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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55화 (155/170)

155화

모든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애초에 백발 사내는 호진 일행에게 악의 같은 건 없었고, 순전히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것이 그의 역할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일행은 자신에게 내려진 시련을 극복하여 힘을 얻을 터였다.

나름의 위기는 있겠지만, 충분히 그 위기를 헤쳐나가고 이곳에 도착하리라.

백발의 사내.

백룡은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정해진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시작은 아주 작은 균열이었다.

백룡이 있는 공간, 수십 개의 거울로 둘러싸인 공간에 작은 균열이 생겨났다.

이 공간의 주인인 백룡조차 모를 정도로 작은 균열이.

그 균열은 백룡이 호진 일행들을 신경 쓰느라 다른 곳에 집중할 때마다 그 크기를 키워 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백룡이 그 존재를 알아챘을 땐 그 균열은 손가락 두 개만 한 크기로 커져 있었다.

“이런……!”

균열을 발견한 백룡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다급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그것을 틀어막고자 했다.

우우웅-!

하지만 균열은 살아 있는 것처럼 백룡의 힘을 거부하며 그 크기를 계속 키워 나갔다.

백룡이 힘을 부으면 부을수록 균열은 게걸스럽게 그걸 먹어치우며 주변으로 퍼졌다.

백룡도 균열을 막기엔 늦었다는 걸 깨달았다.

스으으으-

균열 사이로 검은 안개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개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다리고 있던 보람이 있었군.

백룡은 차갑게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이곳이 내 영역인 걸 잊은 건가?”

-글쎄. 그게 중요한가?

안개는 마치 물감처럼 순백의 공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자네에게 남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거 같은데.

검은 안개.

어둠은 그리 말했다.

-그렇지 않나?

그의 말에 백룡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말대로 호진에게 힘을 물려주고 나면 자신은 사라진다.

애초부터 그리 정해진 거였으므로.

다만, 어둠이 직접 이곳까지 침투해 오리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봉인’은 자신이 사라지며 천천히 풀릴 예정이었지만, 직접 침투해 온 이상 훨씬 빠르게 풀려 버릴 것이다.

계획이 틀어져 버린다.

“근데 그건 모르나 보군.”

그 상황에서 백룡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 공간은 그 자체로 많은 힘이 쌓인 장소였다.

본래는 호진에게 넘길 생각이었지만, 그는 그것보다는 ‘어둠’을 억제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결단은 빨랐고.

백룡은 행동했다.

“넌 여기까지 들어오면 안 됐어.”

백룡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거울들이 거칠게 요동친다.

-이런!

계속 자신만만하던 말투였던 어둠이 처음으로 당황한 듯 소리쳤다.

어둠 그 자체인 검은 안개는 본래 들어왔던 균열 속으로 빠져나가려 했으나, 어느새 그 균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백룡의 온몸이 밝게 빛난다.

하얀 빛을 뿜어내며 그는 말했다.

“조금만 더 같이 있자고.”

몇천 년을 같이 있었는데, 벌써 헤어지기는 아쉽잖아?

그런 말을 덧붙이며 백룡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크아아악! 감히!

거칠게 요동치는 안개를 보며 백룡은 생각했다.

‘뇌룡.’

그의 오랜 친우를 떠올리며.

‘네가 잘했으리라 믿는다.’

눈을 감았다.

후우우우우웅-!

모든 빛이 한 점으로 모였고.

번쩍-

작은 섬광이 일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 *

그 시점.

호진과 케륵, 크룩은 거의 목적지에 다다라 있었다.

가장 먼저 끝을 직감한 건 크룩이었다.

“이런.”

크룩에겐 직접적으로 끝을 알릴 상대가 있었으니까.

한참 크룩과 싸우던 족장이 별안간 당혹감이 섞인 말투로 말하자 크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이 되었군. 생각보다 빠르게.”

족장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네가 시련을 통과했다는 거다.”

족장은 방금 전까지 휘두르던 도끼를 척 어깨에 걸쳤다.

