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군세는 거침없이 나아갔다.
마물의 군세를 파악하기 위해 보낸 정찰대가 그들의 위치를 속속들이 보고해 주었다.
그 때문에 군세는 빠르게 행군하면서도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높은 산봉우리가 모인 곳에 도착했다.
“이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나는 자리를 한번 살핀 후 그렇게 명령했다.
곧 사제들이 나서서 내 명령을 전달하며 잠시나마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게 했다.
“마물 군세가 도착하는 데엔 얼마나 걸리지?”
“오늘 밤쯤으로 예상됩니다.”
“그리 여유롭지는 않군.”
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병사들을 보았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않게 움직였기에 아직 여력이 있어 보였다.
전장의 주 무대는 산등성이일 터…….
“삼십 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바로 올라가지.”
“알겠습니다.”
상황이 여유롭지 않은 만큼 신성-제국 연합과는 미리 연락을 해 뒀다.
‘제1수색대의 공이 컸군.’
만약 그들이 아니었다면 여러모로 곤란을 겪었을 것이다.
우선 왜 마물들이 갑자기 텅 빈 산악 지대를 향해서 달려드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 알았다고 해도 같이 연계해서 싸우기는 힘들었겠지.
그들 입장으로서는 우리를 갑자기 아군입네, 하고 받아들일 수 없었을 테니.
하지만 다행히 우리는 수색대를 통해서 미리 연결 고리를 만들어 뒀다.
그들은 갑작스레 도피해 온 탓에 식량이나 여러 자원 사정이 열약하였고, 우리는 그들을 충분히 아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판단해 어느 정도 지원을 해 주었다.
그리하여 그들도 이번 마물 군세 측의 공습에 우리를 경계하기보다는 아주 많이 반기는 처지였다.
“다시 이동한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휴식을 마치고 다시 진군을 시작했다.
산등성이에는 조약하나마 길이 나있었지만, 아무래도 대군이 움직이기에는 심히 불편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쳐들어오는 처지에서도 산을 오르는 게 절대 편하진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미리 가서 자리를 잡을 것이고, 적들은 공격하기 위해 이곳을 아등바등 기어오를 테니.
방어하기엔 유리한 장소라고 볼 수 있다.
곧 산을 타다 보니 저 멀리 요새가 보였다.
“오! 오셨습니까!”
그 요새 위에는 하얀색의 갑주를 걸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우릴 보자마자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이곳이 이들의 최후의 요새.
“신의 방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난 급조한 것치곤 썩 괜찮아 보이는 요새를 보며 마주 웃어 보였다.
곧 남자의 안내를 따라 우리 군은 요새의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넓군그래.”
“하하. 모두 황제 폐하 덕분이지요. 지원해 주신 자원, 그리고 탈로스 경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남자는 넉살 좋게 웃어 보였다. 하긴 딱히 아부도 아닌 사실이다.
이들의 역량만으로는 불가능했을 테니. 자원도 자원이지만, 탈로스의 힘이 아주 컸다.
본래 이곳은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산 중턱으로, 일 군은커녕 한 개 중대가 머물기도 힘든 비좁은 곳이었다.
하지만 탈로스가 누구인가?
내가 건넨 대지의 오브를 흡수한 탈로스의 힘은 산 하나를 갈아엎고도 남을 정도다.
누가 이 요새를 단 하루 만에 지어졌다고 생각할까.
나는 남자와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눈 후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물의 군세가 오늘 저녁쯤에는 산 아래에 당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쪽도 방비는 끝내 놓았나?”
“그렇습니다.”
남자.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이자도 만만치 않은 사내이다.
신성-제국 연합 측의 2인자이자 망한 제국의 황태자.
그것이 그의 정체였으니까.
“그럼 길게 이야기할 필요 없겠군. 당장 수뇌부들을 모두 불러오게.”
병력 배치는 밑의 이들이 상의하여 결정할 것이다.
우선 우리는 어떻게 적을 맞이할 것인지 회의를 할 것이다.
* * *
회의는 빠르게 진행됐다.
