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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사주 헌터-52화 (52/256)

<52화>

오색 찬란한 빛깔의 털을 지닌, 작은 사슴 같은 모습을 한 영수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영수의 종족은 기린(麒麟)

다섯 가지 오행을 20%씩 맞춰 먹이되, 산 것을 먹이지 않으면 태어나는 귀한 영수였다.

“우웅…….”

막 태어난 기린이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자비로운 이 영수는 생명을 해치는 일이 없어, 풀도 밟지 않고 벌레조차 죽이지 않는다.

또한 죽어가는 것 역시 지나치지 못한다.

[이능 ‘정화’가 발동됩니다!]

[만향과의 독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기린이 다가와 자신의 머리를 내 머리에 가볍게 비볐다.

서서히 독의 기운이 가시며 숨을 쉬기가 편안해졌다.

“쿨럭, 쿨럭.”

그렇지만 아직도 만향과 나무는 불타오르며 강력한 독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또다시 중독될 게 뻔했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기린에게 물었다.

“너 저것도 통째로 정화할 수 있겠어?”

“웅!”

기린은 시도해보겠다는 듯 위풍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자, 흰빛이 뿔 주위로 모여들더니 점점 빛이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이능 ‘정화’가 발동됩니다!]

상공을 물들이던 보랏빛 연기를 정화의 빛이 뒤덮어가기 시작했다.

독과 빛이 서로를 삼키려는 듯 서로 얽히고설키던 그때.

독안개가 단말마를 지르듯 한차례 발버둥 치더니, 흰빛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만향과의 독이 모두 정화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주위의 공기가 맑아졌다.

불타버린 나무, 그 앞에 서 있는 작은 기린 한 마리.

꽤 강한 독이었는데 저걸 다 정화해버리다니.

영수가 강하다고 듣긴 했는데, 생각보다도 더 강했다.

“웅웅!”

기린은 기쁜 듯이 폴짝 뛰고 있었다.

이제 독안개도 사라지고 주위도 조용해졌다.

몇몇은 죽어서 조용해진 상태였지만.

[이능 ‘사주 훔치기’가 발동됩니다!]

나는 놈들의 사주창을 살피며, 쓸만한 몇 개의 운명만을 강탈했다.

업보의 페널티를 생각해보면 너무 약한 운명은 훔쳐봐야 손해가 더 컸다.

업보가 쌓일수록 경계에 다가가고 마니까.

그렇게 사주를 강탈하던 중, 주위에서 작게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헉, 흐억…….”

근방에 있던 놈들 중 아직 숨이 붙은 녀석들이 있었다.

명줄이 제법 질기다.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기린이 나를 툭툭 쳤다.

“우웅?”

기린은 애처로운 눈망울을 한 채,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저들을 살려달라는 듯이.

“웅?”

기린은 다 좋지만 너무 자비로운 것이 문제였다.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면, 기린은 내게 반감을 가지겠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 몸을 틀었다.

“마음대로 해.”

* *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1구역 인원들이 눈물을 질질 흘리며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

방금 전, 기린 덕분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이들은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홍대훈 역시 비굴할 정도로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채였다.

서강림이 홍대훈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예, 예!”

“너희 나머지 일행들은 어디 갔지?”

분명히 홍대훈 패거리는 이보다 훨씬 많았다.

한 사람이 무릎을 꿇은 채 눈치를 보고 있자, 홍대훈이 황급히 말했다.

“혹시 몰라 저희끼리만 왔습니다. 나머지는 거처에서 대기 중이구요.”

“…….”

“두 번 다시 2구역을 건드리지 말라고, 제가 일러두겠습니다!”

홍대훈은 바닥에 머리를 박아가며 큰절을 올렸다.

옆에서는 기린이 눈을 깜빡거리며 서 있는 채였다.

서강림은 기린을 힐끗 보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만 눈감아주지. 가봐.”

“네, 네!”

홍대훈은 제 패거리를 데리고 허둥지둥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 한참을 달려간 끝에야 그들은 멈춰설 수 있었다.

