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윤봄이 소리를 지른 뒤, 양손으로 제 빨개진 얼굴을 가렸다.
그도 그럴 것이 서강림이 훌렁훌렁 상의를 벗고 있는 중이었다.
【강림아 왜 갑자기 옷 벗고 그래.】
【그래 진정하자!】
【짜식 근데 벌크업 많이 했다?】
신의 말대로 서강림의 몸은 초반에 비해 근육이 많이 붙은 상태였다.
전생에도 단련을 많이 하긴 했지만 몇 년간 수련을 한 것보다 훨씬 몸이 단단해져 있었다.
윤겨울도 서강림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와, 사부. 몸 엄청 좋네요. 저 한 번만 만져봐도 돼요?”
“……안 돼.”
“그런데 갑자기 옷은 왜 벗는 거예요?”
“뱀 찾으러 물속에 들어가야 하니까.”
서강림은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그 말에 윤겨울은 조금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보통 뱀들은 흙 속에 있지 않아요?”
“보통은. 그렇지만 수행을 하는 뱀들은 물속에 있을 거야.”
용의 기본적인 속성은 물이다.
용왕이 바다 밑 용궁에서 사는 것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용이 되길 꿈꾸는 뱀들은 주로 물속에서 천 년간 수행하곤 했다.
먹이를 구하러 뭍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윤봄이 여전히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와, 사부님은 그걸 어떻게 알고 계세요?”
“웹소설에서 봤어. 독고준도 알걸.”
【이야 웹소설이 이렇게 유익하다!】
【나도 한 번 봐야겠네.】
【독고준 웹소설은 뭘지 궁금하네.】
적당히 독고준을 팔아넘긴 뒤, 서강림은 신발을 벗고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가 리니를 힐끗 보며 말했다.
“리니. 너도 따라올 수 있지?”
“웅!”
리니는 기운차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강림을 따라 준비운동을 했다.
윤봄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사부님, 혼자서 괜찮겠어요? 저희도 같이 갈까요?”
“거기 있어. 곧 돌아올 테니.”
그렇게 말한 뒤 서강림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직 물이 조금 차가운 시기였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서강림이 순식간에 물 아래로 사라졌다.
물보라가 얼굴을 때리는 가운데, 서강림은 실눈을 뜨고 주변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뭐가 많군.’
위에서 봤을 때는 미처 몰랐는데, 물밑으로 나무뿌리가 어지러이 뻗어 있었다.
그 사이로 반짝이는 비늘을 가진 물고기들이 투명한 물을 가르며 헤엄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환상적이라고 느꼈을 풍경이지만 서강림은 그 풍경에 도취 되어있을 시간이 없었다.
[‘수극화’의 영향으로 이동 속도가 30% 감소합니다!]
[‘수극화’의 영향으로 방어력이 20% 감소합니다!]
[‘수극화’의 영향으로 호흡 시간이 20% 감소합니다!]
물에 들어온 순간, 수많은 귀신이 자신의 몸을 잡아 끄는 것만 같은 답답함이 느껴졌다.
페널티 알림음이 귀가 아프게 울리고 있었지만 서강림은 침착했다.
‘지난번 사주를 훔쳐놔서 다행이네.’
[오행 속성이 ‘수’로 변경됩니다!]
[‘수극화’의 페널티가 해제됩니다!]
[‘수’ 속성 보너스로 호흡 시간이 20% 증가합니다!]
속성을 변경하자마자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는 신들은 자기들끼리 떠들기 바빴다.
【그나저나 서강림 오행 불 아니냐? 쟤 엄청 답답할 듯.】
【멍청하게 왜 물로 들어왔냐? 그냥 땅에서 찾지.】
【웹소설에서 봤다고 잘난 척 하드만.】
【웹소설이 이렇게 위험합니다.】
서강림은 그들을 속으로 비웃었다.
신이라고 하면서 인간이 무엇을 했는지도 보지 못하다니.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면 어떤 말들을 할지 궁금해졌다.
‘리니는…… 좋아. 잘 적응했군.’
리니는 물속에서 아주 자유로워 보였다.
마치 이곳이 땅이라도 되는 것처럼 편안하게 물속을 거닐며 숨을 쉬고 있었다.
[이능 ‘물잡이’가 발동됩니다!]
‘물잡이’가 발동되자 리니의 몸에서 푸른 빛이 흘러나와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서강림이 천천히 리니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푸른 빛이 서강림 쪽으로도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서강림’이 ‘물잡이’의 효과를 받습니다!]
[물속에서의 움직임과 호흡이 자유로워집니다!]
뭍에 있을 때만큼, 아니 그보다 더욱 몸놀림이 가벼워졌다.
숨을 쉬자 상쾌하고 청량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서강림의 몸이 푸른빛에 둘러싸인 것을 보자 신들이 어리둥절한 기색이 되었다.
【뭐임? 왜 갑자기 서강림 표정이 편안해졌냐?】
【편-안.】
【기린이 뭐 한 거 같은데?】
【캬- 역시 영수다.】
【아까 서강림 멍청하다고 했던 애들 다 사라졌죠?】
신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서강림은 곧 무시했다.
본격적으로 해야할 일이 따로 있으니.
‘자, 그럼 이제 찾기만 하면 되겠군.’
주위를 둘러보자 수많은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을 치는 것이 보였다.
그중에는 제법 흉폭해 보이는 마수도 있었지만 리니를 보자 흠칫 놀라 도망가버렸다.
‘차이를 본능적으로 느낀 모양이네.’
물론 리니가 그 마수를 공격해 죽일 일은 없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느끼는 격의 차이는 무시할 수가 없는 감각이었다.
리니와 동행한 덕에 수색이 여러모로 수월해졌다.
