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크룩은 웬만한 건물 기둥 같은 크기의 말뚝을 계속 던져 댔다.
물론 내 인벤토리에서 나온 물건이다.
이번 여정의 준비 과정에는 우리 셋이 덤비더라도 상대하기 힘든 적과 맞서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실제로 그런 적을 만나든, 만나지 않든 말이다.
‘잘 준비했군.’
어찌 됐든 흑룡을 만남으로써 그 준비가 필요했다는 것은 증명되었다.
-크라라아아아아!
드디어 흑룡이 나를 발견했다.
용의 분노에 찬 비명에 나는 바로 몸을 날렸다.
“크룩! 케륵을 지키고 있어!”
“예!”
케륵은 케륵 대로 준비를 하는 게 있다.
우웅!
난 허공으로 몸을 띄우며 한 손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몸에 말뚝이 박힌 채로 달려드는 용의 위세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거대한 말뚝이라도 놈의 기세를 꺾을 수는 없던 것이리라.
다만, 다른 역할은 할 수 있겠지.
쿠르르르릉-!
난 손아귀에 모여드는 기운을 꽉 쥐어서 잡아당겼다.
전격으로 이루어진 벼락의 창은 내 손에서 날카롭게 벼려져 적의 숨통을 노린다.
쿵! 쿵!
거침없이 달려오던 용도 손아귀에 맺힌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피하려 했다.
하지만 난 신경 쓰지 않고 창을 내던졌다.
휘익!
용이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날렵한 몸놀림으로 몸을 비튼다.
빠르게 날아가던 창은 빗나갈 것처럼 보였지만.
쿠르르릉-!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십 갈래로 갈라지며 다시 용의 몸으로 떨어져 내렸다.
파지지지지직!
-키에엑!
벼락은 용의 몸으로, 특히 말뚝이 박힌 곳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그 거대한 몸뚱이가 부르르 떨리며 넘어가는 광경은 꾀나 전율적인 모습이었다.
물론 당하는 처지에선 죽을 맛이겠지만.
후우우우우웅-!
콰직!
게다가 용이 잠시 무력화된 틈을 타서 크룩이 다시 말뚝을 던져 댔다.
두 발이나 몸에 틀어박힌 후에야 용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난 바로 놈에게 몸을 달렸다.
용이 날개를 펄럭이더니 날 무시하고서 크룩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갈 기색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안 되지.
웅-!
난 손에 건틀릿을 소환해 냈다.
기운을 불어넣자 강대한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타앗!
난 땅을 박차고서 용의 몸 위에 올라탔다.
용은 어지간한 공격은 당해 주면서 움직일 생각인지 날 무시하고 있었다.
실로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후우웅!
난 양손을 들어 올렸다가 용의 몸에 박힌 말뚝을 향해 내리쳤다.
푸우우욱!
반절 정도 박혀 있던 말뚝이 끄트머리만 남겨 놓고 깊숙이 파고들었다.
-케에엑!
용이 그제야 당황한 듯 몸을 비틀어 날 떨어트리려 했다.
하지만 내가 또 이런 거 위에서 균형 잡는 데는 이골이 난 몸이다.
난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콰앙!
푹! 콰득!
살벌한 소리가 몇 번이나 퍼지고 용은 크룩이 서 있는 산등성이 바로 앞에서 굴러 넘어졌다.
콰아아아아앙-!
덩치가 커서 그런지 단순히 넘어진 것뿐인데 위협적으로 땅이 울려 댔다.
-쿠오오오오오!
흑룡은 비통함이 절절히 느껴지는 비명을 질러 댔다.
쿠우웅-!
놈이 몸을 일으키더니 날개를 강하게 휘저었다.
아무리 상처를 입었어도 괴수는 괴수. 날카로운 풍압에 몸이 밀려났다.
난 그 바람을 거스르는 게 아니라 그것에 순응했다.
휘이이이이-!
날카롭게 몰아치는 바람 사이에도 길은 있다.
건틀렛을 검으로 변환시켜 잡아 들자 그 길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타앗!
난 그 길을 밟아 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휘오오오오오-!
