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서강림은 4번 구역의 사람들을 힐끗 보았다.
주혜령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눈으로 서강림을 보고 있었다.
남유준이 허둥지둥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화, 확실한 건 아니잖아요. 일단 가요. 우리끼리 조심하면서 다니도록 해요.”
“……하아.”
주혜령은 마른세수를 하다가 결국 뒤로 돌아섰다.
나머지 사람들도 투덜거리다가 곧 자리를 떴다.
신수아가 그 모습을 보다가 서강림에게 말했다.
“큰일이네요. 일단 돌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살인자가 있다는 걸 알려야겠어요.”
“그러죠. 아, 그리고 신수아 씨. 부탁이 있는데…….”
무슨 부탁이냐는 듯 신수아가 그를 바라보았다.
서강림은 잠시 말을 고르다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이 마경에 들어오지 않고, 쌍둥이들을 지켜봐 주셨으면 하는데요.”
“어째서죠?”
“살인마 때문입니다.”
신수아는 이곳에서 살인마에 의해 한쪽 눈을 잃는다.
신수아의 부상을 막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신수아가 이 마경에 들어오지 않게 막는 것이었다.
서강림은 적당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윤겨울이 지난번, 설인한테 죽을 뻔했기도 하고. 또다시 위험한 상황에 두고 싶지 않아서요.”
“그때는 확실히…… 위험하긴 했죠.”
“네. 두 사람 성격을 생각하면 말린다고 해도 들어올 테니, 신수아 씨가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살인자에 대한 단서를 잡을 때까지만.”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약간의 시간 벌이는 가능했다.
신수아는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하지만 두 사람도 임무를 달성해야 하니, 너무 오래 붙잡을 수는 없을 거예요.”
“네. 하루 이틀이면 충분합니다.”
그 말에 신수아는 살짝 묘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다 작게 소리 내어 웃는 것이 보였다.
“서강림 씨, 사부 안 할 거라면서 두 사람을 잘 챙기네요.”
“그냥 기본적인 걸 할 뿐입니다.”
“그래요, 알겠어요. 살인자가 있다고 하는데, 혼자서 괜찮겠어요? 저도 같이 있을까요?”
신수아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서강림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이랑 같이 다닐 생각이니까요.”
“그러면 다행이지만……. 혹시라도 제가 필요하면 부르세요. 조심해야 해요.”
신수아는 그렇게 말한 뒤 먼저 로비로 돌아갔다.
서강림은 떠나가는 신수아를 바라보았다.
전생에 자신을 지키다가 한쪽 눈을 잃었던 신수아.
살인자를 잡지 않는다면 또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었다.
‘살인자가 누구인지는 대략 짐작이 가.’
살인자의 얼굴은 모르지만 체격이나 성별 등으로 추측이 가능한 지점이 있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직접적인 증거.
서강림은 마경도를 펼쳐 위치를 확인하고, 칼날로 된 숲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 * *
-키에에엑!
소귀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나는 소귀의 입에서 흘러나온 영옥을 집어 들었다.
[획득한 영옥 수 : 880/1000]
이제 조금만 더 모으면 네 번째 방도 공략이 끝날 듯싶었다.
사람들끼리 마수를 두고 먹이 싸움이 일어날 법도 했지만 지금 숲은 그저 고요했다.
【강림아 뭐해? 왜 살인자 안 잡아?】
【범인 잡으러 가야지!】
【할아버지의 명예 걸었던 거 잊었니?】
“살인자가 들어오지 않고 있으니까요.”
살인자가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돈 뒤로, 사람들은 사냥에 소극적이 되었다.
아예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살인자로 추측되는 인간 역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상황이었다.
[마경도를 사용합니다!]
[현재 수색률은 80%입니다!]
나는 살인자를 기다리는 한편, 이곳에 숨겨진 무기를 찾고 있었다.
