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사주 헌터-25화 (25/256)

<25화>

-꾸웨에엑!

분노한 눈돼지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천구남이 뒷걸음질을 치며 다급하게 이능을 발동시켰다.

상공에 수많은 얼음 칼날이 생성되었다.

“저리 꺼져!”

-콰과곽!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수탄 세례가 이어졌다.

눈돼지는 마치 고슴도치라도 된 것 마냥, 온몸에 얼음 칼날이 꽂힌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본 천구남이 미소를 지었으나.

-꾸웨에엑!

눈돼지는 거칠게 몸을 털며 칼날을 모두 떨쳐냈다.

피는커녕 흠집도 제대로 나지 않은 것 같았다.

천구남이 당황하여 뒷걸음질을 쳤다.

‘왜, 왜지? 왜 공격이……!’

이곳은 천구남 뿐만 아니라 마수들에게도 유리한 장소였다.

설원 지대에서 사는 눈돼지 역시 수(水) 속성이기에 천구남의 공격은 큰 피해를 주지 못했다.

그가 이를 악물고 다시 수탄을 장전시켰다.

‘수탄은 안 먹히지만, 마마로 전염시킨다면……!’

그나마 공격이 닿았던 자리에 마마가 돌기 시작하며, 물집이 잡히고 있었다.

천구남이 미친 듯이 수탄과 마마를 발동시켰다.

-꾸웨에엑!

그러나 눈돼지는 도망치지 않았다.

온몸이 물집으로 덮여 가는 와중에도 천구남을 향해 달려들었다.

천구남이 구르고 넘어지며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돼지 새끼가……!”

점점 눈돼지와의 거리가 줄어들고, 마력도 서서히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등 뒤에서 뜨거운 콧김이 느껴지는 듯하였다.

천구남이 눈을 질끈 감고 마지막 힘을 다해 수탄을 발사한 순간.

-쿠우웅!

단말마와 함께 눈돼지가 그대로 쓰러졌다.

천구남은 자신의 코앞에서 쓰러진 눈돼지를 보고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으나 아직까지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 와중, 철원 도령의 목소리 외에 다른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 잡았네?】

【신내림 받은 인간이 있다길래 구경 왔는데 별로 안 세네.】

【그래도 나름 흥미진진하긴 해. 철원이 정도에게 잘 맞는 인간인 것 같고.】

아마도 다른 신들이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고통받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자 천구남은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그가 울컥하여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젠장, 내가 이러는 게 재미있습니까!”

“재미있지.”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그것은 신이 아닌 인간의 목소리였다.

천구남이 뒤를 돌아보려 했으나 너무 늦었다.

서강림은 천구남이 반응할 사이도 주지 않고 그의 어깻죽지에 칼을 박아 넣었다.

-푸욱!

“아아악!”

천구남이 비명을 질러댔다.

칼이 박힌 곳에서 피가 울컥 스며 나왔다.

그가 숨을 헐떡이다 서강림의 모습을 보고 눈이 커졌다.

“다, 당신 그 가죽……. 대체 언제…….”

서강림은 설원 검치호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는 혹 천구남이 수탄을 날릴까 경계하고 있었으나, 사주창을 확인해보니 마력은 이미 0에 가까웠다.

‘예상대로 마력이 금방 다 떨어졌군.’

이 설원은 천구남에게 여러모로 유리한 공간이었다.

수탄을 만들어 낼 물은 무한에 가깝게 존재하고, 소모되는 마력 양도 적다.

단, 천구남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물은 무한에 가깝게 있지만, 그의 마력은 그렇지 않다는 것.

철원 도령의 도움을 받아 마력이 늘어났지만 그래도 그릇의 한계로 인해 무한정 늘어나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천구남은 ‘수탄’을 사용할 때 ‘마마’를 함께 발동시켰다.

그러니 마력이 빨리 닳을 수밖에 없었다.

‘천구남의 능력 중 감각이 낮기도 했고.’

서강림은 설원 검치호의 가죽을 뒤집어쓴 채, 눈밭에서 은신하고 있었다.

만약 천구남의 감각이 높았다면 그 미세한 차이를 눈치챘을 것이었다.

그러나 천구남은 마력을 높이는 데에 주력하여 감각은 기껏해야 2단계였다.

천구남이 ‘마마’가 섞인 ‘수탄’을 무식하게 발포하며 눈돼지들과 싸우는 사이.

그는 천구남의 마력과 체력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지금의 천구남은 무장 해제인 상태나 다름없었다.

서강림이 칼을 좀 더 깊게 쑤셔 넣자 천구남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철원 도령님, 살려주세요!”

그 소리에도 서강림은 겁먹지 않았다.

철원 도령은 하급 신 중 하나.

만신에게 간접적인 도움을 줄 수는 있어도, 직접 해코지를 하기에는 신력이 약했다.

“천구남 씨.”

천구남은 자신의 이름이 마치 끔찍한 무언가라도 되는 것처럼 겁에 질렸다.

서강림이 그런 천구남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자꾸 날 방해하는데, 각오는 하고 이러는 거겠죠?”

“뭐, 뭐……?”

그 말에 천구남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설마 자신을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서강림의 표정에 변화가 없자 그는 더욱 사색이 되었다.

“오빠! 강림 오빠!”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 윤봄이 자그마하게 보였다.

서강림은 그쪽을 힐끗 보고는 검을 거두었다.

“운이 좋군요, 천구남 씨.”

“헉, 헉…….”

“천구남 씨, 도망가야 하지 않겠어요?”

