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와이파이요……?”
몇 사람이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보상으로 와이파이 비밀번호라니.
그러나 곧 사태를 파악한 사람들은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되면 가족들한테 연락할 수 있는 거죠?!”
현재 교육 시설 내에서는 통신이 제한되고 있다.
전화는 물론이고 인터넷도 모두 차단된 상황.
그런 상황이니 안나비의 제안은 상당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가능합니다. 다만 영상이나 사진 등의 송출은 제한됩니다.”
“저희가 여기 있다는 걸 말하면 안 되나요?”
“말하셔도 됩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외부에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데다가 바깥의 정보도 들을 수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아이템보다 절실한 보상일 터였다.
“그러면 설명을 이어 하겠습니다.”
안나비는 사람들을 조용히 시킨 뒤, 말을 이어갔다.
“각 방에는 공략 과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 방의 경우 도전 횟수에는 제한이 없습니다만 방을 나올 경우 초기화가 됩니다.”
안나비는 그렇게 말한 뒤, 홀 중앙에 세워진 장승을 가리켰다.
아까부터 시선을 강탈하던 물건 중 하나였다.
“부상을 입었을 경우 지급한 환약을 드시거나, 이 로비로 돌아올 경우 장승의 효과로 자동 치료가 됩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평범한 장승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저 장승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알 수 있었다.
═══════════════
[이름] 비보장승
[등급] 용삼품(龍三品)
[설명] 보허(補虛)와 진압(鎭壓)의 기운을 갖고 있는 장승. 범위 내에 접근한 인간을 회복시키며, 마수의 접근을 막는다.
═══════════════
저것 하나만 팔아도 건물 두 어 개는 너끈히 살 물건이었다.
그 외에도 이 교육 시설 곳곳에 특수한 아이템들이 비치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운명 보호국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단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교육 시설을 만드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고.
“그리고 이건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지급되는 물건입니다. 각자 수령 해가세요.”
안나비는 테이블 위에 작은 상자를 늘어놓았다.
나는 내 몫의 보급품을 챙겼다.
[충일품(蟲一品) 도검을 획득하였습니다!]
[회복약을 획득했습니다!]
초반에는 아이템을 획득하기 어려운데 교육 시설에 들어온 교육생은 기본 장비를 얻고 시작할 수 있었다.
꽤 비싼 회복약도 계속해서 받을 수 있었고.
사람들은 아직 그 가치를 모르는지 큰 감흥이 없는 얼굴이었다.
모두에게 물건을 나눠준 뒤, 안나비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되기 전. 이곳에서 부상, 사망에 이르게 될 경우 보호국에서 책임지지 않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부상, 사망이라는 말에 몇 사람이 동요하는 것이 보였다.
안나비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고 한들, 살인을 용납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교육생 사이에서 극심한 상해, 살인 사건이 발생할 경우 엄중하게 처벌할 것입니다.”
“…….”
“자세한 규정은 매뉴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안나비는 설명을 마친 뒤 빠르게 자리를 떴다.
그녀가 사라지자 홀에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그때 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저, 저기! 저랑 같이 가실 분 구합니다! 제 이능은 귀일품 등급입니다!”
확실히 안나비가 뿌린 미끼가 사람들에게 효과적이었던 모양이었다.
한 사람이 일행을 구하기 시작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바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홀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같이 가실 분!”
“제 등급은요……!”
마치 인력 시장을 보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던 중,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저, 그때 빌딩에 같이 있었던 사람인데요.”
힐끗 보니 그 말대로 빌딩에서 봤던 얼굴이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잘 기억하고 있었다.
전생에서는 나를 벌레급이라 무시하던 놈 중 하나였으니까.
“그때 과도로 괴물 잡는 거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그쪽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전생에는 나만 보면 쓰레기라도 보듯 하던 놈이었는데, 지금은 내게 매달리고 있다.
남자는 살짝 흥분된 어조로 아부성의 말을 이어갔다.
“강하고, 침착하고……. 정말 여러모로 존경스럽다니까요!”
“…….”
“그래서 말인데……. 이것도 인연이잖아요? 같이 사냥 가지 않으실래요? 등급도 엄청 높으실 테고…….”
내가 등급이 높다고 생각해 들러붙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그때, 도망가기 바쁘시던데. 그런 사람과 제가 같이 사냥을 해야 할까요?”
“그, 그건…… 그때 너무 당황해서…….”
“저 안에서도 당황하면 또 도망치겠군요.”
남자는 꽤 당혹해하는 눈치였다.
결국 어물대며 변명을 늘어놓더니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 이후 몇 사람이 더 내게 파티를 권유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조금 웃기다고 생각했다.
전생에는 나만 보면 자리를 뜨기 바쁘던 놈들이 이번 생에는 스스로 내게 몰려들다니.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서강림 씨.”
어느새 신수아가 내게 다가와 있었다.
전생에 처음 만났을 때도 이랬지.
그녀가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서강림 씨, 아직 파티를 못 구하신 것 같은데……. 저도 마침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요. 괜찮으면 같이 행동하실래요?”
다른 사람들은 내가 강하다고 생각해서 접근했지만, 신수아는 달랐다.
전생에 나는 약해빠진 충삼품이었으나, 신수아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 혼자 행동하는 게 편해서요.”
