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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70화 (완결) (170/170)

170화 (완)

이곳은 어디지?

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어둠에서 눈을 돌려 주변을 보았다.

하늘.

잿빛 구름이 가득한 하늘.

그 밑에는 검은빛과 핏빛, 찬란한 금색이 어우러져 있다.

전장이었군.

“어, 어떻게.”

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뭐?”

“어떻게 깨어난 거지? 아니, 깨어난 게 맞는 건가? 자아를 형성한 건가?”

놈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중언부언하며 몸을 떨어 댔다.

나도 놈이 왜 당황하는 건지 잘 알고 있다.

“글쎄?”

그렇기에 손을 들어 올렸다.

손을 들어 손가락을 까딱.

한 번 휘젓고 나자 날 감싸고 있던 안개가 확 가신다.

나를 얽매고 있던 놈의 격이 한순간에 흩어져 버린다.

“욕심내 먹어서 배탈 난 게 아닐까?”

날 통째로 집어삼켜 흡수하려던 놈의 안면에 대고 대놓고 엿을 날렸다.

내 힘은 오롯이 내 것이다.

“원래 욕심이 과하면.”

네놈이 집어삼킬 수 있는 게 아니다.

“체하는 거야. 몰랐어?”

난 힘을 다시 가져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널리 퍼트렸다.

절망이 가득하던 대지에 따뜻한 황금빛을 내려 주었다.

“아아……!”

“폐하, 폐하께서 돌아오셨다!”

사람들이 기쁨에 찬 목소리로 소리치는 게 들렸다.

그리고 고함을 지르는 어둠의 목소리도.

“어떻게 눈을 뜬 것이냐!”

난 얼굴에 걸려 있던 웃음을 거두고 놈을 똑바로 보았다.

“날 집어삼키려 했겠지. 신은 새로이 태어나는 순간에 제대로 자아를 갖추지 못하니.”

이 세상에는 여전히 신이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제대로 인격을 갖춘 신은 거의 없다.

뇌룡. 백룡. 흑룡. 풍룡. 지룡.

그들은 신의 힘은 갖추었으나 온전한 신이 되지 못했다.

신의 자리에 오는 순간 자신의 자아가 흩어져 아주 먼 훗날에야 자아가 다시 형성되리라는 걸 알았으니까.

아니면 영영 형성되지 않을 수도.

그것은 필멸자의 관점에서 보면… 아니, 솔직히 신이라 할지라도.

죽음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내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른 것이 생겨나는 거니까.

그렇기에 신은 잘 탄생하지 않는다.

무한한 힘과 높은 지위를 얻은 이들이 무엇을 위해 죽음을 자초한단 말인가?

그렇기에 인격을 갖춘 신은 필멸자의 자리에서 불멸자의 자리에 오른 이들이 아니다.

“어둠. 빛의 그림자, 그곳에서 태어난 신.”

난 그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빛을 갈망하고 염원하다가 그것에 홀려 버려 어리석은 선택을 한 신.”

어둠은 빛을 원했다.

신이 인격을 갖고서 방향성과 목적을 갖는 순간,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재앙이 되었다.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것을 탐하니 그것은 재앙이 되었고.

불가해한 힘을 휘두르니 그것은 필멸자들에게 재앙이 됐다.

다섯 용은 신의 힘은 갖추었으나 신이 아니니 어둠을 막을 수 없었다.

그 다섯의 격을 전부 희생하고 일부는 존재까지 희생했음에도 잠시 그를 멈추는 것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시간 동안 새로운 신을 탄생시키려 했다.

길고 긴 시간을 넘어 지구인들이 이곳에 소한되었다.

“너는, 너는 내가 고른 인간이다. 직접 이 땅에 소환하기 위해 관찰하여 고른 한낱 필멸자에 불과하단 말이다!”

“그러는 너는 그저 자연이 존재하고 세계가 존재하기에 나타났던 어둠일 뿐이었지. 태어나고자 태어난 것도 아니고, 존재하고자 존재했던 이도 아니고.”

나를 필멸자였다 비난한다면.

“그저 무생물에 불과했던 것 아닌가? 그것에 무슨 영광이 있는지?”

너는 그런 생(生)조차 쥐어 보지 않았느냐고.