서강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구남은 상처를 감싸 쥐고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왜, 왜 나를 그냥 놓아주지……?’

목숨은 건졌지만 여러모로 불안했다.

서강림은 어디 한번 도망가보라는 듯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젠장, 날 무시하는 건가……!’

울컥한 마음은 있었지만 일단 이 자리를 피해야만 했다.

서강림은 도망치는 천구남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어차피 곧 죽을 테니, 굳이 내가 업보를 쌓을 필요는 없지.’

서강림이 도망치는 천구남을 응시하는 사이, 윤봄이 서강림에게 다가왔다.

“어? 저 사람 누구예요? 오빠 다치셨어요? 피가…….”

“아니. 눈돼지 피야.”

서강림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아직 숨통이 끊기지 않은 눈돼지를 처리했다.

영옥을 챙기는 사이 눈앞에 알림창이 떴다.

[처치한 마수 종류 : 10/10]

[한빙의 방을 공략하였습니다.]

공략에 성공했다는 알림창을 보아도 딱히 기쁨은 없었다.

그때 윤봄이 다급하게 말했다.

“저, 저기. 윤겨울이 안 보여서요. 같이 찾으러 가주실 수 있어요?”

“뭐? 윤겨울이?”

서강림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윤봄은 어쩔 줄 몰라하며 말을 이어갔다.

“죄송해요, 같이 다니라고 하셨는데……. 갑자기 윤겨울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지 뭐예요.”

“마지막으로 본 건 어디였는데?”

“저쪽 절벽쯤이었어요.”

윤봄이 북쪽의 절벽 부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담담했던 서강림의 표정에 균열이 갔다.

‘윤겨울이 죽은 날짜는 오늘이 아니지만, 예감이 좋지 않다.’

갑자기 사라졌다면 마수에게 끌려갔을 가능성도 있었다.

게다가 지금 하늘은 어둑한 색을 띠고, 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곧 폭설이 쏟아질 기세였다.

“강림 오빠……?”

윤봄도 뭔가를 느꼈는지 불안한 눈으로 서강림을 바라보았다.

그가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윤봄, 넌 먼저 돌아가 있어.”

“오빠는요?”

“난 윤겨울을 찾아볼게.”

“저도 같이 갈게요……!”

서강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체가 발견된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모르니, 수색 인원은 많은 편이 좋았다.

어느새 해가 뉘엿하게 저물기 시작해 두 사람의 그림자가 눈밭 위로 길게 늘어졌다.

‘해가 지기 전에는 찾아야 해.’

일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알 수 없었으나, 여유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북쪽 벼랑 부근까지 왔으니 이제부터가 문제.

이곳 어디에 윤겨울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윤겨울!”

서강림이 큰소리로 외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윤봄도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정신없이 주위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한참 동안 윤겨울을 찾던 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요?”

눈밭을 밟으며 나타난 사람은 신수아였다.

이 근처에서 사냥을 하고 있던 모양인지, 옆에 눈돼지가 쓰러져 있었다.

서강림은 윤겨울이 아니라 조금 실망했으나 아쉬워할 틈이 없었다.

그가 빠르게 신수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 근처에서 사람 못 보셨습니까? 이 여자애랑 닮은 남자애인데…….”

“윤겨울 말이군요. 못 봤어요. 최소한 제가 사냥하던 눈돼지 영역에서는요.”

그 말을 듣자 윤봄의 얼굴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서강림이 태양이 뜬 곳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 상태라면 30분 안으로 해가 질 듯싶었다.

서강림이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신수아 씨, 수색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어제 그토록 독설을 내뱉었으니 신수아의 기분이 상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신수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어디를 수색할까요?”

“저는 왼쪽으로 가볼 테니 신수아 씨는 반대쪽을 살펴 봐주세요.”

“그러죠. 찾든 못 찾든 해가 지면 이쪽으로 다시 돌아와서 합류하는 게 좋겠어요.”

두 사람은 빠르게 계획을 정한 뒤 갈라졌다.

서강림은 윤봄을 데리고 절벽 안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먹구름과 함께 침묵이 찾아왔다.

마경의 깊은 골짜기 안으로 들어서자, 두 사람을 둘러싼 얼음 절벽이 하늘을 뚫을 듯 솟구쳐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위험하다.’

서강림은 잠시 발을 멈춰 섰다.

여기까지 오니 윤겨울이 어떻게, 무엇에게 죽었는지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이 깊은 골짜기까지 들어오는 동안 마수와 마주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하급 마수들이 포식자의 영역에 들어올 리가 없으니.

이곳은 이 설원의 최강자가 사는 지역.

실제로 싸워본 적은 없지만 그 누구보다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공략법을 생각해온 서강림이다.

공략하는 방법은 대강이나마 준비해두었지만…….

‘윤겨울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어. 불확실한 요소가 너무 많아.’

그렇다 하더라도 돌아갈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묵묵히 골짜기 안으로 걸어갔다.

사위가 점점 어둑해지고, 냉기가 한층 더 심해질 때 즈음.

“어? 막혔네요……?”

윤봄의 말대로 길이 막혀 있었다.

안쪽에는 꽤 넓은 공간이 있었고 나뭇가지와 지푸라기, 그리고 짐승의 뼈와 가죽으로 보이는 것이 나뒹굴고 있었다.

마치 짐승의 둥지 같았다.

‘자리를 비웠나 보군.’

보금자리의 주인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슬쩍 보니 사체 중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윤겨울이 없는 것을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순간.

-쿠웅, 쿠웅…….

머리 위쪽에서 진동음이 들려왔다.

보금자리의 주인이 돌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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