홍대훈이 근처에 있는 나무를 주먹으로 갈기며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고작 한 놈한테 털리다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굴하고 순종적이던 얼굴에는 분노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함께 도망치던 동료가 헐떡이며 말했다.

“그래도 운이 좋았습니다. 목숨을 건졌으니…….”

“운이 좋아? 1억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홍대훈이 죽일 듯이 동료들을 노려보았다.

상급 난이도로 최초 공략을 할 경우 받게 되는 1억의 포상금.

그의 두 눈에는 아직 탐욕이 어려 있었다.

“수로만 따지면 우리가 유리해. 다들 모여서 서강림을 다시 친다면……!”

“저, 저는 포기하겠습니다!”

고무적인 홍대훈과 달리, 나머지 동료들은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동료 중 하나가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서강림도 그렇고, 그 이상한 사슴도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더 이상 얽혔다가는…….”

“돈보다 목숨이 더 중요해요! 전 이참에 퇴소 할랍니다.”

그 반응에 홍대훈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고작 서강림 한 명에게 겁을 먹어 퇴소를 하겠다니.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 됐어! 나 혼자 처리하고, 내가 상금을 독식하면 되니까. 겁쟁이 새끼들 같으니.”

홍대훈은 패거리들을 뒤로 한 채, 2구역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방천화극을 꽉 그러쥐었다.

‘꼭 서강림과 일 대 일로 붙을 필요 없어. 인질을 잡으면 놈도 포기하겠지!’

마음 같아서는 서강림을 죽이고 싶지만, 우선은 최초 공략에 집중을 하기로 했다.

서강림이 갖고 있는 만향과를 뺏기만 하면 1억이 수중에 떨어질 터였다.

‘2구역 놈들 중 가장 약해 보이는 놈 하나만 잡으면 돼. 그러면 1억은 모두 내……!’

-콰직!

그때, 정신없이 달려가던 홍대훈이 무언가에 걸려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가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젠장, 대체 뭐에 걸린…….”

순간, 그는 목에 서늘한 감각을 느꼈다.

누군가가 제 목에 칼날을 들이대고 있었다.

“발 한번 빠르네.”

“너, 너 대체 어떻게 여길…….”

갑작스레 나타난 서강림을 보고 홍대훈은 당황하고 있었다.

서강림이 ‘은둔자’를 사용하며 추격하던 사실을 몰랐으니, 놀랄 법도 했다.

서강림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는 기린 때문에 처리할 수가 없었거든.”

기린은 피와 살생을 거부하는 영수.

그런 기린 앞에서 사람을 죽였다가는, 자신의 말에 복종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서강림의 말을 듣고 홍대훈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래서 날 죽이려고? 그랬다간 네 동료들이 위험해질걸?”

그 말에 서강림은 잠시 멈칫하는 기색이었다.

홍대훈이 빠르게 눈을 굴리며 말했다.

“내 동료들이 거처에 있다고 했지? 거짓말이야. 다들 2구역 놈들한테 갔어! 그쪽을 치려고!”

실제로 2구역의 거처에는 그의 패거리가 몰려간 상태였다.

서강림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홍대훈은 제 협박이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실실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걱정하지마. 날 살려두면 그들과 협상할 수 있다고. 네 동료들을 죽이진 않을 거야.”

홍대훈은 초조한 기색으로 제 목에 닿은 칼날을 힐끗거렸다.

잠시 후, 칼날이 서서히 멀어지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동시에 서강림이 입을 열었다.

“네가 실수한 게 두 가지 있는데.”

안도했던 것도 잠시, 홍대훈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강림의 목소리가 칼날처럼 차가웠다.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살기였다.

“너희 패거리가 2구역으로 간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어.”

“……!”

“그리고 살고 싶었다면…….”

-서걱!

“2구역 인원들을 갖고 협박하지 말았어야지.”

서강림의 검이 가로로 획을 그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바닥이 피로 물들었다.

더 이상 홍대훈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서강림은 시체를 향해 이능을 발동시켰다.

[이능 ‘사주 훔치기’가 발동됩니다!]

[홍대훈의 ‘근력’ 일부를 강탈합니다!]

