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사주 헌터-63화 (63/256)

<63화>

‘투쟁본능’이 발동되자, 순식간에 피가 끓어오르며 시야가 하얗게 표백되는 것만 같았다.

시야와 함께 감정들 역시 기화하였다.

해후의 기쁨, 장태헌을 다치지 않게 제압해야 한다는 걱정.

하지만 그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 눈앞에 자신보다 강한 상대가 있는데.

-까앙!

방금 전까지만 해도 피하기에 급급했던 서강림이 검을 들고 장태헌에게 달려들었다.

장태헌은 권갑으로 서강림의 검을 막아냈으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갑자기 빨라졌어?’

공격 스타일이 적극적으로 변한 것뿐만 아니라 속도와 예리함이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방금 전까지 느껴지던 망설임은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

서강림은 오로지 눈앞의 적을 향해 쇄도를 퍼부었다.

-까강, 까강!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붓던 장태헌이 이제는 공격을 막기에 급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강림은 오로지 장태헌의 급소만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력 차이는 크지만 두 사람의 마음가짐의 차이가 더욱 컸다.

장태헌은 그저 적당히 서강림을 박살내,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반면 서강림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

자신보다 강한 장태헌을 죽이고 싶다는 것뿐.

‘이 새끼,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었잖아?’

장태헌 역시 그 살기에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피부를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이 살의는 마수에게서나 느껴지던 것이었다.

그때, 마구잡이로 날뛰던 서강림의 옆구리에 빈틈이 보였다.

-빠각!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장태헌이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날카로운 권갑이 갈비뼈를 으스러트리는 감촉이 뚜렷하게 전해져왔다.

고통에 서강림의 자세가 일순 무너졌지만, 다행히 ‘투쟁본능’이 해제되지는 않았다.

날아간 이성 사이로 희미한 생존 본능이 머리를 들어 올렸다.

서강림은 동물적인 위험을 감지했다.

‘투쟁본능’을 발동하면 본능만이 남지만, 격의 차이에 어렴풋한 이성이 돌아왔다.

죽이고 싶다.

이기고 싶다.

상대는 나보다 강하다.

이대로는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심장이 뜨겁게 달궈지는 한편 머리는 차갑게 식어가며 승리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이기고 싶다.

그러나 신체적인 능력은 저쪽이 더 강하다.

단순히 몰아붙이는 것만으로는 무리다.

그렇다면……!

[이능 ‘투쟁본능’이 귀이품으로 진화합니다!]

이능이 진화함과 동시에 몸을 달구던 온도가 종류를 바꾸기 시작했다.

여전히 심장은 뜨거웠으나 머리가 급격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얼음 같은 이성과 불꽃같은 호승심이 서강림의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와중에 장태헌은 유효타가 들어가자 신이 나 있었다.

그가 제 양 주먹을 가볍게 부딪치며 말했다.

“튼튼하네? 기절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한 방 더 맞으면 쓰러지겠지!”

장태헌이 광속 같은 속도로 서강림에게 접근해왔다.

그의 말대로 방금 전의 한 방은 치명적이었다.

서강림이 부상으로 인해 비틀거리던 와중, 장태헌의 눈앞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화르륵!

“윽! 뭐야……!”

서강림의 몸이 거세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광염일장’을 자신의 몸에 둘러버린 것이었다.

그 모습에 장태헌이 놀란 얼굴로 멈춰버렸다.

“뭐야, 그런 이능도 있었어? 이건 반칙이야!”

그 말에도 서강림은 개의치 않았다.

승리를 할 수만 있다면 반칙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이 한 몸을 불태워서라도 이길 수만 있다면.

-콰광, 콰광!

불덩이가 된 서강림이 공격을 퍼붓기 시작하자 장태헌은 막지도 못하고 그저 피할 수밖에 없었다.

반격을 하기에도 애매했다.

검이나 창 같으면 무기라면 모를까, 불덩이를 향해 주먹을 날려봤자 자신이 데미지를 받을 뿐이다.

