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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사주 헌터-30화 (30/256)

<30화>

【와, 신들 많네】

【한빙의 방은 재미없었는데 이젠 좀 나으려나?】

【애들 아직 햇병아리라 지금도 비슷할 듯.】

【뭐 햇병아리 크는 걸 보는 재미가 있지.】

그 뒤로도 신들이 들어와 대략 10명 정도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신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가볍고 경박한 어투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자기 신명도 밝히지 못하는 저급한 신들이니, 언행도 가벼울 수밖에.

이들은 신이지만 급이 낮아 거의 잡신, 귀신에 가까운 상대들이었다.

내가 슬쩍 하늘을 보자 목소리들이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어? 쟤 우리 온 거 눈치챈 듯】

【딱히 놀라지도 않네?】

【배짱은 마음에 드네. 신내림 해도 괜찮을 것 같고…….】

이렇게 내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딱히 달가운 관심은 아니었다.

그때 눈앞에 알림창이 떴다.

[‘검수의 수호자’가 신내림을 제안합니다.]

이렇게 신내림 메시지를 받는 것도 처음이었다.

검수의 수호자라.

처음 보는 신이었지만 보아하니 이 마경이 토지신같았다.

토지신의 특징은 해당 영역에서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

‘검수의 수호자’를 받으면 이 마경에서는 누구보다 강한 각성자가 될 테지만 그걸로 끝.

일회성의 신이나 다름 없었다.

【뭐야, 바로 신내림 하는 거야?】

【아, 나도 할 거면 빨리 해야겠네.】

【다들 체통 좀 지켜라 좀.】

‘검수의 수호자’가 신내림을 시도하자, 다른 신들도 뒤늦게 신내림 메시지를 보내왔다.

인간이 직접 신에게 계약을 제안할 수는 없지만, 최종 선택권은 인간에게 있었다.

그때, 유난히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불의 주인’이 아이템 ‘신명의 흔적’을 사용하였습니다.】

【10분간 강조 메시지가 활성화 됩니다.】

지금은 목소리들이 어지럽게 섞여 들리는 데다가, 신명조차 알 수 없어 누가 누구인지 확인이 어렵다.

잡신 중에서 상위신을 사칭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초보자들은 그 말에 홀려 허주(虛主)를 받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이렇게 신명을 밝히는 자들만 믿는 편이 현명하다.

‘신명의 흔적’만 하더라도 상당히 비싼 아이템이라, 웬만한 하급신은 엄두도 못 내니 말이다.

【‘모든 불의 주인’이 당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모든 불의 주인’이 화 속성을 지닌 인간이라면 자신이 더욱 키워줄 수 있다 이야기합니다.】

【‘모든 불의 주인’이 자신을 받아들이라 권유합니다.】

‘모든 불의 주인’의 진명은 아그니(Agni).

불의 신으로 오행 속성이 불인 사람에게는 상당히 좋은 신이었다.

게다가 등급도 상당히 높아서 나 같은 충급 사주에게는 감개무량할 정도의 신이었다.

【‘모든 불의 주인’이 지금 무불통신에 접속한 다른 신들은 별 볼 일 없다고 말합니다.】

【‘모든 불의 주인’이 자신에게 신내림 받는 것이 가장 좋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나는 아그니에게 신내림을 받을 생각이 없다.

신내림 메시지를 무시한 뒤 앞으로 걸어갔다.

아그니가 연달아 메시지를 보내왔다.

【‘모든 불의 주인’이 당황하고 있습니다.】

【‘모든 불의 주인’이 다시 한번 신내림을 권유해옵니다.】

【‘모든 불의 주인’이 왜 반응하지 않는지 묻습니다.】

【‘모든 불의 주인’이 이건 몹시 좋은 기회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들이 뭐라고 떠들어대든 나는 신내림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묵묵히 검수를 살피며 마수를 찾았다.

초반부에 있는 충급 마수들이 죽은 채로 있는 것이 보였다.

【‘모든 불의 주인’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불의 주인’이 당신의 행동에 관심을 보입니다.】

【‘모든 불의 주인’이 뭘 살펴보고 있는지 묻습니다.】

내가 살펴보고 있는 건 마수의 시체에 남은 상흔이었다.

그곳에는 검, 활, 총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역시 그 세 사람이 먼저 와서 사냥을 하던 모양이었다.

그들의 흔적을 찾아 살피던 중,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바닥에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또 뭐 보냐?】

【핏자국이네. 핏자국이야 뭐 심심찮게 보는 거고…….】

【어휴 멍청이들.】

【우리가 왜 멍청이임?】

【서강림 쟤가 너네보다 눈치 빠른 것 같다. 쟤는 뭐 이상한 거 알아챘네.】

신의 말대로 무언가가 이상했다.

마수의 피일지도 모르지만 이 근방에 나타나는 마수들은 모두 벌레형 마수다.

죽어도 진액이 흐를 뿐 피가 나오지는 않으니, 인간의 피일 확률이 높았다.

옆에 발자국이 어지러이 남아 있는 것이 확신을 굳혀주었다.

근방을 살펴보니, 저 멀리 마수의 사체가 보였다.

이 부근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나무 원숭이의 사체였다.

누가 일부러 가져다 둔 것이 분명했다.

사체 근방을 살펴보니 곧 수풀 사이에서 덫을 찾을 수 있었다.

【어? 덫이네?】

【와씨 저거 어떻게 발견했냐.】

【서강림도 걸렸어야 했는데 아쉽네.】

【좀 다쳐야 신내림 받을 생각도 들고 그럴 텐데 말이야.】

무색투명한 실이 방울과 함께 발치쯤에 걸려 있었다.

