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서강림은 흙돼지를 쓰러트린 뒤, 그 시체를 짊어지고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최상원이 다급히 말했다.
“그게 중요해? 얼른 기습하자고!”
“으음……. 서강림을 습격해도 식량은 없을 것 같은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시체를 왜 가져가겠습니까? 그것도 우리에게 식량을 대량으로 판 뒤에.”
그 말을 들은 뒤에야 최상원은 정찰꾼이 말하는 의도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피식 웃었다.
“마수를 먹으려고 하는 건가? 멍청하긴…….”
마수를 먹을 수 있다면 최상원 일행이 그렇게 배를 곯았을 리 없었다.
그들도 식량이 떨어지자 마수를 사냥해 먹으려고 하였으나 실패했다.
“이 지역의 마수에게 독이 있는 걸 아직 모르나 봅니다.”
최상원 일행이 마수의 고기를 한 입 먹은 순간, 입안이 마비되며 그대로 뻗어버렸다.
미리 사둔 해독제가 아니었다면 거기서 죽었을지 모른다.
가까스로 해독을 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뒤로는 마수에게 손도 대지 못했다.
“마수를 잡아먹을 생각으로 식량을 판 모양이네. 그러면 곧 저쪽도 식량이 떨어지겠군.”
최상원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쩍 미소를 띤 채였다.
‘분풀이 삼아서 패주고 싶지만……. 중독돼서 쓰러지는 꼴 보는 게 더 속 시원할 테니.’
아직 해독제는 여유분이 남아 있었다.
만약 서강림에게 해독제가 없다면 비싼 값에 해독제를 팔아, 뺏긴 걸 모두 되돌려 받으면 된다.
만약 서강림에게 해독제가 있다면?
그렇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어차피 서강림에게도 식량이 없을 테니, 더 비싼 값에 건량을 되팔면 될 것이었다.
“일단은 됐어. 놈이 마수를 먹고 뻗을 때까지 기다리자.”
최상원의 지시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와중에 정찰꾼이 슬쩍 말을 꺼냈다.
“저기, 기다리는 사이에 과수원에 다녀와도 괜찮을까요?”
“과수원에? 혀 뽑히려고?”
“아뇨, 그게 아니라……. 그래도 서강림 씨가 꽤 많이 죽여놨으니 경비가 허술해지지 않았을까요?”
불안감은 있었지만 방금 전 코앞에서 풍겨오던 과일의 향기가 그리웠다.
건량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향이었다.
“좋아. 일단 가보지. 두 사람은 서강림 감시하고 나머지는 나랑 과수원으로 가자.”
“최상원 씨도요?”
“문제 있어?”
“아, 아닙니다…….”
위험한 곳은 가지 않는 최상원이었지만 이번에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저놈들이 열매를 따서 다 먹은 뒤, 못 얻었다고 거짓말을 한다면?
혹시라도 열매를 빼돌릴까 하는 마음에 최상원은 사람들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슬금슬금 과수원 쪽으로 다가가보니, 원숭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잔뜩 죽어 널브러진 원숭이들의 사체만 보일 뿐.
최상원이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난 여기서 망을 보고 있을 테니, 가서 열매를 따와.”
“네, 네…….”
‘그러면 그렇지’하는 눈으로 최상원을 힐끗 본 뒤, 사람들이 슬금슬금 과수원 안으로 들어섰다.
혹 원숭이가 오지는 않을까 잔뜩 긴장을 한 상태로 최상원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사이, 사람들이 조심스레 나무 위로 올라가 과일을 따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놀란 표정이 되었다.
“어?”
뭘 본 것이길래 저렇게 놀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이 과일을 여러 개 따와서 황급히 최상원에게 돌아왔다.
“최상원 씨, 이것 좀 보세요!”
“뭐? 무슨 일인데?”
최상원은 과일을 먹을 생각에 그저 초조하기만 했다.
