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이 섬에 사는 마수들은 하나 같이 먹을 수가 없었다.
독이 있거나, 죽는 순간 살이 흙처럼 무너져 내리거나, 너무 딱딱해서 먹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요리를 하고 있다니.
“드디어 왔나 보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흉흉하게 빛나던 독고준의 눈빛이 온화해졌다.
그가 파티원에게 다가가 살갑게 말을 붙였다.
“저기,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어?”
“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서쪽 부근에서 음식 냄새가 풍겨와서…….”
“고마워.”
독고준은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떴다.
신수아 역시 무언가를 눈치채고 다급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파티원이 말해준 방향으로 향하자, 맛있는 냄새가 희미하게 퍼지고 있었다.
“아, 서강림!”
독고준이 반갑다는 듯이 소리치며 서강림에게 다가갔다.
서강림은 모닥불에 무언가를 끓이고 있다가 방문자들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캠프라도 하러 온 것마냥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는 독고준을 무시하고 신수아를 향해 말했다.
“신수아 씨.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십니까?”
서강림을 보고 신수아는 부드럽게 웃었다.
며칠 만에 보는 것인데, 아주 오랜만에 보는 듯한 반가움이 들었다.
그녀가 그런 반가움을 숨긴 채 말했다.
“주위에서 요리하는 냄새가 난다고 해서 와봤는데……. 역시 서강림 씨였군요.”
이 마경에서 태연하게 요리를 할 정도의 실력자는 서강림 정도뿐이었다.
신수아가 주위를 힐끗 둘러보았다.
도축하고 남은 부분을 살펴보니 이 마경에서 활동하는 마수를 잡은 모양이었다.
“강림 씨, 여기 마수들은 먹지 않는 게 좋아요. 독이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다 제거했으니 문제는 없어요.”
“독을 제거했다고요?”
신수아는 놀란 눈이 되어 말했다.
그 와중, 바깥이 소란스러워지자 텐트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잠이 덜 깬 요한 신부가 비틀비틀 밖으로 나왔다.
머리가 잔뜩 헝클어져 마치 새집 같은 모양새였다.
“아, 신수아 자매님. 독고준 형제님도 오셨군요.”
“안녕하세요, 요한 신부님. ……괜찮으신가요?”
신수아가 요한 신부를 보고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한 신부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철야에 시달린 사람처럼 퀭해진 얼굴.
요한 신부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네. 괜찮습니다. 어제 일을 좀 하느라…….”
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사람이 저렇게 초췌해진 것일까.
요한 신부의 이능은 회복 계열이니, 어제 누가 크게 다쳤나보다 하고 신수아는 생각했다.
그 와중 요리가 다 되었는지, 서강림이 그릇에 요리를 가득 퍼냈다.
상당히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풍겼다.
그가 요한 신부를 불렀다.
“요한 신부님. 와서 드세요. 오늘도 일하셔야 하니.”
일이라는 말에 요한 신부가 움찔하면서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모닥불 근처에 앉아 힘없이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독고준은 신기하다는 듯이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와, 진짜 제거했나 보네. 서강림, 나도 주라.”
독고준이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오자, 서강림이 요리를 그릇에 담았다.
그릇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양.
그가 독고준에게 그릇을 내밀며 말했다.
“1인분에 1000 영옥입니다.”
아무리 봐도 먹지 말라는 소리였다.
그러나 독고준은 기분 나빠하는 기색도 없이 거래창을 열었다.
“우와, 비싼 밥이네. 일단 받아.”
곧 서강림에게 1000 영옥이 전달되었다.
신수아도 그 모습을 보다가 서강림에게 말을 걸었다.
“저도 한 그릇 살게요. 영옥이…….”
“200 영옥입니다.”
갑자기 내려간 가격에 독고준이 서강림을 바라보았다.
“응? 나랑 가격이 다른데?”
“주인 마음입니다.”
“뭐, 신수아 씨는 히로인이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돈은 받는구나.”
독고준이 실실 웃는 걸 무시하고 그릇에 요리를 듬뿍 담아 신수아에게 건네주었다.
그 모습에 신들도 한마디씩 더 했다.
【강림아, 아까 독고준 준거랑 양이 너무 다른데?】
【야 거의 2배 차이나잖아.】
【따, 딱히 너한테만 많이 주는 건 아니니까!】
서강림은 하늘을 향해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사이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익숙한 목소리들이었다.
“그러니까 누가 요리를 하고 있다고?”
“설마……. 여기 있는 마수들은 먹을 수가 없는데.”
“어? 사부님!”
무기를 들고 찾아온 사람들은 2구역의 멤버들이었다.
그들은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오랜만에 맡는 요리의 향기.
독고준과 요한 신부가 무언가를 먹고 있는 걸 보자 다들 입에 침이 돌기 시작하였다.
윤겨울이 궁금하다는 듯이 다가갔다.
“사부, 이거 뭐예요?”
“그냥 마수 잡아서 만들었어.”
“이건 먹을 수 있는 건가보다. 저도 주세요.”
“200 영옥.”
윤겨울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공짜로 주면 안 돼요? 제자한테 너무 야박하다.”
“제자 아니다. 먹기 싫으면 말든가.”
“알았어요. 여기요.”
윤겨울은 툴툴거리면서도 결국 요리를 샀다.
윤봄도 정가를 내고 한 그릇을 받아가자, 다른 사람들이 몹시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맛있으려나?”
“영옥 200개는 너무 비싼데…….”
“그래도 뭐든 먹고 싶어요. 요 며칠 내내 건량이랑 백향과만 먹었고…….”