나는 그녀와 적당히 거리를 두기로 했다.
그편이 신수아에게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백영의 등급은 신일품.
내가 몇 년간 준비를 하더라도 이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전생과 같은 꼴이 또 날지도 모른다.
전생에 신수아가 살해당한 이유는 오로지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번 생에 나와 얽히지 않으면 백영이 찾아왔을 때, 최소한 신수아가 피해를 보지는 않겠지.
내가 거절하자 신수아는 조금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렇군요. 서강림 씨랑 마음이 잘 맞는 것 같았는데…….”
그런 신수아를 보니 조금 마음이 좋지 않았으나, 나는 결국 그녀를 거절했다.
신수아는 떠나가는 와중에도 내게 아쉽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같이 사냥은 못 하더라도, 앞으로 잘 부탁해요.”
나는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전생처럼 가까이 지낼 수는 없지만, 같은 교육 시설이니 아예 남남처럼 지내는 것도 좋지는 않겠지.
그때, 뒤에서 발소리와 함께 잔뜩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서강림! 잘 잤어?”
돌아보니 독고준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인지 그의 눈가에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피곤한 안색에 비해 표정은 좋았다.
“서강림, 혼자 가는 거야?”
어제와 달리 그는 내게 무척 호의적으로 보였다.
퀭한 얼굴로 싱글싱글 웃고 있으니 한층 더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혼자 갑니다만. 용건이라도?”
“너랑 같이 가려고 그러는 거지. 기다리던 중이었어.”
그가 내게 동행을 제의하다니, 전생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면 그는 약한 사람들을 모두 쓰레기 취급했으니까.
상당히 강한 헌터만을 자신의 동료로 삼았는데, 내가 강하다고 착각을 한 것 같았다.
“어제는 절 그냥 버리고 가더니, 마음이 바뀌었습니까? 별로 믿음은 안 가는데요.”
“그게 말이지…….”
독고준이 싱글싱글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제 신수아 씨 이야기 듣고 계속 생각해봤거든. 이건 대체 무슨 전개일까, 나는 정말로 악역 조연인가 하고 말이야.”
다크서클이 어쩌다 생긴 건지 알 것 같았다.
저런 고민을 하느라 밤을 새우기라도 한 건가.
그는 여전히 신이 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처음엔 네가 나의 각성을 위해 준비된 엑스트라 같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더라고!”
“…….”
“분명히 너 정도라면 조연, 아니 주연. 나랑 어깨를 나란히 할 투 탑 주인공에 가까운 것 같아!”
나는 잠시 독고준을 바라보았다.
독고준은 확실히 선한 사람은 아니다.
아니, 부정할 수 없는 악인이겠지.
그렇지만 강한 각성자라는 사실에는 아무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었다.
다루기 위험하고, 언제 변덕을 부릴지 모르지만 이용 가치는 있었다.
‘운명간파’로 파악했을 때도 나쁘지 않았고.
[대상 ‘서강림’과 ‘독고준’의 사주 궁합을 확인합니다!]
[‘독고준’은 강압적이고 변덕이 심한 성격으로 보입니다.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상대이지만 아군이 될 경우 여러 도움을 줄 것입니다.]
또한 그와 나의 오행 상성을 따져봤을 때도 내게 유리한 점이 있었다.
[또한 독고준의 오행은 금(金), 서강림의 오행은 화(火)로 화극금(火克金)의 관계입니다.]
[불이 쇠를 녹이는 이치로, 관계에서 서강림이 주도권을 잡기 쉽습니다.]
독고준은 날 모르지만, 나는 그에 대해 알고 있다.
내가 충급인 줄도 모르고 매달리는 꼴부터가 그랬다.
유능한 인간이니 이용하면 여러모로 이득이 될 것이다.
나는 그를 응시하다 말했다.
“좋습니다. 같이 가죠.”
“정말이지? 역시 너도 나를 동료로 생각…….”
“단.”
나는 말허리를 뚝 끊었다.
독고준이 왜 그러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직 당신을 믿는 건 아닙니다. 빌딩에서 내게 한 짓이 있으니.”
“으음, 그렇긴 하지만…….”
“제 신뢰를 잃기 싫다면 앞으로 잘 행동해야 할 겁니다. 그 점을 명심하세요.”
독고준이 지금 내게 호의를 보이고 있지만, 나는 그를 믿지 않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약하다고 생각하거나 흥미가 떨어진다면 태도를 바꾸겠지.
그렇다면 그 태도를 바꾸기 전까지 이용해주면 그만이다.
“뭐, 좋아! 단번에 동료가 되는 것도 재미없으니 말이야.”
“그러면 이제 진입하도록 하죠.”
나는 첫 번째 문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자 눈앞에 알림창이 떴다.
[귀살(鬼殺)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금귀(金鬼)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귀살(鬼殺), 그리고 금귀(金鬼).
귀살은 사주에서 말하는 살(殺)이다.
살이 꼈다고 할 때 쓰는 그 살.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사람에게 악영향을 주는 것.
금귀(金鬼)는 말 그대로 금(金)에 의한 재앙을 의미한다.
어차피 알고 있는 것이니 상관없다.
나는 문고리를 힘주어 돌렸다.
[‘서강림’과 ‘독고준’의 입장을 확인합니다.]
[도산(刀山)의 방에 입장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