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천구남의 촉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반드시 서강림의 비밀을 알고 싶어졌으나 저놈의 붕대가 문제였다.
서강림을 노려보는 천구남의 두 눈동자가 음험하게 빛났다.
‘차라리 반 죽여서 확인해 볼까?’
그때 서강림이 뒤를 휙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천구남이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어, 그게……. 서강림 씨는 왜 혼자서 다니려고 하나요?”
말을 얼버무리려다가 평소에 갖고 있던 의문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서강림은 천구남을 가만히 바라보다 내뱉듯이 말했다.
“통수를 좀 많이 맞고 다녀서요.”
“통수요?”
“예. 어떤 놈이 제 비밀을 우연히 알아내고, 그걸 주위에 퍼트리고 다녀서 고생을 좀 많이 했었습니다.”
그 이야기에 천구남은 어쩐지 양심이 찔렸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분명히 서강림은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죄책감이 들었다.
천구남은 그런 내색을 숨기기 위해 한껏 웃어 보였다.
“그러셨구나. 그래도 잊고 용서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계속 혼자 지내면 자기만 손해잖아요.”
“잊어버리면 같은 방법에 또 당할 뿐이죠.”
서강림은 근처에 쓰러져 있는 불개구리의 사체를 화탕에 툭 차넣었다.
개구리의 사체가 부그르르 가라앉았다.
서강림이 천구남을 향해 말했다.
“당한 만큼은 갚아줘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천구남은 그 말에 살짝 굳어버렸다.
반 죽여서 사주창을 확인하겠다는, 자신의 속내를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그러나 협박성의 말을 들으니 천구남은 도리어 오기가 생겼다.
자신보다는 센 것 같지만, 그렇게까지 센 것 같지도 않다.
그럴 거면 애초에 왜 자신을 데려왔겠는가.
혼자서 이 방을 클리어하지 못할 것 같으니 결국 자신을 파티에 넣은 것이다.
‘놈도 지치고 방심할 때가 있을 거야. 그때를 노려서…….’
손금을 확인하지는 못하더라도 한 번쯤은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서강림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오늘 한 번에 여길 다 돌아보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저쪽 구릉까지만 확인해보고 돌아가죠.”
서강림이 조금 떨어진 구릉 쪽을 가리키자 천구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돌아가고 싶었지만 앓는 소리를 내면 지는 것만 같았다.
구릉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열기가 한층 더욱 심해졌다.
그곳에는 작은 호수 정도 되는 크기의 화탕이 끓고 있었다.
“저기 뭐 있는 거 아니에요?”
천구남이 화탕의 중심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화탕의 중앙에는 작은 바위 같은 것이 올라와 있었는데, 무언가가 반짝거리고 빛이 나고 있었다.
“……저게 혹시 수정 얼음인가?”
천구남은 저도 모르게 미소 짓고 말았다.
서강림은 이곳에 몇 차례나 들어와도 찾지 못한 것을, 자신은 단번에 찾아냈다.
문제가 있다면 저 중앙까지 어떻게 가느냐는 것.
“일단 저기로 가봅시다.”
“가서 어쩌려고요? 저길 어떻게 넘어가려고?”
서강림은 대답 대신 앞으로 걸어나갔다.
천구남은 그런 서강림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미련하게 그냥 건너려는 건가?’
거대한 화탕 쪽으로 다가가자 곧바로 마수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불개구리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화석귀들이 있었다.
서강림은 발치를 공격하는 화석귀를 향해 칼을 꽂아 넣었다.
‘어? 화석귀는 왜 잡는 거지?’
아까까지만 해도 화석귀를 피해 도망가던 서강림이었다.
자신도 화석귀와 싸워봤지만, 화석귀에게는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천구남이 싸울 생각 없이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사이, 서강림이 바닥에 꽂아 넣은 검을 비틀어 위로 올렸다.