넓디넓은 검의 숲을 어느새 80%가량 확인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쯤되면 무기가 있는 장소를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못 찾을 줄이야.
신수아는 교육시설에서 머무르고 있는 상황.
아마 내일 정도면 다시 들어올 것 같았다.
그녀가 안전한 곳에 있는 사이, 빨리 무기를 찾아내야 한다.
나머지 구역을 수색하려고 발을 옮기던 중.
어디선가 짙은 피비린내가 풍겨왔다.
마수가 아닌 인간의 피 냄새였다.
[‘감각’의 날을 세웁니다!]
나는 ‘감각’을 더욱 집중한 상태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대로 근방에 누군가가 쓰러져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바닥을 적신 피의 양으로 보아서는 죽었을 것이 확실했다.
【또 살인자가 죽인 거야?】
【야 살인 현장 본 녀석 있냐?】
【사람이 죽었는데 명복부터 빌어라.】
【그래, 강림이도 묵념하고 있네.】
내가 가만히 서 있자 묵념을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묵념 따위를 하고 있지 않았다.
이 시체, 뭔가 이상하다.
나는 확인할 겸 이능을 발동시켰다.
[이능 ‘사주 훔치기’가 발동됩니다!]
[현재 범위 내의 사망자 수는 0명입니다!]
설마 부상을 입었을 뿐, 죽지 않은 걸까?
아니,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죽은 척을 하고 있는 상대에게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채앵!
순식간에 내 검이 막혔다.
바닥에 쓰러져있던 상대도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면을 쓴 채였다.
“와, 눈치 엄청 빠르네.”
상대방이 짐짓 감탄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뜻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 내가 휘두른 공격을 받은 탓에 가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가면이 조각조각 나 떨어지자 상대가 씩 웃으며 말했다.
“보던 것보다 실력이 좋네요?”
“…….”
“그렇지만 제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조각이 모두 떨어지자 낯익은 얼굴이 드러났다.
맞닿은 검이 부들부들 떨려오는 가운데 남유준이 씩 웃으며 말했다.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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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남유준
[등급] 인삼품(人三品)
[오행] 화(火)
[신명] 산 자와 망자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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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 살인 충동
[등급] 귀일품(鬼一品)
[설명] 인간을 살해할 경우, 죽인 대상의 능력치 중 10%를 흡수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이능을 사용할 경우 업보가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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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 은둔자
[등급] 인삼품(人三品)
[설명] 일시적으로 몸을 투명하게 만든다. 단, 숨을 내쉬면 투명화가 해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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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동자가 깊이를 알 수 없는 붉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으며 남유준의 사주창을 살폈다.
‘저 신명…… 락샤사인가?’
락샤사는 인도 신화에 나오는 악마 중 하나로, 나찰(羅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악신에 가깝기에 여러모로 추천하기 어려운 신이었다.
남유준의 경우에는 성향이 비슷한 것 같았지만.
“꽤나 익숙해 보이는군.”
“뭐가요?”
“살인.”
보통의 사람은 사람을 죽이는 데에 거부감을 갖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남유준은 큰 죄책감이 없어 보였다.
“굳이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지 않나?”
“그게 말이죠. 저도 어쩔 수 없어서요.”
남유준이 해맑게 웃으며 검을 밀어내곤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그는 전투가 아닌, 마치 즐거운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감옥에서 많이 답답했거든요. 여기에서는 그래도 마수들을 사냥할 수 있어서 얌전하게 지내려 했는데…….”
그렇게 말하고는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나찰 님이 제게 사람을 죽이라고 이능을 주시지 뭐예요. 그래서 죽였죠.”
신내림을 받고, 이능까지 얻었나.
또한 능력치 역시 상당히 높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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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력] 22단
[체력] 15단
[민첩] 15단
[감각] 24단
[마력] 12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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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봤을 때는 대부분 10대 초반이었는데, 어느새 근력과 감각이 20을 돌파했다.
