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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62화 (162/170)

162화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 낀 듯 어두웠다.

슬슬 수확철이 다가오는지 평야에는 곡식이 싱그럽게 영글어 있지만, 그것을 수확할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두두두두두-.

땅을 울리는 소리.

평야의 끝에서 검은 파도가 몰려온다.

크기도 외형도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살아 있는 것에 대한 무한한 적개심.

-모두 준비!

그 검은 파도를 본 지휘관은 음성 증폭구를 이용해 명령을 내렸다.

성벽 위에 늘어서 있던 병사들은 바로 시위에 화살을 메겼다.

-마법사, 사제, 주문 시행!

동시에 병사들 중간중간에 서 있는 마법사와 사제들은 병사와 그들이 든 화살에 주문을 건다.

성벽 위에 늘어선 이들에게 오색 찬란한 빛이 내린다.

검은 파도에 맞서는 빛의 병사.

실로 장엄한 장면이었지만, 일촉즉발의 순간에 병사들은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땅울림은 점점 더 커지고, 검은 파도는 활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하여 지휘관은 자신이 먼저 팽팽하게 당겼던 시위를 놓았다.

-발사!

그와 함께 내려진 명령.

휘이이이이이이-!

지휘관이 쏜 화살이 마치 유성우처럼 밝은 빛을 발하며 검은 파도로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화살이 파도에 닿는 순간.

콰과과과광!

마치 폭탄 수십 개를 터트린 것 같은 굉음과 함께 파도를 이루고 있던 마물들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케헤에에엑!

병사들은 그 모습에 급히 화살을 쏘아 내었다.

쉬시시시시시식!

지휘관이 쏜 화살만큼은 아니었지만 화살은 제각각 밝은 빛을 발하며 떨어져 내렸다.

쾅! 콰광!

물밀듯이 밀려오던 마물들이 주춤거린다.

화살에 닿을 때마다 마물 서너 마리가 사라졌다.

병사들은 부리나케 다시 화살을 메기며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 냈다.

마물의 전열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지휘관은 전장의 상황을 살피며 특히 커다란 덩치의 마물들을 요격했다.

딱 지금까지는 제국이 상정한 대로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적들도 제국의 저력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앞서 달려 나간 마물들은 그저 소모품일 뿐.

쿠웅!

쿵! 쿵!

지금까지와는 격을 달리하는 커다란 울림이 울려 퍼졌다.

지휘관은 굳은 표정으로 소리가 울리는 곳을 보았다.

평야의 저 끝에서 성벽 높이만큼 커다란 마물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인간들은 높은 성벽을 무너트리기 위해 보통 공성 무기를 쓴다.

‘크룩’같이 공성에 특화된 능력을 지닌 이들은 극히 희귀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마물들은 애초에 공성 무기 같은 걸 쓰지 않는다.

쿠웅! 쿵!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쿠워어어어어어어!

네 개의 다리. 두 개의 팔.

마물 중에서도 공성에 특화되었다 일컬어지는 마물.

자이언트 헬콥.

놈의 두 팔은 거대한 기둥처럼 두꺼웠는데, 그 손으로 성벽을 쓸어내리기만 해도 순식간에 수비에 구멍이 뚫리곤 한다.

물론 주먹으로 성벽을 뚫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었고.

-와이번 기사단! 성벽 위에서 대기!

그렇기에 지휘관은 더는 아껴 둘 수 없으리라 판단해 중요 전력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후욱!

제국의 성벽 안쪽에서 일단의 무리가 날아오른다.

와이번.

용의 아류로서 몬스터로 분류되긴 하나 제국에선 그것을 길들일 방법을 찾아내 이용하고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수호룡의 도움을 받아 길들인 거라는 말도 있었다.

휘이이이이이이익-!

와이번 기사단 열다섯은 성벽 위로 올라와 착지했다.

그리고 성벽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한 명씩 와이번 위로 올라탔다.