서강림은 리니와 함께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두운 물살을 가르며 내려가던 중.
수초 사이로 뱀 한 마리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어! 저기 뱀이다!】
【야야야, 저기 있다! 서강림 얼른 잡아!】
신들도 뱀을 발견하고는 흥분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강림은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다른 방향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뱀은 기린의 빛에 놀라 황급히 모습을 감추었다.
【어? 쟤 못 봤나? 아니면 우리 말이 안 들리나?】
【뱀인 줄 모르는 거 아냐?】
【야 서강림! 거기 아니야! 반대!】
【야야야 거기 아니라고!】
물론 신들의 말은 아주 잘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서강림이 찾던 뱀이 아니었다.
그가 뱀을 등지고 더욱 어둡고 깊은 곳으로 향했다.
주위가 어둑해질수록 서강림과 리니를 둘러싼 푸른 빛이 더욱 또렷해졌다.
이제는 햇빛도 잘 닿지 않는 깊이.
어두운 물결이 일렁거리는 가운데, 어둠 사이로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사라졌다.
청록색 비늘로 된 몸뚱이를 포착하자 서강림의 눈매가 매섭게 번뜩였다.
‘저기 있다.’
주위가 어둑했지만 ‘감각’ 덕분에 그림자의 흔적을 좇을 수 있었다.
거센 물살을 헤치고 서강림은 빠르게 그림자의 주인을 쫓아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림자가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날 눈치챘군.’
어둠 속에서 한 쌍의 눈동자가 날을 세운 채 서강림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은 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얼굴의 생김새 역시 뱀과는 차이가 있었다.
마치 작은 용 같은 모양새였다.
‘크기가 꽤 큰 걸 보니…… 천년에 가깝게 산 이무기 같네.’
오랫동안 수련을 한 뱀은 이무기가 되고, 이무기는 천년을 살아 용이 된다.
나이가 많을수록 용에 가까워지고 점점 강해진다.
그 증거로 이무기에게서는 뱀이 아닌 마수에 가까운 위압감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쉬이익……!
이무기는 서강림을 적이라 인식했는지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위협하는 소리를 냈다.
맹수의 송곳니가 곧바로 서강림의 목덜미에 꽂힐 기세였다.
그것을 본 신들이 다급히 말했다.
【야, 저거 이무기잖아?】
【아니, 왜 뱀 잡으러 갔다가 이무기랑 싸워?】
【강림아, 너 저거 못 이긴다. 용까지는 아니어도 웬만한 마수보다는 강해!】
그들의 말대로 상대는 강적이었다.
아무리 리니의 도움을 받고 있다 한들, 상대는 물속에서 사는 이무기다.
정면에서 붙으면 이길 가능성보다 질 가능성이 높지만 그럼에도 서강림은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이길 자신은 없다. 그렇지만 굳이 이길 필요는 없으니까.’
그가 허리에 매두었던 ‘우호의 증표’를 천천히 풀었다.
그리고 동시에, 서강림이 물보라와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쉬익?
갑자기 시야에서 서강림이 사라지자 이무기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리니 역시 서강림이 보이지 않자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둘 모두 서강림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능 ‘은둔자’가 발동됩니다!]
‘은둔자’의 발동 조건은 숨을 참는 것.
현재 ‘수’ 속성 보너스로 호흡 시간이 20% 증가하기까지 했다.
서강림은 수월하게 숨을 참으며 이무기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크르륵……!
그러나 이무기는 서강림이 이동한 순간, 재빠르게 몸을 틀었다.
물결의 흐름이 바뀌는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콰아아아……!
이무기가 아가리를 쩍 벌어지며 그 안에서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수탄이었다.
공격은 정확히 서강림의 몸체를 노리고 있었다.
【들켰다! 들켰어!】
【아아악 서강림 죽는다!】
【쟤 저거 막을 수 있나?】
서강림에게는 수탄을 막을 무기가 없었다.
더군다나 물속에서 자유롭다 한들 수탄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도 없었다.
공격을 감지한 서강림이 몸을 비틀었으나 수탄은 멈추지 않았다.
-콰앙!
수탄이 대포처럼 서강림을 향해 발사 되었다.
몸통에 맞으면 즉사할 것이 명백했다.
그때, 리니가 다급히 이능을 발동시켰다.
[이능 ‘물잡이’가 발동됩니다!]
서강림의 앞에 또 다른 소용돌이가 빠르게 생성되기 시작했다.
수탄이 소용돌이 중앙을 정확히 맞췄다.
그러자 수탄이 소용돌이의 흐름에 말려 들어가더니, 이내 산산이 흩어지고 말았다.
-쉬이익!
방해꾼이 끼어들자 이무기가 튀어 오르듯 리니를 향해 돌진했다.
리니를 먼저 죽이고 서강림을 해치울 요령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무기의 실책이었다.
서강림이 그 틈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르륵?
이무기가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고 제 몸을 내려보았다.
어느새 이무기의 목에 우호의 증표가 걸려있었다.
서강림이 호흡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모습이 드러났다.
[아이템 ‘우호의 증표’를 사용했습니다!]
‘우호의 증표’를 사용하자 빛이 흰 막처럼 이무기의 몸을 감쌌다.
이무기가 몸부림을 치며 서강림을 떨궈내려 했지만 이미 ‘우호의 증표’는 발동된 상태였다.
이무기의 몸에 환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무기가 ‘우호의 증표’에 저항을 시도합니다!]
[이무기의 저항이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무기가 가진 적대감이 수그러듭니다!]
이무기는 그 강제력에서 벗어나 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이무기의 움직임이 얌전해졌다.
이무기는 약간 짜증이 섞인 눈으로 서강림을 바라보았다.
[‘이무기’가 ‘서강림’에게 복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