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사주 헌터-49화 (49/256)

<49화>

잘 팔리는 건 좋지만, 저렇게 기대감에 반짝거리는 눈빛들을 보자니 부담이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거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긴 내 야영지도 아니고, 2구역 공용 야영지니까 내가 감수해야지.

그때 윤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직접 오셨어요? 저희가 가도 되는데…….”

“오늘부터 배달 시작했어.”

【강림이 언제부터 배달의 민족 됐음?】

【야, 우리한테도 배달 좀 해줘라.】

【이 정도면 배달이 아니라 출장요리사 같은데.】

【뭐 어쩔 수 없잖아. 바뀐 거처에서 식당 개업하면 1구역 애들이 올테니까.】

이틀 전, 1구역 인원들과 조우한 이후 나는 거처를 옮겼다.

내가 놈들의 야영지에 불을 지르고 마수를 끌어들였으니 내게 복수를 하러 올 것이 뻔했다.

새로운 거처로 사람들을 데려오면 금방 들통날 것이기에, 오늘은 2구역 야영지에 요리 도구와 재료를 들고 온 상태였다.

윤봄이 근처를 구경하며 말했다.

“그런데 오늘은 고기가 없네요? 채소만 먹어요?”

“아니. 곧 고기 배달 올 거야.”

지금 작업대 위에는 약초밖에 없었다.

어제 거처를 옮기느라 정신이 없어 고기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상태.

고기 배달원이 오길 기다리며 약초 손질을 마무리하던 중, 유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강림, 나 왔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독고준이었다.

그가 커다란 마수를 어깨에 짊어지고 씩 웃었다.

“큰 놈으로 잡아 왔어! 이걸로 밥값은 충분하지?”

“네. 충분할 것 같군요.”

독고준은 지난번에 내게 바가지를 쓴 탓에 가진 영옥이 없는 모양이었다.

대신 밥을 주면 일을 돕겠다고 해서 승낙했는데, 20분 만에 마수 한 마리를 잡아 왔다.

그가 작업대 위에 마수를 턱 올려놓으며 말했다.

“일단 씻은 뒤에 피도 빼놓고 내장도 빼놨는데, 손질도 내가 할까?”

“그러세요.”

고기 해체는 꽤나 번거로운 일인데 독고준이 해준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독고준이 짧은 단검을 꺼내 들고 마수의 사체에 다가가자 신들이 떠들썩해졌다.

【저거 저거, 저러다 고기 다 버리는 거 아니냐?】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

【발골이 장난이냐? 괜히 손댔다가 고기 다 버리…… 응?】

-서걱!

신들이 엄격하게 관찰하는 가운데, 독고준은 물 흐르듯이 마수의 사체를 해체해나갔다.

검을 다루는 손놀림에는 군더더기가 없었으며 망설임도 없었다.

오랫동안 이런 일을 해온 사람 같은 손놀림에 나조차도 잠시 시선을 빼앗길 정도였다.

윤봄이 놀란 눈이 되어 물었다.

“우와, 준이 오빠. 원래 하던 일이 대체 뭐였어요?”

“나? 소설가였는데.”

“소설가인데 왜 이렇게 잘해요?”

“언젠가 아포칼립스가 찾아올 때를 대비해서, 수렵이랑 해체하는 방법이랑 이것저것 배워놨었어.”

독고준은 웃는 얼굴로 다정하게 대답했다.

“이 정도는 소설가의 기본 소양이지.”

“소설가는 굉장한 직업이었군요…….”

윤봄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이런 굉장한 미친놈이 다 있다니’, 그런 표정 같기도 했고.

【발골은 소설가의 기본 소양!】

【일 리가 있냐! 쟤가 미친 거지!】

【미쳤는데 유능하다.】

【제정신에 무능한 것보다는 백번 나은 듯.】

【아니 쟤 못하는 게 뭐냐 대체.】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는 낚싯대도 혼자서 만들던데.】

【여기 오두막도 쟤가 만들지 않았나?】

신들이 떠드는 와중, 독고준은 발골을 끝낸 모양이었다.

“자, 서강림. 다 됐어.”

어느새 고기는 정육점에서 파는 것처럼 깔끔하게 해체된 상태였다.

그가 먹기 좋게 자른 고기들을 내게 가져다주었다.

“자, 여기. 이거면 돼?”

“네. 됐습니다.”

내가 손질한 고기보다 상태가 월등히 좋았다.

앞으로도 고기 손질할 일 있으면 독고준을 부려먹어야겠다.

나는 고기와 약초를 솥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국이 끓기 시작하자 처음의 텁텁하던 냄새는 사라지고 조금씩 좋은 냄새가 났다.

냄새뿐만이 아니라 맛도 꽤 좋았다.

약초와 함께 끓여, 고기의 독성은 사라지고 감칠맛만 남은 듯싶었다.

“사부님……. 언제 다 돼요?”

윤봄이 배고픈 강아지처럼 나를 보고 있었다.

이제 슬슬 먹어도 되겠지.

나는 요리를 그릇에 담으며 말했다.

“200영옥.”

“여기 준비해뒀죠!”

윤봄은 기다렸다는 듯이 영옥을 내밀었다.

내가 한 그릇 듬뿍 퍼서 건네주자 윤봄이 좋아라하며 그릇을 받아갔다.

잠시 후, 천막 안에서 윤겨울이 눈을 비비며 기어 나왔다.

“으음, 밥 냄새……. 사부, 밥 줘요…….”

“200영옥.”

“여기…….”

