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1. 벌레 급의 팔자
사주팔자라는 건 참 개같은 말이다.
사주팔자. 타고난 운수.
말 그대로 태어날 때부터 운수가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대통령이 될 사주를 타고나고, 누구는 쪽박 차는 사주를 타고난다.
누군가는 사주를 믿지 않았다.
태어난 날과 시각에 따라서 운명이 정해지는 건 말도 안 된다고.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각성의 날 이후, 모두의 능력은 사주팔자를 기반으로 정해졌으니까.
“다들 보급품과 자신의 소속팀, 포지션을 잘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동굴의 형태를 한 거대한 마경(魔境) 앞에 수백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얼마 전, 연합에서 특수 마경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많은 인원이 차출될 거라 생각했지만 마경의 규모가 내 예상보다도 컸던 모양이었다.
여러 문파의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 이렇게 연합으로 나서는 건 처음 아니야?”
“그러게. 비호문에서도 오고…….”
“이참에 나도 비호문에 스카우트 되면 좋겠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무기를 정비하고 있었다.
내가 배치된 곳은 후방조.
그때 처음 보는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저희 같은 조인가봐요. 비호문이시죠?”
나는 힐끗 보고 다시 고개를 숙였지만, 남자는 긴장을 풀 생각인지 혼자서 멋대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섬멸전에 따라오는 게 처음이라 너무 긴장되네요. 그래도 그 비호문이랑 같이 싸우게 되어 너무 기쁘고…….”
나에게 말을 거는 걸 보니 신입인 모양이었다.
그런 남자를 보다 못했는지, 다른 조원 중 한 명이 다가와서 그를 불러냈다.
그들이 거리를 조금 두고 뭐라 속삭이는 것이 들려왔다.
“이봐. 조심해. 저 사람이 서강림이라고.”
“네?”
신입인 남자가 몹시 놀라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저런 반응이 딱히 색다른 것도 아니었다.
나와 같은 조에 속한 타 문파원들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딱히 내가 강해서 나를 피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망한 사주를 두려워하는 놈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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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서강림
[등급] 충삼품(蟲三品)
[오행] 화(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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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를 보면 대통령이 될 사주, 왕이 될 사주, 거지가 되거나 살인자가 될 사주가 있다고들 한다.
각성 능력도 마찬가지다.
인간들은 각자의 사주에 걸맞는 능력을 깨닫고, 등급을 받았다.
내 사주 등급은 충삼품(蟲三品).
등급은 신(神), 용(龍), 귀(鬼), 인(人), 충(蟲) 순으로 강하다.
그 다음은 일품(一品), 이품(二品), 삼품(三品) 순으로 내려간다.
사주 등급 중 가장 낮은 단계인 충급(蟲級)의 사주.
흔히 말하는 벌레급 인생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등급에 맞게 내 운명은 그야말로 불운 그 자체였다.
이런 벌레급의 나를 사람들이 피하는 이유는 하나.
경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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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 운명간파(運命看破)
[등급] 용삼품(龍三品)
[설명] 자신과 자신 외의 대상을 상대로 사주창과 알림창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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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 사주 훔치기
[등급] 용일품(龍一品)
[설명] 사망한 대상의 사주 일부를 추출하여 자신의 것으로 취할 수 있다. 단, 업보가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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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신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 신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깨너머로 배운 사주 때문이었을까.
나는 타인의 운명을 간파하는 이능과 그것을 가져올 수 있는 이능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초반에 내 이능이 들통난 뒤, 사람들이 나를 배척하기 시작한 것.
[서강림과 같이 행동하면 다치거나 중상을 입고 돌아오는 사람이 많다.]
[서강림이 동행인들을 죽이고 이능을 빼앗았다.]
[서강림의 사주에 온갖 살(殺)이 껴있어 같이 다니면 불행이 찾아온다.]
그런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나는 순식간에 고립되었다.
나와 동행한 사람들이 많이 다치는 건 사실이었다.
아마도 내 불운한 사주 때문에 그들도 휘말리는 것이겠지.
그러나 사람을 죽인 적은 없었다.
누군가를 죽였거나, 시체에서 사주를 가져왔으면 고작 저 두 개뿐일 리가 없지 않은가.
다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사주 훔치기’라는 사기적인 이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쓰지 않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지 못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 이능은 시체가 오래될수록 소모되는 마력의 양이 많다.
그리고 벌레급인 내가 가진 마력은 한 줌조차도 되지 못했고.
무덤과 장의사를 찾아간 적이 수 차례였으나 모두 허탕이었다.
사망한 지 하루, 몇 시간이 지난 시체를 대상으로는 마력이 부족해서 실패하고 말았다.
현재의 내 마력으로는 죽은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은 시체가 필요했다.
말 그대로 신선한 시체가.