동시에 산등성이에서 무언가가 솟구쳐 오르는 게 보였다.
용보다는 못 하지만 거대한 동체.
불길하게 넘실거리는 귀화.
본 드레이크.
드레이크는 보통 드래곤, 즉 용보다 한 단계 아래로 본다.
하지만 그 신체 능력 하나만은 용과 비견될 만한 괴수.
이번 여정 중에는 바로 저 드레이크를 사냥하는 것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당연히 놈은 케륵에 의해 본 드레이크로 되살아나 우리의 전력이 되었고.
쿠우우우우우웅-!
드레이크가 막 몸을 일으키려던 용의 목덜미를 물어뜯는다.
좋다.
여기까지는 생각한 대로 되고 있다.
다만 문제는.
‘왜 아무런 능력을 안 쓰지?’
너무 잘되고 있다는 것.
난 드레이크와 용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걸 보았다.
분명 드레이크가 신체 능력만은 용과 비슷한 수준이긴 하다.
다만 그렇다는 말은 둘 사이에 분명 무언가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용은 각자 고유 능력을 갖추고 있다.’
뇌신. 그는 용일 적부터 전격을 다루는 힘을 가졌었다.
지룡. 그는 이무기로 격하된 상태에서도 땅을 다루었다.
일부러 놈이 능력을 사용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이렇게 몰아붙였던 것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까지 무력한 모습을 보이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크오오!
용이 본 드레이크의 몸을 짓밟으며 포효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난 놈과 눈이 마주쳤다.
‘뭔가.’
그 눈을 마주하자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놈의 눈.
그것에는 이성의 흔적이라고는 한 톨도 없었다.
놈의 눈은 용이 아니라 굳이 빗대자면 얼마 전 사냥한 저 드레이크와 닮아 있었다.
난 단숨에 용에게 날아들었다.
콰아아앙-!
용의 머리를 바닥으로 처박았다.
본 드레이크가 놈의 움직임을 열심히 방해하고 있는바, 용을 짓누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콰르르르르르릉-!
난 그 상태에서 그대로 전격을 강렬하게 방출시켰다.
예상과 다른 변수가 생긴 이상, 힘을 아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전력으로 퍼붓는다.
놈이 온전한 용이라면 모를까 이성이 없는 짐승이라면 어렵게 생각할 게 없다.
콰아앙!
쾅!
그저 힘을 퍼부을 뿐.
많은 결심 하에 시작한 용 사냥은 생각보다 허무하고, 무언가 기묘한 위화감만을 안겨 주었다.
우르르르릉-!
콰아아앙!
마지막 벼락 줄기 한 방에 그 거대한 동체를 바닥에 뉘이는 용을 보고선 그런 감정이 더더욱 커졌다.
“그래. 확실히 이상해.”
난 쓰러진 용의 시체를 보았다.
아니, 이건 용이 아니다.
난 용안을 발동하며 놈의 몸을 훑었다.
분명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놈에게서 그다지 이상한 느낌은 받지 못했었다.
한데 지금은…….
용안에도, 그리고 보통의 눈에도 명백히 이상한 일이 눈에 띄었다.
안 그래도 까맣던 놈의 몸이 완전히 검은색으로 물들더니 액체처럼 출렁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몸은 그대로 바닥으로 촤악 퍼져나가 버렸다.
검은 강물이 범람하듯 대지를 뒤덮고 난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휘이이이-
내 눈은 이미 바닥이 아니라 저 허공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그냥 눈에는 안 보이던 것.
검은색의 구슬 같은 게 놈의 몸에서 빠져나와 어딘가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휘익-!
난 그 방향을 눈에 담은 후 몸을 날려 구슬을 잡아챘다.
콰드드드드드-
작은 구슬에서 뻗어 나오는 것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저항감이 들었다.
난 아예 기운까지 써 가며 녀석을 억눌렀다.
드드-
요란하게 날뛰던 구슬은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잠잠해졌다.
난 구슬을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급히 이곳으로 달려오는 둘을 보았다.
“무, 무슨 일입니까? 크룩.”