그러자 지렛대처럼 검이 화석귀를 뒤집어 버렸다.
-그륵그륵……!
화석귀가 버둥거리고 있자 서강림은 그 중심부에 칼을 꽂아 넣었다.
단번에 화석귀의 버둥거림이 멎었다.
서강림은 그렇게 주위의 화석귀를 한 마리씩 차례대로 해치워나갔다.
주위의 마수가 좀 줄어들자 천구남이 그제야 서강림의 근처로 다가갔다.
“이 화석귀……. 못 잡는 것 아니었어요?”
“잡을 수는 있습니다. 조금 번거로울 뿐.”
화석귀를 뒤집어 보니 마치 게 같기도 하고 거북이 같기도 하였다.
단단한 외피와 다르게 안쪽의 살은 여려 보였다.
‘어떻게 그 사실을 눈치챈 거지?’
천구남은 서강림의 안목에 놀라워하고 있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서강림은 그 사이 화탕으로 다가가 자신의 검을 그 안에 꽂아 넣었다.
“서강림 씨, 지금 뭐해요?”
“수심을 재보고 있습니다.”
검을 빼내자 검날의 절반까지 물기가 묻어났다.
서강림은 화석귀의 사체를 질질 끌고 오더니 화탕을 향해 던져 놓았다.
화석귀는 묵직한 소리를 내며 화탕에 잠겼으나 아예 가라앉지는 않았다.
“화탕의 수심이 생각보다 얕더군요. 천구남 씨도 좀 도와주시죠.”
그 말을 들은 뒤에야 천구남은 허둥지둥 화석귀를 잡기 시작하였다.
한참 작업을 한 끝에 시체로 징검다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서강림은 지친 얼굴로 근처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했다.
‘아까 혼자 싸우느라 꽤 많이 다친 것 같네.’
서강림이 지칠수록 천구남으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그 사이 징검다리는 절반쯤 완성이 되었다.
화석귀가 제법 무거운지라, 그 이상 징검다리를 만드는 건 힘이 들 것 같았다.
“천구남 씨.”
그때 서강림이 무언가를 눈치챘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불개구리들이 오고 있는 듯합니다.”
그가 구릉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서강림의 말대로 불개구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천구남은 검을 그러쥐는 동시에 뒤에 놓인 징검다리를 힐끗 보았다.
-께구르륵!
불개구리들이 달려들기 시작하자 서강림은 앞으로 치고 나갔다.
그리고 천구남은 반대 방향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서강림이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어느새 불개구리들에게 둘러싸여 말할 겨를이 없었다.
‘멍청한 새끼.’
천구남은 서강림을 미끼로 버려둔 채, 화탕의 중심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화석귀의 사체를 밟으며 순식간에 중심부를 향해 다가갔다.
‘내가 먼저 수정 얼음을 갖고 나가야 해!’
서강림이 처음으로 도산의 방을 공략한 후.
사람들은 서강림을 짐짓 존경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천구남으로서는 그 시선이 너무도 탐이 났다.
만약 화탕의 방을 자신이 최초 공략한다면?
‘이걸 내가 먼저 가져가기만 하면……!’
어느새 징검다리는 끝이 나 있었지만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중심부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천구남은 화탕으로 발을 내디뎠다.
“……!”
순식간에 다리에 불이 붙은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예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천구남은 이를 악물고 화탕을 건너 중심부의 바위에 올라왔다.
“허억, 허억…….”
바지는 대부분이 녹아버리고, 살갗은 타는 듯이 아팠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고통 어린 미소를 지으며 바위 중앙에 놓여 있는 빛나는 것을 집어 들었다.
물컹하는 감촉이 느껴졌다.
“……뭐야?”
얼음치고는 감촉이 뭔가 이상했다.
가까이에서 보자, 그것은 영롱한 빛으로 반짝이는 구슬 같았으나 감촉은 물컹거렸다.
아무리 봐도 얼음도 수정도 아니었다.
