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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사주 헌터-50화 (50/256)

<50화>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윤봄과 윤겨울도 거세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신들이 감격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으으으 이것이 동료애인가?】

【감동적이야 수아씨!】

【아직 이 강호에 협과 의가 살아있구나!】

【신수아가 서강림한테 마음이 있나보네!】

【전부터 왠지 그런 것 같더라니】

신들이 자기네들끼리 설레발을 치는 가운데 신수아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전 상급으로 공략하고 싶어서 먼저 나갈 생각 없어요.”

마치 신들의 목소리를 부정하기라도 하는 듯 단호한 목소리였다.

독고준도 동의하듯이 말했다.

“맞아. 고작 중급으로 클리어하는건 시시하다고.”

뭐, 애초에 그들이 중급이나 하급으로 만족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 사람들은 강하니 최소한 자기 목숨은 지키겠지.

문제는…….

“신부님께서도 남으십니까?”

요한 신부는 사정이 좀 다르다.

그는 마수만 봐도 겁에 질려 굳어버리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과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요한 신부가 벌벌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저는……. 혹시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으니 남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자기 몸 걱정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를 설득해서 내보낼까 고민하던 와중, 윤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요한 신부님은 제가 지켜 드릴게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사부님!”

“그래요. 우리가 지킬 테니 걱정마세요, 사부.”

쌍둥이 남매가 호위를 자원하자 요한 신부는 감격한 모양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윤봄 자매님, 윤겨울 형제님……!”

감동적인 순간에 미안하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은 충분히 강하다.

하지만 요한 신부를 보호하며 싸울 만큼의 능력이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신수아가 슬그머니 내 옆으로 왔다.

“서강림 씨. 혹시 혼자 행동할 생각인가요?”

역시 신수아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그녀가 조곤조곤하게 말을 이어갔다.

“아까 언뜻 들었어요. 1구역이 서강림 씨를 노리고 있다고. 다 같이 1구역을 제압하면 승산은 있다고 봐요.”

1구역을 제압할 생각은 있었지만, 그건 나의 일이었다.

괜히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적당히 거짓말을 섞어 이야기를 건넸다.

“1구역과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대신 상급 공략 과제를 찾으려고 합니다. 괜한 싸움으로 힘 뺄 시간에 공략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그쪽이 1구역과 싸우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아직 상급 공략 조건이 뭔지 모르니…….”

신수아는 조금 심란한 표정이었다.

나는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러니 각자 흩어져서 정보를 찾는 건 어떻겠습니까? 다 같이 뭉쳐 다니는 것보단 그게 나을 듯한데.”

“그리고 당신은 혼자 가고요?”

구름이 낀 탓에 신수아의 얼굴에 그늘이 더욱 깊어졌다.

걱정하는 건 알지만 이건 내가 처리해야하는 일이었다.

“혼자면 싸우기는 힘들어도 도망칠 수는 있습니다. 새로 얻은 이능이 몸을 투명하게 만드는 이능이라.”

“…….”

“오히려 여럿이 같이 행동하면 제가 불편합니다.”

넌지시 거절의 뜻을 비춘 뒤에야 신수아는 단념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그러면 각자 조사할 구역을 정해보죠.”

나는 우선 중앙을, 나머지 구역은 신수아가 사람들과 나눠서 살펴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자 독고준이 질문을 던졌다.

“서강림은 누구랑 가?”

“전 혼자 갑니다.”

“아무리 너라도 혼자는 좀 힘들지 않을까? 파트너가 없으면 나는 어때?”

독고준은 붙임성 좋은 얼굴로 말했다.

내 대답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아뇨. 여기에 있어 주세요.”

“으음, 서강림. 날 너무 싫어하는 거 아니야?”

“싫어하기보다는 믿고 있는 겁니다.”

독고준의 인성은 쓰레기지만 실력 하나는 일품이다.

만약 1구역이 습격을 가해온다면, 사람들을 지킬 인원이 필요하다.

