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동료요?”
천구남이 얼떨떨하게 반문하였다.
독고준은 여전히 싱글벙글 웃는 낯이었다.
“그래. 당신 정도면 주인공에 가까운 것 같아서 말이지.”
주인공.
그 말에 천구남은 그새 우쭐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독고준, 성격은 좀 이상하지만 강한 각성자지. 첫 번째 방도 두 번째로 클리어 했고.’
독고준이 말하는 주인공이 무얼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높게 쳐주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천구남이 저도 모르게 기세등등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그러면 이야기를 좀 나눌까? 앞으로 동료가 되었으니 친해져야겠지.”
“좋아요. 일단 저 잠시 최초 공략 보상 좀 확인할…….”
천구남은 설레는 얼굴로 보상을 확인했다.
그러나 내용물을 보고는 곧 얼굴이 굳었다.
그에게 도착한 아이템은 ‘사주창 감정서’.
자신의 사주창을 각성시키는 아이템이었다.
‘이건 나한테 딱히 필요가 없는 아이템인데?’
‘사주창 감정서’는 교육 시설에서 퇴소를 하더라도 각성자로 활동할 수 있는 아이템.
‘수상술’이 있는 천구남에게는 딱히 효과가 없었다.
바깥에 나가면 팔 수야 있겠지만 지금 당장 큰 이득은 없었다.
예상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보상에 천구남의 얼굴이 굳었다.
그 와중 옆에서 독고준이 말을 걸어왔다.
“왜? 무슨 일 있어?”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 이야기 좀 하자. 네 과거사나 전사 같은 것도 좀 알고 싶고.”
독고준은 신이 난 얼굴로 그를 끌고 갔다.
서강림은 2층에서 그런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뜻대로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천구남이 주인공 포지션이 된 건가.’
서강림은 독고준과의 내기에서 질 생각도, 이길 생각도 없었다.
만약 자신이 내기에서 이기면 독고준은 더더욱 회귀자라는 확신을 갖고 들러붙었을 것이다.
‘독고준이 이겼어도 내게는 관심이 여전했을 거고.’
때문에 제삼자가 최초 공략자가 될 필요가 있었다.
서강림이 타겟으로 삼은 사람은 천구남이었다.
서강림은 불개구리 가죽에 수정 얼음을 담아와, 사체의 뱃속에 수정 얼음을 넣어두었다.
혹여나 발견하지 못할까 봐 그것도 여러 마리 뱃속에.
그리고 천구남을 최초 공략자로 만들도록 유도했다.
‘그때 독고준의 얼굴이 가관이었는데.’
천구남이 최초 공략자가 되자 독고준은 몹시 당혹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부상을 입은 서강림을 본 순간.
독고준의 두 눈동자에 역력한 실망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천구남도 내 운명을 읽지 못한 것 같았고. 사주 호신부가 나와서 다행이야.’
서강림의 옷 안쪽에는 부적이 한 장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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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사주 호신부
[등급] 귀일품(鬼一品)
[설명] 사주창 중 운명 일부를 보호하여, 타인이 읽을 수 없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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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천구남이 서강림의 사주창을 들여다볼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천구남을 처리하는 일 역시 독고준이 대신 해줄 것이었다.
[대상 ‘천구남’과 ‘독고준’의 사주 궁합을 확인합니다.]
[서로의 상성이 맞지 않아, 심한 갈등이 예상되는 관계입니다. 독고준의 기운이 천구남을 극(剋)하여, 천구남에게 악영향이 발생합니다.]
[‘천구남’과 ‘독고준’이 악연으로 얽힙니다.]
신수아가 서강림의 운명을 생(生)하는 것처럼, 반대로 극(克)하는 관계도 있다.
마치 천구남과 독고준처럼.
‘당분간은 독고준이 내게 관심을 끊겠지. 천구남도 잘 처리해 줄테고.’
서강림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천구남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섬뜩함을 느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 * *
안나비는 제2구역 사무실에 앉아 쏟아지는 메시지를 상대하고 있었다.
각성의 날이 오기 전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각성자들이 나타난 이후로는 일이 더욱 바빠졌다.
‘할 일이 끊이질 않네.’
2팀의 막내인 안나비는 온갖 잡일을 도맡고 있었다.
미각성자들의 교육 담당.
마수 퇴치령이 내려오면 차출이 되었고 또한 공주 부장의 추가 지시도 있었다.
