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비밀 구역은 일반 구역에 비해 난이도가 급상승합니다!]
[모든 길에 함정과 마수가 존재합니다!]
[일반 구역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첫 번째 방답게 여러 안전장치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돌아갈 생각이 있었다면 들어올 일도 없었다.
나는 곧바로 동쪽 통로로 발을 옮겼다.
-키이익……!
그 안에는 마수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인골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실제로는 다른 마수.
‘전사 인골귀’들은 훨씬 더 튼튼한 무구를 갖춘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의 내 상태로는 저들을 이기기 어려웠다.
독고준이 같이 왔다면 쉽게 잡았겠지만, 나는 그에게 이 구역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대신 준비는 모두 끝내둔 상태였다.
[공적치를 투자하여 근력이 4단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방금 전, 나는 일반 구역에서 상당량의 공적치를 쌓은 상태였다.
일부러 마수가 나오는 방만 골라서 들어간 덕분이었다.
혼자라면 위험했을지도 모르지만, 옆에는 신급 각성자 독고준이 있었다.
덕분에 예상보다도 더 많은 공적치를 쌓을 수 있었다.
나는 남은 공적치로 근력을 한 단계 더 올렸다.
[공적치를 투자하여 근력이 5단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 정도면 전사 인골귀라도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검을 거둔 뒤, 다음 방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수많은 인골귀가 버글대고 있었다.
-그르르륵……!
그것들이 모두 나를 돌아보았다.
내 눈에 그것들은 마수가 아닌 공적치 덩어리로 보일 뿐이었다.
나는 손에서 화염을 일으키며,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공적치를 10점 획득하였습니다!]
요란한 파열음과 함께 마지막 인골귀가 박살이 났다.
몇 시간째 마경을 돌파하며 족히 수십 마리의 인골귀를 잡았음에도 서강림은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전생에 고생을 한 것에 비하면 믿기 어려울 정도의 결과였다.
‘확실히 초반에 능력치를 올려두니 여러모로 편하네.’
서강림은 인골귀를 정리한 뒤, 자신의 사주창을 불러왔다.
그 사이 등급이 제법 올라 있었다.
═══════════════
[근력] 5단
[체력] 4단
[민첩] 4단
[감각] 4단
[마력] 3단
═══════════════
전생에는 이곳을 서너 번 돈 뒤에나 평균 2단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였다.
서강림은 사주창을 확인한 뒤 다음 통로로 발을 내디뎠다.
‘이제 출구에 다 왔군.’
이대로 직진하면 보스방이 나올 것이었다.
그러나 서강림은 발을 돌려 동쪽 통로로 향했다.
-휘이이잉…….
동쪽에서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고 있었다.
입구에 서서 안쪽을 살펴보았으나, 조명이 없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이능 ‘광염일장’이 발동됩니다!]
바람 소리가 그친 순간, 서강림은 불꽃을 안으로 던져 보았다.
어둑했던 방 안이 환해지자 바람 소리의 정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아직은 함정이 있구나.’
거대한 사면 칼날이 복도 양옆에 있었다.
칼날들은 믹서기처럼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바람 때문에 곧 불이 꺼지며 암흑이 찾아왔다.
‘이제 보스만 처리하면 되겠군.’
서강림은 왔던 길을 돌아가, 북쪽으로 향했다.
보스방에 가까이 다가가자 순간 공기가 일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보스방은 이제까지 지나온 곳과는 분위기가 확실히 달랐다.
얼핏 보아도 4~5배 정도는 넓어 보였으며 근처에는 수많은 칼날들이 섞여 도산(刀山)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서 있는 마수.
2m 정도 되는 거구가 갑옷을 걸친 채, 한 손에 거대한 사검(蛇劍)을 들고 있었다.
═══════════════
[이름] 도산무장(刀山武將)
[등급] 인삼품(人三品)
[설명] 검의 대가로 알려진 마수. 두 마리가 한 몸처럼 움직인다. 동시에 쓰러트리지 않는 이상 바로 수복이 된다.
═══════════════
등급은 인삼품(人三品).
