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신수아는 그런 서강림에게 자꾸 시선이 갔다.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서강림 씨가 강한 것 같긴 하지만, 혼자서 다니는 건 좀 걱정이 되는데…….’
-똑똑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밖으로 나와 보니 한 사람이 앞에 서 있었다.
“아, 신수아 씨. 안녕하세요.”
문 앞에 서 있던 사람은 오늘 함께 사냥을 가기로 한 사람이었다.
약속 시간까지는 꽤 시간이 남아 있었는데 방문을 한 걸 보면 다른 용건이 있는 듯하였다.
“안녕하세요.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신수아는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상대는 어딘가 모르게 표정이 좋지 않았다.
신수아의 질문에 그는 어물대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죄송한데……. 오늘 같이 사냥 가기로 한 거 취소해도 될까요?”
“무슨 일 있나요?”
그 질문에 상대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더니,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게, 다른 사람이 같이 사냥을 가자고 해서요…….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누구랑 같이 가세요?”
“그게 서강림 씨랑 같이 가게 되었어요.”
“네?”
서강림이 거론되자 신수아는 의아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분명 서강림은 늘 혼자 다니지 않았던가?
신수아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자리가 비면 저도 같이 갈 수 있을까요?”
“아마 한 자리가 빌 것 같긴 한데……. 일단 같이 가보죠.”
신수아는 서강림이 내심 신경 쓰이고 있어, 그와 좀 더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두 사람이 로비로 내려오자, 서강림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상대방이 서강림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서강림 씨. 혹시 오늘 도산의 방 갈 때, 한 사람 더 같이 가도 되나요?”
“그 사람이 신수아 씨인가요?”
“네, 네. 원래 저랑 같이 가기로 했어서…….”
서강림이 신수아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신수아 씨는 좀 곤란합니다만.”
“저는 왜 곤란하죠?”
서강림은 아무 말 없이 다른 일원에게 시선을 보냈다.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는 듯이.
상대방은 망설이다가 곧 자리를 떴다.
두 사람만이 로비에 남게 되자 신수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 이젠 좀 바뀌신 것 같네요. 그런데 저는 왜 안된다는 거죠?”
“저는 두 번째 방을 최대한 빨리 공략해야 하는데, 지금의 신수아 씨는 실력이 부족합니다.”
서강림의 냉정한 말에, 신수아는 조금 놀란 눈이 되었다.
그러다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그렇게 약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데요.”
“그렇겠죠. 하지만 다음 방에서는 신수아 씨의 능력이 약화 됩니다. 두 번째 방을 미리 들어가 보니, 그곳은 화(火) 속성이었습니다.”
신수아는 무슨 의미냐는 듯, 서강림을 바라보았다.
그는 묵묵히 설명을 이어갔다.
“첫 번째 방은 금(金) 속성으로 목(木) 속성인 신수아 씨와는 상극이죠. 신수아 씨도 느끼셨을 겁니다.”
신수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강림의 말대로 첫 번째 방에 들어갔을 때, 숨이 턱 막히며 알림음이 들려왔었다.
[금(金)의 기운이 ‘신수아’의 운명을 극(剋)합니다.]
마경의 속성에 따라 운명이 생(生)하기도, 극(剋)하기도 하였다.
두 번째 방은 화 속성, 신수아는 목 속성.
그제야 신수아는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는 얼굴이 되었다.
“확실히 두 번째 방은 저에게 불리하겠네요.”
지난번, 빌딩에서 신수아의 나무를 태우며 서강림의 불은 맹염으로 자라났었다.
그런 역학 관계라면 불 속성 마수와 마주쳤을 때, 신수아의 능력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신수아가 키워낸 나무는 불 속성 마수의 좋은 장작감이 될 테니.
“지금의 신수아 씨와 같이 간다면, 제가 발목을 붙잡힐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행은 어려워요.”
당신의 실력이 부족하니, 동행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다소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을 법한 말이었음에도 신수아는 크게 기분 나쁜 기색은 아니었다.
‘다른 이유를 대며 적당히 거절해도 되는데, 왜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지?’
일행이 더 있다고 하면서 거절을 하더라도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무난히 넘어가려면 그쪽이 나을 것이었다.
하지만 서강림은 그녀를 데려가지 못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나한테 단서라도 주는 걸까?’
서강림은 내심 냉정하게 굴면서도, 다음 마경에 대한 단서를 주고 있었다.
덕분에 신수아는 다음 마경을 가기 전, 대처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서강림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제 납득 하셨나요?”
“네. 어느 정도는요. 그리고 또 궁금한 게 있는데…….”
서강림이 뭐냐는 듯이 바라보았다.
신수아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독고준 씨랑 많이 친한가 봐요?”
“……네?”
그 질문을 받을지 몰랐는지, 서강림의 눈이 미미하게 커졌다.
신수아는 말을 이어갔다.
“첫날에 제가 같이 가자고 했을 때는 혼자 다니는 게 편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죠.”
“그리고 그 뒤에는 독고준 씨랑 같이 사냥을 하러 갔고요.”
서강림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네. 적당히 친하죠. 그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의도가 뭐죠?”