그가 뺏듯이 과일을 낚아챈 순간, 최상원 역시 놀란 눈이 되었다.
“어……? 이게 뭐야?”
* * *
짊어지고 있던 흙돼지를 바닥에 내려놓자, 쿵 소리를 내며 바닥이 울렸다.
그 모습에 요한 신부는 기겁을 한 모양새가 되었다.
“아, 형제님. 오셨습니……. 헉, 그건 대체 뭐죠?”
흙돼지는 보통 돼지와는 달리, 커다란 뿔에 흉악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근처에 앉으며 말했다.
“이 근방에서 서식하는 흙돼지입니다. 제가 나간 동안 별일 없으셨죠?”
“네. 형제님이 늦게 오셔서 찾으러 갈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복숭아를 따러 갔다가 최상원 일행과 얽히는 바람에 시간이 좀 늦어지고 말았다.
뭐, 그 덕에 돈은 벌었으니 불만은 없지만.
내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는 동안, 요한 신부는 텐트 앞에 놓인 흙돼지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흙돼지라……. 그런데 왜 여기까지 가져오신 거죠?”
“쓸 곳이 있어서요.”
지금 품 안에 넣어둔 알이 밥을 달라고 난리가 난 상태였다.
과수원에서 서리한 과일을 먹였는데도 아직 성에 안 차는 모양이었다.
흙돼지를 해체하기 전, 일단 이 녀석부터 달래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나는 요한 신부를 힐끔 보며 말했다.
“신부님, 저 마수를 해체할 생각인데……. 전 상관없지만 보실 수 있겠습니까?”
“아뇨! 안에 들어가 있겠습니다!”
요한 신부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나로서는 그가 겁이 많고 비위가 약한 것이 여러모로 다루기 편했다.
나는 요한 신부가 안으로 들어간 뒤, 품 안에서 알을 꺼냈다.
-딱딱딱!
저물대에서 복숭아를 꺼내 주자, 녀석이 허겁지겁 먹이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의 알’의 토(土) 속성이 0.5% 오릅니다.]
[성장 상황: 62.5%]
미지의 알은 어느새 성장률이 60%가 넘었다.
크기도 처음 봤을 때보다 미묘하게 커진 것 같았다.
슬며시 손에 쥐어보자 알 안에서 심장 박동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신들이 신나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 알 이제 곧 있으면 깨어나겠다!】
【어떤 게 부화하려나 궁금하네.】
【뭐 나올지 내기할래?】
【좋아. 난 이무기가 부화한다에 1000영옥 건다.】
【난 삼족오에 1000영옥!】
신들의 입에서 여러 영수의 이름이 쏟아져 나왔다.
다들 흥분하여 부른 액수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2000영옥!】
【3000!】
【5000영옥!】
【야 너 영옥은 있냐?】
뭐가 나올지 자기네들끼리 설레발 치는 모양새가 우스웠다.
와중에 알은 먹이를 더 달라고 항의를 하고 있었다.
-딱딱딱!
눈앞에 놓인 흙돼지가 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대로 달려들 기세라 나는 손으로 알을 밀어냈다.
“안 돼. 이건 네 거 아니야.”
그러나 말귀를 알아먹을 리 없는 미지의 알은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이대로라면 고기를 빼앗겨 버리겠다.
나는 알을 다시 품에 넣은 뒤, 흙돼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일단 저물대에 넣어 두었다.
처리는 나중에 해야겠다.
일단 주변을 다 정리한 뒤, 나는 요한 신부를 불러냈다.
“신부님.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아, 네! 곧 가겠습니다!”
요한 신부가 안에서 부스럭거리더니 무언가를 들고 나왔다.
건량 봉지를 품에 가득 안은 채, 그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몰라서 건량을 많이 받아왔는데 다행입니다. 이 정도 양이면 저희 둘이서 충분히…… 응?”
