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사주 헌터-40화 (40/256)

<40화>

도발에 공주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그가 이를 빠드득 갈며 말했다.

“미쳤습니까? 우리 팀이 이길 게 뻔한데 쫄릴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내기하시는 거죠?”

“그럽시다.”

그렇게 내기가 성사되자 서문용녀가 뜻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악수를 청하자 공주가 도전을 받아들이듯 손을 잡았다.

“좋아요. 기대되네요.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다들 다음에 봬요.”

서문용녀가 사람 좋은 미소를 남기고 떠나갔으나, 휴게실 안에서는 정적이 돌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온화했던 공주의 얼굴에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가 조용히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들었지?”

“예, 예! 들었습니다.”

“이번에 반드시 우리 팀이 이겨야 한다.”

공주의 두 눈이 투쟁심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눈치를 보던 안나비가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별 조치를 취해야지. 지금 종합 평가가 가장 높은 사람이 누구지?”

안나비가 곧바로 평가서를 띄워 내용을 살펴본 뒤 말했다.

“서강림 씨와 독고준 씨가 거의 비슷합니다.”

“서강림과 독고준이라…….”

첫 번째 문에서 편법으로 공략을 하기는 했으나, 서강림의 성과는 눈여겨볼 만한 것이긴 하였다.

독고준 역시 최초 공략을 했기에 염두에 두고 있던 상황.

독고준과 서강림. 두 사람 사이에서 고민하던 공주가 입을 열었다.

“좋아. 정했다. 그러면 선물을 하나 보내도록 하지.”

공주가 안경 콧대를 스윽 밀어 올렸다.

그의 목소리가 의미심장하였다.

“이번에 반드시 우리 구역에서 최초 공략자를 만든다.”

* * *

[‘검수의 방’을 공략하였습니다.]

[‘안나비’의 전언이 도착했습니다.]

요한 신부는 멍한 시선으로 알림창을 보고 있었다.

공략 메시지를 보고도 그는 기뻐하기보다는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서강림 형제님이 농담을 하신다고 생각했는데…….’

사흘 안에 네 개의 마경을 공략시켜주겠다던 약속.

요한 신부 역시 서강림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최초 공략을 한 기록도 있고, 여러 사람의 입소문을 통해 서강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으니까.

그렇지만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사흘 안은 무리라고 생각했건만…….

“공략 완료 메시지는 도착했습니까?”

뒤를 따라 나온 서강림이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요한 신부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지만 믿기지가 않네요. 어떻게 그 네 곳을 이틀 만에…….”

서강림은 사흘 안에 공략을 하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실질적으로 걸릴 시간은 이틀.

첫 번째 문에서는 이 마경의 지리를 전부 외운 사람처럼 단번에 돌파했다.

두 번째 문도 마찬가지였다.

그중에서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세 번째 문이었는데, 10종류의 마수를 잡아야 하느라 마경을 샅샅이 돌아다녀야만 했다.

“저는 세 번째 방을 못 깰 줄 알았습니다. 클리어 조건이 마수 처치라서…….”

“전투에 기여했다고 판단되면 비전투 인원도 보상을 받더군요.”

요한 신부는 마수를 공격하지 못하기에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서강림이 마수를 처치할 때마다 일부러 부상을 입고 요한 신부가 회복 이능을 사용하여, 전투를 돕는 방식이었다.

네 번째 문에서는 서강림이 자신의 영옥을 주어 순식간에 끝이 나버렸다.

서강림이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세 번째 문에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아쉽군요. 더 빨리 공략할 수 있었는데.”

이보다 더 빠르게 공략할 수 있었다고?

그 말에 요한 신부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이 되었다.

대체 서강림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요한 신부는 얼떨떨하게 있다가 뒤늦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형제님.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 때문에 다음 단계도 못 가시고, 제가 많이 답답하실 텐데…….”

“뭐가 말이죠?”

“제가 마수도 못 잡고, 아무것도 못해서요…….”

싸우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단점인지 요한 신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마수 앞에 서면 온몸이 덜덜 떨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와 같이 다니던 파티원들도 하나둘씩 떠나가고, 어느새 혼자 남게 되었다.

요한 신부가 기죽은 얼굴로 말했다.

“역시 회복 이능만으로는 부족하겠죠…….”

“부족하지 않습니다.”

“예?”

“애초에 의사보고 싸우라고 하는 사람이 이상한 겁니다. 요한 신부님은 의사니, 무리하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 이 시설의 교육생들은 치유 이능의 가치를 모른다.

로비로 돌아오면 비보 장승이 회복을 시켜주는데다가, 매일 환약도 제공이 된다.

상점에서 회복약이 얼마나 비싼 가격에 팔리는지를 안다면 요한 신부를 그렇게 하대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게다가 치유 이능을 가진 사람은 드문 편이었는데, 요한 신부처럼 등급이 높은 경우는 더더욱 드물었다.

전투 이능은 아니라 개인의 성장은 느린 편이지만, 차후 치유사는 많은 문파에서 원하는 직업이 되었다.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 되는 겁니다. 저는 싸우고, 신부님은 사람들을 치료하시면 됩니다.”