본래 전투에서 와이번 기사는 한 명의 마법사를 대동한다.

원거리 공격에 대한 방어와 보조 마법을 운용하기 위해서이다.

쿵! 쿠웅!

헬콥들은 순식간에 가까워졌고, 지휘관은 기사단에게 출격을 명했다.

-크라아아!

와이번들은 날카로운 괴성을 토해 냈다.

기사들은 거대한 창을 앞세운 채 묵묵히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전장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계속 변화했다.

양 측의 지휘관은 상대방의 수에 대응하여 계속해서 새로운 수를 내놓았다.

하지만 전쟁은 결코 한 수 한 수를 내놓으며 겨루는 놀이가 아니다.

지휘관이 어떤 수를 쓰는지와 상관없이 병사들은 계속해서 화살을 쏘고 성벽을 오르는 마물들에 창을 휘두른다.

방어가 굳건한 와중에도 병사들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마물이 죽었다.

지금 이 순간 이곳은 그 어디보다 죽음의 농도가 짙은 곳이었다.

온 대륙에서 오직 이곳 한 군데에서만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휘이이이이이이이-!

거친 바람이 분다.

제국 측의 지휘관은 영리한 자였고, 마물들의 술수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마물들은 전장과 동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술수를 꺼내 들었다.

“그대에게 바랍니다.”

“모든 악의 주인이시여, 이 죽음의 땅을 그대를 위해 준비했으니.”

“비록 보잘것없는 제물이라 하나 이곳에 그 모습을 현현해 주시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마물 군세에서 동떨어진 언덕 위.

일단의 무리가 무어라 주문을 외우고 있다.

그들의 주문은 갈수록 급박해졌고, 동시에 중앙에 있는 진은 갈수록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장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쿠웅!

땅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울림.

이제까지와는 다른 울림이라는 걸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렇기에 대응도 늦었고, 그만큼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푸화아아아아악!

제국 측의 성벽 바로 밑에서 무언가가 솟구쳐 올랐다.

“아, 악마?”

한창 병력을 지휘하던 지휘관이 흠칫 놀라 그쪽을 보았다.

콰르르르릉!

성벽이 무너져 내린다.

굳건했던 방어벽이 허무하게 뚫리고, 그 사이로 마물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지휘관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타난 그것을 보았다.

거대한 몸뚱어리. 수백 개의 팔이 뻗어 나오고 수천 개의 눈깔이 달린 괴물.

그것은 결코 마물 같은 게 아니었다. 지휘관이 말한 대로 그것은 ‘악마’.

죽음을 살라 먹는 자라는 칭호를 가진 악마 ‘마스코데루스’.

그 기괴하고도 전율스러운 모습에 지휘관은 넋을 놓고 보았다.

콰아아아아아앙!

악마가 몸을 뒤틀자 그대로 성벽이 와르르 무너진다.

지휘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꺼낸 물건을 꽉 쥐었다.

“보고! 보고 올립니다!”

푸른빛의 구슬.

바로 통신구였다.

-말하라.

“서, 성녀가 말했던 제3종 악마, 마스코데루스가 나타났습니다!”

-…알았다. 대기하도록.

연락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서 활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에게 내려진 명령은 단 하나.

시간을 끄는 것.

“우오오!”

그가 든 활이 찬란한 빛을 뿜어낸다.

와이번 기사단은 갑작스러운 악마의 출현에도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현재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지휘관은 자신의 한심했던 모습을 반성하며 힘을 쥐어짜 냈다.

휘오오오오오오!

시위에 건 화살이 발하는 빛이 점점 더 강렬해진다.

성벽을 파괴하며 병사들을 학살하는 데 집중하던 악마도 그 강렬한 빛에 일순간 시선을 돌릴 정도였다.

투웅!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아까 전 마물들에게 쏘아졌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렬한 빛이었다.

그리고 그 화살은 악마의 몸에 닿아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냈다.

-크오오오오오오!