요한 신부가 밖으로 나온 뒤, 바닥에 놓인 음식들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에 깔린 천 위에, 내가 사온 음식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한약재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삼계탕, 인삼정과, 오색 만두, 십전대보탕…….
저물대에서 보관되던 참이라 아직도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요한 신부가 놀라, 들고 있던 건량을 툭 떨어트렸다.
“혀, 형제님 이건 대체……?”
“혹시 몰라 챙겨온 것들입니다.”
최상원 일행에게는 비상용으로 가져온 건량만 팔아치웠다.
능력치 상승 효과가 있는 음식은 모두 남겨둔 채였다.
이 음식들을 더 비싸게 파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일단은 요한 신부를 잘 먹여야 했다.
이곳에서 그가 할 일이 많았으니.
나는 그가 떨어트린 건량을 주워들었다.
“저 건량 좋아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아니, 고작 건량인데요……! 그건 제가 먹겠습니다!”
“아닙니다. 신부님의 체력이 좋지 않으시니, 잘 드셔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위험할 때 도와주시죠.”
“그렇지만…….”
요한 신부는 망설이기에 몇 차례를 더 설득하니, 결국 그도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가 주저주저 천 위에 앉았다.
“그러면 잘 먹겠습니다, 형제님. 정말 감사합니다.”
요한 신부가 성호를 긋고 짧게 기도를 올렸다.
그는 망설이더니 앞에 차려진 음식을 조심스레 입에 넣었다.
맛이 있는 모양인지 눈이 동그래졌다.
맛도 맛이지만 다른 것이 더 중요했다.
“정말 맛있습니다. 여기서 이런 음식을 먹을 줄은…… 게다가 마력 회복 효과도 있네요!”
“예. 식당에서 파는 음식들은 특수 효과가 붙어 있어서.”
[‘요한 리히터’의 마력 회복 속도가 5% 증가합니다.]
[‘요한 리히터’의 마력 회복량이 5% 증가합니다.]
[‘요한 리히터’의 마력 최대치가 일시적으로 10% 증가합니다.]
요한 신부의 눈앞에 마력 회복 속도가 빨라졌다거나, 마력 회복량이 증가했다는 메시지가 뜨고 있었다.
비싼 값을 주고 사 온 보람이 있었다.
그가 열심히 식사를 하는 동안, 나도 적당히 닭다리를 뜯어 먹다가 입을 열었다.
“신부님, 이 마경에서 주의하실 점이 있습니다.”
허겁지겁 음식을 먹던 요한 신부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가 잔뜩 긴장한 상태로 물었다.
“아, 네. 무얼 주의하면 될까요?”
“사람을 조심하세요. 이번에도 우리 구역이 아닌 타 구역 사람이 여기에 있을 겁니다.”
이번에 조우하는 것은 1구역 사람들.
전생에는 1구역과 2구역이 크게 충돌하여, 마수보다는 사람끼리 싸우는 일이 잦았다고 들었다.
지난 구역처럼 살인마가 있던 것도 아닌데 갈등은 지난번보다 더욱 심했다.
서로 목숨을 걸고 싸웠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그 지경까지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최초 공략 보상 때문에 다툼이 일어났다고 들었는데…….
이유가 뭐든 간에 사람을 경계해야 했다.
특히 요한 신부 같은 사람은 더욱 사람을 주의해야했다.
사람을 잘 믿는 편이라 쉽게 속아 넘어갈 위험이 있었다.
“지난 마경에서도 타 구역과 갈등이 심했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할 테니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면 주의하도록 하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우선은 첫날이니 이만 쉬도록 하죠. 내일부터는 힘들어질 겁니다.”
요한 신부는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렇게 저녁 식사를 끝낸 뒤, 텐트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텐트 안이 안락하여 사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무인도에서의 첫날밤이 깊어갔다.
바깥에서는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요한 신부는 곤히 잠든 상태였다.
나 역시 눈을 감고 누워있던 중.
바깥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눈을 떴다.
……드디어 놈들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