마물의 군세 앞에서 서로 자존심을 세우거나 할 여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여력이 상당하다고는 하지만, 폴그룬 제국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나마 이들의 장점은 작은 규모에 비해 강자의 수가 많은 것뿐.
하지만 그 강자의 수도 우리와 비교하자면 적은 편이고, 병력의 절대적인 수는 비교하기조차 힘들다.
그만큼 우리가 압도적이라는 뜻.
따라서 회의는 주로 우리 쪽에서 주도하여 진행되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저도 동의합니다.”
마물의 군세가 도착하기 몇 시간 전. 회의가 끝이 났다.
회의에 참석한 이들 하나하나가 강한 전력이니만큼 자리를 파한 후 각자의 자리에서 준비하기로 했다.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상의할 게 있으면 통신구를 통해서 의견을 교환하기로 하고.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라!”
나는 부러 병력들이 배치된 곳의 한복판에 서서 소리쳤다.
“우리가 싸울 것은 제대로 된 지능조차 없는 하등한 마물들에 불과하다!”
그들의 사기를 고취시킬 만한 말을 하며 난 준비 태세를 점검하였다.
항상 곧 전쟁이 시작될 거다, 시작될 거라 말만 했지 정작 그때가 눈앞으로 다가오니 나조차 많이 긴장됐다.
이번 전투에 놈들은 병력의 삼분의 이를 보냈다.
놈들의 특성상 병력을 충원하는 게 쉽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번 전투에 따라서 전쟁의 끝이 빨라질 수도 있다.
‘전략가…….’
물론 이번 전투로 저쪽이나 우리나 모든 병력을 소모하진 않을 거다.
특히 우리가 합류한 걸 저쪽도 알았을 테니 더더욱 몸을 사리려 하겠지.
‘최대한 병력을 갉아먹는다.’
놈들의 장수까지 잡아낸다면 아주 큰 이득일 테고.
그 후로도 나는 계속해서 돌아다녔다.
그리고 결국 시간이 흘러 예정된 시간이 다가왔다.
우웅-
난 품에서 울리는 진동에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구슬을 꺼냈다.
구슬을 꺼내 드니 곧 목소리가 들렸다.
정찰조였다.
-폐하, 마물 군세가 다가오는 게 육안으로 확인됩니다.
그는 거리와 시간 등을 말해 주었고, 나는 그것을 바로 옆에 대기하고 있던 사제에게 일러 주었다.
곧 그 정보가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던 요새가 부산스러워졌다.
나는 우리 측 병력에도 모두 준비를 하라 일렀다.
“마물들이 산 바로 아래 평야로 집결하고 있다! 언제든지 돌진해 올 수 있으니 궁수와 마법사들은 준비하라!”
곧 육안이 아니라 소리로 마물들이 다가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갑작스레 땅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나 수가 많은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반 병사들도 그 울림을 알아챘다.
현재의 배치로는 놈들은 우리를 발견하기 힘든 대신 우리는 놈들이 접근하는 게 훤히 보이는 상황이다.
곧 마물들이 개떼같이 몰려드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준비-!”
나는 바로 준비 신호를 내렸다.
아직 그 모습이 보이기만 할 뿐, 아직은 활의 사거리 밖이었다.
곳곳에서 사제들이 달라붙어서 활과 화살에 축복을 건다.
나는 우선 놈들이 사거리 안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최대한 힘을 비축하며 하늘에 미리 준비를 해 두었다.
아무래도 한 번에 공격을 해야 그 효과가 클 테니까.
곧 마물들은 열심히 달려 우리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왔고, 곧바로 나는 명령을 내렸다.
“발사!”
“발사!”
신성-제국 연합에서도 우리의 신호에 맞추어 곧장 명령을 내렸다.
화살은 그대로 밝은 빛을 뿜어내며 하늘을 수놓았다.
특히 우리 측의 화살에는 푸른 전력이 휘감겨 있었는데, 웬만한 마물은 저 화살 한 방이면 몸이 굳을 거다.