현재 서강림의 능력치로는 저 둘을 동시에 잡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서강림은 망설임 없이 광염일장을 쏘아 날렸다.
-퍼엉!
-그르르륵?!
불꽃이 명중하자, 도산무장 두 마리가 동시에 고개를 틀었다.
네 개의 눈이 침입자를 포착한 순간.
도산무장이 곧바로 서강림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크오오오!
온 마경이 떨려오는 것만 같은 진동.
서강림은 남은 공적치로 민첩을 7단으로 올린 뒤, 빠르게 도주했다.
뒤에서 분노에 찬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충분히 유인할 수 있겠어……!’
등 뒤에서 위협적인 진동이 느껴지고 있음에도, 서강림은 동요하지 않고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가 날렵하게 복도를 질주하던 그때.
앞쪽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서강림은 곧바로 동쪽 방으로 뛰어들어, 옆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몇 초 차이로 도산무장이 그 뒤를 쫓아 안으로 들어온 순간.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카가가각!
어둠 속에서 칼날이 스파크를 내며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도산무장이 그 사이에서 갈려 나가고 있었다.
-크아아……!
도산무장이 벗어나 보려 했지만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와 버렸다.
뼈와 갑옷이 갈려 나가는 와중, 두 번째 도산무장이 도착했다.
위기를 감지한 도산 무장이 다급하게 멈춰 섰으나, 그와 동시에 등 뒤에서 상당한 충격이 느껴졌다.
-쿠웅!
어둠 속에서 뛰쳐나온 서강림이 도산무장을 온몸으로 들이받았다.
당황한 도산무장은 다급히 힘을 주어 버텨내려고 했다.
그러나 곧 도산무장의 몸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근력이 7단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서강림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공적치를 일정량 남겨 두었다.
근력이 올라가자 점점 도산무장이 밀리기 시작했다.
놈이 발버둥을 치려 했으나 조금씩 칼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오오오!
온몸의 근육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으나, 서강림은 이를 악물고 도산무장을 앞으로 밀쳐냈다.
그 순간, 도산무장이 중심을 잃고 앞으로 휘청 넘어졌다.
칼날은 기다렸다는 듯이 먹잇감을 집어삼켰다.
-가가가각!
비명과도 같은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날에 갈려 나가는 뼛조각이 마치 칼날처럼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굉음과 함께 알림창이 떴다.
[‘인삼품 도산무장’을 처치하였습니다!]
[공적치를 계산 중입니다.]
[당신보다 강한 대상을 쓰러트려 추가 공적치가 발생합니다!]
상당량의 공적치가 쌓이고 있음에도 서강림은 만족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직 갈려 나가고 있는 도산 무장 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
그때, 알림창이 하나 더 떴다.
[범위 내의 사망자를 확인하였습니다.]
[이능 ‘사주 훔치기’를 사용하겠습니까?]
이것이 비밀구역에 방문한 진짜 목적이었다.
바로 마수의 사주를 훔치기 위해.
일반적으로 마수에게는 사주가 없기에, 죽여도 능력치를 훔칠 수가 없다.
다만, 마수 중에는 인간형으로 분류되는 마수가 있었다.
‘역시 인간형 마수라면 사주를 훔칠 수 있군.’
전생에 서강림은 인간의 사주를 훔치는 대신 마수의 사주를 훔쳐보려고 했다.
물론 그의 실력으로 인간형 마수를 쓰러트리는 건 불가능했다.
애초에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귀급 마경의 마기가 내게는 치명적이었으니까.’
인간형 마수는 대부분 귀급에서 출현한다.
전생의 서강림은 상급 마경에서 흘러나오는 마기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비호문 일행에게 얹혀 가려고 한들, 중간도 가지 못해서 쓰러지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 외에도 사주 훔치기에는 단점이 있으니.’
서강림은 눈앞에 떠 있는 알림창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이 이능을 사용할 경우 업보가 쌓입니다.]
살인 등의 악행을 저지르거나, 특정 이능을 사용할 경우 ‘업보’라는 항목이 쌓인다.
그리고 업보가 너무 많이 쌓일 경우, 당사자는 ‘경계’를 넘어버리게 된다.
