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두 명의 저격수를 비호문에서 영입한다면, 이번에는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
서강림이 그런 속내를 감춘 채 말했다.
“익숙한 무기를 쓰는 게 좋긴 하겠지. 일단 사냥부터 하자.”
“네!”
두 사람이 대답을 하고는 곧 근처에 있는 토끼들을 쫓기 시작하였다.
서강림도 사냥에 나서기 전, 공적치를 사용해 능력을 올렸다.
[‘근력’이 12단으로 증가합니다!]
[‘체력’이 10단으로 증가합니다!]
[‘민첩’이 12단으로 증가합니다!]
[‘감각’이 15단으로 증가합니다!]
[‘마력’이 9단으로 증가합니다!]
온몸에 피가 돌며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하얗게만 보였던 설원이었는데, 이제는 마수들의 움직임이 똑똑히 보였다.
-서걱!
그는 눈밭을 날 듯이 달려가, 숨어 있던 눈사슴의 목을 베어냈다.
순식간에 설원이 피로 물들어갔다.
평범한 검을 들었을 뿐인데도 그가 쥐자 마치 명검처럼 날카롭게 날이 선 것만 같았다.
“강림이 형, 진짜 세다…….”
근처에서 토끼를 쫓고 있던 윤겨울이 홀린 듯이 멈춰 서서 서강림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눈에는 그저 흰 설원밖에 안 보이는데, 서강림이 휘두르는 곳마다 마수가 있었다.
윤봄 역시 그 장면을 같이 바라보고 있었다.
“엄청 강해……. 첫 번째 문도 혼자서 깼다고 그랬지?”
“응.”
“나도 저렇게 강해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한참이나 사냥에 몰두하던 서강림은 그 근방의 마수를 모두 처리한 뒤에야 멈춰 섰다.
여기저기서 영옥이 굴러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영옥을 모두 획득하기는 했으나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영옥 말고도 필요한 것들이 있으니까.’
주위에 널려 있는 마수의 사체는 그야말로 화수분.
초보자들은 영옥만 챙기기 급급했으나 이대로 두고 가기에는 아까운 부분이 많았다.
‘마수에게서 나오는 가죽이나 뼈, 고기 등은 유용한 재료니까.’
그는 근처에 쓰러져 있던 눈뿔 토끼의 사체를 집어,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작은 뿔 역시 아이템 중 하나였다.
‘나중에 치성 함지에 넣어도 되고, 아이템 재료로 써도 되니까.’
서강림은 해체 작업을 하던 중, 문득 시선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윤봄이 서 있었다.
윤봄은 시선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가 멋쩍게 웃었다.
“왜?”
“아, 아뇨. 신기해서요! 옆에서 구경해도 돼요?”
“마음대로 해.”
윤봄은 헤헤 웃고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해체 작업을 구경했다.
보통이라면 징그럽다며 질색할 법도 한데, 생각보다 담력이 강한 것 같았다.
‘그러니 최고의 사격수가 된 거겠지만.’
윤봄을 매수하여 비호문으로 데려오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서강림은 해체 작업을 하던 중 주위를 둘러보았다.
“윤겨울은?”
“아, 걔 잠깐…… 화장실 간다고 하더라고요.”
이 근처에는 약한 마수만 나오니, 윤겨울에게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또한 윤겨울이 사망한 건 며칠 뒤의 일이었으니.
‘그래도 혹시 모르니 찾아보자.’
그가 해체 작업을 슬슬 정리하기로 했다.
정리를 하는 동안 윤봄이 재잘재잘 말을 걸어왔다.
“이렇게 세면, 강림 오빠는 금방 공략하겠어요. 10마리만 잡으면 되잖아요?”
“글쎄. 10마리가 아니라, 10종류를 잡아야 하는 거니까. 그 10종류 중에는 이 토끼보다 더 강한 놈들이 있을 가능성이 커.”
이 마경은 상당히 넓어 마수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밤에만 출몰하는 마수, 사람이 여럿일 때는 나오지 않는 마수, 특정 날씨에만 출현하는 마수도 있다.
운이 나쁘면 마지막 한 종류를 여러 날 동안 발견하지 못 하는 경우도 있다.
“확실히 저는 오래 걸릴 것 같아요. 마수들이 보호색을 띠고 있어서 찾는 게 쉽지가 않더라구요.”
“너도 곧 익숙해질 거야.”
“정말요?”
윤봄은 기쁘다는 듯이 헤헤 웃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근방에서 윤겨울이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누나, 강림이 형! 이쪽으로 좀 와주세요!”
다소 다급한 목소리.
본인이 다친 것 같지는 않았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강림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가까이 접근하자 윤겨울이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야?”
서강림이 윤겨울을 살펴보니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다친 사람이 있기는 했다.
윤겨울이 쓰러진 사람을 향해 시선을 주며 말했다.
“마수한테 쫓기고 있어서 도와줬는데, 부상을 입었더라고요. 저는 약도 다 떨어졌고…….”
서강림은 부상자를 힐끗 보았다.
상대방은 서강림을 보고는 황급히 시선을 틀었다.
윤봄이 깜짝 놀라 상대방에게 말을 걸었다.
“천구남 씨 아니세요? 왜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온몸이 얼어붙어 쓰러져 있는 사람은 천구남이었다.
동상에 걸려 코끝이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윤봄은 상대가 대답하지 않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독고준 씨랑 같이 다니시는 거 아니었어요?”
“그, 그냥 따로 다니고 있어요.”
그렇게 말했지만 서강림은 알 것 같았다.