악마가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분명히 피해를 입은 모습이었다.

“아…….”

그러나 그것은 지휘관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제법 컸던 구멍은 악마의 몸 전체와 비교하면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었고, 그것마저 시시각각 아물어 가고 있었다.

하긴, 인간들도 아주 작은 생채기에 비명을 내지르곤 한다.

악마의 비명은 단순히 깜짝 놀라 내지른 것일 뿐.

결코 치명적인 공격을 받아 내지른 비명이 아니었다.

-크오오!

그리고 악마는 자신에게 상처를 낸 건방진 인간에게 철퇴를 내린다.

그 거대한 몸뚱이가 지휘관에게로 떨어져 내린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의 일부가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위협적이고 절망적이었다.

지휘관은 자신의 바로 앞으로 다가온 죽음에 맞서 눈을 크게 떴다.

그래도 아주 잠시나마 시간을 끌었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후우우우우우웅-!

악마의 몸뚱이가 당장이라도 지휘관의 몸을 짓누를 것처럼 보였다.

쿠우우우웅!

특히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을 땐 병사들은 모두 자신들의 지휘관이 죽었으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들은 거대한 악마의 몸뚱이가 지휘관이 선 성벽을 내리쳤는데도 성벽이 아주 멀쩡하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공격을 한 악마가 비명을 내지르는 것에 의구심을 느꼈다.

무언가.

무언가가 벌어졌다.

화아아아아악!

초록빛의 바람이 휘몰아친다.

악마가 깔아뭉갠 성벽에서부터 시작된 바람은 그 거대한 몸뚱이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제야 병사들은 성벽 위에 누군가가 서 있는 걸 발견했다.

초록빛 머리칼을 한 남자.

거칠게 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서 평온하게 서 있는 남자가 손을 들었다.

콰가가가가가가!

그의 손을 따라서 바람이 악마의 몸을 휘감았다.

-키아아아악!

바람이 악마의 몸을 휘감으며 살점과 핏물이 쏟아졌다.

악마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며 병사들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성녀…….”

“성녀의 기사다……!”

그 중얼거림은 곧 병사들에게 환희를 안겨 주었다.

바로 전에까지 공포에 짓눌려 있던 병사들에게 희망이 퍼져 나갔다.

제국의 최외곽.

바첸 요새에서 제국이 숨겨 왔던 전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평야를 가득 메운 군세.

그 가장 앞에는 금색의 새, 거대한 늑대 그리고 황제가 있다.

폴그룬의 거대한 군세가 어느 한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마물들은 제국을 습격했고, 다른 병력들도 동시에 움직였다.

‘모든 병력을 중앙으로 움직일 줄이야.’

폴그룬을 겨냥하듯 배치해 뒀던 마물들을 순식간에 중앙으로 옮겨 신성 제국 연합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호진은 그 움직임을 파악하자마자 병력들을 이끌고 출진했다.

‘가장 세가 약한 곳부터 꺾을 생각이야.’

객관적으로 가장 전력이 강한 곳은 제국이다.

그런데 신성-제국 연합에 그보다 배는 많은 병력을 보낸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압도적인 전력으로 밀어 버릴 속셈인 것이다.

호진으로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였고, 이 상황에서 동부의 중심을 내줄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출진을 결심한 것이다.

제국, 신성-제국 연합, 폴그룬 제국.

동부의 모든 전력이 움직이고 있다. 또한 서부를 모조리 점령한 마물들도 모든 병력을 동부로 움직였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이었고, 모든 것을 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호진은 저 먼 하늘을 보았다.

마치 불길한 이 대륙의 운명을 대변하듯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고 있었다.

호진은 자신의 군세가 신성-제국 연합에 도착하는 때를 내일 저녁으로 예상했다.

먹구름이 낀 하늘과 어두운 밤.

그리고 내일 저녁은 만월일 것이다.

호진은 자신의 창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모든 환경이 자신을 향해 웃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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