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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56화 (156/170)

156화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는 찰나 몸에 환한 빛이 둘러싸였고, 곧 시야가 어두워졌다.

도대체 왜 이렇게 갑작스러운 걸 좋아하는 거지?

그런 불만을 속으로 삼킨 채 난 눈을 꾹 감았다가 다시 떴다.

“호진 님! 케르를.”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괘, 괜찮으십니까? 크룩.”

난 둘의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꽃밭과 오두막.

그곳에 케륵과 크룩이 서 있었다.

애초에 상징물은 힘을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송의 역할도 있었나 보다.

난 손에 들린 상징물을 빤히 보다가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너희들도 괜찮냐? 별일 없었어?”

나는 둘에게 시선을 돌렸다.

크룩은 겉보기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원래 커다랬던 덩치가 더 커져 있던 것이다.

아니, 도대체 어디까지 커지는 거야, 저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난 케륵의 주변에 대기하고 있는 괴수들을 보았다.

백호와 호랑이 둘. 그리고 자잘한 괴수들.

자잘한 괴수들은 내가 이곳까지 오면서 상대했던 괴수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한데, 백호와 호랑이 둘은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내가 상대했던 놈들 중에 저런 놈들이 끼어 있었으면 꽤 위험했으리라.

내가 이기긴 했겠지만.

“예. 별일이 있긴 했지만, 잘 끝났습니다. 케를.”

케륵은 크룩과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난 그것을 모두 듣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발 남자.

그가 무슨 의도였는지 몰라도 우리에게 호의를 가진 건 느껴졌다.

우선 내 몸에 흘러들어온 이 힘만 해도 범상치 않은 것이었으니까.

다만 도대체 그가 누구길래 가타부타 우리에게 시련이니 뭐니 하면서 힘을 준 것인지 궁금할 뿐.

-다들 모였군.

그리고 그런 궁금증을 해결할 순간이 왔다.

우리는 오두막 쪽에서 들린 목소리에 획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처음 보았을 때처럼 백발의 사내가 우리 뒤로 서 있었다.

여전히 저 거울 같은 것 안에서만 보이는 거긴 하지만.

“당신은 누굽니까?”

나는 바로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는 내 질문에 작게 웃음 짓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백룡이다. 뇌신의 유산을 습득했다면 나도 본 적은 있을 테지?

그는 웬일로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본래라면 지금쯤 내 본체가 나와서 너희들에게 자세히 설명을 해 줬을 것이다.

“그럼 지금은 본체가 아니라는 말입니까?”

-그래. 난 어디까지나 이 장소에 남아 있는 상념일 뿐. 뭐, 일종의 환영 같은 거라고 보면 되지.

난 그 말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본체는 어디 있는 겁니까?”

-그래. 안 그래도 나도 그 부분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

사내, 백룡이라 밝힌 그는 씁쓸한 웃음을 짓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본체가 소멸한 것이 확인됐다.

“예?”

-말 그대로다.

그는 짧게 덧붙여 말했다. 모종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고, 본체는 그것을 막으려다가 소멸한 것 같다고.

“그, 괜찮은 겁니까?”

담담히 자신의 본체가 소멸하였다 말하는 분신에게 난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애초에 이번 일이 끝나면 소멸할 처지이기도 했으니, 그냥 그 순간이 조금 당겨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만나면 한바탕 뭐라고 하고 싶었는데, 본체는 이미 사라지고 분신만 남은 거라는 얘기를 들으니 그럴 마음도 사라졌다.

-그래, 뭐 어두운 얘기는 여기까지 하지. 내게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양손을 우리에게 뻗었다.

-나는 백룡. 몇천 년 전. 우리는 뇌신과 함께 몇 가지 약속을 했다.

그는 진중한 표정으로 그리 말했다.

-어둠이 다시 깨어날 때, 비록 우리의 육과 영은 사라진 후일지라도 그것을 막기 위한 대비를 하기로.

그의 손에서부터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나온다.