“큭, 젠장……!”

서강림의 검이 셀 수 없는 선을 그어가며 장태헌을 몰아붙였다.

장태헌이 결국 바닥에 쓰러지고, 서강림의 검이 장태헌의 목 옆에 콱 박혔다.

[마력 부족으로 이능 ‘투쟁본능’이 해제됩니다.]

[마력 부족으로 이능 ‘광염일장’이 해제됩니다.]

‘광염일장’과 ‘투쟁본능’을 같이 발동시킨 바람에, ‘투쟁본능’이 예상보다 빠르게 끝이 났다.

제정신이 돌아오자 서강림은 그제야 통증을 느꼈다.

부러진 갈비뼈 때문에 당장이라도 쓰러지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더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장태헌의 코와 입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프다기보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당신, 뼈 부러진 거 아냐? 고통도 못 느껴?”

“더 할 생각이면 널 죽이는 수밖에 없다.”

물론 장태헌을 죽일 생각도 없고, 죽일 수단도 없었다.

서강림의 협박에 장태헌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볼멘 얼굴로 말했다.

“……알겠어. 내가 졌어.”

“현명하군.”

서강림이 검을 빼내자 장태헌이 주춤주춤 바닥에서 일어났다.

장태헌의 성격상 뒤통수를 치지 않을 걸 알기에 서강림은 무심하게 등을 보였다.

그 모습에 장태헌이 울컥하여 소리를 질렀다.

“내일 다시 온다!”

“아니, 오지마.”

“내일 지면 모레 또 온다!”

“오지 말라고…….”

서강림이 그렇게 대답했음에도 장태헌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절룩거리며 사라져갔다.

더 이상 장태헌이 보이지 않게 되자, 서강림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회복약을 꺼내 먹었다.

회복약을 먹자 조금씩 통증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투쟁본능이 귀이품으로 진화하니까, 짧게나마 이성이 돌아왔어.’

처음 ‘투쟁본능’을 사용할 때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이능을 쓸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오로지 상대를 이기고 싶다는 그 충동에 마구잡이로 달려들 뿐.

‘투쟁본능이 갑자기 왜 진화한 거지? 장태헌과 싸운 덕분인가?’

이제 단순히 육체 능력만으로는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투쟁본능’ 역시 눈치챈 것일까.

무식하게 달려드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고자 ‘투쟁본능’은 진화를 택했다.

‘장태헌과 싸우는 건 내키지 않지만, 싸우다 보면 내 스스로 투쟁본능을 통제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장태헌과의 싸움을 통해 ‘투쟁본능’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이 싸움을 달게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내일 또 싸우는 거야? 두근두근.】

【진검승부네. 서강림 지면 이무기도 죽을 테고.】

【그러면 장태헌은? 걘 서강림 말고 다른 애 노려서 뱀 잡을 수도 있잖아.】

【에이 설마 그런 짓을?】

서강림은 알 수 있었다.

장태헌의 성격상, 자신 외의 다른 사람을 노릴 리가 없었다.

일주일 내내 자신만 공격할 것이 분명했다.

둘 중 한 사람만이 이 임무를 통과할 수 있다.

서강림 자신은 탈락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장태헌도 탈락하게 둘 수는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서강림은 교육 시설로 돌아와, 누군가의 방으로 향해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조용히 열리며 안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안나비 차사님. 드릴 말씀이 있어왔습니다.”

* * *

이무기가 수면 위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서강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주위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난번 장태헌에게 죽을 뻔한 뒤로는 나름대로 몸을 사리고 있었다.

서강림이 물 아래에만 있으라고 했지만, 이무기는 또다시 물 위로 올라왔다.

서강림이라는 인간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우호의 증표’를 착용한 덕분에 예전처럼 격한 거부감은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전히 그가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대체 뭐하는 인간인가 하는 궁금증은 들었다.

처음에는 무신경한 인간인가 싶었다.

그런데 장태헌이 자신을 죽이려 할 때는 온몸을 날려 자신을 보호했다.

