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사주 헌터-33화 (33/256)

<33화>

소귀인가?

아니, 그것치고는 덩치가 너무 컸다.

마수들이 모닥불 쪽을 향해 이동하는 것이 보여, 나는 다급히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크르릉……!

강 근처에 곰 두세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수풀곰. 인이품의 마수였다.

“서강림 씨?”

신수아가 나를 발견하고 놀란 얼굴이 되었다.

윤봄과 윤겨울도 자리에서 일어나 마수를 향해 시위와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다.

만수향은 너무 강한 마수는 내쫓지 못한다.

아직은 수풀곰에게 먹히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 내성이 생기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다 문득, 만수향 사이로 묘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잠시 그쪽에 신경이 쏠린 사이 수풀곰 한 마리가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크아앙!

만수향이 나는 세 사람보다 내가 더 만만해 보인 모양이었다.

수풀곰들이 슬금슬금 내게 다가오기 시작하자 신수아가 당황하여 소리쳤다.

“불 쪽으로 와요! 거기는 위험해요!”

“아뇨. 괜찮아요. 신수아 씨야말로 거기서 나오지 마세요.”

수풀곰들은 인이품.

제 속성과 맞는 지역이니 능력이 더욱 증가했을 것이다.

지난번 얻은 이능을 실험해보기에는 좋은 상대다.

나는 곧바로 이능을 발동시켰다.

[이능 ‘투쟁본능’이 발동됩니다!]

‘투쟁본능’이 발동되자마자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세상의 풍경이 하얗게 증발해버리고 오로지 눈앞의 적과 나만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충급의 약자이며, 적수는 인이품의 포식자다.

그 사실을 자각하자 온몸에 두려움이 몰려오는 동시에, 그 두려움은 호승심으로 변화하였다.

[대상이 당신보다 강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투쟁심이 끓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이능 ‘투쟁본능’은 대상이 나보다 강할 경우, 나의 능력을 증가시켜주는 능력.

상대가 강할수록 이능의 효과 역시 증가한다.

평소에는 느껴보지 못한 살의와 투쟁심에 내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온 육체가 저것과 싸우고 싶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크아앙!

수풀곰 한 마리가 달려든 순간, 자각을 하기도 전 나는 칼을 뽑고 있었다.

육체가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수풀곰의 어깻죽지에 칼을 박아 넣은 뒤, 온 체중을 실어 아래로 베어냈다.

-서걱!

수풀곰의 털은 칼날처럼 날카로워, 털이 내 몸을 스치고 가면서 순식간에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즐거웠다.

더 강한 적과 싸우고 싶다고 내면에서 무언가가 소리를 치고 있었다.

-콰직!

곰의 주둥이에 검을 박아넣어 땅에 고정시킨 다음, 두 번째 마수에게 달려들었다.

검은 없지만 아직 쓸 수 있는 것들은 있다.

나는 ‘광염일장’을 발동시켜 온몸에 불을 두른 다음 수풀곰에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광원에 곰이 놀라 뒷걸음질을 치는 순간, 나는 곰의 등에 올라탔다.

-우어엉!

나는 놈의 목을 붙잡은 채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곰이 괴롭다는 듯이 몸을 비틀어 댔다.

칼 같은 털가죽에 온몸이 쓸려나가도 고통보다는 이놈을 이기고 싶다는 감각이 더 컸다.

그나저나 세 번째 놈은 어디에 있지?

다음 적수를 찾으려 돌아보는데 이미 죽어 있는 것이 보였다.

날카로운 나뭇가지에 가슴이 꿰뚫려 있었다.

“서강림 씨!”

신수아가 이를 악문 채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바닥에서 순식간에 나무가 자라나 수풀곰을 포박했다.

수풀곰의 움직임이 잠시 주춤한 사이 신수아가 검을 들어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쿠웅!

곰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신수아가 한숨을 쉬며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괜찮아요? 다치진 않았어요?”

신수아를 보자 가슴이 격렬하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수풀곰보다 더 강한 적수.

싸우고 싶다.

이기고 싶다.

죽이고 싶다.

나는 바닥에 박힌 내 검을 뽑은 뒤 신수아를 향해 휘둘렀다.

두 개의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채앵!

신수아가 재빠르게 검을 꺼내 들어 내 공격을 막아냈다.

그녀의 눈동자에 놀란 빛이 스쳐 지나갔다가 이내 냉정하게 변했다.

“정신 차리세요, 서강림 씨!”

그녀가 순식간에 내 간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명치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이 느껴졌다.

-퍼억!

급소에 신수아의 정권이 제대로 들어왔다.

흥분보다 강한 통증이 느껴지자 서서히 머리가 식는 것이 느껴졌다.

“사부님!”

“사부!”

쌍둥이 남매가 우리 쪽으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신수아가 내 상태를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요?”

머리가 일순 식었다가 방금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내가 신수아를 죽이려고 달려들던 상황.

“……괜찮습니다.”

“일단 상처부터 봐요. 피가 많이 나고 있어요.”

‘투쟁본능’이 종료되자 그제야 고통이 조금씩 밀려왔다.

수풀곰과 싸우느라 여기저기에 상처가 가득했다.

그래도 대부분이 찰과상 정도였다.

아픈 걸로 따지면 신수아의 정권찌르기가 더 아팠다.

“약 있으니 충분합니다.”

나는 환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아직 심장의 두근거림은 남아 있는 상태였다.

신수아가 걱정된다는 듯이 물었다.

“아까 상태가 이상하던데……. 혹시 이능의 효과인가요?”

“제가 맨정신으로 공격했을 거란 생각은 안 하십니까?”