문제는 그런 시체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직접 죽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데, 나 같은 벌레에게 죽어줄 인간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눈앞에서 누가 운 좋게 죽지는 않을까 싶어 한때는 사람들을 열심히 따라다녔지만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비호문에 들어오게 됐으니 마냥 손해만은 아니지만.
그리고 사람들은 나같은 벌레가 강대 문파인 비호문에 들어온 것이 무척 기이한 모양이었다.
“왜 저런 사람이 비호문 같은 문파에 있는 거죠?”
“그게 문파 초기 멤버라 그런 것 같다던데.”
“아무리 초기 멤버라도 그렇지, 섬멸전 때 무슨 짓을 할…….”
“섬멸전 때 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한 남자가 나타났다.
큰 키에 다소 껄렁한 인상의 남자였다.
사람들이 그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흠칫 물러섰다.
“자, 장태헌 맞지?”
“안녕하십니까, 장태헌 씨……!”
비호문의 간부 격 인물인 장태헌.
타 문파에도 유명한 사람으로, 나 같은 벌레급 운명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가 내 험담을 하던 사람의 등을 가볍게 내리쳤다.
“비호문에는 문주님이 고른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아, 예…….”
“그리고 우리 신수아 문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장태헌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 문파원을 적으로 삼는다면, 비호문 전체를 적으로 삼는 것과 같다 하셨죠.”
“……!”
“비호문 전체와 싸우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 말 기억해두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어정쩡한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태헌이 다시 한번 씨익 웃고 그의 어깨를 내리쳤다.
“자, 그러면 출전 준비부터 마저 하자고!”
그가 지시를 내리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장태헌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에게 다가왔다.
“강림이 형,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젠장, 형만큼 좋은 사람이 또 어딨다고…….”
“애초에 신경 쓴 적 없어.”
“그러면 다행이고. 오늘 섬멸전 끝나고 회식 올 거죠?”
그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내 이능이 수상하고, 불운이 함께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거리끼는 기색이 없었다.
“갈 생각 없어.”
“뭐? 왜?”
가봐야 다른 문파원들에게 푸대접이나 받겠지.
장태헌이 나를 계속 설득하던 중, 저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둘 다 뭐하고 있느냐? 아. 여기 서강림도 있구나.”
우리에게 다가온 사람은 비호문의 또다른 간부, 유하랑이었다.
아직 어린 티가 얼굴에 남아 있는 20대 초반의 여자아이였으나 강함으로 따지면 문파 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그때 장태헌이 유하랑을 보고 응원군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말했다.
“아, 하랑아. 글쎄 강림이 형이 이번에도 회식에 안 간다지 뭐야.”
“뭐야, 서강림. 또 빠지는 거냐? 설마 너 괴롭히는 놈들이 있는 거냐? 말해라! 내가 다 쓰러트려줄 테니!”
유하랑은 정말 누군가와 싸우러 갈듯한 기세로 씩씩대며 말했다.
옆에서 장태헌은 말리지는 못할망정 동조하고 있었고.
얘네는 왜 이렇게 나를 못 데려가서 안달일까.
각성자가 되었을 초기에 닿은 인연이 몇 년이나 지속되고 있었다.
나를 좋은 사람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언제쯤 이 착각에서 벗어날까.
그때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유하랑, 장태헌. 서강림이랑 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제 섬멸전 시작이야. 제자리로 돌아가.”
어느새 강도현이 우리에게 다가와 있었다.
비호문의 또 다른 실력자였다.
강도현이 오자 두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가도록 하지. 서강림, 나중에 보자꾸나.”
“형! 이따 회식 와야 해!”
“서강림, 몸조심해. 알겠지?”
선봉에 속한 세 사람은 곧 자리를 떴다.
그 와중에도 장태헌은 계속해서 회식에 오라고 소리를 치고 있었다.
“특수 마경 섬멸전이 시작됩니다! 각 조는 하달받은 명령대로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강도현의 말대로 곧 섬멸전의 시작이 공지되기 시작했다.
나는 전투 능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조무래기 마수를 처리하는 후방조에 배속되었다.
내 등급이라면 상급 마경에는 들어가지조차 못하는데, 특수 마경이라 가까스로 참여가 가능했다.
“강림 씨, 잘 부탁드려요!”
“우리 힘내 봅시다! 다른 문파들은 신경 쓰지 말아요.”
나와 같은 조에 배속된 비호문 문파원들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사람들과 함께 천천히 마경 안으로 들어섰다.
운이 좋으면 한두 놈 정도는 내 앞에서 죽을 것이다.
다만 그게 비호문은 아니면 좋겠는데.
겉으로 보았을 때도 입구가 컸지만 들어서니 더욱 규모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바깥으로 빠져나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넓은 동굴이었다.
그 안에서 역한 귀기(鬼氣)가 훅 몰려왔다.