비몽사몽한 얼굴로 영옥을 건네는 윤겨울에게도 한 그릇을 가득 담아 주었다.

곧 다른 사람들도 슬금슬금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저 국밥 한 그릇이요!”

“강림 씨! 저는 오늘 두 그릇이요!”

“저도요!”

사람들이 모여 들더니 순식간에 솥이 반으로 비어 버렸다.

공짜로 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릴 줄 알았는데, 다들 생각보다 유한 반응이었다.

어제는 영옥이 아까운 듯 투덜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 그릇을 먹고 나니 얌전해졌다.

【아아…… 이것이 국밥인가.】

【영혼을 울리는 이 맛!】

【이 맛이라면 200 영옥도 부족하지 않다!】

【나도 한 뚝배기 다오, 강림아!】

정작 먹어보지도 않은 신들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어느새 요한 신부도 쭈뼛거리며 다가와 영옥을 주려 하길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됐습니다. 신부님은 그냥 드세요.”

“왜, 왜죠……? 혹시 오늘도 그 일을 해야 하나요?”

“더 이상 안 도와주셔도 됩니다. 그냥 감사의 표시예요.”

독 내성은 그동안 충분히 쌓였다.

이곳에 서식하는 마수들의 독은 더 이상 영향을 주지 못하는 상태.

이 이상 등급을 올리려면 더 강한 독이 필요했다.

와중에 요한 신부는 내 대답을 듣고 환하게 웃었다.

“그,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그러면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요한 신부가 윤봄과 윤겨울이 앉은 근처로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

그 뒤로도 요리는 꾸준히 팔려 곧 솥이 바닥을 보이게 되었다.

내 몫으로 남은 한 그릇을 천천히 먹고 있자, 독고준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 맛있었네. 서강림, 요리물 주인공해도 잘 어울리겠다.”

“다 먹었으면 가서 설거지나 하세요.”

“알았어. 그런데 그 전에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나.

독고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어제 타 구역 인원을 마주쳤거든.”

“……그랬습니까?”

“응. 싸우진 않고 미행만 했어.”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니 들키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독고준이 재미있는 영화를 본 사람처럼 히죽거렸다.

“그런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더라고.”

“무슨 이야기입니까?”

“너를 죽일 수는 없으니, 2구역 인원을 인질로 잡아 협박하겠다고 말했어.”

그의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고 말았다.

멍청한 인간들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상상 이상으로 멍청했다.

그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듣자 하니 누구한테 돈 받기로 했나 보더라고. 상급 최초 공략하는 조건으로.”

“…….”

“그런데 서강림, 뭘 했길래 다들 널 노리는 거야?”

“요리 안 판다고 했더니 저러는군요.”

그때 홍대훈 정도는 죽여둘 걸 그랬나.

와중에 걸리는 것이 있어, 나는 독고준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왜 이런 정보를 그냥 알려줍니까?”

“동료니까.”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믿을 수 없었다.

그 독고준이 이렇게 순순히 알려주다니, 거짓 정보인가?

그럴 가능성도 충분했다.

하지만 독고준의 말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1구역 인원이 나를 노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2구역 인원들이 위험해질 가능성도 분명히 있었고.

그러니 만약을 대비해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국자로 빈 솥을 탕탕 두드렸다.

“잠깐만 주목 부탁드립니다.”

식사에 한창이던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밥 더 주나?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들을 외면한 채 말했다.

“이 마경에 타 구역 사람이 있는 건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사람들이 고갯짓과 눈짓으로 동의의 뜻을 보냈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독고준 씨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들이 우리 구역 사람들을 공격하여 공략을 방해할 계획인가 봅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여유롭던 사람들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뭐라구요?”

“아니, 대체 무슨…….”

“지난번에는 식량을 훔쳐가더니……!”

사람들이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주위가 소란스러워지자, 나는 다시 한번 솥을 두드려 말을 끊었다.

“그래서 제안을 드립니다. 제가 천향과라는 과일을 가져왔습니다. 이걸 가져가면 중급 난이도로 완료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내가 저물대에서 천향과를 꺼내자 좋은 향기가 풍겨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천향과에 꽂혔다.

“무상으로 드리겠습니다. 먼저 나가면 저들이 방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 들어온 인원을 내가 모두 지킬 수는 없었다.

우선 1구역이 우리보다 수가 많고, 홍대훈을 비롯해 좋은 사주를 가진 사람이 여럿이었다.

방심한 틈에 한 명이라도 끌려가면 여러모로 곤란해진다.

내가 그들을 버린다 하더라도 신수아는 구하려고 할 테니, 애초에 분란의 싹을 뽑아버리는 것이 나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 말에 사람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하더니, 곧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급도 괜찮지 않아?”

“하급도 어려운 편이었잖아.”

“난 이제 슬슬 나가고 싶어. 여기 너무 오래 있었어.”

이제 슬슬 교육 시설의 따뜻한 침대와 식사가 그리워질 시점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쭈뼛쭈뼛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천향과의 수는 넉넉했기에 모두에게 나눠줄 수 있었다.

천향과를 받아든 사람들이 고맙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서강림 씨. 이렇게 그냥 받아도 될지 모르겠네요.”

“감사해요. 덕분에 중급으로 클리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떠날 채비를 했다.

다들 짐을 챙겨 떠나가는 동안,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신수아, 독고준, 윤봄, 윤겨울, 요한 신부.

“여러분은 안 나갑니까?”

신수아는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질문에 그녀가 의아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서강림 씨를 두고 어떻게 우리가 먼저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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