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 * *
로비에서 통탄하는 소리와 항의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2구역의 일원 중 몇몇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안나비에게 소리를 지르는 중이었다.
“정말 이대로 끝입니까? 재도전 못합니까?”
“이건 너무 불리합니다. 3구역은 그냥 죽이기만 하면 되는데!”
“새로운 뱀을 찾아서 보호하면 안 되나요?”
그들은 이번 마경에서 탈락한 자들이었다.
시위라도 하듯 죽은 뱀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안나비는 탈로 얼굴을 가린 채 최대한 담담하게 그들에게 안내 사항을 전달하려 했다.
“2구역의 임무는 뱀의 보호고, 여러분은 2구역의 임무에 실패하셨습니다. 새로운 뱀을 찾아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제 거의 다 왔잖아요! 다른 마경은 재도전도 가능했잖아요!”
억지를 부려 봐야 그것이 먹힐 상대가 아니었다.
안나비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2구역의 임무는 실패했습니다. 해당 임무 기간이 끝난 뒤 자동 퇴소가 되니 그 점 유의해주시길 바랍니다.”
“당장 퇴소시키지 않는 건 뭔데?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안나비가 인내심 있게 그들을 상대하는 동안, 주위 사람들은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한 신부가 안타까운 눈으로 말했다.
“다들 너무 아쉬울 것 같습니다. 이제 다음이 마지막이었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신부님.”
옆에 있던 신수아가 동의한다는 듯이 말했다.
고된 교육 기간 동안에도 버틸 수 있던 것은 이제 끝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안나비와 교육생들이 실랑이를 벌이던 와중, 2층에서 서강림이 내려오고 있었다.
“아, 서강림 씨.”
신수아가 눈짓으로 인사를 건넸다.
계단을 내려오던 서강림이 그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아직 로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습니까?”
“임무를 실패한 사람들이 안나비 씨에게 항의하고 있었어요.”
“그렇군요.”
서강림은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애초에 그가 신경 쓰는 사람들은 탈락할 일이 없을 테니.
굳이 걱정할 사람이 있다면 요한 신부 정도일까.
그가 요한 신부를 향해 물었다.
“신부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마수뿐 아니라 사람도 상대해야 해서 싸우기가 힘드실 텐데.”
“다행히 괜찮습니다. 다른 자매님, 형제님들이 도와주시기도 하고, 새로운 이능도 생겼고요……!”
서강림이 요한 신부의 사주창을 힐끗 본 뒤, 모른 척하며 물었다.
“어떤 이능입니까?”
“보호막을 만드는 이능입니다. 이제는 저도 사람들을 지킬 수 있어요.”
요한 신부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서강림은 그나마 2구역의 임무가 보호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뱀의 살해가 임무였다면, 요한 신부가 꽤나 고생했을 테니.
서강림은 고개를 끄덕이곤 신수아를 돌아보았다.
“신수아 씨는 괜찮습니까? 3구역 사람들과는 마주쳤나요?”
“네. 3구역 분들과 조우하긴 했는데 별일 없었어요.”
그 말인즉, 마주친 3구역 인원들을 모두 쓰러트렸다는 의미일 터였다.
서강림은 참 기구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전생에서는 신수아가 3구역과 연합을 하여, 모든 뱀을 지켜내고 전원이 다음 단계로 넘어갔었는데.
“혹시 장태헌이라는 사람도 마주쳤습니까? 덩치가 크고 20대 초반 정도의 남자인데.”
“장태헌……? 아뇨. 그 사람이랑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장태헌과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서강림은 알 수 없었다.
그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그러면 이만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서강림은 적당히 대화를 끊은 뒤, 독사의 방으로 향했다.
임무도 임무지만 장태헌이 더욱 문제였다.
장태헌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며 마경 안으로 들어서자 정신없이 메시지가 쏟아져 내렸다.
【와, 강림이다!】
【너 오기 기다렸어!】
【엄청 기다렸다구!】
【크으으으, 벌써부터 기대된다.】
오늘따라 신들이 난리법석을 피우는 중이었다.
어쩐지 낌새가 좋지 않았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니아니, 무슨 일이라니~ 그런 일 없었어!】
【그냥 강림이 보고 싶어서 그랬지.】
【맞아, 그냥 보고 싶었어.】
‘분명히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듯싶은데…….’
신들의 반응을 보니 뭔가 일이 터지긴 터진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작정하고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다.
【강림이 우리 못 믿나 봐 서운하다.】
【이렇게 신앙심이 부족해서야.】
【신내림도 안 받는 애가 신앙심이 있겠냐?】
신들은 속내를 감추려는 듯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물어봐도 알려줄 리가 없으니, 서강림은 질문을 포기했다.
‘혹시 이무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직접 확인을 해봐야 하나.’
그러나 아직 아무런 경고창도 뜨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이 이무기를 불러냈다가 다른 사람 눈에 띄면 그게 더 곤란했다.
‘우선 일주일 동안 공적치와 영옥을 쌓도록 하자. 장태헌 건은 좀 생각을 해봐야겠어.’
신들의 키득거림을 무시한 채 그가 숲 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가 무식하게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였다.
‘마수인가?’
곰이나 멧돼지 같은 거대한 마수가 돌진하는 듯한 발소리였다.
마침 마수를 찾으려 하던 참이었는데 잘된 일이었다.