어지간히 사람을 여럿 죽인 모양이었다.
현재 내 가장 높은 수치는 근력과 민첩이 각각 18단.
공적치를 사용하면 간신히 근력을 20단까지 올릴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남유준이 제 어깨를 칼등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그쪽은 그래도 이제까지 본 사람 중에는 꽤 강한 것 같네요. 죽은 척하는 것도 눈치채고.”
[이능 ‘은둔자’가 발동됩니다!]
그가 씩 웃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온 ‘감각’을 곤두세운 채 주위의 반응을 살폈다.
뒤편에서 풀이 밟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앙!
나는 재빠르게 몸을 틀어 뒤편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냈다.
어느샌가 남유준이 뒤로 돌아와 있었다.
그의 공격을 받아내는데 팔이 살짝 저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와, 어떻게 막았지? 그쪽 되게 센가 봐요. 죽일 보람이 있다.”
현 상태로는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고작이다.
주위에는 딱히 사람도 없으니 이제는 거리낌 없이 그 이능을 사용할 수 있다.
[이능 ‘투쟁본능’이 발동됩니다!]
‘투쟁본능’이 발동되자, 나보다 등급이 높은 남유준을 향한 호승심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내 등급이 충일품으로 오르며, 남유준과 큰 차이가 없어졌다는 것.
‘투쟁본능’은 나와 상대의 격차가 심할수록 효과가 커진다.
남유준과 능력치는 비슷하지만, 충일품인 탓에 ‘투쟁 본능’의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은 상태.
그렇지만 이 정도라면 승산이 있다.
-스팟!
“어? 어라?”
나는 자세를 낮춘 뒤 곧바로 남유준의 아래로 파고들었다.
그의 다리를 베어내려 검을 휘두르는 순간 남유준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야, 살인자 걔 어디 감?】
【걔 투명해지는 이능 있어.】
【와 살인하라고 내려준 이능이네.】
【이거 강림이가 못 찾겠는데?】
남유준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오직 그것뿐.
-콰앙!
나는 근처에 있는 나무를 발로 가격했다.
그러자 검으로 된 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무는 왜 걷어차?】
【야! 저기, 저기! 저기 나뭇잎 걸렸다.】
【허공에 나뭇잎 떠 있네?】
주위를 살피자, 나뭇잎들이 어색하게 허공에 걸리는 장소가 보였다.
그곳을 향해 검을 휘두르자, 남유준이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컥……!”
칼끝에 베이는 감각이 닿았다.
숨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남유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당혹한 기색이 되어 말했다.
“저기, 서강림 씨? 우리 이야기 좀 할까요?”
들을 가치가 없는 말이다.
나는 곧바로 남유준에게 공격을 가했다.
-캉, 카앙!
그는 도망치는 대신 검을 들어 올려 공격을 받아냈다.
검이 맞부딪치며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우. 이야기 좀 하자니까……!”
그가 부들부들 팔을 떨면서도 여유롭게 말을 하고 있었다.
내 근력은 남유준보다 살짝 아래지만 민첩은 더 높다.
‘투쟁본능’까지 발휘되었으니 그로서는 내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터였다.
그러나 정면에서 힘을 겨루게 된다면 양상은 달라진다.
남유준도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더 이상 뒤로 물러나지 않고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내가! 이야기! 하자고! 했잖아!”
-캉, 카앙!
그가 소리를 칠 때마다 검과 검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유준의 공격을 막고는 있지만 이대로라면 진전이 없을 듯싶었다.
그가 나를 죽일 기세로 공격을 가해오던 찰나.
-채앵!
수풀 속에서 누군가가 뛰쳐나와 남유준에게 칼을 휘둘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남유준이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독고준이 즐거워 미치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하, 이제 제대로 된 악역이 등장했네!”
살인자보다 더한 미친놈.
독고준이 나타나자 승기가 확연히 기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