“아뇨, 그냥……. 다음에는 저도 서강림 씨랑 같이 사냥하면 좋겠어서요.”
신수아는 그렇게 말한 뒤, 근처를 힐끗 둘러보았다.
서강림과 같이 가기로 한 사람은 언제쯤 대화가 끝나나 주변을 서성이는 중이었다.
“너무 시간을 빼앗은 것 같네요. 그러면 이만 가볼게요. 충고해줘서 고마워요.”
신수아는 살짝 눈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떴다.
서강림은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건량 하나랑 물통 줘. 환약도.”
“옷옷!”
내가 주문을 하자 토우가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물건을 가져다주었다.
제 몸만 한 물통을 낑낑거리며 옮기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토우가 메뉴판을 턱 쳤다.
“옷? 오옷!”
메뉴판에는 여러 음식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잠시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이곳의 음식에는 특수효과가 붙어 있어, 섭취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편이었다.
예를 들어 이곳에서 파는 냉녹차의 경우, 마시면 수 속성 내성이 증가한다.
두 번째 방을 클리어할 때 마셔두면 좋은 식품 중 하나였다.
신수아에게 유용한 아이템일 텐데.
“오옷?”
“……아니. 됐어.”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식당을 나섰다.
신수아에게 호의를 베풀기에는 조금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내가 거리를 두는데도 계속 접근을 하고 있었다.
나름 냉정하게 대했다고 생각하는데도 그녀는 전생처럼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쁘진 않지만, 좋지도 않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필요할 때만 비즈니스적으로 사냥을 다니는 사이 정도가 좋은데.
신수아의 생각으로 머리가 조금 복잡했지만, 우선 당장의 할 일을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아이템을 챙겨 로비로 향했다.
마경으로 들어서기 전 장비를 체크하고 있는데, 두 번째 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가 힘겹게 빠져나왔다.
독고준이었다.
안에서 꽤 구른 모양인지 옷 여기저기가 그을려있고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아, 서강림.”
그가 나를 보고는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독고준은 그날 이후, 계속 두 번째 문에 도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독고준이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도 파티 맺고 사냥 가?”
“그럴 생각입니다만.”
“좀 비겁하지 않아?”
독고준 입에서 비겁이라는 말이 나오니 무척 신선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독고준을 응시하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너랑 나랑 누가 먼저 공략하는지 내기했잖아. 그런데 그날 이후부터 파티라니……. 혼자 행동해야 주인공에 걸맞지 않겠어?”
“내기 정할 때 혼자 다녀야 한다고 정했던가요?”
그 말에 독고준은 조금 실망한 듯한 눈치가 되어 말했다.
“으음……. 그런 건 아니지만, 말하지 않아도 당연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면 독고준 씨도 파티 구해서 공략하시죠.”
“…….”
독고준은 조금 실망한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실망한 눈빛이 나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이내 독고준은 평소처럼 미소 지었다.
“뭐, 그런 스타일의 주인공도 있는 거니까.”
그렇게 말을 한 뒤 독고준은 피를 뚝뚝 흘리며 비보 장승 쪽으로 걸어갔다.
생각보다 아량이 넓다고 해야 할지…….
원하지 않는 부분에서 배포가 넓은 독고준이었다.
그래도 결국은 내게 실망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그때, 누군가가 2층에서 다급히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강림 씨!”
목소리의 주인공은 천구남이었다.
그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 신이 나 보였다.
천구남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게 다녀왔다.
“저 어제 첫 번째 방 클리어했습니다!”
전생보다 빠른 공략 속도였다.
이삼일은 더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천구남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때 분명 클리어하면, 같이 파티하기로 했었죠?”
“생각해본다고 했습니다만.”
“그래서, 생각해봤어요?”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천구남을 바라보았다.
마치 평가하듯이 위아래로 훑어보자 천구남은 조금 불쾌한 기색이 되었다.
“속성이랑 보유하고 있는 이능이 어떻게 됩니까?”
“저 수 속성이고, 수탄이라는 이능을 갖고 있습니다. 물로 탄환을 만들어서 쏘아내는…….”
지난번 등급을 속이길래 거짓말을 할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는 시늉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같이 가죠.”
그 말에 천구남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힐끗 뒤를 돌아보니 독고준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관찰당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갑시다. 장비는 챙겼습니까?”
“아, 식당 가서 물만 좀 받아 올게요!”
“같이 가죠.”
혼자 있다가는 독고준이 또다시 따라붙을 것 같았다.
식당으로 향하는 사이 천구남이 싱글싱글 웃으며 나를 바라보다 말을 붙였다.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뭐가요?”
“생각보다 순순히 승낙하셔서요.”
그는 토우가 내민 물통을 챙겨 넣었다.
나는 묵묵히 천구남의 말에 답을 해주었다.
“같이 갈 법한 사람들을 찾아봤는데, 딱히 괜찮은 이능이 없어서요. 두 번째 방에서는 수 속성이 좋을 것 같더군요.”
“두 번째 방은 어떤데요?”
우리는 로비로 돌아와 두 번째 문 앞에 섰다.
내가 문고리를 잡으며 말했다.
“불지옥이죠.”
또한 천구남, 그에게도 지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