크룩은 족장의 몸이 흐릿해지는 걸 알아챘다.

“이대로 끝나는 건가?”

“그래. 아쉽긴 하지만. 할 건 다 했으니 다행이군.”

족장은 크룩에게 성큼 걸어가 팔을 뻗었다.

크룩은 반사적으로 팔을 뻗었지만, 족장의 손은 그대로 크룩의 팔을 통과해 그의 머리에 닿았다.

“가져가라.”

우웅-

그와 함께 족장의 몸이 하얀빛에 휩싸였다.

크룩이 뭐라 더 말하기 전에 족장의 몸이 산산이 흩어지며 그의 몸으로 빨려들었다.

“크윽.”

크룩은 돌연 현기증이 일어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무언가가 몸을 억지로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크후우.”

그리고 현기증이 끝났을 때 크룩은 무언가가 바뀐 걸 느꼈다.

방금전까지 진이 다 빠진 느낌이었는데, 어느새 온몸에 활력이 가득했다.

꽈득-

게다가 손을 꽉 쥐어 보니 전보다 더욱 강한 힘이 느껴졌다.

크룩은 몇 번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다가 기운을 끌어올려 보았다.

거대화를 써 보기 위해.

후우우우우욱-!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나가며 크룩의 몸이 순식간에 커져 나갔다.

과거 주술로 사용하던 거대화는 이제 그에겐 하나의 능력이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러웠고, 아주 빠르게 변화가 시작되었다.

다만, 그는 본래 멈춰야 할 성장이 안 멈추고 계속된다는 것에 당황했다.

“크- 르- 우- 욱-?”

거대해진 몸집만큼 그의 당황한 음성도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크룩은 자신의 밑으로 보이는 모습을 보며 그대로 굳었다.

‘전보다 족히 두 배는 더 커진 것 같은데.’

평상시를 기준으로가 아니라, 본래 거대화를 사용한 것보다 두 배는 더 커진 것이다.

크룩은 조금만 움직여도 주변이 다 초토화가 될 것 같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가 뒤늦게 다시 몸집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렸을 때 저 먼 곳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쿠웅- 쿵.

무언가가 지면을 울리는 소리.

크룩이 집중해서 살펴보자 어떤 커다란 괴수가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는 몸집을 줄이려는 생각을 버리고 주먹을 들어 올렸다.

다가오는 괴수의 몸집은 과거 크룩이 거대화를 썼을 때보다 더 커 보였다.

‘근데 너무 크니 좀 불편한 것 같기도 한데.’

크룩은 그런 생각을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운신이 자유로운 곳이라면 모를까, 울창한 숲에서 큰 덩치로 싸울 생각을 하니 살짝 불편하게 느껴졌다.

후욱-!

그런데 크룩이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덩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수축은 딱 크룩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지점까지 이어지고 나서야 멈추었다.

“오오-!”

어느 정도 그가 원하는 만큼 크기를 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크룩은 그제야 족장이 뭔진 몰라도 대단한 걸 줬구나 하고 생각했다.

쿵! 쿠웅!

크룩이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울림은 점점 가까워졌고, 다가오는 것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백호?’

바로 백호였다.

그 옆으로는 호랑이 둘이 더 있었다.

그들도 꽤 덩치가 컸지만, 백호 옆에 있으니 마치 새끼처럼 보였다.

크룩은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자세를 다잡았다.

족장을 만나 주춤했던 호전성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백호가 점점 가까워지며 크룩의 주먹이 천천히 바닥을 향했다.

백호의 등 위에 앉아 있는 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케륵?”

크룩은 반사적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백호의 등 위에 앉아 있던 케륵이 벌떡 일어나 팔을 흔들었다.

크룩은 저 괴수 무리를 케륵이 조종한다는 것에 놀랐고.

케륵도 제 나름대로 아까 전 크룩이 어마어마하게 거대해졌던 모습을 보곤 깜짝 놀란 상태였다.

둘이 제 나름대로 놀란 상태였다.

웬만한 것에는 더 이상 놀라지 않을 만큼.