“당신이라면 1구역이 몰려와도 상대할 수 있을 테니, 믿고 가는 겁니다. 요한 신부님을 지켜주세요.”

이 말만큼은 진심이었다.

그 말에 독고준은 놀란 눈이 되더니 씩 웃었다.

“그 말은 좀 기쁘다, 서강림.”

그동안 무시와 푸대접을 일삼았으니, 슬쩍 좋은 말도 해줘야겠지.

그렇다고 지나치게 많이 칭찬을 하면 기고만장해질 테니 이 정도가 적당하다.

나는 실실 웃는 독고준을 무시한 뒤, 신수아를 향해 말했다.

“신수아 씨, 그러면 저는 수색하고 오겠습니다. 수색이 끝나면 여기서 다시 모이죠.”

“알겠어요. 조심하세요, 서강림 씨.”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사람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신들이 멋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강림이는 오늘도 솔직하지 못하네.】

【맞아 사실은 외롭잖아!】

【이젠 독고준도 슬슬 미운 정 든 듯.】

낄낄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려왔으나 무시한 채 과수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과수원의 풍경을 보고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여기 과수원 맞아?】

【헐 이게 무슨 일임?】

【왜 나무가 다 잘려 나갔어?】

그곳은 이제 과수원이라기보다는 벌목장에 가까웠다.

나무들이 모두 잘려 나가 있었으며, 과일 역시 먹지 못할 정도로 뭉그러져 있거나 다 수거해간 뒤였다.

근처에는 파수꾼의 시체가 널려있었다.

【1구역 짓 아니야? 백향과 다 회수해서 못 나가게 하려고.】

【그러게. 열매도 다 사라졌네.】

【와 이 무식한 새끼들…….】

이 상태라면 중급 열매도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넉넉히 따두었으니 상관은 없지만 1구역의 과격한 행동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강림아, 빨리 안쪽 가봐라.】

【그러게 천향과도 다 사라진 거 아니야?】

안으로 향했으나 그곳 역시 초입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성성이의 사체가 반 토막이 나서 나무 위에 걸려있었다.

【으아 파수꾼도 다 죽였네.】

【1구역 녀석들 이렇게 셌어?】

【센 녀석들도 껴 있긴 했는데…….】

【그치만 몰살시킬 정도는 아니지 않아?】

신들의 말대로였다.

아무리 인원수가 많고 귀급이라 하더라도 성성이는 상당히 강한 마수다.

그걸 한 마리도 아니고 죄다 몰살시키다니.

사람의 시체나 찢긴 옷자락 같은 것도 없었다.

지난번에 봤을 때는 그 정도로 강해 보이지 않았는데, 그 사이 등급을 올리기라도 한 것일까.

【야 강림아 조심해라. 이 근처에 1구역 인원 더 있을지 몰라.】

【일단 상급 열매부터 찾아보자.】

【근처에 있지 않을까?】

상급 열매가 있는 장소는 알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나는 잠시 생각하는 시늉을 하다, 신들을 향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파수꾼들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파수꾼인 마수의 둥지를 찾아보려 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마수에게는 머무르는 거처가 있기 마련이다.

지난 생, 그런 부분을 노려 파수꾼의 거처를 찾아내 일망타진하려던 사람도 있었다.

【흠, 뭐 나무 위에서 자거나?】

【그런데 저 덩치로 나무 위에서 잘 수가 있나?】

【그러게? 걔네는 거처가 어디려나?】

그때, 먼발치에서 살아있는 것의 기척을 느꼈다.

나는 발소리를 죽인 채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끼이익…… 우끼익…….

파수꾼 중 한 마리가 부상을 입고 비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운 좋게 살아남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게도 운이 좋았고.

부상을 입으면 인간이든 짐승이든, 안전한 장소로 향하기 마련이다.

파수꾼은 주위를 살피며 어딘가를 향해 바삐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파수꾼이 발을 멈춘 것은 커다란 고목 나무의 앞.

