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불개구리는 온도를 기준으로 사냥감을 정한다.
지금 서강림의 온도는 100도가 넘은 상태로, 불개구리에게는 풍경의 일부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개굴.
-개굴개굴.
불개구리가 곧 흥미를 잃고 화탕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서강림은 불이 꺼지지 않도록 꾸준히 몸에 합마유를 바르며 걸어 나갔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중, 서강림은 먼 곳에 있는 동굴을 발견했다.
사방이 붉은 이 마경 속에서 유일하게 푸른빛을 띠고 있는 장소.
그는 서둘러 동굴로 다가갔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몸의 열기를 식히는 시원한 기운이 느껴졌다.
‘얼음 동굴은 위치가 바뀌지 않아 다행이야.’
동굴 안쪽에는 얼음의 색을 띤 종유석과 석빙이 가득하였다.
곳곳에 자라 있는 수정 얼음이 영롱한 빛으로 서강림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서강림이 그중 하나를 뚝 잘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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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수정 얼음
[등급] 귀삼품(鬼三品)
[설명] 얼음으로 이루어진 수정. 소지하고 있을 경우, 수 속성이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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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얼음은 부족한 오행의 기운을 보조해주는 아이템이었다.
귀급 아이템 중에서는 상당히 좋은 물건이고, 영하의 온도에 두면 알아서 자생을 한다.
이대로 수정 얼음을 챙겨 로비로 돌아가기만 하면 끝이 나지만, 서강림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남아 있었다.
“상점창 열어.”
명령어와 함께 상점 시스템이 열렸다.
원래대로라면 세 번째 문이 개방될 때, 운명 보호국 측에서 상점 시스템을 안내해준다.
그러나 영옥을 습득할 경우, 상점창은 자동적으로 열리게 되어있다.
때문에 서강림은 첫 번째 날부터 상점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동안 모아 두었던 영옥을 모두 소모하여 아이템을 구매했다.
곧 서강림의 손바닥 위로 작은 함지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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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치성 함지
[등급] 귀일품(鬼一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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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모아둔 공적치를 영옥으로 바꾼 덕에 가까스로 구매할 수가 있었다.
그나마 치성 함지는 등급에 비해서는 꽤 저렴한 아이템이다.
일종의 도박성 아이템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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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함지에 아이템을 넣고 치성을 드리면 원하는 종류의 아이템이 나온다. 단, 치성이 부족할 경우에는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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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 번 웃기게 지었다니까.’
치성을 드리면 된다고 적혀 있지만, 치성 함지가 원하는 건 말 그대로의 성의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의는 얼마나 귀하고 비싼 물건을 바치느냐였다.
예를 들어 충급 아이템을 넣고, 신급 아이템을 달라고 빌어봤자 원하는 물건은 주지 않는다.
등급이 높은 아이템을 넣어야지만 원하는 물건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서강림이 치성 함지에 수정 얼음을 넣고 합장을 했다.
‘내가 필요로 하는 아이템은 내가 가진 영옥으로는 살 수 없지만, 치성 함지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치성 함지에 귀삼품(鬼三品) 수정 얼음을 넣었습니다.]
‘수정 얼음은 귀삼품, 내가 원하는 것은 귀일품.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귀급이니 가능성은 충분해.’
잠시 후, 함지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치성을 드리고 있습니다.]
[…….]
[충삼품(蟲三品) ‘벌레꿀’을 얻었습니다!]
‘벌레꿀인가.’
회복용 아이템으로 서강림이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서강림은 딱히 실망하지도 않았다.
‘질이 아니면 양으로 승부하면 되니까.’
주위에는 아직도 수정 얼음이 잔뜩 남아 있었다.
수십, 수백 번을 도전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곧 수정 얼음이 달그랑 소리를 내며 치성 함지 안으로 떨어졌다.
서강림은 양쪽 손바닥을 맞댄 뒤, 치성을 드렸다.
* * *
“서강림, 이 빌어먹을 놈…….!”
천구남이 바닥에 침을 뱉으며 욕설을 뇌까렸다.
침에는 부러진 이와 피가 섞인 채였다.
주위에는 처참하게 죽은 불개구리의 사체가 널려 있었다.
“쿨럭, 쿨럭…….”
간신히 화탕에서 도망치기는 했으나 화상을 입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곳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옷은 전부 불타버려 거의 알몸에 가까운 상태.
천구남의 두 눈이 증오로 타오르고 있었다.
‘마주치면 죽여버리겠어.’
그는 서강림을 향해 온갖 저주를 내뱉었다.
당장 그 얼굴에 칼을 쑤셔 넣고 싶을 지경이었다.
‘놈은 어디 있지?’
시간이 오래 지났으니 이곳에 있을지, 아니면 빠져나갔을지 의문이 들었다.
우선은 출구를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천구남이 광인처럼 걸어가던 중, 문득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서강림 붕대 아냐?’
넝마가 된 붕대가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근처를 살펴보자 주위에 핏자국이 점점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을 본 천구남이 씨익 웃었다.
‘놈도 무사하진 못했군.’
본인의 말에 따르면 충삼품이라고 했다.
정말로 충삼품이라면 이곳에서 조무래기 마수들을 상대하는 것도 버거웠을 터.
천구남은 제발 서강림이 이곳에 남아 있기를 바랐다.
‘화탕에 빠트려 죽여주마.’
천구남은 검을 꽉 쥔 채 핏자국을 따라 걸어갔다.
운이 따른 것인지, 한참을 걸어가는 동안 마수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서강림의 핏자국을 따라가던 중 핏자국이 끊겼다.
‘젠장, 이 새끼가 어디 갔지?’