-보통의 필멸자는 어둠을 막을 수 없다. 그는 말 그대로의 ‘신’이며 불멸자. 그 사악한 계획과 별개로 찬란한 신성을 지닌 자이니.

-이호진. 그대는 인연의 흐름에 따라 우리의 힘을 물려받았고, 그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어둠과 맞서 싸워야 할 것이다.

곧 그의 손에서 작은 흰색 구슬이 나타났다.

그리고 돌연 인벤토리 안에 넣어두었던 상징물이 스스로 빠져나왔다.

고리 두 개가 이어진 형태의 상징물.

백룡이 손을 뻗자 흰색 구슬이 상징물로 날아가 환한 빛을 내었다.

-이것은 내 힘이 담긴 물건이다.

-또한, 그대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줄 물건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팔뚝에 내려앉더니 마치 팔찌처럼 내 손목에 자리를 잡았다.

-본래라면 그대들에게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었지만, 본체가 사라진 이상 오래 버티기는 힘들구나.

-그러니… 막중한 책임을 떠넘기고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에 먼저 사과를 한다.

백룡과 우리는 그 이후로도 쭉 대화를 나누었다.

백룡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곧 다가올 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 * *

“그러고 보면, 우리 꽤 출세했네.”

“응?”

“아니, 그렇잖아. 호진이 안 만났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바하트리스 편에서 싸웠을 거 아냐. 겸사겸사 같이 망했겠지.”

화린은 철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랬겠지. 아니, 그 전에 이미 난 죽었을지도 모르고.”

특히 그녀는 호진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물에게 쫓기던 때 모든 것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었으니.

“그런데 살아남아서 이런 자리까지 맡게 됐으니. 출세한 거지.”

“그러네.”

둘은 여상스러운 말투로 대화를 나눴다.

요새 대륙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그리 세상 물정을 모르더라도 무언가 벌어질 것이라는 건 다들 알고 있고.

제국이 멸망했고, 마물을 이끄는 무리는 계속해서 진격을 하고 있으며.

게다가 얼마 전엔 흑룡이 나타나 대륙 곳곳을 파괴까지 했고.

다른 제국은 그것에 침묵하고 있다.

대륙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이렇게 평화롭게 대화 나눌 날도 얼마 안 남았겠지.”

“아마도.”

철우와 화린은 직감했다.

슬슬 모든 것이 끝나 가고 있다는 것을.

특히 얼마 전에 시스템 메시지를 본 이후로는 더더욱 그러했다.

[최초의 ‘황제’가 탄생했습니다]

유저 중 황제에 등극한 이가 나타났다는 메시지.

그 황제가 멸망한 제국의 자리를 차지한 ‘전략가’인지, 아니면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다른 제국에서 벌어진 일인지 둘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황제라는 그 이름 하나만으로 아주 큰 압박감을 받았다.

황제가 무엇인가.

과거 게임 ‘더 리얼’에서의 최고 등급이고, 어느 유저도 달성하지 못했던 등급이다.

본래 대로라면 게임의 끝. 그것에 도달한 이가 벌써 나타난 것이다.

“호진이도 곧 오겠지?”

그렇지만 둘은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았다.

황제 등급을 달성한 이가 얼마나 강력하든, 얼마나 강한 세력을 지니고 있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에겐 호진이 있었고, 폴그룬 왕국이 있었으니까.

기실 철우와 화린으로서는 ‘호진’보다 강력한 유저가 있다는 게 쉽사리 상상되지 않기도 했다.

마치 신과 같은 위용을 뿜어내는 호진보다 더 강력한 유저라니.

그런 게 존재할 수 있을까.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글쎄.”

둘은 그렇게 대화를 마쳤다.

본래 철우는 바하트리스 쪽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얼마 전 폴그룬 왕국으로 다시 복귀했다.

