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2. 지진
“아, 서강림 씨. 오셨어요?”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밝은 곳에 서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마도 카페 같았다.
시체와 피로 범벅이 되어있던 마경은 온데간데없고, 깔끔하게 정돈된 카페 내부만이 눈에 들어왔다.
회귀에 성공한 건가?
내가 정확히 언제로 돌아온 건지 알 수 없어 멍하게 서 있자, 한 사람이 다가왔다.
“갑자기 연락했는데 와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나오는 사람이 갑자기 펑크를 내서…….”
“펑크요?”
“네. 아까 전화로 말씀드렸지 않나요? 오늘 사주 보는 분이 갑자기 못 오신다고 그래서…….”
그 말을 듣자 지금이 어느 쯤인지 생각이 났다.
5년 전. 취업준비에 연이어 실패하던 시절.
나는 사주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누가 빠져서 급하게 대타로 나왔던 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나는 나를 의아하게 보는 카페 매니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네. 들었습니다. 그러면 일하러 가볼게요.”
내가 기억하는 날이 맞다면 나는 이곳에 있어야 했다.
매니저가 미소 지은 뒤 자리를 떠난 후, 나는 카페 주방 쪽을 슬쩍 보았다.
마침 사람이 없었다.
과도 하나를 집어 품에 넣은 뒤, 카페 한구석에 마련된 상담실로 들어섰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 곧 커플 한 쌍이 들어왔다.
건성건성 사주를 보던 중 서너 팀이 들어왔다 나갔다.
그리고 쉴 틈도 없이 다음 팀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사주 보러 왔는데요.”
그때 한 남자가 씩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다소 뺀질뺀질하게 생긴 얼굴.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내가 찾는 사람은 아니었다.
남자가 자신의 뒤편을 향해 말했다.
“수아 씨, 들어오세요!”
그곳에는 신수아가 서 있었다.
안대를 차지 않은 채, 내 기억보다 앳된 얼굴로.
이날은 내가 신수아와 처음 만난 날이기도 했다.
남자가 히죽대며 자리에 앉자, 신수아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거리를 두고 앉았다.
“저희가 오늘 소개팅을 했거든요. 그래서 궁합 좀 보러 왔어요.”
신수아의 얼굴에 희미한 불쾌함이 묻어나 있었다.
친구가 억지로 부탁을 해서 소개팅에 나가니 이상한 남자와 얽혔다고 했던가.
나는 일단 두 사람 앞에 종이를 내밀었다.
“두 분 성함과 생년월일, 태어난 시각을 적어주세요.”
두 사람은 종이를 채운 뒤 돌려주었다.
남자가 신수아의 종이를 힐끗 보며 말했다.
“수아 씨, 생일날 데이트할까요? 제가 잘 아는 고급 레스토랑이 있는데…….”
“죄송하지만 일이 있어서.”
신수아가 단번에 거절을 하자 남자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가 괜히 헛기침을 하다가 나를 슥 돌아보았다.
“저기, 궁합 보기 전에 제 사주부터 좀 봐주시죠. 제 사주가 워낙 좋다고 듣긴 했는데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돈복도 많고 성격도 좋다던데요.”
남자가 슬쩍 눈빛으로 신호를 주며 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재수 없는 건 여한 가지였다.
나는 만세력을 들여다본 뒤 남자의 사주를 말해주었다.
“재물운이 있습니다. 부모님 덕을 많이 보는 팔자군요.”
남자의 입꼬리가 슥 올라가는 게 보였다.
나는 사주 풀이를 이어갔다.
“그런데 조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왜요?”
“잔칫상을 스스로 엎는 사주라서, 조심하지 않으면 패가망신하기 십상이에요.”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신수아는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나는 자연스레 말을 돌렸다.
“그러면 궁합 봐 드릴까요?”
“……그래요.”
남자가 영 찜찜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반면 신수아는 이제야 조금씩 흥미가 생기기 시작한 듯 내 쪽을 보았다.
나는 천천히 풀이를 시작했다.
“사람은 사주에 따라 오행(五行)의 속성이 정해집니다.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로 나뉘며 이 속성에도 서로 궁합이 있습니다.”
남자는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궁합이나 보라는 듯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메모를 적은 종이를 앞으로 스윽 내밀었다.
“남자분의 사주는 금이 강한 타입이고, 여자분은 목 속성이 강한 타입입니다. 사주에서는 금극목(金克木)이라고 해서…….”
남자로부터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이 날아왔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도끼가 나무를 잘라내는 형태라 상극인 궁합입니다.”
즉, 이런 새끼는 멀리하라는 말이다.
남자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버렸다.
신수아는 살짝 놀란 듯 눈을 깜빡이다가 미소 지었다.
“그렇군요. 궁합이 안 좋다니 어쩔 수 없네요.”
신수아의 말에 남자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벌떡 일어났다.
“당신 지금 장난해?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뭐 하는 거야? 여기 매니저 어디 있어?”
“카운터에 있습니다.”
내가 담담하게 답하자 남자는 더욱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수아 씨, 나갑시다! 이거 완전 돌팔이 아냐……!”
“이 분이 사주를 잘 봐주시는 것 같아서, 저는 운세 좀 보고 가려고요.”
신수아는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그녀의 반응에 남자가 멍해졌다가 또다시 왈칵 화를 냈다.