하지만 그들이 있는 곳으로 호진이 오고 있었다.

* * *

“후욱.”

뒤지겠네, 진짜.

난 숨을 고르며 창을 뒤로 비껴 멨다.

정말 잠시의 쉴 틈도 없이 끊임없는 전투의 연속이었다.

괴수와 마물들은 미친 듯이 달려들었고, 족히 수백 마리는 죽인 것 같았다.

“그래도 다 왔네.”

다행인 건 이제 기둥의 바로 앞까지 왔다는 것.

난 마저 숨을 고르고서 양팔을 들어 올렸다.

이왕 얼마 안 남은 거 남은 길은 깔끔하고 화끈하게 갈 생각이었다.

콰르르르릉!

휘이이이!

바람과 전격을 한데 모아서 작게 압축한다.

바깥으로 터져 나가려는 그 힘을 한데 모아 한계의 한계까지 응축하였다.

터져 나갈 것 같은 힘을 제대로 조종하여 그대로 앞부분을 탁 트이게 했다

우우우우우우웅-!

압축되었던 힘이 전방으로 한 번에 터져 나간다.

기둥과 나 사이를 가로막았던 나무들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쿠우우웅.

커다란 굉음이 인 후에 나는 만족스러운 눈으로 기둥으로 가는 길이 뻥 뚫린 것을 보았다.

환경 파괴를 한 것 같아 가슴이 아프지만.

그러게 누가 이런 짓을 하래.

난 가뿐한 마음으로 뻥 뚫린 길을 따라 걸었다.

다행히 마지막으로 가는 길엔 괴수나 마물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백발 사내를 보면 뭐라고 욕을 퍼부을지 고민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슬쩍 크룩과 케륵에 대한 걱정도 들었다.

나도 상당히 고생했는데, 그 둘은 더더욱 힘들지 않았을까.

‘그래도 똑같은 걸 시키진 않았을 것 같은데.’

둘에게 똑같은 걸 하라 시켰으면 그건 그냥 죽으라는 소리였다.

나도 만약 그릇의 힘이 아니었다면 위험했을 것 같다.

나는 걱정과 기대가 섞인 마음으로 더욱 속도를 높여 기둥으로 달려갔다.

거리가 제법 있었지만, 속도를 높이자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음?”

다만, 기둥은 내가 생각했던 장소가 아니었다.

오두막도. 꽃밭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작은 제단에서부터 빛의 기둥이 뻗어 올라가고 있는 걸 보았다.

원형의 고리 두 개가 겹쳐 있는 형태.

바로 저 상징물에서 빛의 기둥이 솟아오르고 있던 것이다.

난 잠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목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았다.

나는 뒷덜미를 벅벅 긁으며 제단으로 다가갔다.

뭔지는 몰라도 이걸 잡으면 반응이 있겠지.

그래도 이번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뒀다.

일부러 영혼들까지 밖으로 빼논 상태에서 난 손을 뻗었다.

화악-!

내 손이 상징물에 닿는 순간 찬란하게 피어오르던 빛기둥이 사라졌다.

나는 돌아가는 상황을 유심히 살폈다.

하늘 끝까지 치솟았던 빛기둥이 사라지고 반대로 내 손을 타고 미증유의 기운이 흘러들어오고 있다.

고리 두 개가 겹친 상징물은 계속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당장 무얼 할 수도 없어 눈을 부릅뜬 채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번엔 무슨 일이 벌어지려 하는가.

후우웅-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상징물의 진동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몸으로 흘러들어오던 힘도 어느새 멈추고서 몸에 안착한다.

계속해서 위험한 상황을 겪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평온하게 상황이 마무리되자 되려 당황스러웠다.

‘이대로 끝인가?’

아니, 계속 들려오던 목소리는 왜 이런 순간엔 안 들린단 말인가.

난 제단 위에 놓인 상징물을 빤히 보다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우선 뭔지는 몰라도 챙겨 놓을 생각이었다.

“어억?”

그런데 그때 돌연 현기증이 일었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아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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