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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52화 (152/170)

152화

“정말 신전인가 보군.”

난 신전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신전이 신전인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워낙 신전의 탈을 쓴 던전을 많이 봐서 그런지 오히려 새로웠다.

“케르륵. 그런데 정작 누구를 모셨는지는 모르겠군요.”

“그러게.”

난 케륵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에는 조각상이나 그림 같은 건 전혀 남아 있지 않았고, 그저 중앙에 작은 상징물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원… 인가.”

원 두 개가 겹쳐 있는 모양이다.

그것이 작은 제단 위에 올려져 있었다.

“우선 흩어져서 더 살펴보자고.”

“크룩. 알겠습니다.”

그리 큰 크기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흩어져서 신전을 구석구석 살폈다.

나는 아예 용안까지 사용하고서 조사를 했다.

‘누군가 관리를 하는 거 같은데.’

난 신전 내부를 살피면서 들어오기 전과 같은 생각을 했다.

만약 방치되어 있었다면 바닥이나 튀어나온 곳에 먼지가 쌓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게 전혀 없이 깔끔했다.

‘마법이나 다른 힘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난 인상을 찌푸렸다.

만약 이곳이 현실이었다면 당연히 누군가의 손길을 탄 거라고 확정 지었을 테지만.

이곳은 그런 세상이 아니다. 마법이나 다른 힘으로 관리되고 있을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어찌 됐든 우리는 이런저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신전을 조사했지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깔끔하군.”

아주 깔끔하게 아무런 단서도 없다.

결국 우리는 상징이 놓인 제단 앞에 서서 고민에 빠졌다.

“이런 상징물을 본 기억은 없지?”

“케르륵. 그렇습니다.”

“흠.”

난 허리를 숙여 상징물을 더욱 자세히 살폈다.

“세공 솜씨는 보통이 아닌 것 같은데.”

그 형태는 원 두 개가 겹친 모양으로, 아주 간단하다.

그러나 그것을 세공한 방식 자체는 아주 섬세해 보였다.

‘돌? 금속?’

무언가 단단한 재질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겉면이 아주 매끄럽다.

“어느 정도는 지성이 높은 놈들이겠네.”

“그런 것 같습니다. 케를.”

거기까지 말하고 나니 침묵이 내려앉았다.

…내가 추리를 해 봤자 뭐 얼마나 하겠나.

애초에 나랑 잘 맞는 방식은 아니다.

“그럼.”

다른 방법을 써 봐야지.

난 손에 들린 뇌룡창을 꽉 붙들고 기운을 끌어올렸다.

케륵과 크룩이 흠칫 놀라는 게 보였다.

…무슨 생각인지 보이는 거 같은데.

“부수려고 그러는 거 아니니 걱정하지 마라.”

날 뭘로 보고.

난 끌어올린 기운을 이번엔 다시 눈 쪽으로 옮겼다.

확-.

시야가 확 바뀌었다.

시스템 창이 없어졌을 때 달라진 것 중에는 바로 탐색 스킬과 용안이 있다.

그중 탐색 스킬은 상태 창이 망가진 이후로 유명무실해졌다.

사용해 봤자 예전처럼 제대로 된 정보도 나오지 않았고, 오히려 노이즈가 낀 것처럼 방해만 됐다.

반면, 용안은 그 능력이 더욱 강화되었는데.

특히 지금과 같이 기운을 끌어올리면 그 기능이 한층 더 강하게 발휘된다.

평소에는 놓칠 수 있는 것들까지 세세하게 포착할 수 있고, 안 보이던 것들 또한 보이게 한다.

지금도 그렇다.

“흠.”

난 상징물에서 뻗어 나오는 빛을 보았다.

아까 전까진 용안을 쓰고 있는데도 보이지 않던 빛이었다.

그 빛을 따라 고개를 드니 저 앞의 벽 한 지점이 희미하게 빛나는 게 보였다.

‘처음부터 이걸 쓸 걸 그랬네.’

난 그런 생각을 하며 빛을 따라 벽으로 걸어갔다.

벽 바로 앞에 서니 그 빛나는 모양이 일정한 형태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문?’

바로 빛으로 이루어진 문 같은 모양이었다.

