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3. 첫 번째 문
“도산? 그런 것 치고는 칼이 안 보이는데.”
안으로 들어서며 독고준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의 말대로 도산(刀山)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주위에 칼로 보이는 것은 딱히 없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마치 오래된 유적과도 비슷한 디자인이었다.
방의 4면으로 각각 길이 나 있고 어둑한 통로 안쪽으로 띄엄띄엄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횃불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무채색이었다.
검은빛이 도는 흙바닥, 벽은 빛바랜 회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도산(刀山)의 방이 시작됩니다.]
[출구를 찾아 나가십시오.]
[제한 시간 : 없음]
“방이라기보다는 던전에 가까워 보이는데……. 이런 구조라면 역시 트랩이 있는 형태인가.”
독고준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뒤의 막힌 문을 제외하면 정면과 양옆으로 통로가 있었다.
“아무래도 그쪽이 통로 같네요. 반대편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좋아, 얼른 진행해보자.”
독고준이 먼저 통로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아마 이쯤에서 발동이 되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가 딸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콰과곽!
딸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날쌔게 날아왔다.
독고준의 발치에 칼날 세 개가 콱 꽂혔다.
그가 날렵하게 뒤로 물러서는 바람에 공격은 무산으로 돌아갔다.
역시 트랩인가.
전생과 구조가 달라진 것은 아닐까 싶어 독고준을 먼저 보냈는데, 역시나 트랩이 있었다.
독고준은 공격을 맞을 뻔 해놓고도 꽤 즐거운 기색이었다.
“와, 트랩이네? 꽤 고전적이잖아. 난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아.”
남들이 보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터였다.
미친놈이 맞긴 하지만.
나는 함정을 살펴보고 있는 독고준을 향해 물었다.
“무섭지도 않습니까?”
“왜 무서워해야 해?”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초반이니 즉사 트랩을 깔지는 않았을 텐데. 그리고 난 운이 좋거든.”
사주팔자가 좋으니 어렸을 때부터 여러 행운이 따랐을 터였다.
사주가 좋은 사람들은 은연중에 그것을 알고 있다.
그는 태연한 얼굴로 칼날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으음, 여기 공략법은 최대한 장치를 주의하며 나가려는 거려나. 꽤 헤매겠네.”
현재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은 총 3개.
복도는 멀고 건너편 방은 어둑해서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게는 아니었지만.
나는 첫 번째 문을 가장 늦게 졸업한 사람이었다.
클리어 자체는 신수아가 도와줘서 금방 했지만, 그건 내 실력이 아니었다.
그 상태로 다음 단계를 간다 해도 죽을 확률이 높았다.
때문에 나는 혼자서 이곳을 깰 수 있을 때까지, 수십 수백 번을 반복해서 돌았다.
수백 번 이곳을 헤매느라 구조는 이미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우선 이쪽으로 가죠.”
나는 독고준을 앞에 세운 뒤,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복도를 다 건너오는 동안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저 방이 하나 또 나오고, 또다시 네 방향에 길이 있었다.
“오,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었네.”
“오른쪽으로 가죠.”
5년 만에 와도 이곳은 어제 온 것처럼 기억 속에 생생했다.
그 뒤로도 갈림길이 수차례 이어졌으나 아무런 일도 없이 무사히 통과했다.
독고준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함정이 하나도 안 나오네. 서강림, 운이 좋은 편인가 봐.”
운이 좋다니, 웃기는 말이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온갖 함정 장치에 걸려서 하루라도 피를 흘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냥 험하게 살다 보니 촉이 좋아졌나 봅니다.”
나는 그렇게 둘러대며 북쪽 복도를 힐끗 보았다.
이번에는 안전한 방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도검을 꾹 쥔 채 먼저 발을 내디뎠다.
“이번에는 이쪽으로 가보죠.”
나는 귀를 바짝 세운 채 복도를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저 안쪽에서 무언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람인가?”
독고준도 그것을 느낀 것인지 작게 중얼거렸다.
어둑한 방 안에서 실루엣이 언뜻 보였다.
칼날이 빛나고 있었다.
“사람? 아니, 해골 같은데?”
독고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대로 방 안에 있는 것은 해골이었다.
해골 여럿이 칼을 든 채 방 안을 배회하고 있었다.
아직 우리를 눈치채지는 못했다.
“생긴 건 그때 본 애벌레보다 강해 보이는데……. 튜토리얼 다음이니 조금 더 세려나?”
언뜻 보면 강해 보였지만, 결국에는 그의 말대로 튜토리얼.
인골귀는 딱 튜토리얼 용도의 마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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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인골귀(人骨鬼)
[등급] 충삼품(蟲三品)
[설명] 사람의 뼈로 만들어진 마수. 사람의 살을 탐한다. 소리에 둔감하며 빛에 예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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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의 등급은 낮지만, 수가 많아서 충삼품인 나에게는 조금 버거운 편이다.
나는 사주창을 불러왔다.
[공적치를 사용하여 능력치를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잔여 공적치 : 1600점]
능력치는 근력, 체력, 민첩, 감각, 마력. 총 5가지였다.
그중에서 뭘 먼저 올리는 편이 좋을지, 딱히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근력이 3단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 정도면 인골귀를 처치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나는 곧바로 광염일장을 발동시켜, 인골귀를 향해 내던졌다.
불꽃이 펑 소리를 내며 거세게 타오르자, 인골귀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르륵?!
적을 감지한 인골귀는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놈이 복도 쪽으로 유인되어 접근한 순간, 나는 도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서걱!