파수꾼이 나무 사이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어? 저기로 들어가네?】

【좁아 보이는데 들어가지는 게 가능한가?】

【근데 실제로 들어갔잖아!】

나는 일부러 이런 상황을 유도했지만 신들은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이제 파수꾼이 안내해줄 길을 따라 들어가기만 하면 될 뿐이다.

나는 나무 틈새로 몸을 욱여넣어 안으로 들어갔다.

겉으로 봤을 때는 그저 나무일 뿐인데 안으로 들어오자 꽤 넓게 느껴졌다.

【야 겉으로 보는 거랑 완전히 다르네.】

【여긴 뭐야? 동굴?】

【재미있는 장치를 걸어놨네?】

그들의 말대로 나무 안은 텅 비어 있었고 꽤 넓었다.

눈앞에 길고 어두운 통로가 보였다.

나는 천천히 벽을 짚으며 통로를 걸어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바람과 함께 과일 향기가 풍겨왔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천국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탁 트인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으며, 꽃잎이 바람과 함께 흩날리고 있었다.

그와 함께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온갖 향기가 몰려왔다.

오색의 꽃이 피어 있고 중앙에 거대한 과실수가 자라 있었다.

과실수의 이파리는 몽환적인 보랏빛이었다.

【와 정말 절경이네요. 장관이고요. 신이 주신 선물이네요.】

【야, 너랑 우리가 신이잖아】

【맞아 저는 이런 선물 준 적 없음.】

【그나저나 여기 정말 아름답다. 나중에 놀러 오고 싶네.】

【이런 곳이 숨겨져 있었다니……. 백향과랑 천향과는 미끼였나 보네.】

【일단 얼른 열매를 따서 돌아가자.】

【기왕 온 김에 관광이나 더 하는 건 어때?】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이곳이 무릉도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경치에 홀려 관광 따위를 하다가는 여기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여기는 파수꾼 거처가 아닌가?】

【그래. 조심해. 어디서 파수꾼이 뛰쳐나올지 몰라.】

파수꾼을 따라오긴 했지만 이곳은 파수꾼의 거처가 아니었다.

파수꾼의 거처는 이 나무 아래의 작은 토굴이다.

하지만 파수꾼이 없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었다.

이 마경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는 이곳이었으니.

나는 꽃길을 따라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의 큰 나무가 가까워질수록, 그곳에서 풍기는 향기도 점점 진해져갔다.

마침내 거대한 나무 앞에 서자 보석 같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것이 보였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는 날렵하게 나무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여러 색으로 반짝이는 열매를 하나 딴 순간, 알림창이 떴다.

[아이템 ‘만향과’를 획득하였습니다!]

[‘발설의 방(난이도 상)’ 공략 조건을 달성하였습니다!]

드디어 찾아낸 만향과였다.

전생에는 백향과로 간신히 클리어를 했었는데.

신들도 만향과의 정체를 알게 되자 흥분하여 마구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헉 저게 상급 공략!!】

【와 잘 찾았네.】

【만향과라니 먹고 싶다.】

【흑흑, 향기는 안 느껴져서 슬퍼.】

【서강림한테 붙어 다니는 게 제일 좋다. 재밌는 일이 일어나네.】

-콰앙!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편에서 무언가가 파괴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온 모양인가.

뒤를 돌아보니 입구 부근이 반쯤 무너져 있었고 안으로 수많은 사람이 들어왔다.

대부분 모르는 얼굴.

1구역의 인원들이었다.

그들도 풍경에 잠시 넋을 잃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때 살기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저기 서강림이다!”

귀에 익은 목소리의 주인은 홍대훈이었다.

그가 날듯이 뛰어와 내 앞으로 다가왔다.

홍대훈이 먹잇감을 보듯 나를 응시하였다.

“고마워. 덕분에 찾았네.”

“미행했습니까?”

“그래. 안 죽이고 쫓아와서 다행이었네.”

홍대훈은 씩 웃는 걸 보자,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났다.

낙오되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저들이 잘 쫓아와서 다행이었다.

여기서 이놈들을 처리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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