당연히 손잡이 같은 건 없었지만, 난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곳으로 손을 뻗었다.

스륵-.

손가락 끝이 벽에 닿자 무언가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우웅-.

그와 함께 뇌령이 낮게 진동했다.

마치 벽과 공명을 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웅-.

난 가만히 그 상황을 지켜보았고, 뇌령에서 한 줄기 기운이 솟더니 벽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그긍-.

크게 울리는 진동.

이번엔 뇌령이 아니라 벽에서부터 시작된 진동이었다.

드드드드드드-!

점점 커지는 진동을 보며 난 크룩과 케륵에게 가까이 오라 말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주변으로 넓게 기운을 퍼트려 우리 셋을 감싼다.

이내 빛나던 부분의 벽이 옆으로 밀려나고 통로가 드러났다.

그긍!

진동은 그 후 단말마를 외치듯 큰 소리를 내며 끝났다.

“문이 맞았군.”

난 드러난 통로를 보며 말했다.

케륵과 크룩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통로… 그래 이건 통로다.

무언가 저 건너편과 이어진 통로.

건너편에선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바람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가자.”

난 조심스레 그 안으로 발을 디뎠다.

통로가 드러날 때까지만 해도 더 안으로 이어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걸을수록 그 생각이 바뀌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밝아지고 신선한 공기가 느껴지는데.

이것은 숫제 우리가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느낌 아닌가.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 거지.’

어쩌면 그냥 바깥으로 이어진 비밀 통로였을지도.

머릿속으로 복잡하게 이것저것 따지며 걷다 보니 곧 통로의 끝이 보였다.

“아.”

그리고 난 드러난 광경에 낮게 탄식했다.

“케르륵.”

“쿠륵.”

놀란 것은 케륵과 크룩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낮은 울음소릴 내는 게 들렸다.

“묘한 곳이로군요. 케르륵.”

“그렇군.”

난 케륵의 말에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숨겨져 있었던 만큼 범상치 않은 곳일 거라 생각하긴 했다.

다만 예상했던 것과 다른 식으로 범상치 않은 곳이라 당황했을 뿐.

“꽃밭이라니.”

바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노랗고 하얀 꽃이 넘실거리는 꽃밭이었다.

게다가 꽃밭 너머에 있는 작은 오두막은 여기가 마경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평화로운 광경이었으니까.

“누군지는 몰라도 보통 놈은 아니겠군.”

어찌 됐든, 이런 장소에 이런 곳을 만들어 놨을 정도면 보통 사람은 아닐 거다.

차라리 안쪽에 흉악한 괴수가 기다리고 있거나 뭔가 심상치 않은 건물 같은 게 있었다면 덜 긴장했을 거다.

그건 예상 가능한 범위 내의 것이었으니까.

난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로 앞으로 쭉 걸어갔다.

누가 가꾼 것인지 모를 꽃밭을 밟고 가기엔 부담스러웠는데, 다행히 꽃밭의 중간에는 작게 길이 나 있었다.

우리는 그 작은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오두막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뭐지?”

꽃밭은 제법 넓긴 했으나 도를 넘을 정도로 광활하진 않았다.

그러니 꽃밭 너머에 있는 오두막엔 금방 도착해야 정상이었다.

“케르륵?”

그런데 걸을수록 가까워지긴커녕 오히려 점점 멀게만 느껴지는 게 아닌가?

“무언가 주술이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케륵.”

케륵이 긴장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 길이라면 이런 일이 있을 리 없으니, 무언가 주술이나 마법 적인 장치가 되어 있는 것이리라.

“풀 수 있나?”

“케륵. 우선 한번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우리는 잠시 멈췄다.

이대로 계속 전진해 봐야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마하두르. 베하밀. 카룰.”

케륵은 진지한 표정으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휘이이이-!

분명 평화로워 보였던 꽃밭에 명확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때부터였다.

“바람이…….”

케륵이 주문을 외자 주변에 거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휘이!

평범한 바람이었다면 신경 쓸 일도 없었을 거다.

“크, 크룩.”

하지만 그 바람은 육중한 무게의 크룩조차 비틀거리게 할 정도로 날카롭고 위력적이었다.