“정말 그걸로 충분합니까……?”

“충분합니다.”

요한 신부는 순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마수를 잡지 않아도 괜찮다는 그 말이 요한 신부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서강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면 다섯 번째 방에 가기 전, 준비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에서는 상점창을 못 쓰니까요. 신부님도 준비해두세요.”

“아, 네! 저도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요한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방으로 떠나갔고, 서강림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토우가 반갑다는 듯이 그를 향해 짧은 팔을 흔들었다.

“옷옷!”

그리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물과 건량, 회복약을 꺼내주었다.

서강림이 그것을 챙기며 말했다.

“그리고 오늘은 다른 것도 살 거야.”

“오옷?!”

토우가 놀란 듯한 얼굴이 되었다.

매번 무료로 지급되는 물건만 받아가던 서강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메뉴판을 보면서 하나씩 물건을 고르기 시작했다.

“십전대보탕 10개, 비상식량 10개, 마력 회복차도 10개 줘. 그리고 또…….”

“오옷, 옷?”

토우가 그의 가방을 가리키며 팔을 탁탁 내리쳤다.

‘너 그거 다 담아갈 수 있겠냐?’하는 의미 같았다.

서강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 담을 수 있어. 일단 이렇게 살게.”

그가 식당 한쪽에 놓인 단말기 패드를 누르자, 갖고 있던 영옥이 차감되었다.

어느새 그의 앞에 수북한 양의 음식이 쌓여 있었다.

“오옷, 오옷.”

토우가 ‘환불 불가’라고 적힌 문구를 가리켰다.

서강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물건을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환불 안 해. 걱정마.”

순식간에 그 많던 물건들이 저물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토우가 놀란 눈이 되었다가 이내 기쁘다는 듯이 팔짝 뛰었다.

그러다 별사탕 하나를 스윽 내밀었다.

“이건 안 샀는데.”

“옷옷!”

토우가 ‘서비스’라고 적힌 카드를 집어 들었다.

“고마워. 잘 먹을게.”

서비스로 나온 별사탕까지 챙긴 뒤, 서강림은 상점창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대량 구매했다.

‘최소 일주일은 그곳에서 버텨야 하니까.’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필요한 물건들을 사들이던 중, 그에게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그곳에 적힌 것은 낯선 이름이었다.

[‘공주’의 전언이 도착했습니다.]

* * *

파도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오고 있었다.

하얀 포말이 모래사장을 적시고, 햇빛을 머금은 백사장은 흰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제 몸만 한 크기의 배낭을 멘 요한 신부가 감탄에 젖은 눈으로 말했다.

“이곳은 참 풍경이 좋네요, 형제님. 마경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나와 요한 신부는 방금 전, 다섯 번째 마경으로 들어왔다.

요한 신부의 말대로 이곳은 언뜻 보면 휴양지의 섬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실상은 휴양지와 거리가 멀었다.

“그나저나 여기 임무는 대체 뭘까요? 걱정되네요…….”

요한 신부가 허공에 떠 있는 알림창을 힐끗 보며 말했다.

거기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의아해할 만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발설(拔舌)의 방이 시작됩니다.]

[■■■를 획득하여 로비로 돌아가십시오.]

[제한 시간 : 없음]

제한 시간은 없으나 무엇을 획득해야 하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나 역시 전생에는 공략 조건을 몰라 고생을 하다 어렵사리 클리어를 할 수 있었다.

요한 신부가 금이 간 안경을 쓴 채 알림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게다가 발설이라니……. 이거 혀를 뽑는다는 뜻 아닌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섬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살벌하네요…….”

와중에 이제는 익숙해진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우와아아아! 강림아 너 이제야 왔구나!】

【너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임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선발대는 거의 일주일 전에 왔는데.】

【이번엔 못 보던 사람 데려왔네?】

들어오자마자 떠들어대는 목소리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와중에 내 뒤에 있는 요한에게는 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제법 태연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 해변가를 걷나요? 저 안쪽에 숲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우선은 바깥부터 확인하고 들어가겠습니다. 저희가 늦게 왔으니 먼저 온 사람들부터 확인해보고요.”

“앗, 네.”

30분가량 걸으며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다른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늦게 들어온 편이니 나머지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런데 혹시 여긴 섬이려나요? 어쩐지 무인도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의 추측대로 이곳은 섬이었다.

인간이 살지 않는 마수의 섬.

요한 신부가 울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번 마경은 왠지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특수 조건도 그렇고요…….”

요한 신부의 말대로 이번 마경에서는 다른 마경과는 다르게 제약이 있었다.

새로 생긴 제약은 총 세 가지.

첫 번째. 이번 마경의 임무는 공략 난이도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

여기까지는 언뜻 보면 큰 페널티처럼 느껴지지 않았지만 문제는 나머지 조항이었다.

두 번째 조항은 상점 이용 불가.

그전까지는 회복약이나 식량이 필요하면 바로바로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가장 곤란한 것은 세 번째 조항이었다.

‘이번 마경은 진입 후 공략 완료 전까지 방을 나올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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