고요!”
언제 강철이가 제정신을 차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몇 사람이 독고준을 무시하고 지나가려는 순간.
-서걱!
독고준의 검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옷자락이 잘려 나간 사람이 뒷걸음질을 쳤다.
독고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다들 협조성이 부족하네. 이건 보스 레이드라고. 당신들 같은 엑스트라들이 있어야 좀 더 재미가 있겠지.”
엑스트라라는 말에 한 사람이 왈칵 화를 내며 말했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저리 비켜요! 우린 돌아갈 거니까!”
그러나 그런 말로 설득될 독고준이 아니었다.
독고준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상대의 멱살을 덥석 잡아끌었다.
그의 두 눈동자에 알 수 없는 광기가 번들거렸다.
“시시하네. 하루만 더 버티면 임무 완료라고? 그러면 내가 새로운 임무를 줄게.”
“대체 무슨…… 어?”
어느 순간 독고준의 손에 구슬이 들려 있었다.
상대방의 품 안에서 꺼낸 모양이었다.
그것은 뱀이 잠들어 있는 구슬이었다.
-쨍강!
독고준이 그것을 바닥에 내던지자 구슬이 깨지며 뱀이 빠져나왔다.
갑작스레 잠에서 깬 뱀은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독고준이 뱀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올리자 상대가 당황하여 외쳤다.
“다, 당신 대체 무슨……!”
-촤악!
순식간에 피가 튀어 독고준의 양손과 땅을 적셨다.
독고준이 뱀을 비틀어 반으로 뜯어버린 것이었다.
아직 제가 죽은 줄 모르는 모양인지 반토막 난 뱀의 몸이 꿈틀거렸다.
“이제는 강철이를 처리할 수밖에 없겠네?”
독고준이 뱀을 땅바닥에 내던진 뒤 상대를 보며 웃었다.
“미, 미친놈……!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상대방은 억울함과 분을 이기지 못해 소리를 지르며 독고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콰앙!
“커억……!”
독고준은 피에 젖은 손으로 상대의 머리를 붙잡은 뒤, 그대로 바닥에 내려 꽂았다.
상대의 몸이 토막 난 뱀처럼 꿈틀거렸다.
“왜 이러냐고?”
독고준은 도리어 의아하다는 듯이 반문했다.
“너희가 이야기를 재미없게 만들고 있으니까 이러지.”
그렇게 말한 뒤, 독고준은 나머지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몇 사람은 뱀과 동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독고준이 상대의 머리를 놓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희에게도 새로운 임무를 줘야겠네.”
“다, 다들 도망쳐……!”
사람들이 독고준으로부터 도망가려 했으나 그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강철이가 울부짖는 가운데 뱀의 피가 흩뿌려지고, 사방에 토막 난 뱀의 사체가 널렸다.
“엑스트라지만, 너희도 조금은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 남아서 주인공을 돕도록 해.”
“주, 주인공……?”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난장판이로군.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고 독고준을 향해 말했다.
“독고준, 적당히 해.”
내 목소리가 들리자 독고준이 나를 바라보았다.
독고준의 눈이 뜻을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번들거렸다.
살기? 즐거움? 흥미?
“적당히 하라고 말했어.”
내가 다시 한번 말하자, 독고준의 눈빛이 조금 가라앉았다.
독고준이 사람들을 힐끗 보고 말했다.
“뭐, 서강림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어쩔 수 없네. 어쨌거나 도망가지 마. 여기서 싸우도록 해.”
뱀을 잃은 사람들이 이를 악물고 독고준을 노려보았다.
그들 중 한 명이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비겁해. 당신만 뱀을 멀쩡하게 살려두고. 우리에게만…….”
“응? 아, 내 뱀?”
독고준은 별거 아니라는 듯, 자신의 저물대에서 구슬을 꺼냈다.
곧 구슬이 깨지고 뱀이 바깥으로 끌려 나왔다.
-서걱!
그는 아무런 미련 없이 뱀을 두 동강 내 버렸다.
뱀과 함께 우호의 증표가 같이 잘려나갔다.
그가 피에 젖은 얼굴로 해사하게 웃었다.
“이제 됐지? 나도 이제 강철이를 죽일 수밖에 없으니 같이 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