-그오오오!
앞쪽에서 마수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선봉에서 등급이 높은 마수들을 상대하는 동안, 후방에서는 급이 떨어지는 하급 마수들을 처치했다.
사람들이 쉴 새 없이 공격을 쏟아붓는 가운데, 나 역시 양옆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귀(小鬼)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기이익!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소귀들이 잘려나갔다.
지옥에서 기어 나온 작은 아귀 같은 모양새를 한 놈들이 제법 끈질겼다.
이 정도 인원수면 겁을 먹을 법한데, 놈들은 개의치 않고 달려들고 있었다.
생각보다 수가 많다.
내가 소귀의 시체를 발로 걷어 차낸 그때,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으악, 으아악!”
한 사람이 넘어지자 소귀들이 순식간에 먹잇감을 포착하고 달려들었다.
그 순간, 바닥에서 가시나무들이 광속으로 자라나는 것이 보였다.
-콰과곽!
순식간에 소귀들은 가시나무에 꿰뚫려 있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문파원이 헐떡이며 몸을 일으키던 중, 사람들이 위를 보며 소리쳤다.
“문주님, 비호문 문주님의 이능이다!”
목엽지법(木葉之法).
나무를 성장시키는 이 이능은 문주, 신수아의 것이었다.
위를 힐끗 돌아보자 신수아가 거대한 나뭇가지에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문주 자리까지 올라온 그녀는 아름다운 동시에 강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갈색 머리카락과 녹음이 깃든 듯한 눈동자.
한쪽 눈을 안대로 가렸지만 시선은 날카로웠다.
그녀는 땅을 밟지도 않았다.
나무를 키워내 그것이 만들어 낸 허공 위의 길을 걸어갈 뿐.
신수아가 우리를 잠시 바라보았다가, 다시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비호문과 함께 하는 전투에서는 사망자가 나오지 않는다더니…….”
타 문파원이 제법 감격한 눈치로 말했다.
그의 말대로 신수아가 함께 하는 섬멸전에서는 사망자가 나온 적이 없었다.
문파를 설립한 뒤 4년째 이어져 오는 기록이었다.
나에게는 아쉬운 기록이기도 했지만, 비호문 멤버들이 죽는 것보다는 낫다.
“모두 다시 진형대로!”
신수아의 이능을 봤기 때문인지 문파원들의 사기가 올랐다.
다들 자신이 맡은 포지션대로 마수들을 처치하며 마경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모두의 장비가 피에 찌들고, 내 검 역시 피와 지방으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검을 좀 닦아내야 할 것 같은데 마땅한 천이 없었다.
구석에 죽어있는 소귀가 있길래 나는 그쪽으로 이동해 놈이 입은 거적데기를 벗겨냈다.
한 문파원이 쿨럭대며 말했다.
“슬슬 마기가 짙어지는데…….”
“중간쯤 접어든 것 같아.”
마경의 초입은 그럭저럭 버틸만했지만, 조금 안으로 들어오니 숨쉬기가 꽤 버거워졌다.
애초에 우리 역할은 조무래기 마수들을 처치하는 거였으니, 슬슬 빠져나가야 할 것 같았다.
-그오오오!
그때, 동굴을 울리는 마수의 울음소리에 모두가 일순 입을 다물었다.
동굴이 진동하며 위에서 돌가루가 조금씩 떨어질 정도였다.
“뭐지? 보스인가?”
“보스는 한참 더 남은 거 아니야?”
확실히 보스가 나타나기에는 일렀다.
게다가 그 외에도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방금의 울음소리는 위협이라기보다는 단말마에 가깝게 느껴졌다.
“자, 자! 일단 퇴각 준…….”
조장이 말을 끝내기 전, 마경 안쪽에서 거대한 마수가 뛰쳐나왔다.
모두가 그 짐승을 보고 얼어붙은 것만 같았다.
동굴의 천장에 머리가 닿을 듯한 거대한 마수.
사자의 머리와 코끼리의 코, 소의 꼬리를 가진 짐승은 분명히 불가살이(不可殺伊).
죽일 수 없다는 이름대로 강력한 마수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마수가 지금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밖으로 기어 나온 불가살이는 몇 발자국 가지 못해 쓰러졌다.
-쿠웅!
요란한 진동음이 혼란과 함께 우리를 덮쳤다.
자욱한 흙먼지가 사방에 퍼졌다.
“대체 불가살이가 왜 저 꼴이 되어서 나타난 거지?”
“다른 문파에서 끼어들기라도 한 건가?”
사람들이 웅성대는 가운데, 조금씩 먼지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불가살이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마경의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피 웅덩이를 밟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흰 백발을 지닌 그 여자는 얼음같은 미인이었으나 얼굴보다는 다른 쪽에 시선이 갔다.
칼끝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여자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서강림은 어디에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