바로 ‘에바 왕국’의 정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본래 에바 왕국의 왕은 현재 폴그룬에 억류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도 에바 왕국은 아무렇지 않게 활동을 이어 가고 있었는데, 왕에게 들은 정보와 여러 첩보를 종합해 본 결과, 에바 공작이 왕의 자리를 꿰찬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그 에바 공작이 마물 군세, 즉 전략가에게 붙었다는 정보가 돌았다.

단순히 소문에 불과했다면 굳이 바하트리스에서 철수할 이유가 없었을 거다.

하지만 실제로 에바 왕국과 바하트리스의 국경에 마물의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그 마물들은 오롯이 바하트리스 쪽만 노리고 공격해왔다.

폴그룬의 간부들은 그런 상황에서 굳이 피해를 감수하기보다는 병력을 철수하는 쪽을 택했다.

굳이 남의 싸움에 끼어들어 피해를 볼 필요는 없다…….

아무래도 그런 여론이 강했다.

다가올 전쟁에 대비하여 전력을 비축해 둘 필요가 있었으니.

여하튼, 폴그룬은 흩어졌던 전력들을 끌어모아 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예상보다 빠르게 전쟁의 등불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마물 군세가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제국의 국경 쪽이 계속 뚫리고 있습니다!

-켈 왕국이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갑작스럽게 사방에서 급보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폴그룬의 간부들은 바로 호진에게 연락을 넣었고, 곧 답이 돌아왔다.

-곧 복귀할 테니 대기하고 있어라.

짧은 한마디.

폴그룬은 그 말에 따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숨죽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물들의 군세는 폴그룬 왕국의 근처까지 다다랐다.

폴그룬의 수도에 모여 있는 간부들은 한데 모여 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병력은?”

“우선 마물 군세가 다가오는 쪽으로 1군단을 2급 사제 둘과 함께 급파하였습니다.”

“전하로부터 연락은 아직 없나?”

“그렇습니다.”

철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탁자 위에 놓인 지도를 보았다.

마물 군세의 진격 속도가 심상치 않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더 빠른 게 문제였다.

‘그놈, 차원을 다루는 놈이 연관되어 있는 건가?’

철우는 과거 단신으로 마물 군세를 이끌고 왔던 남자를 떠올렸다.

분명 그의 능력이라면 아주 긴 거리도 단기간에 진격해 올 수 있을 것이다.

단신으로 이동한 후 소환만 하면 되니.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급보, 급보입니다!”

전령의 급박한 표정에 누구도 무례함을 탓할 생각을 못 하고 그의 말을 들었다.

“흑룡 셋이 군세 측에 합류한 게 관찰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흑룡을 마주했었다.

놈은 이곳 수도에까지 쳐들어왔었으니까.

호진의 말로 그것이 흑룡의 본체가 아니며, 놈이 또다시 쳐들어올 수 있다는 것까지 알긴 했지만.

그 숫자가 셋이라니?

“이럴 때가 아니군.”

철우는 바로 벌떡 일어났다.

“당장 간부 셋은 그곳으로 이동하라. 그리고 모든 병력들에게 대기 명령을 내리고 난 호진에게 직접 연락을 넣겠다.”

철우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막 다들 일어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급보입니다!”

또 한 명의 전령이 열린 문으로 뛰어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 전령은 앞서 들어와 있는 전령을 보곤 움찔 놀라더니 다시 철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또 무슨 일인가?”

“그, 그게. 흑룡 셋이 마물 군세와 함께 진격해 오고 있는데…….”

이어진 전령의 말에 무슨 일인가 싶었던 간부들은 시선을 거뒀다.

철우는 그래도 전령을 그대로 놔둘 수 없기에 작게 한숨을 쉬며 손을 내저었다.

“그건 이미 앞서 온 전령이 말했다. 물러나라.”

“그… 전하가 국경에 나타나 군세와 싸우고 있다는 것도 이미 들으셨습니까?”

하지만 이어진 말에 모두의 시선이 다시 전령에게로 쏠렸다.

“뭐라고?”

“전하와 케륵, 크룩 대사제가 국경에 나타나 마물 군세를 격파하고 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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