“다, 당신 후회할 거야. 당신 같은 여자가 어디 가서 나 같은 남자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만날 생각 없으니까 안녕히 가세요.”
결국 남자는 씩씩대며 화를 내다가 밖으로 나가버렸다.
신수아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사주 잘 보시는 것 같네요. 저 올해 운세 좀 봐주세요.”
“네. 그러…….”
핑―
그때, 이명과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시야가 흔들리고 신수아의 몸도 흔들리고 있었다.
이건 어지럼증 때문이 아니었다.
쿠구궁-!
실제로 건물이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꺄악, 뭐, 뭐야?”
“지, 지진이다!”
가게 곳곳에서 사람들의 비명과 함께 식기와 병 따위가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뒤섞였다.
그때 신수아가 다급히 소리쳤다.
“얼른 테이블 밑으로 들어가세요!”
그때도 이랬지.
당황해 굳어 있던 나를 대피시킨 것도 신수아였다.
테이블 아래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자, 다시 한번 건물이 흔들렸다.
거인이 통속에 나를 집어넣고 마구 흔드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암흑이 찾아왔다.
흔들림과 암흑, 머리를 쪼개는 듯한 통증.
그 사이로, 이명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의 사주팔자를 토대로 능력치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잊을 수 없는 그 날.
바로 각성의 날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 이상의 환청은 없었다.
지진도 끝이 난 것 같았다.
나는 상담실 밖으로 기어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진은 끝이 났지만 전기가 끊긴 모양인지 사방이 어둑했다.
그 사이로 비상구 표시가 기묘한 초록빛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곧 사람들의 말소리가 어지러이 들려왔다.
“뭐야 대체?”
“서울에 무슨 지진이 이렇게 크게 와?”
“아까 이상한 안내 방송도 들렸던데.”
“안내 방송?”
“어. 무슨 사주팔자……. 능력치? 그런 방송이었는데.”
그 순간, 어둠 속에서 글자가 일렁였다.
[당신의 능력치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마치 모니터 화면 같은 게 눈앞에 떠 있었다.
곧 문자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내용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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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서강림
[등급] 충삼품(蟲三品)
[오행] 화(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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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은 전생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아쉽게도 ‘사주 훔치기’로 얻었던 이능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회귀’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못 보던 것이 있었다.
[현재 당신에게 업보가 쌓여 있습니다.]
……업보인가.
‘사주 훔치기’의 설명에도 적혀 있었다.
이 이능을 사용하면 업보가 쌓인다고.
업보가 쌓이면 좋지 않은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기, 일어나세요. 얼른 대피해요.”
그때 신수아의 목소리가 들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신수아의 얼굴이 보였다.
무척 침착해 보이는 얼굴.
아직 자기 사주창이 보이지도 않을 텐데, 그런 것과 무관하게 그녀는 냉정하고 차분했다.
“지진이 또 오는 거 아냐? 빨리 여기서 나가자.”
“엘리베이터 어딨지?”
“7층인데 그냥 빨리 내려가자.”
사람들이 허둥대며 자리를 뜨려 하고 있었다.
다들 각성 메시지를 들었을 텐데도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에게는 사주창이 보이지 않을 테니.
[운명을 읽는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사주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처럼 ‘운명간파’ 같은 이능이 없는 한 스스로의 사주창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는 차라리 사주창이 안 보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신수아가 대피 행렬에 섞이려고 하길래 황급히 끌어냈다.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잠시만 있다가 내려가세요. 지금은 대피 인원이 많아서 더 혼란스럽습니다.”
조명이 나가 계단은 어둑했다.
비상구 표시가 있어서 아예 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와중에 몇몇이 사람들을 밀쳐내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다들 꺼져! 길 막고 뭐 하는 거야?”
“어두워서 앞이 잘 안 보인다고요!”
발치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다른 층에서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을 터였다.
또한, 지금 중요한 건 지진이 아니다.
이제 곧 시작되겠지.
나는 품에서 과도를 꺼내 들었다.
신수아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뭔가를 말하려는 찰나, 요란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악!”
소리는 아래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대피를 하던 사람들이 허둥지둥 위로 뛰쳐 올라오는 게 보였다.
“도, 도망쳐! 괴물이야!”
“네? 괴물……?”
그 말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다가 문 너머를 보고는 경악하고 말았다.
가게 안으로 거대한 벌레가 기어들어 오고 있었다.
중형견 정도는 되어 보이는 애벌레.
그것들은 사람을 보자마자 곧바로 이빨을 드러내며 달라붙었다.
“떨어져, 떨어져!”
“아아악, 살려주세요!”
애벌레가 입을 벌리더니 한 남자의 손을 그대로 물어 뜯어버렸다.
어둠 속에서 검붉은 피가 솟구쳐 계단으로 흘러넘쳤다.
곧 다른 벌레 하나가 신수아를 향해 달려드는 순간, 나는 갖고 있던 과도를 벌레의 몸통에 꽂아 넣었다.
-끼이이익!
고통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나는 나머지 벌레들도 하나하나씩 도륙하기 시작하였다.
거잠을 반으로 찢듯이 가른 뒤, 뺨에 묻은 점액을 닦아 내었다.
나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제법 생경했다.
고작 벌레급의 나를, 마치 두려운 존재라도 되는 듯이 바라보는 시선.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죽기 싫으면 싸울 준비를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