서강림은 홍대훈의 사주를 훔친 뒤, 방천화극과 나머지 아이템을 챙겨 자리를 떴다.

야영지로 돌아오자, 요한 신부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강림을 맞이했다.

“서, 서강림 형제님……!”

야영지는 아침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곳곳의 텐트가 무너져 있고 잘려나간 나무와 풀들, 바닥에 뿌려진 피가 전투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신부님은 다치신 곳 없으십니까?”

“네, 네. 전 괜찮습니다. 독고준 형제님이 지켜주셔서…….”

힐끗 보니 안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곧 독고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서강림. 왔어? 1구역 인원들이 습격을 해서 정리하고 있었어.”

독고준은 평소처럼 웃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얼굴에 피가 잔뜩 튀어 있다는 것.

한 손에는 기절한 누군가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강림 씨, 무사하셨어요?”

곧 신수아도 모습을 드러냈다.

주먹이 피로 물든 것을 보아하니 잘 처치한 모양이었다.

서강림은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안도했다.

‘이 인원이라면 1구역이 습격해도 문제없으리라 생각했지만. 내 생각보다도 더 강했네.’

그는 그런 속내를 삼키며 저물대에서 만향과를 꺼내,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나무가 타버리긴 했지만 2구역 몫의 만향과는 챙겨왔다.

윤겨울이 신이 난 얼굴로 말했다.

“와, 상급 완료!”

“사부님, 이거 어떻게 찾으신 거예요? 그냥 받아도 돼요?”

“그건 나중에 알려줄게. 그리고 최초 공략은 내가 해야겠다.”

“물론이죠!”

공주 팀장과 약속한 것이 있으니, 그걸 지키긴 해야 했다.

서강림이 문고리를 잡아 돌리자 눈앞에 알림창이 떴다.

[‘발설의 방’을 공략하였습니다!]

[상급 난이도로 공략에 성공하였습니다!]

[최초 공략 보상으로 ‘운명의 길잡이’가 도착하였습니다!]

서강림에게 도착한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나침반과 유사한 형태의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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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운명의 길잡이

[등급] 용일품(龍一品)

[설명] 소유자의 운명이 방황하고 있을 때, 길을 안내해주는 아이템. 조건이 충족될 경우 자동으로 활성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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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길잡이’는 일종의 점괘를 알려주는 아이템이었다.

위기의 순간이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조언을 주는 귀한 아이템.

‘운명의 길잡이가 있다면 변화하는 미래를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겠지.’

‘운명의 길잡이’는 현재 아무 반응도 없이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서강림은 그것을 저물대 안에 넣어둔 뒤, 마경의 문을 닫고 떠나갔다.

* * *

“그래서 결국 홍대훈은 실패했다는 거네?”

“……그렇게 됐습니다.”

“흐음.”

서문용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다트판에 다트를 던졌다.

출입문에 걸린 다트 중앙에 콱 소리를 내며 다트가 꽂혔다.

서문용녀가 일그러진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2구역이 생각보다 강하네. 최초 공략자가 나온 데다가, 1구역을 일망타진하다니…….”

홍대훈과 측근들은 사망, 임무 미달성으로 인해 상당수가 퇴소하게 되며 1구역의 인원은 대폭 감소하게 되었다.

그런 보고를 들은 탓에 서문용녀의 눈빛은 다소 날이 서 있는 상태였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문 팀장님. 들어가겠습니다.”

“들어오세요.”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트가 문을 향해 날아갔다.

-탁!

날카로운 다트 끝이 아슬아슬하게 얼굴 부근에서 멈췄다.

공주가 맨손으로 다트를 잡고는 짜증을 냈다.

“그러니까 이런 짓 좀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라, 미안해요. 실수였어요.”

“뭐, 분풀이 정도야 받아주겠습니다. 내기에서 졌으니 화가 날 만도 하겠죠.”

공주가 입꼬리를 비스듬하게 올리며 말했다.

서문용녀는 웃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누가 봐도 짜증을 내고 있었다.

“축하해요. 2구역에서 최초 공략자가 나왔다면서요? 이름이 서강림이라고 하던데…….”

그녀의 눈동자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번뜩였다.

“꼭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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