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가장 중요하면서도 위험한 지역이니만큼 제1수색대의 멤버를 정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수색대를 조직하기에 앞서 제1수색대의 멤버들을 미리 선정해 놓았다.
그렇기에 오늘 수색대 조직을 발표하며, 동시에 제1수색대를 만들 수 있었다.
수색대의 멤버는 총 셋이다.
우선 페일.
그는 기본적으로 영리하다.
게다가 오랜 시간 지켜본 바로는 상황 판단력이 빠르고, 임기응변에 능한 편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실제 나이도 어리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쨌든 그의 외형이 소년이라는 것이었다.
‘훨씬 덜 수상해 보이겠지.’
수색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정찰 및 정보 수집이다.
눈에 덜 띌수록 좋다는 뜻이다.
만약 수색대의 멤버를 단순히 무력 순으로 정했다면 크룩, 케륵, 그리고 이렌이나 트렌을 보냈겠지.
그리고 무지하게 수상해 보였을 것이다.
하나같이 종족도 다르고, 그 기세도 매우 흉악하니까.
여하튼, 페일은 그런 이유로 뽑았다. 그 자신이 자원하기도 했고.
그다음 제크. 그는 기본적으로 페일과 많은 합을 맞춰 봤으며, 의외로 그렇게 멍청하지도 않다.
애초에 멍청했으면 한 단체의 수장을 맡을 수는 없었겠지.
그는 수색대에서 무력을 담당할 거다.
그리고 제1수색대의 마지막 멤버.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난 인자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중년 남성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 강혁. 그대의 지혜와 경험으로 이번 여정을 잘 완수하리라 믿소.”
난 반 존대의 어정쩡한 말투로 남성에게 말했다.
“전하의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남자도 나름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예를 취했다.
그의 이름은 최강혁.
헌터 클래스의 랭커이자, 정찰, 탐색 계열에선 공공연히 최고로 인정받던 남자이다.
영입한 후 정찰병들을 교육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이미 그 능력이 뛰어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럼 필요한 물자들이 모두 준비되면 수색을 떠나는 거로 하지.”
“예.”
멀리 가는 만큼 물자는 넉넉하게 준비해 두라 일렀다.
세 명 다 플레이어인 만큼 운반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서 다행이다.
우리는 그 이후로 몇 가지 안건에 대해 더 논의한 후 회의를 끝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모두 예를 취한 후 한 명씩 회의실 바깥으로 나갔다.
곧 회의실은 텅 비었다.
난 여전히 의자에 앉은 채로 멍하니 텅 빈 회의실을 보았다.
“으으음.”
탁. 탁. 책상을 두드려도 보고, 팔짱을 껴 보기도 하고.
결국은 그냥 의자에 푹 등을 기댔다.
평소라면 누군가와 대화라도 나눴겠지만, 지금은 대부분 간부가 어딘가로 떠난 상태다.
크룩은 수인 왕국. 케륵은 전력을 늘린다고 다시 마경으로 돌아갔고.
화린과 트렌, 이렌, 철우 그리고 나머지 인원들은 바하트리스와 폴그룬 국경을 돌며 한 번 더 마물들을 청소하러 갔다.
순차적으로 수색대를 내보낼 생각이었기에 그 전에 한번 쭉 청소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돌아오는 대로 왕국의 각 포인트로 배치되거나 수색대를 조직해 대륙을 돌아다닐 것이다.
탁. 탁.
난 탁자를 두드리다가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키루루루루루-!
마침 창가로 뇌조가 도시 상공을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힘에 여유가 생긴 이후로는 항시 뇌조를 소환해 두는 편이다.
하지만 같이 다니는 시간보다는 그녀를 자유롭게 놔두는 시간이 더 많다.
최근에는 그녀와 함께할 일이 적기도 했고.
난 턱을 괴고서 그녀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뇌조는 성장이 빠르다.
지금은 이미 어린 소녀를 넘어서 사람 나이로 치면 고등학생 정도일 거다.
최근 그녀는 대륙의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에 재미를 붙인 듯했다.
