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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53화 (153/170)

153화

“후욱. 후우.”

난 숨을 가다듬으며 일어났다.

뒤를 돌아보니 미친 듯이 불어닥쳤던 바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이었다.

나는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꽃밭을 보고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찌 됐든 이제 들어가면 되겠지.

케륵 그리고 크룩과 눈을 마주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우선 문으로 다가가 노크를 했다.

똑똑-

안쪽에서 반응은 없었다.

손잡이를 붙잡고 문을 잡아당겼다. 문은 아무런 저항감 없이 쭉 열렸다.

내부가 보이자마자 우리는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또 뭔…….”

문을 열고 나타난 것.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다.

꽃밭을 배경으로 서 있는 우리. 문 바로 앞에 거울이라도 설치해 둔 것인가?

“무슨 거울을…….”

난 앞으로 손을 뻗었다가 손끝에 닿는 감촉에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손끝에 느껴졌던 따뜻한 온기, 거칠한 감촉.

눈앞에 있는 건 거울 같은 게 아니었다.

휘이-

난 귓가를 스쳐 가는 바람에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여기까지 왔구나.

그리고 뒤이어 들리는 목소리에 다시 한번 놀랐다.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지만, 여전히 보이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상이라도 주고 싶지만, 아직 절차가 좀 남았다.

스윽-

“저, 전하.”

난 나를 부르는 케륵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는 우리 앞을 가리켰고, 나는 그제야 목소리의 주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흰색 머리의 사내.

그는 맞은 편 우리를 비추는 곳에 나타나 있었다.

물론 지금 우리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는 저 안에만 존재하고 있는 거다.

사내가 웃는다.

-그럼 성공하길 빌겠다.

무슨 말이냐 물어보기도 전에 우리의 몸이 허공으로 훅 올라갔다.

케륵과 크룩이 당황해서 몸을 버둥거리는 게 보였다.

후웅-!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어딘가로 쏘아져 나갔다.

후우우우우우웅-!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꽃밭, 오두막, 신전, 모든 곳이 멀어져 간다.

난 어느새 멀어진 지면을 보며 내가 마경에서도 더 깊은 곳으로 날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웅-!

지면에 도달하는 순간은 갑자기 허공으로 떠올랐을 때보다 갑작스러웠다.

난 필사적으로 바람을 둘러 추락 속도를 늦추었다.

쿠웅-!

속도를 늦춘다고 힘을 썼는데도 제법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 얼얼한 발끝을 어루만지며 주변을 둘러봤다.

-가운데에 흰색 기둥이 보이는가?

그때 귓가로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렸다.

난 마침 주변을 둘러보다가 흰색 빛의 기둥이 지면에서부터 하늘까지 이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그곳까지 오거라. 그러면 끝날 테니.

“뭐가 끝난다는 겁니까?”

나는 그에게 되물었지만, 대답을 돌아오지 않았다.

난 한숨을 내쉬며 무기를 꽉 쥐고서 기둥을 보았다.

“이곳에도 뭔가 있긴 한다는 거구먼.”

결계가 자동으로 생겼을 리는 없으니 뭔가 있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다만, 그게 또 용들과 관련된 거라고 생각을 못 했을 뿐.

‘분명 기억 속에서 봤던 남자였지.’

뇌신을 제외하면 현실에서 실제로 만난 건 그가 처음이다.

분명 그는 기억 속에서 딱히 최후를 맞이하거나 그런 모습은 나오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그는 살아 있는 걸까?

난 그런 의문을 떠올리며 기둥 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리고 다른 의문 하나.

굳이 우리를 이렇게 따로따로 어딘가로 흩어 놓은 이유가 무엇일까?

휘릭-

난 창을 한 바퀴 돌리며 생각했다.

시련이든 뭐든 뭔가가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난 우거진 숲을 보았다.

뭔가가 튀어나오겠구만.

* * *

“크, 크룩?”

크룩은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그 성격이 담대하고 용맹한 크룩이었으나, 지금 상황에는 그 또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바람이 일더니 호진과 케륵은 어딘가로 휙 날아가 버렸다.

크룩 그도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기에 어딘가로 날아갈 거라 생각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

그런데 그는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다시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러니까 그는 여전히 꽃밭, 그것도 오두막의 앞에 있는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크룩은 당황스러운 음색으로 거울 속의 사내에게 물었다.

벌어지는 상황으로 보아 사내의 정체가 범상치 않은 이라는 건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케륵과 호진을 동시에 어딘가로 사라지게 한 상대에게 설설 길 수는 없는 일.

크룩은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사내는 처음부터 그의 말에 대답해 줄 생각은 없었다.

-기실 호진이란 사내는 날 마주하기 부족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그는 해야 할 말만 했다.

-혼자 왔다면 마땅히 바로 상을 내렸겠지만, 그대 둘이 같이 왔으니 새로운 시련을 내려야 했지.

크룩은 사내의 말에 멍하니 그를 보았다.

-그러니 그대도 호진이라는 자를 위한다면 마땅히 그대에게 내린 시련을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거다.

강요하는 듯한 말투였지만, 호진이 연관된 이상 크룩은 거부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크룩은 얼굴을 일그러트린 상태에서도 얌전히 대답했다.

“그 시련이라는 게 무엇이오.”

그는 건틀릿을 소환했다.

호전적인 크룩을 보며 사내는 맑게 웃었다.

-간단하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의 몸이 천천히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그의 몸의 형상이 어떤 막을 빠져나오면서 천천히 바뀌었다.

두꺼워진 팔과 다리, 그보다 거대한 몸통.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

그의 모습은 일견 크룩과 닮아 있었고, 크룩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조, 족장?”