검이 예리하게 뼈를 박살 냈다.
척추뼈가 반 동강이 나자, 균형을 잃고 인골귀가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얼핏 보니 영옥은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인공적으로 만든 마경이라 영옥이 나오지 않았지.
하지만 공적치는 잘 들어오고 있었다.
-그르르륵!
그때, 또다른 인골귀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얼굴에 곧바로 칼을 쑤셔 넣자, 으직으직 소리를 내며 뼈가 요란하게 부서졌다.
-콰각!
전생에는 이 녀석들 잡느라 꽤 고생했는데, 하나씩 상대하니 나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하나하나 잡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이럴 것 같아서 독고준을 데려오긴 했지만.
-카가강!
“하하하! 이거 재밌네!”
어느새 독고준이 방으로 뛰어들어 광소를 흘리며 인골귀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아무리 강한 능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무언가를 살해하는 데에는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독고준은 ‘몽상가’ 이능 때문인지 두려움 없이 인골귀를 쓰러트려 나갔다.
“자, 정리 끝. 쉬운데? 그러면 다음 방으로 가자!”
독고준은 주위를 순식간에 초토화시킨 뒤, 빠르게 다음 방으로 이동했다.
마수가 나올 때마다 나와 독고준은 순식간에 인골귀들을 정리했다.
꽤 여러 개의 방을 지나친 뒤, 독고준이 인골귀를 처리하며 말했다.
“흐음, 가는 방마다 마수가 나오네.”
근처에는 박살난 뼈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족히 백 마리는 잡은 것 같았다.
독고준이 두개골을 발로 툭 차며 말했다.
“아까는 운 좋은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네, 서강림? 고르는 길마다 마수가 나오다니.”
“그래서 힘든가요?”
“딱히? 그다지 강한 마수도 아니고.”
아무래도 신삼품 등급인 독고준에게 인골귀는 쉬운 상대였을 것이다.
뜻밖이었던 것은 그의 검술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
분명 직업이 소설가 아니였나?
나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검을 배운 적이 있습니까?”
“응. 이세계로 가거나 책 빙의 할 때를 대비해서 검이랑 격투기를 좀 배워놨어.”
독고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회귀할 때를 대비해서 매주 외워둔 로또 번호나 주식은 소용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만족해.”
이제까지 그의 기행은 ‘몽상가’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천성이 몽상가인 모양이었다.
독고준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서강림. 사실 말이지, 빌딩 때부터 궁금했던 게 있거든.”
“뭐죠?”
“네가 특별한 건 알지? 이상할 정도로 침착하고, 적응력도 빠르고, 마수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그가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너 혹시 회귀자나 귀환자나 환생자나 그런 거야?”
이상한 부분에서 눈치가 빨랐다.
내가 회귀자라는 걸 들켜도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가급적이면 숨기고 싶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어릴 때 귀신 같은 걸 좀 자주 봐서 이런 거에 익숙한 것뿐입니다.”
“흐음, 그래? 네 어린 시절도 궁금하네. 들려줘.”
그의 눈빛이 파고들 듯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이야기라, 할 이유가 없다.
이제 슬슬 그게 나올 때도 됐고.
나는 독고준을 무시한 채 발을 옮겼다.
“시간 낭비 그만하고 빨리 가시죠. 앞장서세요.”
“그래, 알겠어. 어린 시절 이야기는 나가서 물어볼게!”
독고준은 살짝 들뜬 얼굴로 복도에 진입했다.
조용히 독고준의 뒤를 따라 걸어가는 동안, 나는 벽을 더듬고 있었다.
중간쯤을 지나갈 무렵.
내 손에 무언가가 걸렸다.
-달칵
독고준이 그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무언가가 덜컹이는 소리와 함께, 뒤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이 끝에서부터 떨어지고 있었다.
“뛰어요!”
바닥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래는 끝이 없는 어둠이었다.
내 외침과 함께 독고준이 전력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미친 사람처럼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런 트랩도 있네! 정석적이다.”
이 상황도 그에게는 즐거운 게임의 일부 같았다.
그 와중에 바닥이 떨어지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거의 서너 발자국 뒤에서 떨어지고 있는 상황.
잘못하면 둘 다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건 곤란한 일이었다.
나는 독고준의 등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힘껏 그의 등을 밀었다.
“어?”
독고준의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콰앙!
내가 그의 등을 민 것과 동시에 위에서 돌무더기가 떨어져 내렸다.
낙석은 방금 전까지 독고준이 있던 자리였다.
내가 밀지 않았다면 그가 정통으로 맞았을 것이었다.
독고준은 어느새 새로운 방에 도착해 있었지만, 나는 낙석에 발이 걸려 그대로 넘어졌다.
동시에 내 발아래가 훅 꺼지는 것이 느껴졌다.
“서강림!”
순식간에 독고준의 얼굴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몸이 아래로 쑥 꺼지며 경사면을 타고 미친 듯한 속도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미끄러지다가 바닥에 구르듯이 떨어졌다.
-쿠웅!
낙법을 취한 덕분에 데미지는 없었다.
나는 비척비척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가 조용해진 가운데, 알림창이 떴다.
[비밀 구역에 진입하였습니다.]
계획대로 나 혼자만 이곳에 떨어졌다.
혼자였으면 꽤 오래 걸렸을 텐데 독고준 덕분에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독고준은 잘 써먹었다.
이제 제일 중요한 부분은 내가 독식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