안전을 위해서 서부 전선 방향, 즉 현재 마물 군세가 있는 곳이나 제국으로는 못 가게 했지만.
그곳 외에도 제국은 넓고 갈 곳도 많으니.
“조금만 더 놀고 있어라.”
난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전쟁이 시작되면 뇌조를 자유롭게 놔두는 것도 불가능하리라.
그녀도 어디까지나 내가 가진 강한 전력 중 하나였으니 바쁘게 움직이겠지.
그렇기에 지금은 더더욱 그녀를 자유롭게 놔두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곳을 보고, 여유를 즐겼으면 좋겠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나중에 모든 게 끝나면…….’
난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모든 게 끝나면 모두 다 함께 바다에 놀러 갔으면 좋겠다고.
* * *
수색대를 조직하는 일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인원이 복귀하는 대로 수색대를 조직하고, 그들을 차례차례 내보냈다.
제1수색대는 약 절반쯤 도착했다는 것 같고, 이 수색대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정보를 수집 중이다.
그 후로도 쭉쭉 각 수색대를 통해서 정보가 들어왔다.
나는 수정구를 통해 가끔 전체 회의를 하며 들어온 정보에 따라 필요한 조처를 했다.
우선 이번 수색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이득은 마물 군세의 배치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더 넓게 퍼져 있군.”
나는 지도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 두고서 내려다보았다.
탁자 위에는 나무로 깎은 말들이 있었는데, 현 대륙의 정세를 간단하게 표현하기 위해 만든 것들이다.
“제국은 우리의 세 배.”
그것도 우리는 수인 왕국, 마틴, 그림자 요정, 바하트리스 공국을 포함해서 말하는 것이다.
확실히 제국의 크기가 크긴 크다.
심지어 우리 왕국은 타 국가들보다 인구 대비 병사의 숫자가 월등한 편이었다.
플레이어들을 계속 끌어들여 그들의 신화 포인트를 이용해서도 계속 식량을 생산하고 있으니까.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그만큼 적어도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계속 이런 형태를 유지할 수는 없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전쟁에 앞서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뿐.
그 정도로 상대의 수가 압도적이었으니까.
“마물 군세는 약 열다섯 배 정도…….”
그야말로 할 말을 잊게 만드는 수였다.
그 결과 현재 지도에는 거의 절반 정도가 마물 군세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직접 수색대를 사방으로 보내기 전까지는 몰랐던 부분이다.
여긴 지구가 아니다.
인터넷도 없고, 정보 교환도 느리다.
물론 끊임없이 페일을 주축으로 해서 정보를 수집해 오긴 했지만, 아예 전달이 안 되는 정보를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얻은 정보가 딱 그랬다.
마물 군세는 빠른 속도로 진격했고, 많은 나라가 주변에 도움 요청을 하지도 못한 채 멸망했다.
더 정확히 파고들자면, 도움 요청을 한 나라들조차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멸망했다.
‘이렇게 보니 어마어마하네.’
그들이 처음 서부전선을 뚫었을 때만 해도 소식이 늦지 않게 전해지곤 했었다.
그때는 거의 한 번에 한 나라씩 순차적으로 침공을 했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주변으로 소식이 전해질만 한 나라들을 동시에 침공했다.
그렇기에 정보가 퍼져 나가지 못한 채 그들은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이 정도면 거의 우물 안 개구리였군.’
아무리 동부의 끝에 있었다고 하지만, 서부의 대부분이 점령당할 때까지 제대로 파악을 못 하고 있었다니.
“뭣보다 신성 도시 연합이 무너졌을 줄은…….”
난 지도의 중앙을 보았다.
본래 그곳에는 신성 도시 연합이 존재했다.
신성 도시 연합.
대충 설명하자면 본래 있던 도시 연합에 유난히 세가 강한 종교들이 터를 잡았고.
결국, 그들이 아예 권력까지 휘어잡은 채 저들의 이름을 신성 도시 연합으로 바꾼 것이다.
도시 연합이긴 해도 웬만한 왕국보다 강한 병력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교단에는 많은 사제와 성기사들이 있으니까.