바로 과거에 그가 주술사였던 시절, 부족의 족장의 모습이었다.

-날 쓰러트려라.

“그게 너의 시련이다.”

족장의 목소리와 사내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허공에서 거대한 도끼가 떨어져 내렸다.

쿠웅!

족장은 익숙하게 그 도끼를 집어 들고서 크룩을 노려보았다.

“새로운 주인을 찾았더구나.”

“조, 족장.”

크룩은 질린 얼굴로 그를 보았다.

잊었던 공포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호진을 만나기 전. 족장은 크룩이 인식하는 세계의 모든 것이었다.

그는 그가 아는 어떤 오크보다도 용맹했고, 강했으며 잔인했다.

제법 강한 힘을 가졌던 크룩조차 족장 앞에서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족장이 목숨을 잃었을 때 그는 걱정이 되는 한편 기쁘기도 했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그의 존재감에선 완전히 해방되었다 생각했었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한번 확인해 보거라. 크후.”

족장은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도끼를 들어 올렸다.

크룩은 그를 보다가 빠득 이를 갈았다.

그도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족장은 더 이상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잠시 과거의 공포에 몸이 굳어졌을 뿐, 곧 그는 과거 족장의 무력을 떠올렸다.

지금의 그에겐 그저 제법 강한 오크일 뿐.

현재 크룩의 수하 중 누구를 데려와도 족장에게 질 상대는 없을 터였다.

“덤비시오, 족장.”

크룩은 하얗게 빛나는 건틀렛을 들어 족장을 마주 보았다.

-아, 참고로 그대의 기억보단 강할 거다. 똑같으면 상대가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시기적절하게 들려온 백발 사내의 목소리에 더욱 전의를 다지며 크룩은 족장에게 달려 들었다.

* * *

울창한 숲.

그 한복판에서 케륵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케르륵.”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호진 님은 북쪽으로 날아가셨었지.’

케륵은 호진이 날아갔던 방향을 다시 한번 되짚었다.

어떤 상황인지는 몰라도 우선 그쪽으로 가 볼 생각이었다.

-대사제 케륵.

하지만 그가 발을 떼기도 전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케륵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곳은 마경. 그중에서도 심부다. 다양한 마물과 괴수들이 머무는 곳이지.

“키히힉!”

또한, 목소리와 함께 어딘가에서 무언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케륵은 빠르게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원숭이를 닮은 괴수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대의 힘은 분명 강하다. 하지만 사령술이란 명확한 한계가 있지. 다스리는 것에 따라 그대의 힘도 달라질 테니.

케륵은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그도 알고 있는 거긴 했다.

현재 그의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드레이크.

하지만 케륵도 앞으로 다가올 전쟁에서 그것만으론 부족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케를.”

케륵은 더욱 노기가 서린 말투로 말했다.

그 와중에도 괴수는 천천히 케륵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간단하다. 그대의 능력을 증명한다면 난 그대에게 아쉽지 않을 만한 힘을 내려 줄 것이다.

“케헥!”

-어디 한번 보여 봐라. 그대의 능력을.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목소리는 끊겼다.

케륵은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의 가장 강력한 힘은 물론 사령술이다.

다만, 사령술은 그것을 시전할 대상이 필요하다는 약점이 있다.

특히 케륵의 사령술은 상대의 뼈와 혈액을 매개로 하기에 휴대하기가 더욱 힘들었다.

평소에는 병력들이 나르거나 호진이 대신 들고 다녔기에 지금의 케륵은 빈털터리였다.

“케헤헥!”

원숭이를 닮은 괴수는 케륵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놈은 보통 원숭이의 열 배는 넘는 덩치였다.

그런 원숭이 앞에 케륵은 일견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놈은 케륵을 얕잡아 보고 있는지 마치 비웃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습군. 케르를.”

케륵은 픽 웃으며 지팡이를 앞으로 뻗었다.

물론 그의 가장 강력한 힘은 사령 술이다.

그러나 그는 사령술사 이전에 주술사다.

그것도 왕국의 가장 강력한 주술사.

콰르릉-!

“나는 벼락 신의 대사제다.”

케륵은 지팡이를 거칠게 앞으로 떨쳤다.

콰아아앙-!

새하얀 전광이 앞으로 뿜어진다.

“키헥!”

괴수는 화들짝 놀라며 옆으로 몸을 날렸지만, 전격은 살짝 스친 것만으로 그의 몸을 획 집어삼켰다.

파지지지직!

“켁, 케에에엑!”

괴수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케륵은 평온한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가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지팡이를 그대로 아래로 내려찍었다.

푸욱!

날카롭게 다듬어진 지팡이의 끝은 괴수의 머리통을 그대로 꿰뚫었다.

부르르 떨던 괴수는 곧 축 늘어졌다.

“흠.”

케륵은 지팡이를 휘둘러 피를 털어 내고서 주술을 외기 시작했다.

“마하둘. 베르케. 페룰. 바.”

그가 주술을 외고서 괴수의 몸을 탁탁 치니 다시 놈의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케흐.”

그리고 곧 괴수가 몸을 일으켰다.

바로 전까지 케륵에게 적개심을 내보이던 괴수가 바짝 몸을 숙였다.

케륵은 자연스럽게 괴수의 몸을 타고 올라서 그의 어깨에 걸터앉았다.

“가자.”

“케흘!”

괴수는 충성스러운 신하처럼 고개를 끄덕이고서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셋은 저마다 다른 방식의 시련을 내려 받았다.

서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모두 망설임 없이 앞으로 뛰어들었다.

오랫동안 조용했던 마경의 심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단 세 명의 인간, 오크, 고블린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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