아마도 이것 또한 이곳에 깔린 주술 중 하나인 듯했다.

‘케륵이 주술을 외기 시작하자 대응을 해 오는 것인가?’

분명 던전 같은 곳에 설치된 진 중에는 능동적으로 침입자에게 대처해 오는 것도 있었다.

해주를 하려 하면 도리어 주술사를 공격하는 주술 같은 것도 있고.

여튼, 이 바람도 우리에게 명확한 적의가 있는 건 분명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것이 ‘바람’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것.

키잉-!

난 창을 검으로 바꿔서 앞으로 뻗었다.

바람은 바람으로.

우릴 위협하며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의 결 중간에 검을 꽂아 넣는다.

후우우우우웅-!

이 바람은 단순히 순응하는 것으로 넘어서기엔 그 위력이 막강했다.

이럴 때는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바람은 그 형태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살피면 그렇지 않다.

우웅-!

현재 결의 중간에 놓인 검은 그렇기에 작은 힘으로 막대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우리 쪽으로 다가와 한 번 뭉쳤다가 확 밀어내려는 성질을 띠고 있다.

그렇다면 그 바람 전체를 상대하는 것보다 우리의 근처에 뭉쳤을 때 그것을 흩트리면 되는 일.

휘익-!

나는 바람의 결을 타고 계속 검을 휘두르며 바람이 뭉치는 것을 막았다.

“크루우욱!”

크룩은 눈치껏 움직여서 주술을 외는 케륵을 감쌌다.

내가 위력을 반감시켰다곤 하나 주술을 외는 케륵에게는 주변의 작은 변화조차 민감하게 다가올 거다.

그렇기에 크룩이 몸으로 아예 케륵을 감싸고 선 것이다.

파앙!

난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아예 밤이었다면 일시적으로 주변의 바람을 완전히 밀어내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아무래도 해가 떠 있는 대낮에는 그 위력이 반감된다.

그저 지금은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는 것에 만족해야 할 뿐.

“베라투! 마카라! 바하! 멜!”

케륵은 열심히 주문을 외고 있었다.

점점 더 바람이 뭉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빨리 주술이 완성되어야 할 텐데.

난 이를 악물었다.

“마하챠!”

그리고 어느 순간 케륵이 크게 외치며 지팡이를 앞으로 뻗었다.

우우우우우웅-!

주변에 맹렬한 속도로 형성되던 바람의 핵이 일순간 흐트러진다.

후우우웅!

그리고 그 바람들이 케륵이 높게 든 지팡이로 빨려 들어가는 게 보였다.

핵을 형성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지팡이로 완전히 흡수되는 것이다.

“성공했나?”

난 급한 표정으로 케륵에게 물었다.

케륵은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 일시적으로 주변에 깔린 주술을 무력화시켰습니다. 근데 다시 주술이 재구축되고 있습니다!”

케륵은 그렇게 말하고서 오두막을 가리켰다.

“달려야 합니다!”

난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서 크룩을 붙잡았다.

“크룩! 케륵 꽉 잡고 있어!”

“예!”

난 크룩이 케륵을 잡는 걸 보고서 바로 크룩을 든 채로 앞으로 내달렸다.

‘가까워진다!’

다행히 케륵의 주술이 효과적으로 먹혀든 건지 아무리 가도 가까워지지 않던 오두막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타앗-!

전력으로 발을 뻗는다.

분명 가까워지고 있다곤 하지만, 여전히 그 거리에 비교해 멀게 느껴지는 것은 여전했다.

지금 속도라면 산이라도 몇 번 넘었을 속도일 텐데.

후우우우우우웅-!

게다가 슬슬 뒤에선 다시 바람이 뭉치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쾅! 쾅!

난 아예 땅으로 무식하게 기운을 때려 박으며 몸을 앞으로 쏘아 냈다.

“끄우우워어어어어어어-!”

“케르으으아아악!”

내게 들린 상태인 크룩과 케륵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난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서 그저 빠르게 움직이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난 앞으로 다이빙하듯이 뛰어들었다.

쿠웅!

우당탕!

시야가 미친 듯이 흔들린다.

어지러움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고개를 들었다.

바로 앞에 오두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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