[서강림 그놈을 주시하고 있다가 눈에 띄는 점이 있으면 바로 보고 해.]
때문에 안나비는 쉬는 시간에도 서강림을 주시하느라 경황이 없었다.
다행히 서강림은 도산의 방을 공략한 이후로는 특별한 일 없이, 평범하게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다른 쪽이었다.
‘오늘이 긴급 회의였지.’
어제, 화탕의 방이 공략되었다.
이 역시 예측되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그 일로 인해 긴급 회의가 잡힌 상황이었다.
안나비가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누군가가 벽에 머리를 박고 있는 것이 보였다.
면벽 수련을 하고 있는 주성태를 향해 안나비가 조심히 말을 걸었다.
“저기, 주성태 선배님……?”
그러자 주성태가 고개를 틀어 안나비를 바라보았다.
어제 제대로 잠을 못 잤는지 얼굴이 퀭하게 변해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아.”
이번 사태로 가장 많이 욕을 먹을 사람은 마경 기획자인 주성태였다.
물론 주성태가 욕을 먹으면 안나비한테도 영향이 온다.
지난번에도 주성태가 잡아야 하는 도산무장을 안나비가 잡아 오느라 동이 틀 때까지 일했다.
주성태가 울컥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이래서 한국인들이 싫어! 플레이 타임을 일주일로 예상해서 만들어도 하루 만에 깨버린단 말이야!”
“선배님도 한국인입니다.”
“어쨌거나 싫어!”
주성태가 이렇게 길길이 날뛰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됐다.
공주 팀장의 허가를 받아, 날밤을 새워가며 두 번째 방을 개편했던 주성태였다.
그런데 그것이 첫 회차에 공략되어버렸다니.
“일단 가시죠.”
안나비는 길길이 날뛰는 주성태를 달래며 회의실로 향했다.
오늘 호출을 받은 사람은 교육 담당인 안나비와 기획 담당인 주성태 둘 뿐.
잠시 후 시계가 정시를 가리키자, 그와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공주 팀장이었다.
그는 아무런 말 없이 저벅저벅 걸어와 상석에 앉았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말은 없었지만 그가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는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회의실이 아니라 장례식장 같았다.
“화탕의 방이 첫 시도 만에 공략되었다는 보고를 들었다. 공략자는 또 서강림인가?”
공주의 질문에 안나비가 빠르게 파일을 띄우며 말했다.
“아닙니다. 천구남이라는 교육생입니다.”
허공에 천구남의 프로필이 떠올랐지만 공주는 힐끗 한 번 보기만 할 뿐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주성태에게 닿아 있었다.
“차라리 서강림이 공략했다면, 그놈이 뭔가 특출난 모양인가 보다 했을 거다.”
주성태는 중죄를 지은 사람처럼 아무 말이 없었다.
공주가 안나비를 향해 물었다.
“천구남은 귀급 정도 되나?”
“아뇨, 인급입니다.”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주성태는 눈치만 보고 있었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였다.
“속성과 이능은?”
“수 속성에 수탄이라는 이능을 사용합니다. 물 계열 공격형 이능입니다.”
“화탕의 방을 수월하게 공략할 조건이긴 하군.”
천구남이 자신의 힘으로 공략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에 주성태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공주는 사정 청취를 이어갔다.
“천구남이 화탕의 방을 어떻게 클리어했는지 이야기는 들었나?”
“네. 그런데 조금……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이상한 말?”
안나비가 고개를 끄덕이고 답했다.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불개구리를 죽이다 보니, 그중에서 수정 얼음을 삼킨 녀석이 있었다고.”
“뭐?”
공주도, 주성태도 그 말에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불개구리가 수정 얼음을 먹을 수는 있다.
애초에 불개구리가 수정 얼음을 노리고 달려들도록 설계한 마경이었으니까.
“불개구리들은 얼음 동굴에 접근 못 할 텐데? 장승을 세워 놨잖아?”
장승의 보호 효과로 인해 불개구리가 동굴에서 수정 얼음을 찾아 먹지는 못했을 것이다.
공주가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천구남 외의 다른 사람이 수정 얼음을 찾아내 가져오던 중, 불개구리에게 뺏겼다는 뜻인데…….”
그가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다 안나비에게 물었다.
“천구남과 같이 동행한 사람은 누구지?”