“인간이었다 했었나? 그것은 네 기억의 날조에 불과하다. 넌 인간이었던 적이 없다. 넌 그저 인간의 그림자였을 뿐.”

산 것들을 질시하던 그림자에 불과하지 않았느냐고.

나는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싸움은 끝났다.”

신의 싸움은 인간의, 지성체의 영역을 벗어난 곳에서 이루어진다.

한데 우리는 지금 온갖 지성체가 보이는 곳에 있다.

그러니.

이미 싸움은 끝난 것이다.

“네 계획은 실패했다, 어둠이여.”

화아아-.

내 몸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내 주변에 있던 모든 안개가 완전히 사그라들며 밀려난다.

물론 나도 놈을 완전히 죽일 수는 없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기 마련이고.

놈은 나의 대척점에 있을 뿐, 내 밑이 아니다.

다만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네가 지금까지 일그러트린 모든 인과와 법칙에서 생겨난 업보를 끌어안고 사라져라.”

난 그에게 손가락을 뻗었다.

내게도 슬프게 들리는 말이지만, 신에게 인격은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그저 부수적으로 생겨나는 것일 뿐…….

나는 놈의 인격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이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이 세계가 나에게 잠시 내려 준 힘이다.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죄악을 저지른 신에게 내리는 처벌.

“아, 안 돼!”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던 어둠의 몸이 점점 스러져 간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놈의 머리칼, 팔 끝, 다리 끝, 모든 곳이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놈은 처음부터 불멸의 존재로 태어났으니 죽음의 공포를 모른다.

다만 지금쯤은 자아를 잃는다는 게 죽음에 가까운 공포를 안긴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내, 내 힘을 넘기겠다.”

어둠이 애처로이 손을 뻗어 내게 말했다.

“내 격을, 내 신으로서의 힘을 모두 넘기겠다! 제발!”

나를 향해 애원한다.

‘신일지라도 끝은 이리 추악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바아알!”

나는 씁쓸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이자에 의해 죄 없는 지구인 수천 명이 이 땅으로 소환되었다.

지구인들을 부른 이유는 세계의 구원을 요청하기 위함도 아니요, 용사를 바랐기에 그런 건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이자의 욕심 하나에 이용당한 것뿐.

그리고 그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아악!”

곧 놈은 단말마를 내지르며 완전히 흩어졌다.

놈의 힘이었던 검은 안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넓게 퍼져 사라져 갔다.

인격을 잃은 신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갈 것이다.

아무런 원망도, 갈망도, 절망도 없이.

기계 장치의 태엽처럼 세계를 돌아가게 하는 원리로 남을 것이다.

나는 시선을 내렸다.

지상에 존재하던 모든 마물이 검은 안개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저들은 어둠의 힘에서 파생된 조각일 뿐.

어둠이 자아를 잃었으니 따라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아직 듬성듬성 남아 있는 검은색의 개체들이 보였다.

바로 악마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발칙한 꿈을 꾸었구나.”

악마들은 처음부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어둠과 나를 본 거겠지만.

뭐…….

그들도 그저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거겠지만.

“죽어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손을 뻗어 그들에게 말하자 날카로운 황금빛이 뻗어 나가 그들의 몸을 꿰뚫었다.

악마들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몸을 뒤틀더니 곧 검은 재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그렇게 전쟁이 끝났다.

잠시 후.

평원에 사람들의 함성이 가득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이런 창이 생뚱맞은 타이밍에 나타났다.

고개를 돌려 풍룡을 보자.

그녀는 내게 황급히 말했다.

-그, 한 번에 보내다가 실수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신이시여.

난 그녀의 말에 피식 웃었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가 소한된 것에 그녀의 책임도 일부분 있겠지만.

“그대의 죄를 사하노라.”

모르겠다.

그냥 지금은 이 평화로움을 더 즐기고 싶었다.

그리고 어쩐지 눈앞에 뜬 창을 보니 살짝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아서.

나는 웃었다.

* * *

촤악.

촤아악-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파도는 새하얀 포말과 함께 밀려온다.

키루루루루-.

뇌조는 그런 바다를 보며 즐거운 울음소리를 내었다.

“와! 여기야, 여기!”

“야! 좀 멈춰 봐!”

그리고 해변에는 웃고 떠들며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를 돌려보낸 지 약 2년.