‘경계를 넘은 놈들의 말로는 전부 비참했지.’
서강림은 쓰게 웃으며 자신의 사주창을 바라보았다.
[당신에게 상당량의 업보가 쌓여있습니다.]
전생에 422명의 운명을 훔친 대가였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어 더 불안한 감이 있었다.
아직 자신에게 페널티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언제 경계를 넘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이능 ‘사주 훔치기’가 발동됩니다!]
[‘근력’ 일부를 강탈합니다!]
[이능 ‘발검’을 강탈합니다!]
═══════════════
[이능] 발검(拔劍)
[등급] 귀삼품(鬼三品)
[설명] 검을 뽑아 드는 순간 자동으로 적용이 된다. 검을 무기로 사용할 경우, 검술 실력이 최소 귀삼품 등급으로 보정이 된다.
═══════════════
충삼품인 서강림이었으나, 이제는 귀급의 검술을 익히게 되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여기에 온 보람이 충분했다.
‘이 정도면 업보가 어느 정도 쌓여도 감수할 만해.’
‘사주 훔치기’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페널티 때문에 마구잡이로 쓸 수는 없었다.
만일 약한 인간을 죽여 사주를 훔친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컸다.
살인과 절도, 이중의 업보를 쌓기 때문이었다.
‘인간보다는 인간형 마수의 사주를 훔치는 편이 나을 것 같네. 같은 살생이어도 인간보다는 마수를 죽이는 게 적게 쌓이니까.’
서강림은 사주를 훔친 뒤 비밀구역을 빠져나왔다.
홀로 돌아오자 곧 흰색 알림창이 떴다.
[첫 번째 문, ‘도산의 방’ 최초 공략!]
[대상: 서강림 (1인)]
[최초 공략 특별 보상이 도착하였습니다!]
그 알림음과 동시에 첫 번째 문의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붉은빛을 띠고 있었는데 점점 사그라들더니 흰빛이 나고 있었다.
“뭐? 벌써 클리어가 된 거야?”
“혼자서 클리어를 했다고?”
“저 사람이 서강림인가?”
홀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일어나 다가왔다.
“서강림, 너……!”
독고준이 놀란 눈으로 서강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공략을 한 것 같지는 않고 중간에 회복을 하러 밖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도산의 방은 길이 복잡한 데다가 함정도 많아서 첫 번째 만에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전생에 독고준이 도산의 문을 최초 공략했을 때도 며칠이 걸렸으니까.’
가장 빨리 깬 독고준이 3일이었고, 교육생들이 평균적으로 공략하는 데에는 열흘이 걸렸다.
그러나 서강림은 하루 만에 이곳을 공략해버렸다.
비밀 구역까지 포함하여.
독고준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그의 표정은 밝았다.
아니, 밝다는 표현은 부족했다.
그는 기이할 정도로 기뻐 보였다.
“역시 내 동료라니까! 믿고 있었다고!”
“동료도 아니고, 믿지도 마세요. 피곤하니까 쉬러 갈 겁니다.”
엉겨 붙는 독고준을 밀어내며 서강림은 자리를 뜨려 했다.
그때, 안나비가 나타나 서강림에게 말을 걸었다.
“첫 번째 문 클리어하신 서강림 씨, 맞으십니까?”
“네.”
안나비는 서강림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가면이 없었다면 놀라움으로 물든 얼굴이 온전히 드러났을 터였다.
‘이렇게 빨리 클리어를 하다니. 그것도 혼자서……. 대체 이 사람은 뭐지?’
그런 속내를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으나, 미처 가려지지 않은 눈동자는 놀라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안나비는 침착을 가장하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네주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이건 최초 공략 추가 보상입니다.”
안나비가 준 것은 작은 카드였다.
확인해보니 복잡한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적혀 있었다.
“……감사합니다.”
서강림에게는 내키지 않는 보상이었다.
그가 건성으로 카드를 챙겨 방으로 가려는데 몇 사람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저기, 서강림 씨.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네. 무슨 일이시죠?”
“호, 혹시 괜찮으시면…….”
그들이 애절하다 못해 비굴한 얼굴로 말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