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요한 신부를 깨웠다.
“요한 신부님.”
“어, 어, 네…… 형제님…….”
“습격입니다. 일어나세요.”
내 말에 요한 신부가 허둥지둥 일어나 안경을 썼다.
텐트를 둘러싼 인원은…… 넷 정도인가?
【우와 첫날은 무사히 지나가나 싶었는데!】
【누구지 누구지?】
【빨리 나가봐 강림아! 무슨 일 일어나는지 보고 싶다!】
【요한 신부 먼저 내보내봐!】
요한 신부를 내보내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나는 요한 신부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나가서 상대할 테니, 신부님은 이 안에 계세요. 도망치시면 오히려 더 곤란해지니 위험해지면 소리쳐 부르시고요.”
“네, 네…….”
요한 신부는 벌써부터 잔뜩 겁을 먹은 상태였다.
나는 놈들이 텐트를 찢고 들어오진 않을까 싶었는데, 텐트를 탐내는 모양인지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잠시 숨을 죽이고 있자, 텐트의 입구 부분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바깥 공기가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나는 그 틈새를 향해 칼을 찔러 넣었다.
“아악!”
찔리는 감각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나는 곧바로 텐트 밖으로 뛰쳐나와 습격자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당황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 잠든 거 아니었나?”
“일단 뺏어!”
“식량이랑 옷, 텐트 전부 수거하도록 해!”
습격자들은 모두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들이 야수처럼 흉흉한 눈을 한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주창을 확인해보니 최소 인급이다.
【와 생각보다 수가 많은데?】
【강림이 혼자 괜찮겠냐?】
【그러게. 다른 애들이랑 같이 다니지 그랬어.】
【야 니네 강림이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 쟤 칠지도도 있다고.】
【그러게? 맨날 안 들고 다녀서 깜빡했네.】
그들의 말대로 칠지도를 들고 ‘투쟁본능’을 사용한다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살려둘 자신이 없다.
높은 확률로 죽이게 될 것이었다.
가급적 살려놓고 정보를 듣고 싶은데…….
한 명만 살려놓으면 충분하겠지.
누구를 살릴지 생각하는 와중 상대가 말을 걸어왔다.
“이봐. 식량만 내놓으면 순순히 놓아주겠다.”
“그래. 우린 도둑이지, 살인자는 아니니까.”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살인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 마경에서 식량을 빼앗는 건 살인에 준하는 행위다.
나는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놓지 않는다면?”
“그러면 강제로 가져가야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대방이 도끼를 들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난 마경에서 마수들을 상당히 많이 죽였던 터라, 내 ‘민첩’은 20단을 넘어 있었다.
나는 상대가 먼저 행동하기 전에 움직였다.
-빠각!
“커헉!”
무릎으로 놈의 턱을 올려 찬 뒤, 곧바로 칼자루로 머리를 후려쳤다.
상대가 비틀거리며 쓰러지자 다른 놈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보다 등급은 높지만, 그렇게 강한 놈은 아니다.
-푸욱!
“아악!”
내가 놈의 허벅지에 칼을 박아 넣자 곧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숨통을 끊어놓으려는 순간.
-퍼엉!
폭발음과 함께 주위가 연기로 가득 차 버렸다.
아마 살아남은 놈이 연막탄을 쓴 모양이었다.
곧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아 뭐야 시시하게. 도망가냐?】
【새끼들, 자존심도 없나보네.】
【강림아, 얼른 잡으러 가봐!】
한 놈을 쫓아가 잡을까 고민했으나 일단 대기하기로 했다.
유인 작전일 확률이 높아보였으니.
내가 이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놈이 텐트로 돌아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곧 연막이 걷히고 주위가 조용해졌다.
근처에 남은 잔당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요한 신부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덜덜 떨고 있었다.
“혀, 형제님. 괜찮으세요? 밖에서 무슨 일이…….”
“도둑이었습니다. 저희 식량을 뺏어가려던 모양이더군요.”
“아, 어떻게 그런…….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요한 신부가 요리조리 내 몸을 살펴보았지만 다친 곳은 없었다.
그가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식량을 훔치려고 했다니…….”
도둑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이곳에 먼저 들어온 뒤 식량이 떨어지자, 후발 주자의 식량을 노리는 도둑들.
방금 전 마주쳤던 최상원 일행도 그런 식으로 식량을 빼앗겼던 모양이었다.
“저희는 텐트도 있어서 더 눈에 띌 겁니다. 또 올지 모르니 내일은 자리를 옮기도록 하죠.”
“네, 네…….”
“일단 얼른 주무세요. 잠을 설치면 내일 일정에 방해됩니다.”
그제야 요한 신부는 불안한 눈치로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가 뒤척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역시 절 안 데리고 오시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제가 발목을 잡고 있는데…….”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내일부터 요한 신부님이 바빠지실 겁니다.”
이곳에서는 요한 신부가 해줘야 할 일이 많다.
괜히 오늘 비싼 음식을 잔뜩 먹인 것이 아니었다.
내일부터는 그가 톡톡히 밥값을 할 것이었다.
* * *
도둑들이 물러간 다음 날.
야영지의 위치를 바꾸느라 서강림 일행은 이동을 하고 있었다.
요한 신부는 풀숲 뒤에 숨어 전투 중인 서강림을 지켜보고 있었다.
거대한 마수들이 서강림의 앞에서 속절없이 쓰러지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요한 신부는 감탄을 하는 한편, 의문을 갖고 있었다.
‘서강림 형제님은 날 왜 데려온 걸까?’
서강림은 강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지금도 마수를 상대로 날듯이 싸우고 있었다.
-꾸이이익!