피가 묻어 있으니 발견했지, 아니었다면 나도 걸렸을지 모른다.

실이 당겨지면 근처에 있는 화살이 발사되는 구조.

그리고 그 외에도 쇠덫 등이 놓여 있었다.

【야 강림아 말좀 해봐라.】

【네가 보기에는 무슨 상황인 거 같냐?】

자꾸 말을 걸어오는 게 귀찮았지만 우선 답을 해주기로 했다.

“누군가가 이 함정을 건드려 부상을 입고 자리를 피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신수아, 윤봄, 윤겨울일 확률이 높았다.

“핏자국이 로비가 아닌 반대 방향으로 난 걸 보니, 로비 쪽으로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고요.”

【오오오오, 얘 쫌 예리하다?】

【아까 핏자국 보고 거기서부터 눈치챈거임?】

【와 명탐정이네.】

【누가 다친 거려나. 표정 보니 강림이 네 동료?】

【얘 점점 마음에 든다. 나랑 신내림할래?】

신들이 뭐라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복잡했다.

혹시, 벌써 그놈과 조우한 걸까?

전생에서는 이곳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마주쳤는데, 내가 조금씩 미래를 바꾸어 변동이 있을지 몰랐다.

【‘검수의 수호자’님이 아이템 ‘신명의 흔적’을 사용하였습니다.】

【10분간 강조 메시지가 활성화 됩니다.】

【‘검수의 수호자’가 사람을 찾느냐 묻습니다.】

【‘검수의 수호자’가 자신이 도와줄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토지신이 슬그머니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이곳의 토지신이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뻔히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토지신을 무시한 채, 묵묵히 핏자국을 추적하였다.

【‘검수의 수호자’가 왜 대답을 안하는지 궁금해 합니다.】

【‘검수의 수호자’가 자신을 무시하는 거냐고 묻습니다.】

【‘검수의 수호자’가 흐느끼기 시작합니다.】

토지신이 울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니었다.

핏자국은 점점 깊숙한 곳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칼잎들도 더욱 빽빽하게 나 있어 접근이 어려웠다.

그때 수풀 너머로 사람들이 보였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 너덧 명 있는 가운데,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윤겨울이 보였다.

사람들이 윤겨울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곧바로 검을 빼 들었다.

* * *

“실종된 교육생은 돌아왔나?”

“아뇨, 아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공 팀장님.”

안나비의 보고를 들은 공주는 말없이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휴게실 안에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차사들은 공 팀장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천구남이 실종된 지 벌써 여러 날이 흘렀다.

다른 마경이라면 모르겠지만 설원에서 조난을 당했다면 여러모로 위험한 상황.

최초의 실종자가 나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로 인해 공주 팀장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사실.

그 사실 때문에 차사들은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안나비는 들고 있는 컵을 만지작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한 번 찾으러 가볼까요?”

“아니. 됐다.”

공주는 조금 허탈한 듯이 말했다.

그가 이마를 꾹꾹 눌러 마사지를 했으나 미간 사이의 골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교육 시설 내라면 모를까, 마경 안에 들어간 교육생에게는 우리가 관여할 수 없어. 애초에 다들 사망 동의서도 작성했고.”

천구남 역시 부상, 사망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동의서를 작성했다.

때문에 보호국에서는 나설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안나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안나비, 아직 네가 어려서 여기저기 너무 신경 쓰는 것뿐이야.”

그렇게 말하며 공주는 조용히 커피를 들이켰다.

시체를 봐도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애초에 여기서 죽을 놈이라면, 다음 단계에서 죽었을 거다.”

공주에게서는 조금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빈 컵을 쓰레기통에 내려놓자 토우들이 부지런히 달려와 쓰레기를 가져갔다.

“좀 아깝긴 해. 천구남은 두 번째 방 최초 공략자였으니까.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그는 마치 중요하지 않은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 같은 태도였다.

안나비가 그의 말에 수긍하지 못한 채 침묵하고 있자, 공주가 퉁명스레 말했다.

“안나비. 한 명 죽은 걸로 이 정도면, 이제부턴 어떻게 버틸래? 검수의 방부터는 다른 구역과도 마주치는 거 알잖아?”

“네. 짝수 구역끼리 마주치죠…….”

2, 4 구역의 문은 모두 상당한 거리를 두고 배치되었지만 언젠가는 마주칠 것이 뻔했다.

마경 안이 넓다 한들 제한되어있는 공간이니.

안나비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렇지만 모두가 협력을 할지도 모르잖습니까.”

“하.”

공주가 웃기다는 듯이 짧게 웃었다.

“글쎄다. 마수를 두고 싸움이나 안 일어나면 다행이겠지. 다들 경쟁 관계니까.”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히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같은 구역도 아니니 로비로 돌아가도 마주칠 일이 없다.

게다가 최초 공략 보상이 있으니, 그로 인해 경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었다.

공주가 이를 갈며 말했다.

“홀수 구역에서는 벌써 공략자가 나왔어.”

“벌써요? 어느 구역입니까?”

“1구역이다.”

1구역이라는 말에 안나비는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공주는 1팀 팀장과는 악연인 사이.

그나마 이번에는 짝수와 홀수로 갈려 다행이었다.

“1구역도 해냈는데, 우리 구역이라고 못할 것도 없겠지.”

그렇게 말을 하는 공주의 눈빛이 적의로 가득했다.

그가 이를 아드득 갈며 말했다.

“아니. 무조건 1구역보다는 잘해야해. 최초 공략자는 반드시 우리 구역에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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