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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58화 (158/170)

158화

흑룡과 마물들의 공세를 막아 낸 이후 호진은 돌아가는 정황을 확실하게 파악했다.

마물들의 공습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것이었다.

폴그룬의 왕국에도 호진이 맞섰던 군세 말고도 이곳저곳에서 침입이 있었던 게 확인되었다.

다행히 미리 배치되어 있던 병력만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수준이었고, 큰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곳들은 사정이 달랐다.

우선 바로 옆에 있는 바하트리스 공국.

철우는 공국에도 적들의 침입이 있을 거로 파악한 후 미리 병력을 뺐다.

애초에 그들과는 서로 평화 협정을 맺은 것이지 서로 돕는 동맹 같은 게 아니었으니.

여하튼, 예상대로 바하트리스에는 막대한 병력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수는 호진이 상대한 것보다는 수가 적었지만, 바하트리스는 상당히 여력이 줄어든 상태.

그리하여 아직 마물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상태였다.

마물의 공습에 제대로 저항도 못 하고 쓸려 나간 몇몇 국가가 있는 걸 생각하면 그나마 나은 형편이었으나.

그들도 풍전등화의 입장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

“전하.”

그래서 호진이 복귀한 지 약 삼 일 후.

“바하트리스 공국에서 전령이 왔습니다.”

그가 기다리던 소식이 마침내 도착했다.

“들라 하여라.”

호진은 몇몇 사제를 대동한 채로 회의실에 앉아 전령을 기다렸다.

곧 한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몸 곳곳에는 자잘한 상처를 입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달려왔는지 안색은 파리했다.

“마,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

“됐다. 상황이 급박할 터이니 바로 본론을 꺼내 봐라.”

전령은 호진의 말에 한번 숨을 가다듬고서 그의 말대로 본론을 꺼냈다.

급박한 나라 사정만큼이나 그의 마음 또한 급한 건 마찬가지였으니.

곧 전령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목소리로 바하트리스의 현재 상황에 대해 상세히 말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야 본래 목적을 꺼냈다.

“…그리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그렇군.”

호진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전령을 빤히 바라봤다.

분명 얼마 전까지 자신들의 왕국에 선전포고를 해 왔던 놈들이다.

딱히 제 뺨 때렸던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무시할 수도 없었다.

결국 호진은 얕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 상세한 조건은 들고 왔겠지?”

“예, 예. 그렇습니다.”

전령은 품 속에서 공작이 직접 작성한 문서를 꺼내어 건넸다.

다른 사제를 통해 그 문서를 받아 든 호진은 턱을 쓰다듬고서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 중으로 답변을 줄 터이니 편히 쉬고 있도록.”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곧 전령은 다른 사제의 안내를 받아 밖으로 나갔다.

호진은 곰곰이 생각했다.

바하트리스 공작도 아주 급하긴 했는지 조건은 꽤 후했다.

‘하긴, 나라가 망할 처지에 있는데 이 정도 조건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으리라 생각했겠지.’

공작은 제 나라가 망한 후에나 호진이 무혈 입성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손쉽게 나라를 먹어치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에겐 다행히도 호진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선 무리하게 영토를 넓혀 봤자 빈틈만 생길 뿐이다.’

마물이 본격적으로 침공을 해 오는 상태이다.

지금은 바로 옆에 바하트리스 공국이 있어 그쪽으로 군세가 향했다지만, 아마도 그들이 없었다면 이번엔 동시에 두 군데서 쳐들어오는 군세를 맞이해야 했으리라.

그것은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해당하는 일이다.

이를 테면 호진은 아직 바하트리스라는 방파제가 필요하다.

그 방파제가 허술하다 하더라도 없는 것보단 나으니.

호진은 몇몇 사제들과 좀 더 협의를 이어 갔고, 곧 바하트리스에 병력을 파견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하지.”

파견하는 것은 크룩과 철우, 그리고 플레이어 네 명을 대동하기로 했다.

현재 호진의 밑에는 플레이어가 꽤 여럿 있다.

고르고 골라 찾아낸 이들도 있었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조사 과정에서 파악된 이가 있으면 무조건 영입을 하였다.

플레이어가 많아서 손해 볼 건 거의 없으니까.

혹시라도 플레이어가 말썽을 일으킨다면 어렵지 않게 컨트롤할 자신도 있었다.

‘실전 경험 좀 쌓아야지.’

그렇게 모집한 플레이어 중에는 이 세계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은 이들도 있었지만, 아닌 이들도 많았다.

크룩과 철우, 그리고 플레이어 한 명. 이 셋이면 충분히 마물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을 거다.

나머지 플레이어 셋은 그들 옆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또한 실전 경험을 하면 그걸로 족하다.

그들은 바로 전령을 따라서 내일 출발할 것이다.

대규모 병력이 움직이는 게 아닌 만큼 길게 끌 필요는 없으니까.

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 정리를 끝냈다.

그는 고개를 들어서 맞은편을 보았다.

“그래서 누구시라고?”

푸른빛의 머리칼. 창백한 피부.

무엇보다 특이한 건 그의 눈이 텅 비어 있다는 것.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난 풍룡 님의 가디언이다.”

그는 자신을 소개했다.

* * *

수도 폴그룬에는 뇌신이 직접 내린 방어막이 설치되어 있다.

왕국의 백성을 제외하고선 별도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출입할 수 없는 고도의 술법.

게다가 경비병들도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외부의 인원이 함부로 침입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데, 호진은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왔을 때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는 남자를 맞이했다.

어찌나 자연스럽게 앉아 있던지 호진은 왕국에 저런 사람이 있었던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호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우선해야 할 일들을 먼저 처리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할 말이 있으면 먼저 말하겠지, 하고.