그것은 불개구리의 알이었다.
-끼르르륵!
천구남이 불개구리의 둥지를 건드리자, 서강림을 공격하던 불개구리들이 일제히 멈췄다.
그리고는 모두가 화탕의 중심부를 향해 몸을 틀었다.
자신의 알이 위험에 처하자 공격 순위가 천구남으로 바뀐 것이다.
불개구리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천구남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서, 서강림 씨! 도와주세요!”
지금은 자존심이고 뭐고 앞뒤를 잴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서강림은 천구남의 말을 무시한 채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서강림 씨! 서강림! 야 이 새끼야!”
천구남이 아무리 불러도 서강림은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양,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순식간에 불개구리들이 천구남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 * *
저 멀리서 천구남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일단 첫 번째 단계는 성공했다.’
서강림은 몸에 묻은 진흙을 툭툭 털어내며 근처의 안전지대로 발을 옮겼다.
‘천구남을 좀 구르게 해줄 생각이었는데, 알아서 화탕에 기어들어갈 줄이야.’
그는 천구남이 길길이 날뛰는 모습을 떠올리며, 불개구리의 사체를 바위 위에 올려두었다.
‘이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서강림이 불개구리의 머리를 잘라낸 뒤 가죽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이 화탕의 방을 공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수정 얼음은 온도가 무척 낮아 불개구리들이 좋아라 쫓아오곤 한다.
때문에 입구까지 가기 전, 불개구리들에게 발목이 붙잡혀 얼음이 녹거나 빼앗겨 버린다.
그렇다해서 공략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민첩이 높은 사람의 경우 수정 얼음을 찾아낸 뒤, 안전지대를 경유하는 식으로 공략할 수 있다.
공격력에 자신이 있다면 불개구리를 모두 잡은 뒤, 수정 얼음을 가져가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그 외의 방법도 존재하지.’
불개구리의 배를 가르자 그 안에서 역겨운 냄새가 열기와 함께 훅 끼쳐왔다.
서강림은 미간을 찌푸린 채 내장을 들어냈다.
그 안에서 기름주머니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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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합마유(合䗫油)
[등급] 충삼품(蟲三品)
[설명] 불개구리에게서 얻을 수 있는 기름. 다용도로 사용되는 치료제이다. 일반적인 기름처럼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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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림은 합마유를 짜내 몸 곳곳에 나 있는 화상 자국에 발랐다.
살짝 따끔했지만 곧 붉은 흉터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냄새가 좀 나지만 화상에는 효과가 좋으니.’
그는 온몸에 합마유를 바른 뒤, 나머지 불개구리들도 해체해서 필요한 양만큼의 합마유를 얻었다.
남은 사체는 껍질을 벗겨내 따로 보관을 해두었다.
불개구리의 가죽은 뛰어난 방열 효과가 있어서 가죽 안에 얼음을 담아가면 거의 녹지 않기 때문이었다.
서강림은 가방에 합마유와 개구리 가죽을 담은 뒤, 밖으로 나왔다.
‘이제 수정 얼음이 있는 곳까지 가면 된다.’
그렇지만 수많은 마수를 물리치며 그곳까지 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때문에 서강림은 불개구리들을 피해 가기로 계획했다.
[이능 ‘광염일장’이 발동됩니다!]
순식간에 손안에서 작은 불덩어리가 만들어졌다.
이 마경 안에서 화염계 이능은 공격에 큰 도움이 되지 않지만 공격 외로도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화르륵!
서강림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자, 작은 불꽃이 합마유를 따라 온몸에 퍼져나갔다.
‘광염일장’은 서강림에게 적당한 온기만을 전달할 뿐, 데미지를 주지는 않았다.
온몸을 불덩어리로 만든 뒤 화탕 쪽으로 다가가자 불개구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굴?
평소 같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었을 불개구리들이지만, 지금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치 서강림이 보이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