따로 다니는 게 아니라 버림받은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제, 젠장. 독고준 자식. 분명 동료라고 해놓고서……!’
처음에는 독고준과 같이 사냥을 하며 나름 괜찮은 콤비라고 생각했다.
자신보다 훨씬 강한 독고준 덕분에 사냥도 쉬웠다.
그가 전투를 할 때 뒤에서 보조를 하는 것만으로도 수월하게 이길 수 있었다.
문제는 독고준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
[천구남, 너는 왜 나서서 싸우지 않아? 주인공이 힘을 숨기는 스타일이야?]
[뭐? 무슨 소리야?]
그렇게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지더니 자기 혼자 납득했다는 듯이 웃었다.
[나 때문에 힘을 제대로 못 쓰는 거지? 미안. 내가 눈치가 없었네. 그러면 당분간은 따로 다니자. 나중에 힘 개방할 때 알려줘.]
그렇게 말하고 독고준은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홀로 남게 되자 그 뒤로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한빙의 방에 들어온 지 몇 시간 째.
혼자 싸우기 시작하자 그는 자신의 약함을 절실히 체감하고 있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마수 한 마리 잡지 못한 상태였다.
‘새로 파티를 구하려 해도, 이상하게 사람들이 상대를 안 해주고…….’
새로 파티를 구하려 했으나 사람들은 천구남이 거짓 정보를 의도적으로 흘렸다고 생각해 피해 다니고 있었다.
파티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혼자 사냥하려고 해도, 수 계열 마수에게 수탄은 잘 안 먹혀.’
게다가 두 번째 방을 제대로 깨지 않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능력치가 낮았다.
‘감각’이 낮으니 마수를 찾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 와중에 눈뿔 토끼에게 찔려 마비 상태에 빠지기까지 했다.
‘빌어먹을, 그 와중에 서강림과 마주치다니.’
제일 보기 싫었던 상대, 서강림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천구남을 바라보다 툭 말을 던졌다.
“도와줘요?”
그 말에 천구남은 울컥하고 성질이 올라왔다.
저도 모르게 날카로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뇨! 전 그쪽 도움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혼자서도 충분한데요?”
“그렇다고 하네.”
그 반응에 천구남은 아차 싶었으나 이미 뱉을 말을 수거할 수는 없었다.
윤봄이 조금 걱정 어린 눈초리로 말했다.
“진짜 괜찮으세요?”
“무, 물론이죠.”
천구남은 이 와중에도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서강림은 한심하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고는 윤봄과 윤겨울에게 말했다.
“괜찮다고 하네. 가자.”
“네, 네……!”
윤봄과 윤겨울은 힐끗 천구남을 보고는 서강림과 함께 자리를 떴다.
혼자 남겨진 천구남은 이를 갈며 분을 삭이고 있었다.
‘서강림, 쪽수만 많지 별거 아니면서……!’
쫓아가서 끝장을 보고 싶었지만, 자신의 실력을 알기에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서강림을 엿 먹일 수 있을까.
천구남이 서강림의 등만 뚫어지게 노려보던 중.
“……어?”
무언가 소리를 들은 듯, 천구남이 뒤를 돌아보았다.
* * *
“으, 이제 그만! 힘들어!”
사냥을 하던 윤겨울이 앓는 소리를 내며 눈밭에 털썩 드러누웠다.
한참이나 활을 쏜 탓에 손가락이 얼얼한 참이었다.
윤봄은 가만히 서 있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이쪽도 지친 것은 마찬가지였다.
‘둘 다 첫날치고는 잘하네.’
서강림은 두 사람이 잡아 온 마수들을 살펴보았다.
종류는 적지만 처치한 숫자는 상당했다.
이쯤 되면 이 근방의 마수들은 거의 씨가 말랐을 지경이었다.
“이제 슬슬 돌아가자. 어두워질 것 같기도 하고.”
서강림은 그렇게 말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말대로 서서히 하늘이 어둑해 지고 있었다.
하산하자는 말에 두 사람도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얼른 돌아가요. 강림이 형.”
그들은 푹푹 꺼지는 눈을 밟으며 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설산의 밤은 빨라 하산하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해가 지고 있었다.
그렇게 발을 옮기던 중, 서강림이 자리에 멈춰 섰다.
“……잠깐만.”
“왜 그래요?”
뒤를 따르던 윤겨울이 왜 그러냐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서강림이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소리가 들렸어.”
“네?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
윤겨울은 ‘감각’ 등급이 낮아 듣지 못한 참이었다.
윤봄 역시 듣지 못한 듯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서강림은 분명, 그 희미한 소리를 들었다.
그것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저기 누가 있어.”
그는 귀를 곤두세운 채,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작나무 숲 너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사, 살려줘!”
이쯤 오니 윤겨울과 윤봄도 그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서강림이 검을 잡아 빼며 말했다.
“너희는 돌아가도록 해.”
“네? 그렇지만 형은…….”
“난 괜찮으니 당장 돌아가. 해가 지기 전에.”
위험한 장소에 윤겨울을 데려갔다가 죽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서강림은 따라오지 말라고 못을 박은 뒤 비명이 들려오는 장소로 황급히 달려갔다.
“시, 싫어. 여기서 죽기 싫어……!”
“다들 침착하세요!”
“으아악!”
혼란스러운 목소리들 가운데, 한 사람의 목소리가 유난히 귀에 들어왔다.
서강림은 숲을 헤치고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 너머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신수아와 몇 사람들이 백야 늑대에게 둘러싸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