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61화 (161/170)

161화

“연락을 넣었습니다.”

페일은 수정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강혁은 여전히 긴장한 표정으로 인간 탑을 보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서 물었다.

“뭐라 하셨지?”

“강혁 아재한테 모든 판단을 맡기겠다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되 위험할 것 같으면 목적지까지 가지 말고 바로 복귀하라고 했습니다.”

강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당장 호진이 이곳으로 왔으면 하고 연락을 넣은 건 아니었다.

다만 바로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아 그리했을 뿐.

그는 마지막으로 주변의 모습을 확인하고서 말하였다.

“우선 마을을 한 바퀴 돌고서 그대로 빠져나가지. 자세한 얘기는 그 후에 하는 걸로 하고.”

“알겠습니다.”

페일과 제크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빠르게 움직여 마을의 나머지 부분을 확인하고서는 왔던 길을 되짚어 안전한 곳으로 몸을 뺐다.

황야로 나온 후, 그 전날 거점으로 삼아 잠을 청했던 곳으로 돌아온 후에야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생각보다 끔찍하군.”

강혁은 질린 듯한 목소리로 이마의 땀을 닦아 내며 그리 말했다.

“그렇네요.”

제크도 그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페일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고민하다가 말했다.

“저게 악마를 소환하는 공양 탑이다, 이거지요?”

“그래. 정확히 말하면 보통 악마도 아니고.”

강혁은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모두 말했다.

저 정도의 제물이면 최소 하급 악마 이상.

그것도 여러 개라면 중급 악마까지도 소환할 수 있다.

“게다가 공양 탑 근처에 소환 진까지 그려 넣고 있더군. 그렇다는 건 저쪽에 악마 소환에 대한 지식을 가진 이가 있다는 거야.”

“최악이군요. 악마 소환 진에 대해 아는 건 극소수일 텐데.”

“그렇지.”

악마 소환 진.

본래 게임에선 악마 진영, 그것도 아주 소수의 인원만이 아는 것이었다.

그걸 알아내기도 힘들거니와 유저들은 그 지식을 저들끼리도 공유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게 소환 진은 그 자체로 귀중한 아이템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돈을 받고 팔아도 모자랄 판에 그것을 공짜로 퍼 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페일은 강혁의 말에 최악의 결론을 생각해 냈다.

“주변엔 통제하는 유저 같은 건 없었으니… 강혁 아재는 저 공양 탑이 아주 대규모로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 차라리 유저 한두 명이 저런 걸 만들고 있었다면 괜찮았겠지. 그런데 저런 걸 그냥 휘하의 마물들에게 맡겨 놓았다면.”

정보를 숨길 것도 없이 아주 본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뜻.

“이건 게임이 아니니까.”

강혁의 말에 모두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건 게임이 아니다.

정보를 굳이 저들끼리 알 필요도 없다.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전력이 강해지면 그것만으로 승기를 잡는 데에 큰 도움이 될 테니.

애초에 저들 진영의 특성을 대충 알면서도 악마와 연관을 짓지 못했다는 게 실수였다.

“괜히 호진 님이 놀라지 않은 게 아니었군요.”

호진은 대략적인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고도 크게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물론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같긴 하지만, 거기까지 였다.

“어찌 됐든. 앞으로는 더 끔찍한 광경을 볼 수도 있겠어.”

강혁은 앞으로의 자신들의 경로를 떠올리며 그리 말했다.

도중 다른 흔적을 쫓느라 여정이 많이 지체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적들의 진영으로 들어왔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 고작 절반도 안 들어 왔는데 이 정도라면… 그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 * *

대륙 각지로 퍼져 나간 수색대는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정보를 보내왔다.

호진은 그 정보를 취합하여 우선 첫 번째 목적을 정하였다.

동부 지대에 확고한 지배력을 갖는 것.

‘제국과 제국-신성 도시 연합을 제외한 모든 곳.’