그리고 저 정도 규모라면 몸이 굳는 것만으로 뒤에서 몰려드는 놈들한테 짓밟힐 테고.
-키햐아아아악!
그 예상대로 들어맞았는지 앞쪽에서 마물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전열이 그대로 무너지며 한참 뒤에 달려오던 놈들까지 거칠게 휘말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뒤이어 사제들이 대규모 주술을 외기 시작했다.
사제는 우리 측과 신성-제국 연합 측으로 갈렸다.
우리 측의 주술은 간단했다.
벼락. 그것도 아주 대규모의 벼락 비.
나도 그것에 보태기 위해 그들의 주술에 계속 힘을 퍼부어 주었다.
아마 저 측도 저들대로 신성 주문을 외우겠지.
“신성한- 벼락이여-!”
“뇌신의 축복이 우리에게 강림하리라-!”
주문은 우리 쪽이 더 빠르게 완성됐다.
밤이라서 하늘은 여전히 깜깜했지만,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은 확실했다.
새카만 밤하늘에 몰려든 먹구름.
먹구름 사이사이 푸르게 빛나는 뇌전의 기운.
그리고 바로 다음.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마치 하늘이 통째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
푸른 전격 수천 줄기가 지면을 강타한다.
마물의 수는 평원을 가득 메우고도 남을 정도로 어마어마했고, 그런 어마어마한 수의 마물이 벼락 줄기에 타들어 간다.
땅이 뒤집히고 갈라진다.
거기다가 뒤이어 연합 측의 주문도 가세했다.
휘이이이이이-!
콰지지직!
바람과 물, 불, 그리고 형체가 없는 다양한 종류의 힘들.
그것들이 제각각 존재감을 발하며 마물들을 갈아엎었다.
마물 군세는 어떻게 손쓸 틈도 없이 그것에 그대로 갈려 나갔다.
여기까지는 우선 계획대로다.
난 한풀 기세가 꺾인 마물 군세를 보다가 바로 통신구를 꺼냈다.
“조짐으로 보아 곧 악마 소환이 있을 것이오. 미리 준비를 하도록.”
악마 소환.
제1수색대를 통해 얻은 정보로 보아 놈들은 악마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걸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이 순간, 이렇게 죽음이 충만한 곳에 악마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당장 달려오는 저 마물 군세의 어디에도 악마가 없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핵심 전력은 빼놨구만.’
분명히 그 수는 전체 전력의 삼분의 이라 칭할 만큼 대단했지만, 정작 가장 까다로운 놈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저번에 봤던 악마 년이나 전략가의 간부 몇 명이라도 있어야 했다.
‘숨겨 둔 전력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거지.’
난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놈을 생각했다.
전략가.
이렇게 많은 수의 마물을 이용해 도대체 어떤 악마를 소환하려는 것인지.
연합 측은 항마의 힘이 담긴 주문을 외기 시작했고, 나도 병사들에게 축성을 미리 내려 두었다.
휘오오오오오오오오-!
곧 전장에 바람이 휘몰아쳤다.
나는 그것이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높은 위치에 있어서 그런지 적진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한눈에 보이기도 했고.
‘시체를 이용해 진을 그렸군.’
돌진해 오는 적의 진열이 특이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애초에 그게 진을 만들기 위한 재료였나 보다.
저게 우연히 생겨났을 리는 없으니.
쿠웅!
곧 예고 없이 적진의 한복판에서 거대한 손이 빠져나왔다.
주변에 있는 마물들을 터트리며 바닥을 기어오른 악마는 거친 함성을 토해 냈다.
-쿠워어어어어어어어!
나는 소의 머리를 한 거대한 악마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미친… 도대체 뭔 생각으로.”
난 붉게 달아오른 악마의 눈을 보았다.
녀석의 이름은 베하투리폴로스.
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미친 소라고 부르는 녀석이다.
녀석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무식할 정도의 힘이다.
악마 주제에 주술에 대한 능력은 전혀 없고, 그 대신 무지막지한 육체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녀석은 이성이 하나도 없다. 즉, 적아 구분 없이 미쳐 날뛰는 녀석이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