과수원에서 가까스로 과일을 따서 오긴 했지만, 며칠 내내 그것만 먹으니 물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른 사람들 역시 비싼 값을 치르고 요리를 받아 갔다.
어느새 고요하던 텐트 주변에 여러 사람이 모여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다들 한 입씩 요리를 먹어보고는 꽤 놀란 눈이 되었다.
“어? 맛있는데? 국밥 같다.”
“왠지 모를 감칠맛이 느껴져요.”
“아, 간만에 밥 다운 밥 먹네…….”
【와 여기가 국밥 맛집이네.】
【주모! 여기 국밥 한 그릇 더!】
【근데 진짜 어떻게 만들었길래 애들이 정신을 못 차리냐.】
【영옥 200개 값 할만한가 보네.】
신수아도 한 숟가락을 떠먹고는 음식 맛에 감탄했다.
마수의 고기와 약초, 그리고 곡식 낟알 같은 것이 들어가 다채로운 맛이 났다.
독고준 역시 어느새 한 그릇을 다 비운 채였다.
“맛있네. 어떻게 독을 제거한 거야?”
“영업 비밀입니다.”
“야박하기는. 한 그릇 더 줘.”
“이제 없습니다.”
사람이 많다 보니 어느새 커다란 솥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윤봄도 허겁지겁 마수 국밥을 먹다가 고개를 들었다.
“어? 사부님 몫도 없는 거예요?”
“괜찮아. 난 나중에 따로 먹으면 돼.”
그 말에 요한 신부의 어깨가 흠칫 움츠러들었다.
솥이 바닥을 보였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아쉬운 눈치가 되었다.
“어? 벌써 다 떨어졌어요?”
“저 한 그릇 더 사려고 했는데…….”
“진짜 너무 맛있어요.”
여기저기서 찬사와 함께 아쉬운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서강림에게는 돈을 더 벌 수 있는 기회였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는 솥을 들고 뒤편의 풀숲으로 사라졌다.
어떻게 만드는지 구경하려던 윤겨울은 혼쭐이 난 뒤에야 돌아왔다.
곧 서강림이 재료 손질을 끝낸 뒤, 다시 솥을 불 위에 올렸다.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 냄새 정말 좋다.”
“빨리 완성되면 좋겠는데…….”
약 한 시간 정도가 지난 뒤, 두 번째 요리가 완성되었다.
서강림이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한 그릇에 200영옥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강림의 눈앞에 거래창들이 떠올랐다.
[200 영옥을 획득하였습니다.]
[200 영옥을 획득하였습니다.]
[200 영옥을 획득하였습니다.]
[200 영옥을 획득하였습니다.]
[200 영옥을 획득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비싼 거 아니냐고 투덜대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200영옥을 지불하고 있었다.
한 솥이 순식간에 다 비워졌다.
【마수 국밥 입에서 살살 녹쥬?】
【야 강림아 너 가게 차려라.】
【대장금 현신 안 하나?】
【요리 계열 신들한테 소식 들어가면 난리 나겠네.】
서강림은 어느새 순식간에 불어난 자신의 소지금 창을 보고 있었다.
밥을 굶어도 배불러지는 액수였다.
[소지 영옥: 11,230]
이 정도라면 웬만한 아이템은 살 수 있을 듯싶었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두 번째 그릇까지 싹 비워버렸다.
서강림이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영업 끝났습니다. 다 먹었으면 가세요.”
“잘 먹었어요, 강림 씨. 내일 또 먹으러 와도 되나요?”
“영옥 가져오시면요.”
“와, 내일도 올게요!”
꽤 비싼 값을 치렀지만 그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던 식사라, 사람들은 불평불만이 없어 보였다.
내일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에 모두 들뜬 얼굴이 되었다.
다들 원래의 야영지로 돌아가고 남은 사람은 독고준과 신수아 정도뿐이었다.
서강림이 뒤처리를 하다 신수아를 힐끗 보았다.
“왜 안 가십니까?”
“서강림 씨랑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요.”
“나도!”
독고준이 손을 번쩍 들고 말했지만 서강림의 시선은 신수아에게만 꽂혀 있었다.
“말씀하세요.”
“서강림 씨는 이곳의 공략 조건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아뇨. 모릅니다.”
“이 섬에 있는 과수원에서 백향과를 손에 넣으면 공략이 돼요. 하급이라 문제지만.”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서강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수아 씨는 중급 이상을 찾고 계신 모양인가 보군요.”
“네. 그래서 말인데…….”
신수아가 서강림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강림 씨가 힘을 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서강림이 대답하지 않자 신수아는 말을 이어갔다.
“공략을 하려는데 마수보다도 다른 구역 사람들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에요.”
“다른 구역?”
“네. 타 구역과 이번에도 마주쳤는데, 저쪽은 마수보다 우리에게 더 관심이 많더군요. 마주칠 때마다 싸움이 나고 있어요.”
이번에도 전생과 비슷한 양상인 듯싶었다.
그때도 꽤나 치열했다고 듣긴 했지만 신수아를 돕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서강림은 독고준을 힐끗 보았다.
“독고준 씨도 백향과를 획득했습니까?”
“응. 그런데 나도 하급으로는 만족 못 해서. 좀 더 수색해보고 있는데 잘 안되네.”
“그러면 두 분이 같이 활동하시면 되겠네요.”
그 말에 독고준과 신수아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둘 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서로가 그다지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저는 서강림 씨와 합이 더 잘 맞는 것 같아서요.”
“나도 서강림이랑 다니는 게 더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