동부 지역을 보자면 그 위쪽은 대부분이 제국이 다스리는 영역이다.

제국-신성 도시 연합. 그들은 한 세력이라고 보기엔 민망할 정도로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구역은?

‘대부분 소국이다.’

맨 아래에 폴그룬이 위치하고, 그 오른쪽으로는 수인 왕국만이 있다.

마틴과 그림자 요정은 이미 폴그룬의 휘하로 들어왔으니 이제 남은 건 나머지 구역, 즉 위쪽과 왼쪽뿐이었다.

‘에바 왕국을 이 기회에 점령한다. 그리고 위에 남아 있는 나머지 왕국들도 모두 점령해야겠어.’

에바 왕국에 대해선 여전히 강력한 한 수를 가지고 있다.

바로 에바 왕국의 황제.

그는 여전히 폴그룬의 수도에 감금되어 있었다.

그도 ‘에바 공작’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으니 정벌을 하는 것은 물론 그 이후에도 쓸모 있는 패가 되리라.

‘위에 남은 건 공국 하나와 왕국 하나.’

그들은 딱히 전력이 강하지도 않았다.

마물들이 여전히 서부에 머물러 있고, 크게 공세를 펼치지 않아 살아남은 것뿐.

호진은 그들을 무너트리는 것 자체는 아주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호진은 우선 에바 왕국 그리고 남은 곳들에 사신을 보냈다.

항복하면 그들의 권위를 존중한 채 아래로 받아 주겠다.

하지만 거부한다면 군대를 몰고 가 모두 점령할 것이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위협적인 서신을 보냈다.

다시 몇 주의 시간이 흐른 후.

제일 수색대를 제외한 나머지 수색대가 모두 복귀하였다.

제일 수색대도 목적지까지 모두 정찰을 완료하였고, 이제 막 복귀를 하고 있다고 한다.

호진은 수색대가 보낸 정보들을 정리하면서 수색대를 꾸린 것이 아주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적들의 전력은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다.

게다가 그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까지 준비하고 있었고.

도중에 수색대가 위험에 처한 일도 있었지만,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왕국과 공국은 항복을 하였지.’

그리고 왕국과 공국. 두 나라는 생각보다 쉽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들은 폴그룬의 위용을 익히 들은 바, 저항할 생각을 버리고 바로 항복을 하였다.

특히 권력층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게 해 준다는 말이 가장 잘 먹혀든 듯했다.

결국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에바 왕국.’

그리고 제일 수색대의 복귀.

호진은 모든 동맹에 연락을 넣어 병력을 소집하라 일렀다.

수인 왕국. 마틴, 그림자 요정. 바하트리스. 새로 영입한 두 왕국.

호진이 가진 모든 힘이 한 지점으로 모이고 있었다.

‘에바 왕국을 밀며 그대로 상대 방 쪽으로 밀고 들어간다.’

그는 그리 결론을 내리며 눈을 감았다.

* * *

제일 수색대가 바하트리스의 국경에 도착했다.

호진은 그들이 돌아오는 대로 군대를 출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세상은 모두 예상하는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이제껏 잠잠히 있던 마물 군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력의 삼 분의 일이 제국으로 향하고 있다더군.”

수색대가 거의 다 복귀했기에 회의실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인원이 모여 있었다.

“총 공습… 이라고 봐도 되겠지. 이 정도 규모로 쳐들어온 적은 없었으니.”

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마물 군세의 삼 분의 일이 제국으로 쳐들어갔다.

그렇다고 나머지 삼 분의 이가 가만히 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다른 삼 분의 일은 중앙에, 또 나머지는 중앙 하단으로 집결하고 있다더군.”

그들의 전 병력이 움직이고 있다.

“하긴. 애초에 수비고 뭐고 필요가 없는 놈들이니.”

말 그대로 총 공습이다.

애초에 그들은 지킬 땅이 없다.

생활의 터전도 없고, 각자의 삶도 없다.