전쟁의 피해를 모두 수습한 지 딱 1년이 지났다.

그 후에 우리는 작은 소풍을 왔다.

화린, 철우, 수인 왕, 그림자 요정 일부, 이렌, 트렌 케륵, 크룩, 펜리르 등등…….

의외인 멤버는 페일과 제크 정도?

둘은 여기에 쭉 남겠다고 했다.

나는 온전한 신의 자리에 올랐기에 항상 지상에 현현해 있을 수 없었다.

이것은 신의 힘을 완전히 놓지 않은 이상 어찌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 너무 거대한 탓에 땅이 못 받아들이는 거니까.

그렇기에 며칠 동안 꼬박 아무것도 안 하고 하늘에서 둥둥 떠다니면서 비축해 뒀다가 이렇게 내려온 것이다.

“시원하긴 하네.”

난 푸른빛의 바다를 눈에 담았다.

그러고 보니 이 땅에 오고 나서 바다를 본 건 처음이다.

바다라…….

우리는 꼬박 일주일 동안 바다에서 머물렀다.

모두 복잡한 일에서 벗어나 한껏 지금을 즐겼다.

마치 이게 마지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일주일 후.

황성에 돌아온 이후에는 국무를 잠시 돌봤다.

뭐, 난 거의 바지 사장에 불과할 뿐이고, 일은 다른 애들이 다 하고 있긴 하지만.

슬슬 준비해 둬야 하니까.

참고로 폴그룬 제국은 현재 대륙의 절반을 넘게 지배하고 있다.

말이 지배지, 사실상 거의 무법천지가 된 대륙을 안정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거다.

제국을 돌보고, 그다음엔 온 대륙을 돌아다니며 내 힘이 필요한 곳에 강림해 일을 처리했다.

정신 없이 바쁜 나날이었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기실, 어둠이 인격을 잃은 이후로 지금까지 태업해 왔던 일을 처리하려는 건지 엄청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어서 내가 할 일이 별로 없다.

“으음.”

난 펜대를 몇 번 굴리다가 강림을 해제했다.

곧 지상에 있던 몸이 순식간에 하늘로 빨려 들어갔다가 흩어졌다.

평상시엔 인간의 형상을 할 시간도 거의 없다.

그저 이렇게 구름처럼, 바람처럼 돌아다니며 세상을 내려다본다.

아마 대부분의 신이 이러겠지.

‘흐으으음.’

아직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풍룡, 그녀한테 책임을 물어 꾸짖을 일도 많이 남았고.

어둠에게 붙었던 놈들에게 천벌을 내리기도 해야 하고.

백룡, 지룡, 뇌룡, 흑룡 등.

자신을 희생해서 나를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었던 이들을 기리는 일도 필요하다.

뭐, 그들도 결국 나를 이용해 먹은 거긴 하지만.

어찌 됐든 그들이 없었다면 난 애초에 마경에서 죽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이제 제일 중요한 게 하나 남아 있는데.

현재 대륙에 남아 있는 플레이어의 수는 한 줌도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이 현재의 생활에 만족해 남아 있기로 한 이들.

그러나 그들에게 아예 지구에 대한 그리움이 없는 것도 아니다.

본래대로라면, 지구로 돌아가면 이곳으로 돌아오는 건 영 힘든 일이겠지만…….

‘신’이 함께한다면 그리 어려울 일도 아니다.

한 달 정도는 가뿐히 다녀올 수 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어느 한 지점을 보았다.

밝은 얼굴로 차원 이동 마법진을 만들고 있는 화린과 철우, 플레이어들.

그리고 그들을 돕고 있는 풍룡.

약 이틀 후에는 지구에 다녀올 것이다.

나도 신의 육체를 잠시 벗어 놓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지구에 갈 거다.

‘음…….’

지구에 가면 무엇부터 하지?

-신이시여, 마법의 시동어는 무엇으로 하는 게 좋겠습니까?

행복한 고민을 하는 내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풍룡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내게 이렇게 직접 말을 거는 게 가능했다.

우선 그녀도 신에 반쯤 발을 걸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음.’

난 그녀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어렵지 않게 대답을 했다.

-로그아웃.

항상 꿈꿔 왔던 단어.

-로그아웃으로 하지.

나는 그리 말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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