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내가 가진 마력으로는 이 모든 운명을 훔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마력부터 훔치면 될 뿐이었다.
[강탈 가능한 운명을 확인합니다!]
[마력 일부를 획득하여 마력이 증가합니다!]
[마력 일부를 획득하여 마력이 증가합니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강력한 마력의 기운이 내게 감돌기 시작했다.
마력을 빠르게 훔치는 동시에 나는 다른 운명도 강탈하고 있었다.
[이능 ‘백화요란’을 획득하였습니다!]
[이능 ‘은형술’을 획득하였습니다!]
[수 속성 저항이 증가합니다!]
[감각 일부를 획득하여……]
머리가 터질 듯한 양의 메시지가 흘러들어왔다.
수백 개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구토가 치밀고 코와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의식이 끊길 것만 같아 나는 혀를 질끈 깨물었다.
절대 기절해서는 안 됐다.
수백 개의 메시지가 정신없이 귀에서 울려 퍼지다가 가까스로 고요가 찾아왔다.
[421명의 운명을 강탈하였습니다!]
나는 내게서 진한 피냄새와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 능력이라면, 백영을 죽일 수 있을까?
알 수 없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내가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백영이 나를 돌아보았다.
“네가 서강림인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백영 역시 답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가 내게로 달려들었다.
-채앵!
검과 검이 맞부딪는 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순식간에 검을 들어 그녀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이능 ‘건곤대나이’가 발동 중입니다!]
[이능 ‘검의 달인’이 발동 중입니다!]
[이능 ‘순발력’이 발동 중입니다!]
백영의 눈이 미미하게 커졌으나 이내 두 번째 공격이 들어왔다.
그녀가 다시 한번 내 목을 노리고 찔러 넣었으나, 내 눈에 공격의 궤도가 읽혔다.
[이능 ‘매의 눈’이 발동 중입니다!]
내가 이능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능이 내 몸을 조종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해야 하는 것은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
-카가강!
또다시 철과 철이 맞부딪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아직 그녀의 검을 온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백영의 검이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수많은 이능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이능 ‘천근추’가 발동 중입니다!]
[이능 ‘금강불괴’가 발동 중입니다!]
[이능 ‘딱딱해지기’가 발동 중입니다!]
백영의 검이 스치고 지나가는 궤적마다 상처가 새겨지고 피가 흘렀다.
자동적으로 발동되는 이능들 덕분에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지금 내게는 수백 개의 이능이 있었으나 그것을 모두 이해하고 활용할 시간이 없었다.
그나마 검술이 호각인 것이 다행이었다.
-캉, 카앙!
그녀의 검이 점점 무뎌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정도라면 백영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능 ‘허공답보’가 발동됩니다!]
나는 허공을 딛고 뛰쳐 올라 백영의 사각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뒤가 비어 있었다.
이대로 찔러 넣으면 죽일 수 있다.
그때 백영이 빠르게 몸을 틀며 내 공격을 막아냈다.
-쨍강!
백영의 검과 내 검이 충돌한 순간, 내 검이 힘없이 반 동강이 나며 부러져버렸다.
검은 마치 깨진 얼음처럼 파편으로 흩어졌다.
그 사이로 얼음과도 같은 백영의 눈동자가 들어왔다.
그리고 거대한 추가 나를 강타하듯, 백영의 강권이 내 복부에 파고들었다.
“커억……!”
내가 피를 토해내며 쓰러지는 가운데, 수많은 육체 강화계 이능들이 비명을 질렀다.
맨주먹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본래라면 죽었을 것이다.
주먹 한 방을 맞았을 뿐인데도 내장이 반파된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른 사람에게서 훔친 사주 덕분에 버티고 있을 뿐.
[고통 저항이 활성화 중입니다!]
[공포 저항이 활성화 중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고통을 상쇄할 수는 없었다.
움직이라고 몸에 명령을 내리는 데도, 나는 그저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그 와중 백영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실력에 비해 무기는 급이 낮군.”
정신없이 공격을 막아내느라 몰랐는데 어느새 검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애초에 충삼품인 내가 갖고 있는 무기의 등급이야 뻔했다.
내 무기로 백영의 검격을 여기까지 받아낸 것이 기적이라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최소한 백영을 죽이기 전까지는.
나는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술이 먹히지 않는다면 주술계 이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거지?”
나는 시간을 끌고자 질문을 던졌다.
내 물음에 백영은 그저 물끄러미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을 살해한 것 치고 그녀는 동요하는 흔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거나, 나를 죽일 수 있어서 기뻐 보이지도 않았다.
사무적인 일을 하는 사람처럼 그저 담담해 보일 뿐.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순식간에 한기가 찾아왔다.
위를 올려다보자 수많은 얼음 칼날이 생성되어 있었다.
방금 전 수많은 사람을 몰살시킨 그것.
얼음 칼날이 쏟아지는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이동하려 했으나, 방금 맞은 강권의 후유증이 남아 있었다.