다른 데는 몰라도 그곳은 버틸 줄 알았는데…….
‘하긴. 제국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줄도 몰랐지.’
믿을 수 없는 거로 따지자면 제국의 붕괴가 더 충격적이기도 하고.
“그래도 다행이네.”
다만, 다행인 점은 신성 도시 연합도 제국과 마찬가지로 그 주력이 완전히 붕괴된 건 아니라는 거다.
‘신성 도시 연합과 제국이 손을 잡다니.’
이미 나라가 붕괴하였으니 둘이 손을 잡았다고 하긴 그렇지만, 어찌 됐든 둘의 주력은 살아남아 손을 잡았다.
‘강혁 아재 아니었으면 아예 그 존재를 모를 뻔했군.’
그들은 아예 새로운 곳에 터를 잡았다.
바로 제국과 폴그룬의 중앙쯤에 있던 산악지대였다.
동부는 서부에 비해서 몇몇 곳을 제외하곤 평야 지대가 대부분이었는데, 폴그룬과 제국의 중앙엔 유난히 많은 산이 모여 있는 곳이 있었다.
본래 그곳은 산세가 험해서 화전민들만이 드문드문 자리를 잡고 있다고 알려졌었다.
제1수색대에 속한 강혁은 목적지를 향하다가 산악지대로 이어진 수상한 흔적을 발견하고선 그곳을 정찰하다가 그들의 존재를 발견했다고 한다.
‘잔당들만 모였는데 우리랑 비슷하거나 큰 병력이라니.’
난 피식 웃었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던가.
망국의 잔당들이 모인 것뿐인데 그 세력이 제국 바로 다음. 우리와 2, 3위를 다툴 만한 전력이다.
‘큰 도움이 되겠어.’
그리고 다행인 건 그들의 특성상 결코 마물 편에 붙지는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제국의 잔당만 모였다면 모를까 신성 제국의 사제들이 마물에게 호의적일 리는 없으니까.
난 지도를 좀 더 보다가 그것을 한쪽으로 치웠다.
우웅-
품속에서 진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난 구슬을 꺼내 들고서야 그것이 제1수색대에서 온 연락이라는 것을 알았다.
-전하!
연결하자마자 급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페일의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지?”
-놈들이 노리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페일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놈들은 악마마저 이용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 * *
제1수색대는 은밀하게 서부지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물의 군세가 점령했다곤 하나, 놈들이 점령한 땅에 인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독하군…….”
앞서 걷던 강혁이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그들이 있는 곳은 마물에게 점령당해 폐허가 되어 버린 왕국이었다.
그리고 이런 곳에도 인간은 살고 있었다.
그것도 마물의 노예로.
페일도 강혁의 말에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에 인간의 시체가 널려 있고, 인간들은 생기를 잃은 채 돌아다니고 있다.
도중 인간형의 마물들이 있었고, 그들은 인간들을 재촉하며 무언가 일을 시키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광경이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들은 역할은 어디까지나 정보 수집이었으니까.
당장 화를 참지 못해 나서면 모든 것이 어그러질 터였다.
분노를 삭이며 걷는 가운데 제크가 문득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뭐지?”
제크가 가리킨 곳을 따라 강혁과 페일의 시선이 이동했다.
“으윽.”
페일은 그것을 보자마자 앓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나이치고, 아니 성인과 비교하더라도 담이 큰 페일이었으나, 그것은 본능적으로 구역질이 나는 광경이었다.
그것은 인간들로 쌓여 있는 탑이었다.
심지어 그중에는 아직 살아 있는지 신음을 내는 이들 또한 있었다.
“이런…….”
강혁 또한 그것을 보고서 탄식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은 페일과 같은 종류의 감정이 아니었다.
그는 저 탑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페, 페일.”
“예.”
강혁은 떨리는 목소리로 페일을 불렀다.
“당장 호진 님에게 연락해. 저것은 최소 중급 이상의 악마를 소환하는 데 쓰이는 공양물이다.”
그리고 인간 탑의 정체에 대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