아직 거대한 크룩과 그의 어깨에 타 있는 케륵이 내게 물었다.
난 여전히 바닥에 출렁거리는 액체를 슬쩍 보고서 말했다.
“용은 저마다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했었지.”
그 능력은 용마다 다르다.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제각각이고.
“아무래도 이게 이 용의 능력인 것 같군.”
분명 이놈의 눈에는 지성의 흔적이 엿보이지 않았다.
아마 놈의 능력은…….
우웅-!
생각을 이어 가려는데 품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가슴팍을 더듬거려서 난 진동이 울리고 있는 구슬을 하나 집어 들었다.
바로 통신구였다.
기운을 불어넣자 곧바로 목소리가 들렸다.
-전하!
“무슨 일이냐.”
-용, 용이 나타났습니다!
그 급박한 목소리에 난 미간을 좁혔다.
* * *
제국의 수도를 파괴한 용에 대한 소문은 온 대륙을 강타했다.
긴 역사를 지닌 수도는 단 하루 만에 파괴되었고, 뒤이어 진격해 온 마물 군세에게 점령당했다.
제국의 주 전력은 적들의 방해로 쉽사리 모이지 못하고 각기 거점을 형성해 버티고 있다.
기실 멸망당했다고 하긴 어폐가 있었으나, 재건한다 해도 이전과 같은 온전한 제국의 형태가 아니리라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호진 일행이 흑룡을 상대하고 있을 때.
전 대륙은 새로운 충격을 맞이하고 있었다.
에바 왕국, 바하트리스 공국, 제국 등등.
모든 곳에 용이 출몰한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폴그룬 왕국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저게 바로 용.”
철우는 질린 듯한 눈으로 거대한 덩치의 생물체를 보았다.
온몸에 칠흑빛의 비늘이 돋은 괴수. 고고한 눈동자로 내려다보는 괴물.
후우우우우웅-!
용이 입을 벌리자 그 아가리로 거대한 기운의 격류가 몰아쳤다.
철우는 바로 무기란 무기들은 모두 끄집어내었다.
“용은 한 번도 상대해 본 적 없는데.”
그는 떨떠름한 말투로 말하긴 했지만,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한번 해 보지, 뭐.”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용의 입에서 막대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철우는 그것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일이 곳곳에서 똑같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용이 한 번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그저 자신이 있는 곳에 용이 나타났다는 것에 경악하고, 맞서 싸우는 것에 집중할 뿐.
그렇기에, 이것이 거대한 전쟁의 서막이라는 것 또한 알지 못했다.
* * *
“여기서 셋으로 갈라진다!”
나는 어느 지점까지 달려온 후 케륵과 크룩에게 소리쳤다.
“예!”
“알겠습니다!”
난 그들의 대답을 듣고서 바로 몸을 날렸다.
내가 맡은 곳은 현재 지점에서 가장 멀다.
또한, 가장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설마 놈의 능력이 분열이었을 줄이야.’
난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분명 용의 능력은 개체별로 상이하고, 별의별 것이 다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놈을 상대하는 처지에서 그것이 ‘고작’ 분신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뿐.
콰아아아앙-!
난 기운을 계속 터트려 가며 앞으로, 앞으로 몸을 날렸다.
셋이서 함께 이동했다면 족히 이틀은 넘길 거리였지만, 혼자서 움직인다면 반나절도 안 걸린다.
‘방어막이 제 역할을 해야 할 텐데.’
난 인상을 쓰며 폴그룬의 수도를 떠올렸다.
우리 왕국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곳엔 강한 전력이 그다지 없다.
우선 뇌신이 직접 내려준 방어막도 있거니와, 사제와 병력을 집중 양성하는 곳이라 전력 자체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상대가 좋지 않다.
그 용과 같은 괴수는 단순히 수가 많다고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차라리 소수라도 강한 이들 몇 명이 더 상대하기 유리하다.
케륵과 크룩은 각자 다른 루트로 왕국의 상황을 확인하며 내 뒤를 쫓아올 테니, 난 일직선으로 달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가능성들을 되짚었다.
왠지 전쟁이 코앞까지 다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