“그게, 서강림 교육생입니다.”
“서강림이라고……?”
서강림의 이름이 거론되자 공주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주성태는 공주가 또다시 화를 낼 것이라 생각했지만, 공주는 고민에 잠긴 얼굴이 될 뿐이었다.
“수정 얼음 동굴을 찾아낸 건 서강림인가? 혹시 그에게 미래 예지와 관련된 이능이 있다면…….”
공주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예지와 관련된 이능은 극소수에 속한다.
정말로 미래 예지와 관련된 이능이 있다면 반드시 운명 보호국에서 확보해야 했다.
주성태가 그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히 물었다.
“그러면 국장님께 사주창 확인을 부탁해볼까요?”
“아니. 지금은 안 돼. 만약 서강림이 예지자가 아니라면, 더 곤란해질 뿐이야.”
선각자는 운명 보호국의 국장이기도 했다.
지금도 국장은 정부 쪽과 비밀리에 회담을 나누느라 비어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런 와중 선각자를 불러 사주창을 확인했는데, 서강림이 별 볼 일 없는 충급 사주라면?
공주의 입지만 더 나빠질 것이 분명했다.
그때 안나비가 분위기를 살피다 조심히 말했다.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확인해보니 장승이 손상되어 마수가 입구까지 접근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장승이 손상되어 있었다면 결국 기획 쪽의 실수라는 뜻이었다.
공주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주성태가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아닙니다! 장승은 아무런 문제없는 걸 배치했습니다.”
“일단 장승부터 수리하고, 시말서 써서 제출해.”
“팀장님! 예상보다 빨리 공략이 된 건, 그만큼 우리 쪽에 유능한 교육생이 많다는…….”
-탕!
공주가 거세게 테이블을 내리치자 주성태가 움찔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주성태는 여전히 억울하다는 얼굴이었다.
공주가 주성태를 노려보며 말했다.
“주성태, 그 발언에 책임질 수 있나? 기획에 문제는 없고 유능한 교육생이 정말 많아서 이대로 세 번째 문으로 가도 되나?”
“그, 그게…….”
“그랬다가 교육생들이 전멸하면, 그때도 정말 책임질 수 있나?”
칼을 박아 넣듯 소름 끼치는 목소리였다.
공주의 날카로운 눈매가 유리알 너머에서 빛났다.
“이제 세 번째부터는 진짜 마경으로 들어선다. 실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세 번째 문에 들어갔다가 죽게 되면 책임질 수 있나?”
첫 번째, 두 번째 마경은 운명 보호국에서 인공적으로 만든 일종의 훈련장.
곳곳에 쉴 곳도 많이 만들어두었고 안전 방책도 세워두었다.
그러나 세 번째부터는 각성자들의 힘으로만 버텨야 한다.
“게다가 내 커리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공주에게는 각성자들이 죽는 것보다, 각성자들이 죽어 자신의 평가가 내려가는 것이 더 걱정이긴 했다.
“우리 쪽이 수준 미달로 죽어 나가는 동안, 다른 팀들은 착실하게 교육생을 키워나가고 있을 거다. 만약 1팀에게 밀리기라도 한다면…….”
현재 공주가 담당한 2구역 외에도 교육생들을 키우는 팀들이 있었다.
각 팀의 팀장들은 일종의 경쟁 관계로, 훌륭한 결과물을 내놓을수록 각 팀장의 평가도 올라간다.
때문에 여러 이유로 준비가 덜 된 교육생들을 다음 단계로 보낼 수 없었다.
그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관자놀이께를 꾹꾹 눌렀다.
“이대로 가면 탈락률이 높아. 우선 세 번째 문의 대기 기간을 좀 더 늘리도록 한다.”
“괜찮으시겠어요?”
“어쩔 수 없지. 상부와는 내가 이야기를 해보겠다.”
공주는 이것으로 할 이야기는 다 끝났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출구 쪽으로 나가던 중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그리고 서강림은 계속 주시하도록 해.”
그 명령을 남긴 뒤, 그는 회의실을 나섰다.
주성태가 이를 악 물었다.
‘분명히 장승에는 문제가 없어. 몇 번이나 확인했다고……!’
그가 증오에 가득 찬 시선으로 파일을 열었다.
서강림의 사진을 노려보며 주성태는 샅샅이 프로필을 훑기 시작했다.
‘서강림, 그놈이 수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