서강림이 기척이 느껴지던 곳으로 향하던 중,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내가 있는 방향으로 오고 있나?’
서강림이 그 사실을 깨닫기가 무섭게 발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상공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기척을 눈치챈 서강림이 뒤로 물러선 순간.
-콰앙!
포환이 바닥을 꿰뚫는 듯한 소리와 진동이 울려 퍼졌다.
흙 안개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장태헌의 주먹이 땅 한가운데 꽂힌 것이 보였다.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땅이 움푹 파인 채였다.
“겨우 찾았네. 너 찾느라 고생 많이 했는데.”
장태헌이 서강림을 노려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서진 돌 조각이 툭툭 떨어졌다.
맨주먹으로 맞아도 뼈에 금이 갈 텐데, 너클 형태의 권갑을 끼고 있어 한층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벌써 찾았네?】
【장태헌 등장-!】
【와 서강림 언제 올지 우리 다 같이 기다렸잖아.】
장태헌은 아침부터 온 마경을 들쑤시고 돌아다니며 서강림을 찾고 있었다.
싸움 구경을 할 생각으로 신들이 신이 난 와중.
서강림이 장태헌을 향해 말했다.
“나한테 볼일이라도 있나?”
“볼일? 그래. 있지.”
장태헌이 자신의 주먹이 마치 서강림의 머리통이라도 되는 듯 주무르며 몸을 풀었다.
“난 받은 건 꼭 돌려줘야 해서.”
그렇게 말하며 장태헌은 순식간에 간격을 좁혀와 서강림의 턱을 노리고 주먹을 날렸다.
서강림이 빠르게 팔을 들어 올려 그의 공격을 흘려보냈다.
권갑과 칼날이 부딪치며 요란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채앵!
‘이제 다음에는 왼쪽에 공격이……!’
서강림이 빠르게 다음 수를 예측하고 왼쪽을 방어했으나, 곧 그것이 실책임을 깨달았다.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서 킥이 날아 들어왔다.
-빠각!
서강림이 빠르게 팔을 들어 올려 공격을 막았으나 우두둑 소리를 내며 뼈에 금이 갔다.
장태헌이 씩 웃는 것이 보였다.
“큭……!”
서강림은 다음 공격이 들어오기 직전 ‘은둔자’를 쓰고 뒤로 몸을 빼냈다.
한 대를 맞았을 뿐인데도 불이라도 붙은 듯 통증이 얼얼했다.
‘내가 공격 패턴을 읽는다는 걸 눈치채고 바꾼 건가? 역시 장태헌이군.’
자신의 버릇을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장태헌은 그것을 해냈다.
더군다나 지금, 분명 서강림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장태헌은 그가 있는 방향을 정확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거 해도 대충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있어. 그리고 도망가도 계속 쫓아갈 거니까, 포기하는 게 나을걸?”
【헐, 은둔자 썼는데 어떻게 알아챈 거지?】
【쟤는 천리안 같은 거 있는 거 아님?】
【멍청이들아. 은둔자는 단순히 투명하게만 변하는 거라고. 흔적까지 지울 수는 없어.】
신의 말대로 ‘은둔자’는 단순히 몸을 투명하게만 만드는 능력이다.
미세하게 밟힌 풀의 흔적이나 공기의 흐름까지 바꿀 수는 없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이라면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장태헌의 말대로 은둔자를 써봐야 곧 잡힐 거야. 결국 정면승부인가.’
서강림은 ‘은둔자’를 해제하고 그의 앞에 나타났다.
장태헌이 입술 한쪽을 씩 올리며 웃었다.
“그래도 또 도망은 안 가네.”
“한 가지만 물어보자. 왜 굳이 나랑 싸우려 하는 거지?”
“지난번에 내가 졌으니까. 난 지는 거 싫어. 겸사겸사 뱀도 잡아야 하고.”
장태헌은 전생에서도 강한 상대와 싸우는 것을 좋아했다.
문주인 신수아라 해도 개의치 않고 덤빌 정도였다.
그러니 장태헌이 복수를 하리라 예상할 수 있었는데, 서강림은 무의식중에 그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야 전생의 나는 적수가 될 만한 상대가 아니었으니.’
전생에는 자신이 워낙 약했기 때문에 장태헌에게는 ‘적수’로 인정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생에서는 동료가 아닌 적이 되었다.
그 사실에 서강림은 기묘하게도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의 적이 되는 게 나쁜 기분은 아니군.’
전생에서는 언제나 장태헌의 보호를 받기만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서강림은 장태헌을 힐끗 보았다.
자신은 장태헌의 호적수.
그렇다면 그 성격을 이용해, 동료로 끌어들이는 수밖에.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 승부에서 이겨야만 했다.
‘투쟁본능을 발동시키면 이길 수는 있겠지만…….’
마수라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상대는 인간, 그것도 장태헌이었다.
‘투쟁본능’은 제어하기가 어려운 이능이라, 상대를 죽일 수도 있었다.
‘투쟁본능’을 사용했다가 만약 장태헌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러다 서강림은 피식 웃었다.
‘장태헌이 고작 그 정도로 죽어줄 리가 없지.’
그는 자신의 오만함을 비웃으며 망설임 없이 이능을 발동시켰다.
장태헌을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작 이 정도로 죽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능 ‘투쟁본능’이 발동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