-푸욱!
도망치기 직전, 얼음 칼날이 왼쪽 다리를 뚫고 바닥에 박혔다.
거대한 쇠못이 박힌 듯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얼음 칼날을 빼내자, 피가 흘러 바닥을 적셨다.
나는 바닥에 벌레처럼 엎드린 채 숨만 헐떡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점점 내게 다가오더니 아직 피가 마르지 않은 검을 들어 올렸다.
“네 팔자도 기구하구나.”
백영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 시선이 마치 동정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나였어도 나를 동정하고 비웃을 것이다.
421명의 운명을 빼앗았음에도 나는 그것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몰랐다.
수많은 무기가 있음에도 백영을 죽일 수 없었다.
나는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딱 하나.
내가 잘 알고 있는 이능이 있었다.
[이능 ‘목엽지법’이 발동됩니다!]
-촤아악!
내 피를 머금고 있는 땅에서 수많은 가시넝쿨이 자라났다.
문주 신수아의 이능.
오래 지켜 봐온 만큼, 이것의 운용법 하나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
수백 갈래의 가시넝쿨이 채찍처럼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방금 전, 신수아가 사용할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마력이 급격히 소모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서 마력을 받은 만큼 넝쿨의 양도 늘어났다.
백영의 얼굴에 순간 당황이 깃들었다.
그녀가 검을 휘둘러 넝쿨을 잘라내면 그 공백을 또 다른 넝쿨이 채웠다.
넝쿨은 거대한 벽처럼, 혹은 해일처럼 그녀를 덮쳤다.
그러나 백영의 현란한 검술은 파도마저 벨 만한 것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넝쿨들의 세례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 희미한 안도의 빛이 돌기 시작한 순간.
나는 백영에게 뛰어들었다.
-푸욱!
칼날이 백영의 목에 박혔다.
백영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내 다리에 박혀 있던 얼음 칼날이 지금은 그녀의 목에 박혀 있었다.
[이능 ‘일격필살’이 발동됩니다!]
[이능 ‘검격의 가호’가 발동됩니다!]
[이능 ‘치명상’이 발동됩니다!]
차가운 칼날이 동맥을 찢고 피가 왈칵 흘러나왔다.
나는 칼날을 횡으로 휘둘렀다.
-촤아악!
더운 피가 사방에 튀었다.
기계 같은 그녀에게도 뜨거운 피는 흐르고 있었다.
백영은 끝까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으로 나를 응시하다가 쓰러졌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숨소리에는 피냄새가 섞인 채였다.
나는 내 배에서 흘러내리는 핏줄기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백영의 목에 얼음 칼날을 찔러 넣을 때, 그녀 역시 내게 칼을 휘둘렀다.
차마 그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간신히 백영을 쓰러트렸지만 온몸이 엉망이었다.
훔친 이능 중 회복 계열 이능도 있을 테지만,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마력도 이제 거의 바닥이 난 상태였다.
나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모두 죽었다.
문파원들도, 신수아도, 백영까지도.
“……내가 그래서 나 영입하지 말라고 했잖아.”
어린 시절 사주를 보았을 때, 무당이 말했다.
[너는 팔자가 박복하고 온갖 살(殺)이 끼어 있어 조실부모하고 평생을 불운하게 살 사주다.]
그 말대로 나는 철이 들기 전에 부모를 잃었고, 온갖 사건 사고에 휘말렸으며, 내 주위 사람들도 크고 작은 불행을 겪었다.
때문에 나는 비호문을 나가려 했었다.
약하고, 불행만 가져오는 사주.
그럼에도 그들은 나를 받아주었고, 나 때문에 죽게 되었다.
차라리 백영이 나를 찾을 때 바로 나섰어야 했다.
그랬다면 아무도 죽지 않았을 텐데.
내가 가장 먼저 죽었다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사했을 텐데.
후회만이 몰려왔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백영이 나를 찾을 때 바로 나섰을 것을…….
후회만을 삼키던 중.
나는 시체 사이에서 눈을 번쩍 떴다.
아니. 방법이 있지 않은가. 그것도 바로 눈앞에.
나는 의식이 흐릿해지는 가운데 강제로 몸을 일으켰다.
걸어갈 기운이 없어, 질질 몸을 끌며 백영에게 다가갔다.
나는 그녀의 시체를 향해 이능을 발동시켰다.
[이능 ‘사주 훔치기’가 발동됩니다!]
[대상 ‘백영’의 사주를 훔칩니다!]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이능 ‘회귀’를 획득하였습니다!]
회귀.
그것만이 나의 희망이었다.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능 ‘회귀’가 발동됩니다!]
회귀의 발동을 확인한, 그 순간 눈앞이 어둑해졌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시체도, 마경도, 마수의 사체도 아무것도.
[대…… …합니다.]
[…에 손…… …… …니다.]
[…… …… …… ….]
무언가가 말을 하는 것도 같았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잠에 빠져드는 것처럼 내 의식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