놈들의 주 전력은 마물.

농사를 지을 필요도 없고, 집도 필요도 없다.

기실 놈들의 어마어마한 물량과 더불어 가장 무서운 점 중 하나였다.

인간을 비롯해 다른 종족들은 그리할 수가 없다.

아주 호전적이라 일컬어지는 오크마저도 의식주는 필요했다.

잠을 자야 하고, 쉴 곳이 필요하며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리고 크게 싸우고 나면 피로감을 느끼기도 하고, 감당하기 힘든 적에 대해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아주 호전적이라 그런 것이 잘 드러나지 않을 뿐. 그들도 엄연한 생물체들이었다.

반면에 마물들은 달랐다.

마물도 자세히 분류하자면 그중에는 일반 생물과 비슷한 놈들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놈들도 많았다.

살아 있는 것에 대한 무한한 적개심. 단지 그것만을 가진 채 돌아다니는 놈들이 훨씬 많았다.

“그래. 애초에 오래 끌 필요는 없는 싸움이지.”

나는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고서 말했다.

“일주일 후로 예정되어 있던 즉위식을 오늘로 당긴다. 그리고 바로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저, 전하!”

이제껏 조용했던 회의실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난 손을 들어서 다시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

“이젠 정말 여유가 없어. 즉위식은 아주 간소하게. 그리고 모든 곳에 연락을 넣어 배불리 먹이도록 하라.”

황제 즉위식.

이제 우리 폴그룬 왕국은 제국으로 발돋움할 때가 되었다.

규모 면에서도 그랬고, 나 개인적으로도 필요했다.

‘시스템이 먹통이 되긴 했지만.’

본래 왕으로 즉위 했을 때도 막대한 혜택이 있었다.

시스템이 먹통이 된 지금도 그게 정상적으로 이루어질진 모르지만, 우선 시도해 볼 필요는 있었다.

난 잠시 턱을 매만지다가 덧붙여 말했다.

“한 시간 후. 바로 시작한다.”

* * *

갑작스러운 내 명령에 모두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은 듯 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시 폴그룬에 머무는 인원은 모두 중앙 광장으로 모였고, 그것마저도 부족해서 도시 곳곳과 성벽 바깥에까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왕 즉위식 때도 그리 거창하게 준비한 건 아니었지만, 이번엔 더더욱 간소했다.

난 음식들을 미리 꺼내서 배치해 두라 일렀고, 준비가 대충 끝난 후에는 신전의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리하여 짐은 오늘로…….”

그리고 준비한 연설을 간단하게 끝마쳤다.

-와아아아아아!

난 열성적으로 환호하는 백성들을 보며 복잡한 기분이었지만 우선 웃었다.

황제.

본래 내가 생각했던 끝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선 황제 위에도 뭔가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에 와서는 대충 그게 뭔지 감이 잡힐 것 같기도 했다.

‘신이 되라는 말인가.’

난 몸속에 자리 잡은 그릇을 느꼈다. 신들의 흔적.

신격을 싹 틔울 씨앗.

나는 뇌신이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을 떠올렸다.

‘그건 그저 씨앗일 뿐이다. 자연스레 신이 될 수는 없다는 소리지.’

백성들은 연설이 끝난 후 준비해 둔 음식들을 먹으며 신나게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전쟁을 앞둔 만큼 과한 음주는 금하였으나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 보였다.

하지만 난 그들의 웃는 낯 뒤에 숨어 있는 불안감을 보았다.

저들도 알 것이다.

곧 전쟁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그것도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전쟁이.

그 모든 소용돌이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뇌신은 내게 말했었다.

신이 되는 방법. 그것은 단 하나뿐이라고.

‘신화를 만드는 거다. 그야말로 신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거대한 신화를. 그리하여 너는 살아 있는 신이 될 것이다.’

나는 전략가와 제국을 떠올렸다.

신에 대해 생각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생각하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