서강림의 검이 몇 차례 쇄도하자, 흙돼지가 거친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지고 말았다.
땅이 울릴 정도로 거대한 체구였다.
요한 신부가 감탄하는 와중에도 서강림은 묵묵히 영옥을 수거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수가 모두 쓰러지자, 그제야 요한 신부는 쭈뼛쭈뼛 수풀에서 나왔다.
“저, 형제님. 괜찮으신가요? 치료를 먼저 하는 편이…….”
“다치지 않았으니 괜찮습니다.”
아침부터 늦은 오후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전투가 있었으나 서강림은 긁힌 상처 하나 없었다.
이곳에서뿐 아니라 요한 신부의 마경 공략을 도와줄 때.
첫 번째부터 네 번째 마경을 도는 동안, 서강림은 다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내가 필요 없어 보이는데……. 그런데도 굳이 날 데려온 걸 보면 서강림 형제님은 참 좋은 분인 것 같아.’
자신이 마경 공략을 하지 못하자, 가엾게 여겨 도움을 주는 모양이었다.
어제도 그렇게 귀한 식사를 나눠주지 않았던가.
와중에 서강림은 어제처럼 마수를 끌고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요한 신부가 궁금한 듯이 물었다.
“저, 형제님. 궁금한 게 있는데 그 마수는 어디에 쓰나요?”
“오늘 저녁으로 쓰려고 합니다.”
“아하, 오늘 저녁으로…… 네?!”
요한 신부가 식겁한 얼굴이 되어 반문했다.
서강림은 묵묵히 마수를 끌고 강가로 향했다.
그가 마수를 손질하기 시작하자 요한 신부가 겁에 질린 얼굴로 물었다.
“그, 그런데 마수의 고기에는 독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오늘 섬을 돌아다니는 동안, 서강림은 간단한 몇 가지를 설명해 주었다.
근처에 과수원이 있지만 손대지 말 것, 이 마경의 마수들은 독을 갖고 있으니 주의할 것.
그럼에도 서강림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네. 그런데 독을 제거하는 방법이 있는 것 같더군요.”
“어떻게요?”
서강림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부채만큼이나 커다란 잎사귀였다.
“이 잎이 해독 작용을 해준다고 합니다. 이 이파리가 독기가 빠지게 해준다더군요.”
“와, 그렇군요. 형제님은 그걸 어떻게 아셨나요?”
서강림은 대답을 하는 대신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 손을 보고 요한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알려줬나 보구나. 다행이네.’
그렇게 혼자 납득한 요한 신부는 굳이 더 묻지 않았다.
강가 근처에 자리를 잡고 서강림은 고기를 해체하는 동시에 저녁 준비를 했다.
어제 해독을 끝내둔 고기가 오늘의 저녁 재료였다.
그가 고기를 꼬치에 꿰어, 모닥불 위에 올렸다.
곧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신부님, 이제 드시면 됩니다.”
방금 전의 해독초 잎사귀를 그릇 삼아 갓 구운 고기를 올려 두었다.
그럴싸한 모양새에 요한 신부가 감격하는 한편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형제님께서는 안 드십니까?”
음식은 요한 신부 앞에만 놓여 있었다.
서강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 조금 있다가 따로 먹겠습니다. 일단 드세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서강림의 말에 요한 신부는 머뭇거리다가 결국 조금씩 고기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독이 있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생각 외로 맛이 훌륭했다.
요한 신부가 만족스럽게 식사를 끝내고 감사 인사를 했다.
“잘 먹었습니다, 형제님.”
“다 드셨으면 이제 신부님께서 절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아, 물론입니다. 뭐든 말씀하세요!”
드디어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나보다 싶어 요한 신부는 밝게 웃었다.
그런 요한 신부의 앞에 서강림이 무언가를 갖고 왔다.
방금 전 잡은 마수의 생고기였다.
초록빛이 도는 살점에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요한 신부가 의아하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형제님, 대체 뭘 부탁하시려는……?”
서강림은 대답하는 대신 생고기를 잘라 자신의 입안에 넣어버렸다.
아직 해독 과정을 거치지 않은 고기였다.
요한 신부가 놀라서 펄쩍 뛰며 말했다.
“혀, 형제님! 분명 그 고기에는 독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예. 독이 있습니다.”
서강림은 태연하게 한 점을 더 잘라 입에 넣었다.
역겨운 맛이 혀를 통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독이 스며들기 시작하자 그의 핏줄이 조금씩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서강림이 쿨럭거리며 말했다.
“이제부터 신부님이 절 치료하시면 됩니다.”
“네?”
“해독하시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요한 신부가 경악하든 말든 서강림은 천천히 고기를 썰어 입으로 가져갔다.
“자. 시작하세요, 신부님.”
독이 든 고기를 먹을수록 눈에 실핏줄이 서기 시작했다.
신들마저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헐 서강림 너 뭐하냐?】
【엄마 쟤 독 먹어.】
【아니 진짜 그거 왜 처먹냐고.】
【맛있나? 뭔가 복어 같은 건가 봄.】
독이 퍼지기 시작하자 온몸이 뻣뻣해지기 시작했다.
즉사성 독은 아니고 마비성 독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요한 신부는 허둥지둥 이능을 발동시켰다.
[이능 ‘치유의 손’이 발동됩니다!]
요한 신부의 손에서 하얀빛이 감돌자, 서강림은 몸이 빠르게 풀리는 것을 느꼈다.
서강림이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피부색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마비도 풀리고 있었다.
“혀, 형제님 괜찮으십니까?”
“……예, 이제 손도 제대로 움직이네요.”
그가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더니 다시 마수의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요한 신부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전 계속 먹을 테니, 계속 치료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