천구남이 허둥지둥 서강림의 흔적을 찾았다.
더 이상 그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다른 것을 발견했다.
‘저게 뭐지?’
그것은 불개구리의 사체였다.
다른 사체와 다른 것이 있다면, 그 안에서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었다.
‘알인가? 아냐 저건……!’
천구남이 다급히 다가가 불개구리의 사체에서 빛나는 그것을 꺼냈다.
방금 전 만졌던 개구리 알의 촉감과는 확연히 다른 감각.
사체에서 얼음을 꺼내 쥐니 한기가 온몸을 타고 퍼져 나갔다.
[아이템 ‘수정 얼음’을 획득하였습니다!]
[‘화탕의 방’ 공략 조건을 달성하였습니다!]
‘이게 수정 얼음이구나! 불개구리 중에서 수정 얼음을 드랍하는 놈이 있었던 거야……!’
한참을 헤매도 찾지 못했던 수정 얼음을 발견한 기쁨에 서강림도 잠시 잊고 말았다.
그는 허둥지둥 주머니에 얼음을 넣었다.
‘내가 만약 이걸 갖고 무사히 돌아가면 첫 번째로 클리어하는 거 아냐?’
최초 공략자라는 칭호가 붙을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졌다.
지금 서강림 따위를 찾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천구남은 헐레벌떡 출입구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더 이상 마수도 안 나타나.’
평소의 그라면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토록 많던 마수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하지만 녹초가 되어있던 천구남은 그저 다행이라고,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발을 재촉할 뿐이었다.
‘이제 다 왔어!’
한참을 걸어 가까스로 출입구 근처로 돌아왔다.
저 멀리 자그마한 문이 보였다.
문을 보자 심장이 벅차게 뛰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내가 1등이기를……!’
천구남이 신에게 빌며 문고리를 열어 당겼다.
그 순간, 알림창이 떠올랐다.
[두 번째 문, ‘화탕의 방’ 최초 공략!]
[대상: 천구남 (1인)]
[최초 공략 특별 보상이 도착하였습니다!]
최초 공략을 알리는 메시지를 본 순간 천구남은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내가 정말로 최초 공략이라고?’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업적.
얼떨떨한 와중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그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화탕의 방이 공략됐다고?”
“누구야? 서강림?”
“어, 아냐. 천구남 씨인데……?”
로비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외와 감탄의 눈빛.
반쯤 알몸이 되어있었지만 부끄러움보다는 희열이 컸다.
사람들이 다가와 그에게 아는 체를 했다.
“구남 씨, 벌써 깨신 거예요?”
“굉장하세요. 하루 만에 혼자 클리어를 하다니…….!”
“저는 아무리 찾아도 수정 얼음을 찾을 수 없었는데 어디서 찾으셨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 있던 얼굴에 평소와 같은 여유가 떠올라 있었다.
그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쉽더군요. 알려드리고 싶지만 제가 좀 피곤해서…….”
“그러면 다음에 꼭 같이 가주세요!”
“네. 네. 알겠어요.”
천구남이 의기양양하게 방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두 번째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나왔다.
“천, 구남 씨……?”
안에서 나온 사람은 서강림이었다.
서강림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천구남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몰골을 보자 천구남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내가 서강림보다 빨리 깼어!’
서강림을 보면 그대로 두들겨 패주고 싶었으나 최초 공략의 기쁨이 너무도 컸다.
천구남이 작게 키득거렸다.
“혼자 도망간 것 치고는 꼴이 말이 아니시네요.”
천구남의 조롱에도 서강림은 묵묵히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천구남은 희열을 느꼈다.
그가 대인배 같은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뭐, 한 번은 용서해드리겠습니다.”
서강림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의 손을 잡았다.
붕대는 어느새 풀려있었다.
서강림의 오른손이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천구남은 그것을 똑똑히 보았다.
[이능 ‘수상술’이 발동됩니다!]
[대상 ‘서강림’의 운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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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서강림
[등급] 충삼품(蟲三品)
[오행] 화(火)
[이능] 광염일장(충이품), 발검(인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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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주창을 보고 천구남은 속으로 놀랐다.
‘뭐야, 충삼품이었어?’
서강림의 사주가 너무도 평범하여 그는 도리어 놀라고 말았다.
이능 중에서 발검의 등급이 살짝 높은 것이 눈에 띄었지만, 그 외에 특이한 점은 없었다.
‘이능 등급이 높아 도산의 방을 쉽게 깬 것인가?’
어딘가 모르게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사주창에 특이한 점은 없었다.
서강림이 슬며시 손을 빼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서강림은 서둘러 자리를 피해 달아났다.
역시 한 대 정도는 후려갈기는 것이 좋았을까, 천구남은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중,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당신, 굉장하네.”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는 독고준이 서 있었다.
손금을 보았을 때, 분명 ‘몽상가’라는 이상한 이능을 가진 남자였다.
독고준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 며칠 전부터 저기 도전하고 있었는데, 내내 실패했거든. 서강림도 저렇게 엉망이 되었는데 그쪽은 하루만에 클리어라니.”
서강림이 언급되자, 천구남은 살짝 불쾌한 티를 내며 말했다.
“……제가 하루 만에 클리어한 게 이상합니까?”
“아니. 흥미로워서.”
독고준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사실은 당신이 주연이었던걸까?”
“……예?”
이야기를 할수록 천구남은 뭔가가 잘못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독고준은 천구남의 반응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난 서강림이 동료거나 주인공일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약하더라고.”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독고준의 두 눈이 알 수 없는 광기로 빛나고 있었다.
“그쪽이 내 동료가 아닐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