그 질문에 신수아는 농담을 들은 사람마냥 웃었다.

“다짜고짜 정면에서 죽이려고 할 정도로 서강림 씨가 멍청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맞는 말이었다.

그렇다 해도 자기한테 칼을 들이민 사람인데,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 있는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예. 저보다 강한 대상을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이능입니다.”

‘투쟁본능’에는 몇 가지 단점이 있는데, 우선 피아 구분이 불분명해진다.

이능의 발동 조건이 ‘자신보다 강한 적수’가 아닌 ‘자신보다 강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투쟁심 이외의 다른 감정들은 약해져 이성을 잃기가 쉽다.

신수아가 가까이 다가오지 않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안일했다.

내가 아무리 ‘투쟁본능’을 발동해도 신수아가 이길 테지만 그래도 위험했다.

신수아가 아닌 윤봄이나 윤겨울이었다면?

나는 그들 역시 죽이려고 했을 것이다.

……앞으로 이 이능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혼자일 때만 사용하는 게 좋겠다.

“공격해서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그나저나 그런 이능도 있었군요. 서강림 씨도 신내림을 받으셨나요?”

“사부, 우리 신내림 받았어!”

윤겨울이 신이 난 얼굴로 말했다.

윤겨울과 윤봄의 사주창을 확인해보니, 확실히 신명 항목이 추가되어 있었다.

“저는 ‘달과 사냥과 소녀’를 신내림 받았어요!”

“난 ‘태양을 머금은 활시위’.”

‘달과 사냥과 소녀’는 궁술과 사냥의 신인 아르테미스의 신명이었다.

‘태양을 머금은 활시위’는 그런 아르테미스와 남매 사이며 수많은 상징을 가진 궁술의 신, 아폴론의 신명.

두 사람 다 자신과 상성이 잘 맞는 신을 받은 것 같았다.

신수아는 아직 신내림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전생에도 그랬으니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때 윤봄이 생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의 신은 누구세요?”

나는 잠시 침묵했다.

나의 신이라.

내가 영원히 신내림을 받을 일은 없을 터였다.

“전 신내림을 받지 않았습니다. 능력치가 오르다 보니 새로운 이능이 생기더군요.”

“아직 신내림을 받지 않으셨다고요? 이상하네요. 강림 씨라면 벌써 받을 줄 알았는데…….”

【맞아, 너도 신내림 받아야 한다고!】

【왜 자꾸 튕기지? 더 좋은 신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야, 우리도 좋은 신이야!】

세상에 좋은 신 따위는 없다.

전부 제 목적을 위해 인간을 휘두를 뿐이지.

나는 신수아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말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냄새가 나는군요.”

“그러게요. 근처에서 마치…… 과일 썩는 듯한 냄새가…….”

근처를 살펴보니 냄새의 출처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윤겨울이 주위를 얼쩡대며 물었다.

“사부, 뭐해? 어라? 그건 또 뭐야?”

윤겨울이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가리키며 말했다.

뭉그러진 열매에서 묘한 단내가 풍기고 있었다.

그가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사부, 왜 그렇게 노려봐? 먹으려고?”

“아니. 이게 수상해서 보고 있었어.”

“엥? 뭐가 수상한데?”

“이 근처에 과실수가 없어.”

강가 근처에는 나무들이 없었다.

혼자서 열매가 떨어졌다고는 보기 힘든 상황.

게다가 열매는 숲에서 일직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마수를 모닥불 쪽으로 유인하듯이.

윤겨울도 그제야 이상한 걸 눈치챈 듯싶었다.

“사부 말대로 이상하다. 대체 누가 이런 거지?”

“아까 확인해봤는데, 이 열매가 있는 나무에 마수들이 몰려들었어.”

【오, 강림이 잘 아네.】

【마수 복숭아 맛있는데!】

【마수 복숭아가 맛있다고?】

【저거 마수들만 환장하는 과일인데, 너 마수임?】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

검수 마경에서 자라는 이 마수 복숭아는 강렬한 단내를 풍겨 마수를 유혹한다.

그런 열매가 인위적으로 떨어져 있다면?

어느새 옆에 다가온 윤봄과 신수아도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신수아가 입을 열었다.

“마수를 유인해서 저희를 공격하게 만들려고 했군요. 그렇지만 불침번을 서는 동안, 접근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어요.”

“이능을 사용해 접근했을지도 모르죠.”

방금 전, 4구역에서 의심 가는 이능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자리를 뜬 사이 신내림을 받아 새로운 이능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면……. 누가 일부러 우리를 죽이려 했다는 말씀이세요?”

윤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 앞으로는 타 구역과 접촉할 때 주의하는 게 좋겠어.”

“네에…….”

“일단 눈 좀 더 붙여둬. 해가 뜨면 곧바로 돌아간다. 신수아 씨도 주무세요. 제가 불침번을 설 테니.”

신수아는 살짝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녀의 성격을 아는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1시간 뒤에 교대할 테니, 먼저 눈 붙여두세요. 전 중간에 깨는 게 싫어서.”

“……알겠어요. 그럼 부탁할게요.”

세 사람이 불가에 옹기종기 눕고, 나는 거리를 좀 둔 채 앉아 경계를 보았다.

와중에 알은 배가 고픈지 주머니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다들 잠들면 알에게 먹이를 줘야겠다.

그 와중 작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는 저 털가죽 어디서 얻은 거지?”

“그때 잡은 검치호인가봐. 그때 사부님 멋있었는데…….”

“사부 자나?”

“안 잔다. 사부도 아니고. 얼른 자.”

내가 말하자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묵묵히 불가를 지키던 중.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둠 속에서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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