그 인간의 속내를 알 수가 없어, 이무기는 서강림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강림을 관찰한 지 나흘째.

서강림은 거의 늘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마수를 사냥하거나, 서강림을 노리고 달려드는 인간들을 쓰러트리곤 하였다.

시간이 흐르자 서강림을 습격하는 인원은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한 사람만큼은 매일같이 그를 찾아오고 있었다.

“젠장, 졌어!”

장태헌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소리쳤다.

온몸이 불에 그슬려 검댕과 화상투성이인 상태였다.

그가 서강림을 노려보았다.

“치사하다고. 온몸을 불덩이로 만드는 게 어딨어?”

“내 이능인데 안 쓸 이유가 없지. 그리고 이젠 별로 상관없는 것 같은데.”

장태헌이 엉망이 된 만큼 서강림 역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여기저기 얻어맞은 탓에 왼팔은 부러져 있었고, 입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서강림이 회복약을 털어먹으며 말했다.

“불덩이를 두들겨 패는 너도 제정신은 아니야.”

이무기는 둘 다 미쳤다고 생각했다.

팔다리가 부러져도 달려드는 서강림.

불이 옮겨붙어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 장태헌.

그러나 승자는 서강림이었다.

장태헌은 엉망이 된 상태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면 내일 또 온다. 기다리고 있어!”

그렇게 선전 포고를 남긴 채 장태헌은 자리를 떴다.

주위에 비로소 고요가 찾아왔다.

장태헌이 사라진 뒤에야 서강림이 물가를 돌아보며 말했다.

“물 아래에 숨어 있으랬지.”

그 말에 이무기가 흠칫 놀라 물 아래로 숨었다.

잠시 후 눈만 빼꼼 물 위로 내밀자 어느새 서강림이 물가에 다가와 있었다.

“너 다쳤냐? 이리 와 봐.”

아침에 마수와 한바탕을 해서 이기긴 했는데, 마수의 가시가 목 뒷덜미에 꽂혔다.

하필이면 스스로 뽑을 수 없는 위치였다.

서강림이 올라오라는 듯이 손을 내밀자 이무기는 못 이기는 척 뭍 위로 올라왔다.

서강림은 꼼꼼하게 이무기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가벼운 부상이었다.

그가 가시를 빼낸 뒤 약을 바르며 말했다.

“일단 치료는 됐고……. 빨리 회복해야 하니 이거 먹어.”

서강림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이무기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산삼 정과였다.

이무기는 그를 경계하다가 슬금슬금 정과를 물고 후다닥 도망을 쳤다.

‘우호의 증표’를 장착하여 적개심은 줄어들었지만 서강림은 여전히 경계의 대상이었다.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도착한 뒤에야 이무기는 산삼 정과를 삼켰다.

그러다 문득,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하지만, 그 제안은 사양하겠어.”

슬쩍 위를 올려다보니 다리 근처에 앉아 있는 장태헌이 보였다.

옆에는 3구역 인원들이 몰려와 있는 상태였다.

그들이 주저주저하며 말했다.

“네가 도와주면 금방 2구역 잡을 수 있어. 저놈들이 강해도 쪽수로 밀어붙이면 못 버틸걸?”

“그래서 여럿이서 한 명을 공격해 뱀을 죽이자는 거군.”

현재 2구역이 3구역보다 유리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2구역에 강한 능력자가 많을 뿐 아니라, 단결도 잘 되고 있던 것이었다.

쉽게 임무를 완료할 수 있으리라 어림짐작했던 3구역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방책을 강구 했지만 힘으로 이길 가능성이 낮자, 단독 행동을 하는 장태헌을 포섭하러 찾아왔다.

그러나 장태헌은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됐어. 지금 쓰러트려야 할 상대가 있어서.”

“그러면 그놈부터 먼저 쓰러트리자. 우리가 다 같이 기습하면 이길 수 있어.”

상대가 씩 웃으며 말했다.

“서강림, 그놈 잡는 거 도와줄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