그리하여 이 남자가 ‘풍룡’의 가디언이라는 건 그도 지금에야 알았다.

“풍룡이라고?”

“그래.”

호진은 남자를 빤히 보았다.

풍룡이라. 그도 분명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다.

풍룡. 광룡. 초록빛 머리칼의 여자. 기억 속에서 봤었던 여자.

“그걸 내가 어떻게 믿지?”

“그대가 믿고 말고는 상관없다.”

남자의 성의 없는 답변에 호진이 막 인상을 찌푸리려고 했다.

하지만 남자는 다시 입을 열어 마저 말을 이었다.

“하지만 풍룡께서 말씀하신 게 있으니 그대의 의구심을 어느 정도는 해결해 주지.”

남자는 거기까지 말하고서 손을 앞으로 뻗었다.

휘이이이-

그다음엔 기운이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호진은 잠시 경계를 했다가 곧 그것이 익숙한 느낌인 것을 깨닫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바람이군.”

휘이-

집무실에 때아닌 산들바람이 불었다.

“그래, 풍월검을 가지고 있으니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로 호진에게 물었다.

호진은 그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라도 다 같은 바람이 아니다.

주술로 일으키는 바람. 마법으로 불러 일으키는 바람.

모든 바람은 다 저마다의 특징이 있다.

그리고 남자가 사용하는 바람의 힘은 풍월검으로 일으키는 바람과 아주 유사했다.

“그렇다는 건 풍월검도 풍룡의 것이었다는 건가?”

“그래, 정확히 말하면 퓽룡의 이빨로 벼려 낸 칼이다. 본래 이름은 풍룡검. 그에 달빛을 담아 낸 이후로는 풍월검이라 이름을 새로 지었지.”

남자의 말은 아주 그럴듯했다.

“그런데.”

호진은 그렇기에 다시 질문했다.

“그러면 그 풍룡의 가디언이 날 찾아온 이유는 뭐지?”

호진은 풍룡도 다른 이들처럼 죽거나 사라진 줄로만 알았다.

오늘, 이 남자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그녀에 관한 얘기라고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심지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풍월검조차 그녀의 이빨로 만든 것이라니.

“풍룡께서 당신에게 보내는 전언이 있습니다.”

풍룡의 전언을 전하려는 가디언의 말투가 바뀌었다.

“왜 직접 찾아오지 않고?”

호진은 일부러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투명한 눈빛을 한 채로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답했다.

“풍룡께서는 현재 거동이 힘든 상태입니다. 어둠이 풀려난 만큼 그녀도 본래 지금쯤 자유로워질 수 있었지만, 백룡 님의 소멸로 타격을 입으셨다고 하더군요. 또한…….”

남자는 그리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호진은 계속 이어지려는 남자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잠깐, 잠깐.”

“왜 그러십니까?”

호진은 남자가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어둠이 풀려난 것과 백룡의 소멸, 그리고 풍룡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거지?”

분명 호진도 단편적으로는 알고 있는 사실들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처럼 직접적으로 그 말을 호진에게 했던 적은 없었다.

뇌신도 그렇고 백룡도 그렇고 별의별 수식어를 다 써 가며 돌려 말하거나.

너는 아직 알 때가 되지 않았다. 아직은 알려 줄 수 없다. 이러면서 말을 돌리거나.

그렇기에 호진도 직접 듣는 건 포기하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지 않았던가.

한데 이 남자는 그런 정보들을 아무렇지 않게 줄줄 말하고 있다.

“이상한 걸 물으시는군요. 다른 분들께 듣지 못한 것입니까?”

“그래. 못 들었다.”

“흐음.”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주 간단합니다. 과거 갑작스러운 어둠의 침입과 흑룡의 배신으로 지룡께서 소멸, 뇌룡께서는 소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래.”

“지룡께서는 그 이후 아예 격을 잃으시고 한낱 괴수와 다름없는 상태로 떨어졌습니다. 그것을 다른 분들은 안타깝게 여기곤 했었지만, 손을 쓸 방법은 없었지요.”

“그… 뭐 그랬겠군.”

그리고 남자는 뇌룡에 대해서도 말했다.

뇌룡, 즉 뇌신은 소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고서 육신을 유지하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그 정신만을 유지한 채 미래를 대비하여 무언가를 ‘보관’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그게 바로 신의 그릇인가.’

호진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룡이 호진에게 준 건 그릇을 채울 힘이었지, 새로운 그릇이 아니었으니.

“그리고 백룡께서는 어둠을 봉인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현재는 마경이라고 불리는 영역 전체에 거대한 결계를 설치하고, 직접 자신의 격을 포기하고. 육을 제물로 바쳐 봉인을 완성하셨죠.”

호진은 그의 말에 마경의 심부에서 봤던 결계와 백룡의 말 등을 떠올렸다.

얼추 그의 말을 듣고 나니 모두 납득이 되는 이야기였다.

“그럼 풍룡은?”

그래서 호진은 전혀 존재를 몰랐던 퓽룡에 대해 물었다.

가디언은 그 질문에 아까 전보다 더 길게 침묵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아주 느릿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말해도 되는 부분인지 아닌지 헷갈려서 잠시 풍룡께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말해도 된다는군요.”

남자는 그리 말했다. 잠시 침묵하고 있던 이유가 풍룡과 직접 연락을 하고 있어서였나 보다.

그리고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호진에게 폭탄 발언을 했다.

“풍룡께서는 이 세계에서 용사들을 소환하는 역할을 맡으셨습니다. 어둠이 소환해 낼 전사들과 맞서게 하기 위해서요.”

남자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끝냈고.

호진은 눈을 부릅뜬 채로 남자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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